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어둠이 깊어 갈수록 뇌향루 뒤뜰의 공기는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게 얼어붙었다. 방금 전까지 낙양 위가의 방계를 이끌던 위덕이 서려 있던 자리는 이제 한 줌의 검은 재로 화하여 허무하게 흩날릴 뿐이었다. 그러나 죽음의 여운을 음미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철문이 부서져라 열리며 가녀린 소민의 동공이 공포로 젖어 들었고, 그녀를 마차로 압송하려는 자들의 거친 손길이 쇠사슬 소리를 요란하게 울렸다.

스스스스.

동시에 사방의 지붕과 담장 위로 칠흑 같은 가사도(袈裟刀)를 쥔 어둠의 무리들이 내려앉았다. 무림맹의 음지에서 더러운 피를 도맡아 씻어내던 비밀 살수들이자, 위씨 가문이 막대한 재화로 길러낸 정예 봉쇄대였다. 수십 자루의 도날이 밤하늘의 미약한 달빛을 반사하며 차가운 살기를 뿜어냈다.

“가당치도 않은 쥐새끼 한 마리가 감히 낙양의 하늘을 어지럽히려 드는구나.”

포위망의 선두에 선 살수장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위백을 격하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단 한 줌의 자비도 없었으며, 오직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인 살의만이 넘실거렸다.

위백은 가슴팍을 사정없이 조여오는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비틀린 소리로 웃었다. 구양지독(極陽之毒)이 심장 언저리를 갉아먹으며 붉은 낙인을 새기려 하고 있었다. 소철의 억울한 원한을 온전히 청산하고 그의 누이를 구해내지 못한다면, 이대로 온몸이 불타 재가 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위백의 안광은 오히려 그 고통 속에서 더욱 광기 어린 빛을 발했다.

“무림맹의 더러운 사냥개들이 대의(大義)의 거죽을 쓰고 짖어대는 꼴이라니. 참으로 눈물겨운 충성이로군.”

“혓바닥이 길다. 맹주님의 그림자를 밟은 대가는 오직 멸문(滅門)과 참수뿐이다. 격살하라!”

살수장의 서슬 퍼런 포효와 함께 수십 명의 무인이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그들이 펼쳐내는 가사도의 초식은 가히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검은 도광(刀光)은 마치 굶주린 이무기들이 먹이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는 형국이었다.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음이 뒤뜰을 가득 메웠다. 달빛마저 삼켜버릴 듯한 검은 장막이 위백의 전신을 옭아매기 위해 좁혀왔다.

위백은 피하지 않았다. 도망칠 생각 따위는 애초에 그의 오만한 아집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단전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구양의 화산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기경인과(奇經因果).’

너희가 뿜어내는 가식의 음풍(陰風)이 차가울수록, 내 몸을 태우는 인과의 불길은 더욱 맹렬하게 솟구칠 것이다.

위백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진기가 붉은 염화의 장막을 형성했다. 가슴속을 짓누르던 억압과 고통이 분노의 불씨가 되어 기경팔맥을 타고 폭발적으로 흘러넘쳤다. 대지가 진동하고, 뒤뜰의 돌바닥이 열기를 견디지 못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위백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조소가 흘러나왔다.

“너희가 믿는 그 가짜 정의의 끝이 얼마나 나약한지, 똑똑히 지켜보아라.”

위백이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허공을 향해 내지르려 하자, 그의 손바닥 주위로 아지랑이 같은 열기가 소용돌이치며 붉은 태양의 형상을 그렸다. 구양신공 1단계의 진수, 양강(陽剛)의 순수한 힘이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었다.

무림맹의 명예 수하들이라 자부하던 살수들의 안광에 처음으로 경악의 빛이 스쳤다. 자신들이 펼쳐낸 검은 도진(刀陣)이 위백이 뿜어내는 무형의 열기막에 가로막혀 단 한 치도 전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날 끝에서부터 서서히 붉은 열기가 전도되며 손잡이를 잡은 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이, 이것은 무슨 사술이냐!”

