릴로

"개가 짖는 소리가 요란하기에 내 어찌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군자의 가죽을 뒤집어쓴 아귀들이 진흙탕에서 날뛰는 꼴이 실로 가관이로구나."

황금빛 신광이 어두컴컴한 산길을 대낮처럼 가르며 스며들었다. 위백의 입가에 매달린 조소는 한 자루 잘 구워진 비수처럼 날카로웠고, 그의 두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억눌려 있던 극양(極陽)의 진화(眞火)가 이글거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추적대의 대장이자 얼굴에 깊은 칼자국을 품고 있던 위가의 가솔, 위충(魏忠)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칼끝에 매달려 사시나무 떨듯 떨던 어린 약초꾼의 목덜미에서 시퍼런 쇠붙이가 거두어졌다.

"위백...! 네놈이 제 발로 무덤을 찾아 들어왔구나!"

위충의 목소리에 서린 살기가 사방의 이파리들을 파르르 떨게 만들었다. 그의 외침에 주위에 포진해 있던 낙양 위가 소속의 백의 무인들과 무림맹의 추적대 수십 명이 일제히 위백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왔다. 그들의 발걸음은 일사불란했고, 검 끝이 그리는 궤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위백의 요혈을 겨냥하고 있었다.

"가문을 배신하고 무림의 공도를 어지럽힌 대죄인 놈이 감히 천하를 논하느냐! 위 가주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불효불충한 짐승 같으니, 오늘 이 자리에서 네놈의 사지를 찢어 가문의 사서당 앞에 바치리라!"

위충의 일갈은 정파의 대의를 담은 듯 장중했으나, 그 밑바닥에 깔린 탐욕과 비열함은 위백의 예리한 안광을 피할 수 없었다. 위백은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발을 디딘 흙바닥이 순식간에 검게 그슬리며 메마른 연기를 피워 올렸다. 구양신공 제2경의 현묘한 기운이 그의 전신 기맥을 타고 폭포수처럼 역류하고 있었다.

"하하하! 은혜라 하였느냐? 내 영맥을 끊어 망향곡의 시체 구덩이에 처넣은 것이 은혜라면, 내 오늘 너희에게 베풀 은혜는 오직 단 한 가지뿐이로구나."

위백이 기이하게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인간에 대한 지독한 불신과 가혹한 냉소가 섞인 웃음소리가 음산하게 산길을 타고 흘렀다.

"너희 모두를 이 흙먼지 속에 묻어, 영원한 안식을 주는 것이다."

"오만한 놈! 검을 뽑아라!"

위충의 고함과 함께 백의 무인 세 명이 번개처럼 신형을 날렸다. 그들의 검이 허공에서 세 갈래의 은빛 강물을 이루며 위백의 목과 가슴, 단전을 향해 쇄도했다. 위가의 가전 검법인 낙양삼선검(洛陽三仙劍)의 정수였다. 푸른 검기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비장한 파공음을 토해냈다.

그러나 위백은 검을 뽑지 않았다. 그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허공을 향해 가볍게 내밀었을 뿐이었다.

스스스스―.

순간, 위백의 손끝에서 시작된 황금빛 염화가 한 자루 거대한 태양의 갈퀴가 되어 허공을 쓸어내렸다. 대지 전체가 요동치고, 장마철의 먹구름조차 그 열기에 밀려 찰나의 순간 길을 터주었다.

쿠구구구구―!

"무, 무슨...!"

습격해 오던 무인들의 눈에 불타오르는 태양의 형상이 비쳤다. 그것은 단순한 무공의 초식이 아니었다. 대자연의 폭양(暴陽)이 한순간에 지상으로 내려앉아 모든 생명을 불사르는 듯한 절대적인 무위의 현현이었다.

콰아아앙!

황금빛 장풍이 날벼락처럼 산길을 강타했다. 위백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극양의 진기는 해일처럼 밀려들어, 위공을 펼치며 다가오던 삼인의 검기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풍의 여세는 그대로 그들의 흉경을 타격했고, 뼈가 무너져 내리는 불기길한 파쇄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끄아아악!"

단 한 일격이었다. 낙양 위가의 명수들이라 자부하던 세 명의 무인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수십 장 뒤로 날아가 아름드리나무를 들이받고 꺾였다. 그들의 전신에서는 무서운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입에서는 검붉게 탄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이, 이것이 정녕 인간의 공력이란 말이냐...!"

위충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기맥이 끊겨 폐인이 되었다던 가문의 버려진 사냥개가, 어찌하여 천지를 뒤흔들 명문 대파의 태상장로조차 능가할 법한 극양의 내력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단 말인가.

"다음은 누구냐?"

위백이 조용히 속삭였다. 그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으나, 땅을 밟을 때마다 전해지는 묵중한 압박감은 살아남은 위가 무인들의 심장을 옥죄었다.

"모두 물러서지 마라! 저놈은 사술을 쓰고 있는 것이다! 포위하여 일제히 격살하라!"

위충이 광분하여 검을 휘둘렀으나, 이미 추적대의 기세는 꺾일 대로 꺾여 있었다. 위백은 차가운 냉소를 흘리며 신형을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웠으나, 그가 스쳐 지나가는 자리마다 붉은 선혈의 꽃이 피어났다.

파각! 콰드득!

"아악!"

위백의 손끝이 가볍게 스칠 때마다 위가 순찰자들의 목뼈가 낙엽 부러지듯 힘없이 꺾였다. 어떤 이는 단전이 타들어가며 비명을 질렀고, 어떤 이는 가슴에 거대한 손바닥 자국을 남긴 채 절명했다. 가혹한 냉소벽을 품은 위백의 손길에는 단 한 줌의 자비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것은 가문에게 버림받고 천하의 위선에 분노한 한 사내의 처절한 심판이었다.

순식간에 산길은 시체로 가득 찬 아비규환의 장으로 변했다. 위백은 바닥에 쓰러진 무인들의 품을 가볍게 뒤적였다. 그들이 지니고 있던 위가의 비약인 낙양대환단(洛陽大丸丹)과 정밀하게 제련된 무장 장비들을 회수하는 그의 손길은 지극히 태연했다.

"가식적인 맹약의 찌꺼기들이 제법 쓸 만한 약재를 품고 다녔군."

위백이 회수한 약병들을 품에 넣으며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저편 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철검우 장로의 가솔들 중 한 명이 신음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의 전신은 기이할 정도로 시퍼런 독기가 돌아 피부가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호흡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위가의 추적대가 청운검파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가혹한 독을 주입한 것이 분명했다.

위백은 그들의 가련한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평소라면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외면했을 그였으나, 뇌리 깊은 곳에서 구양신공의 인과(因果)가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타인의 억울한 원한을 마주할 때마다 기맥이 소생하는 기경인과의 법도가 그의 영혼을 강제한 것이다.

"쯧, 성가시군."

위백은 혀를 차면서도 가솔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찬란한 황금빛 극양진기가 가솔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시퍼렇게 중독되어 가던 가솔의 혈관이 순식간에 정화되며, 독기가 뜨거운 김이 되어 모공 밖으로 배출되었다.

"커헉! 후우... 후우..."

죽어가던 가솔이 기적처럼 맑은 눈을 뜨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단 한 순간에 위가의 악독한 살독(殺毒)을 지워버린 위백의 무위에, 주위의 살아남은 민초들이 떨리는 몸으로 엎드려 절을 올렸다.

"사,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대협이라 부르지 마라. 역겨우니까."

위백은 싸늘하게 말을 자르며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길이 향한 곳은 산길 옆, 짙은 수풀 뒤에 숨겨진 어두운 동굴 입구였다. 그곳에서 기이할 정도로 무겁고 썩어가는 듯한 죽음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스스스―.

위백이 동굴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동굴 구석, 한 사내가 벽에 기대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의 전신은 검붉은 핏줄이 튀어나와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고, 형형하게 빛나던 두 눈은 이미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청운검파의 원로 장로, 철검우(鐵劍宇)였다.

"누구... 냐..."

철검우의 갈라진 목소리가 동굴 속을 울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절망과 피맺힌 한이 서려 있었다. 위백은 그의 발치에 멈춰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낙양 위씨 가문의 개들에게 사냥당해 이곳에서 썩어가고 있는 늙은이로군."

위백의 비틀린 소리에 철검우의 신형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위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위백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찬란한 황금빛 구양의 진기를 목격한 순간, 그의 흐릿하던 동공이 경악으로 커졌다.

"그... 그 기운은... 극양의... 신공... 아! 하늘이 정녕 우리 청운검파를 저버리지 않으셨단 말인가!"

철검우는 핏물이 섞인 가래를 울컥 토해내며 위백의 자락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이미 위가의 비열한 살독에 침식당해 검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내게 다가오지 마라. 더러운 피가 묻는다."

위백은 냉정하게 한 걸음 물러섰으나, 그의 단전 속 기경인과의 구양신공은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철검우의 영혼에 맺힌 피눈물이 위백의 영적 감각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위백... 도련님... 나는 알고 있소... 당신이 낙양 가주 위헌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지..."

철검우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위백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 가문의 존립을 위해... 위헌 그 위선자와 거래를 하려 했소... 청운검파의 비밀을 넘기고 가문의 안위를 보장받으려... 밀고를 시도했지..."