살수들이 미처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위백의 백열(白熱)하는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쿠구구구둥!

마치 한여름의 뇌성벽력이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듯한 굉음이 대기를 찢었다. 위백의 손끝에서 시작된 폭력적인 양강의 일격은 한 줄기 거대한 화염의 파도가 되어 전방을 휩쓸었다.

그것은 단순히 열기를 지닌 내공이 아니었다. 하늘의 양기가 대지의 부정을 정화하듯, 모든 위선과 음모를 태워 없애는 인과의 심판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살수들의 기운은 그 압도적인 태양의 진기 앞에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연기처럼 증발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커하학!”

사방에서 뼈가 바스러지고 장부가 뒤틀리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사도의 맹렬하던 검진은 위백의 단 한 차례 손짓에 모래성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기세등등하게 위백의 목을 겨누던 살수들은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붉은 피를 뿌리며 마른낙엽처럼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들이 자랑하던 무림맹의 명예와 가문의 위선은, 구양의 맹렬한 손바닥 아래 거무죽죽하게 타버린 잿더미가 되어 짓밟혔다.

위백은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초토화된 뒤뜰의 참상을 냉연하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아지랑이가 밤안개를 밀어내며 독보적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의 힘으로 대의를 논했단 말인가.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비웃음 섞인 독백을 뱉은 위백의 시선이 마차로 향했다. 쇠사슬에 묶인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소민의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방금 전 눈앞에서 벌어진 믿기지 않는 광경에 넋을 잃은 채,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위백을 바라보았다.

위백은 다가가 손가락 끝에 진기를 모아 소민의 손목과 발목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가볍게 퉁겼다.

쨍강!

단단한 철제 사슬이 열기에 녹아내리며 맥없이 끊어졌다. 소민은 바닥으로 스러지려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위백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두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려 흙먼지 묻은 뺨을 적셨다.

“공자님…… 오라버니의 복수를…… 이 비천한 몸을 구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소민이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절절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가냘픈 어깨가 흐느낌으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 순간, 위백의 단전 깊은 곳에서 기괴한 변화가 일어났다.

- 고맙소…… 정말로 고맙소, 위 공자…….

위백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소철의 한 맺힌 영혼의 목소리였다. 언제나 쥐 한 마리에도 비명을 지르며 숨던 유약한 겁쟁이 영혼이, 여동생의 안전과 원수의 파멸을 확인하자 비로소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스으으으.

위백의 전신을 옥죄며 심장을 태우려던 구양지독의 검은 불길이 거짓말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소철의 한 서린 영혼은 맑은 정기가 되어 위백의 영혼과 단단하게 결합한 뒤, 은은한 빛 무리가 되어 밤하늘로 서서히 승천했다.

동시에 위백의 가슴을 짓누르던 타인에 대한 깊은 불신과 배신의 아집이 아주 미세하게나마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인간의 선의를 비웃던 그의 차가운 심장에, 최초로 인과의 고리가 가져다준 기묘한 온기가 깃든 것이다.

웅웅웅웅!

바로 그때, 하늘과 땅의 공기가 공명하며 위백의 전신을 감쌌다. 최초의 정식 은원이 완벽하게 해결되자, 천지를 가르는 듯한 거대한 구양의 원진(元陣)이 허공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음……!”

위백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끊어져서 이리저리 뒤엉켜 있던 기맥들이 스스로 자리를 찾아가며 단단하게 결합하기 시작했다. 뼈와 근육이 재조정되는 골격 보정의 과정이었다. 뚝, 뚝 하는 기괴한 골격 마찰음과 함께, 위백의 체내에 잠들어 있던 극양의 진기가 한 단계 높은 경지를 향해 요동쳤다. 무공 단계 격상의 첫 기초가 비로소 굳건하게 완성된 순간이었다.

위백은 주먹을 쥐었다 펴며 자신의 몸안에서 휘몰아치는 찬란한 힘을 느꼈다. 낙양 위가가 빼앗아 간 영맥의 공백을, 사자들의 인과가 가져다준 순수한 천도의 힘이 완벽하게 메워가고 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위백이 차가운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위선으로 가득 찬 무림맹과 자신을 버린 가문을 향한 복수의 서막이 이제 막 쓰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위백이 새로이 얻은 힘을 가다듬으며 진기를 갈무리하려던 찰나, 등 뒤의 밤안개가 거칠게 찢어지며 청량하면서도 매서운 기운이 뒤뜰을 덮쳤다.

스아아아아!

그것은 방금 전 살수들이 뿜어내던 음산한 살기와는 차원이 다른, 마치 한겨울의 푸른 소나무를 연상케 하는 청청하고 굳건한 기세였다.

위백은 서서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청백색의 예리한 검기를 사방으로 뿜어내는 검푸른 도포의 무인이 서 있었다. 그의 검끝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위백의 심장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멸망해 가는 청운검파를 짊어진 비극적인 천재이자, 무림의 가혹한 질서 속에서도 홀로 청고한 의기를 지키려는 사내.

소천우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격돌하자, 밤하늘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거세게 튀었다. 소천우의 청백색 검빛이 마차 앞을 가로막아선 채, 위백의 붉은 안광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무림맹의 청련(靑蓮)이 어찌하여 이런 추악한 진흙탕에 발을 디뎠는가.”

위백의 입매가 비틀리며 가느다란 실소를 흘려보냈다. 목소리에는 뼈를 깎는 듯한 조소가 가득했다. 가문에게 버림받고 시체 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그에게, 정파의 고결한 상징인 소천우의 등장은 한낱 위선자들의 광대극에 불과해 보였다.

소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푸른 도포 자락이 야밤의 서늘한 바람을 맞아 펄럭였다. 흔들림 없는 그의 안광에는 기포 하나 일지 않는 깊은 우물과 같은 고요함이 서려 있었으나, 그 이면에는 짓씹은 입술 틈새로 비치는 형언할 수 없는 고뇌가 깃들어 있었다.

“낙양 위가의 방계 무인들을 참살하고 맹의 수하들을 이토록 참혹하게 짓밟다니. 네놈이 아무리 억울한 사정이 있다 한들, 이 손에 묻힌 피는 결코 씻을 수 없는 마도(魔道)의 증좌다.”

소천우의 목소리는 청아했으나 그 끝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도라.”

위백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전신을 감싼 구양의 진기가 더욱 붉게 타오르며 대기를 일그러뜨렸다.

“약자의 고혈을 짜내어 가문의 가식적인 가계를 빛내고, 무고한 이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자들이 정파라 자처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내 내미는 손길이 마도라면, 기꺼이 그 어둠의 심연을 걸어가 주마.”

“더 이상의 설법은 무익하군.”

소천우의 검끝이 허공을 가르며 청량한 검명을 울렸다.

스으으으.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파란 검기가 마치 밤하늘에 피어나는 한 송이 청련화처럼 허공에 만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청운검파의 비전 무공, 청련검결(靑蓮劍訣)의 극의였다. 대지 위에 서린 음습한 서기(暑氣)를 일시에 몰아내는 청량한 검의 기운이 위백의 극양진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뜨거운 바람과 차가운 검풍이 부딪치며 뒤뜰의 기와들이 비명처럼 파르르 떨렸다.

위백은 끓어오르는 단전의 열기를 억누르지 않았다. 소철의 원한을 청산하며 얻은 구양의 정수가 그의 기경팔맥을 타고 뇌정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비록 1단계의 해금에 불과했으나, 천지를 개벽할 극양의 본질은 이미 소천우의 청련검기를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와라, 청운의 천재여. 네놈의 그 깨끗한 검이 이 더러운 진흙탕을 뚫어낼 수 있을지 시험해 보아라!”

위백의 신형이 붉은 유성처럼 대지를 차고 날아올랐다. 그의 오른손바닥이 허공을 내리누르자, 맹렬한 양강의 진기가 한 자루의 거대한 화염도로 화하여 소천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쿠르릉!