철검우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놈은... 우리를 이용해 먹고는... 가짜 흑역사를 덮어씌워 장로들을 차례로 토사구팽했소... 가주의 음공 비급 실험을 위해... 우리를 독인(毒人)으로 연성하려 한 것이오!"

철검우는 온 힘을 다해 가슴팍에서 피에 젖은 서찰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위헌의 필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비밀 사료의 일부였다.

"이것이... 그 증거요... 위헌은 자신의 불완전한 극음의 음공을 완성하기 위해, 힘없는 중소 문파의 영맥과 무인들을 강제로 수탈해 실험체로 삼아왔소... 우리 청운검파 장로들도 그렇게 가짜 죄명을 쓰고 사라진 것이오!"

위백은 서찰을 낚아채어 훑어보았다. 서찰에 적힌 위헌의 친필과 가문의 붉은 인장은 위백의 가슴속에 잠들어 있던 배신의 기억을 들쑤셔 놓았다. 자신의 영맥을 끊고 시체 구덩이에 내던지던 친부의 가식적인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가소롭군. 위헌, 그 위선자 늙은이가 드디어 미쳐가는구나."

위백의 입가에서 새어 나온 웃음소리는 지독하리만큼 차가웠다. 그의 가슴 안쪽에서 구양지독(極陽之毒)이 미세하게 끓어오르며 통증을 유발했다. 약속된 시한 안에 강호의 위선자들을 처단하지 못하면 자신의 심장마저 태워버릴 독성이었다.

철검우는 위백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운을 느끼며, 마지막 남은 영혼의 불꽃을 태워 소리쳤다.

"위백 도련님! 청운검파의 억울한 원한을... 위헌 그 악마 같은 놈의 위선을 천하에 폭로해 주시오! 나를 배신하고 우리 문파를 아귀도로 만든 그놈들에게... 천벌을 내려주시오!"

철검우의 목소리에는 문파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위선자 위헌을 향한 뼈에 사무친 증오가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등가교환적 인과를 갈망하는 사자의 마지막 비명이었다.

"나와... 계약을 맺어 주시오... 내 영혼을 바쳐서라도... 그놈들의 파멸을 보고 싶소!"

위백은 철검우의 피 묻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인간의 위선에 대한 조소와 냉소가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지만, 이 피비린내 나는 강호의 은원을 청산하는 것만이 자신이 나아갈 유일한 길이었다.

"좋다."

위백이 마침내 소리 내어 웃었다. 자멸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파멸적 양강의 미소가 그의 얼굴에 가득 피어났다.

"그 피 맺힌 원한, 내 기꺼이 받아들이지. 위헌의 가식적인 목을 베어 네 무덤 앞에 바쳐주마."

위백이 철검우의 검게 썩어가는 손을 움켜잡았다.

화아아악!

그 순간, 동굴 안이 찬란한 황금빛 구양의 신광으로 가득 찼다. 철검우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피 맺힌 원한의 인과가 위백의 기경팔맥을 타고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으아아악!"

위백의 입에서 거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철검우가 겪었던 배신의 고통, 살이 썩어 들어가는 독인의 지옥 같은 고통과 심마가 그의 뇌리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영혼이 통째로 불타오르는 듯한 극심한 영적 충격에 위백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의 가슴팍에 검은 인과의 낙인이 더욱 짙어지며, 단전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극양의 진기가 제3경의 경지를 향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철검우는 위백의 눈동자 속에 깃든 찬란한 구양의 빛을 바라보며, 마침내 안도 섞인 미소를 지은 채 서서히 숨을 거두었다. 그의 전신은 황금빛 불꽃에 휩싸여 한 줌의 재로 변해 동굴 바닥으로 흩어졌다.

스스스스―.

인과의 계약이 위백의 가슴에 완전히 각인되는 순간, 동굴 안의 기류가 무섭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영강의 기운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숨 가쁜 긴장감이 대기를 가득 메웠다.

바로 그때였다.

장로 철검우의 육신이 사라진 자리에 잔존해 있던 검은 암흑 살독의 매캐한 냄새가 동굴 밖으로 흘러나갔다. 그리고 그 냄새를 쫓아, 산 저편에서 밤하늘을 잔인하게 찢어발기는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

고막을 찢을 듯한 예리하고 거친 나팔 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을 갈랐다. 그것은 낙양 위가 본가의 극비 추적대이자, 사냥감의 냄새를 맡으면 결코 놓치지 않는다는 위헌의 충견들이 사용하는 신호용 골각 나팔 소리였다.

위백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갓 해금되기 시작한 제3경의 극양진기가 들불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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