소천우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는 피하지 않고 검을 비스듬히 세워 올렸다.

“청련토수(靑蓮吐秀)!”

푸른 검막이 겹겹이 쌓이며 붉은 화염의 해일을 가로막았다.

쾅! 콰아아앙!

두 절대강자의 무공이 충돌하는 순간, 뒤뜰의 대지가 사정없이 뒤틀리며 거대한 구덩이가 패어 나갔다. 붉은 불꽃과 푸른 검기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어두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소천우는 위백의 상상을 초월하는 순양(純陽)의 힘에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검을 타고 전해지는 무지막지한 열기가 그의 내장마저 태워버릴 듯 집요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입가로 흘러내리려는 핏물을 억지로 삼키며, 소천우는 검끝을 털어내어 위백의 가슴을 향해 수십 발의 검기를 쏘아 보냈다.

위백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날카로운 검기가 그의 어깨와 옆구리를 스치며 핏방울이 허공에 뿌려졌으나, 그는 고통조차 잊은 듯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구양의 열기에 닿아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증발했다.

그 격렬한 공방의 와중, 위백의 뇌리에 기이한 공명이 전해졌다.

‘……이 기운은?’

서로의 진기가 정면으로 맞부딪쳐 내면의 기맥이 얽히는 찰나, 위백의 ‘기경인과’가 소천우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을 감지했다. 소천우의 단전 깊은 곳, 청청한 진기의 이면에 숨겨진 지독하게 어둡고 파멸적인 기운이 있었다.

그것은 타인의 강요에 의해 맺어진, 영혼을 갉아먹는 피의 족쇄였다.

‘피의 부채 채무 계약서……!’

소천우가 품속에 품고 있는, 문파의 몰락을 막기 위해 무림맹과 맺은 비극적인 계약의 파동이 위백의 인과적 감각에 걸려든 것이다. 소천우는 위백을 처단하기 위해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림맹의 압박 속에서 문파를 지키기 위해, 원치 않는 살행을 강요받으며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가고 있었다.

“크윽……!”

소천우의 검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가슴팍에서 검푸른 기운이 역류하는 것이 보였다. 맹과의 부정한 계약이 그의 영맥을 조여오고 있는 증거였다.

위백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영적 동조의 충격을 받았다. 계약의 대가로 인한 심마의 편린이 소천우의 고통을 통해 그의 뇌리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하하하! 참으로 우스꽝스럽구나!”

위백은 폭소했다. 피를 흘리면서도 그의 눈빛은 소천우의 위선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 고결한 청련의 검사 역시, 무림맹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속에서 춤추는 광대에 불과했단 말인가! 가문을 위해 영혼을 팔아넘긴 사내가 정(正)을 논하다니, 이보다 더한 코미디가 어디 있겠느냐!”

소천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의 가장 깊은 치부를 들킨 듯한 수치심과 고통이 그의 검기를 폭주하게 만들었다.

“무례하다……! 네놈이 나의 고뇌를 어찌 안단 말이냐!”

소천우가 검을 거꾸로 잡으며 전신에 남은 모든 진기를 끌어올렸다. 그의 주위로 푸른 연꽃이 어두운 안개 속에서 피어나며, 대기를 얼려버릴 듯한 청련검결의 최종 초식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결전이 극치에 달하기 직전, 저 멀리 낙양성 중심부에서 기괴하고 음산한 피리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

필리리릴—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위백의 체내에 남아 있던 위덕의 진기 흔적이 격렬하게 반응하며 그의 영맥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친부 위헌이 펼치는 불완전한 극음 음공(極陰陰功)의 파동이자, 위백이 빼앗겼던 원래 영맥과의 공명이었다.

동시에 소천우의 품속에서 한 장의 서찰이 흘러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붉은 피로 쓰인 듯한 기괴한 문양이 새겨진 종이, 그것은 무림맹의 수뇌부가 청운검파를 인질로 삼고 내린 비밀 지령서였다.

위백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서찰과 소천우의 흔들리는 검끝,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음공의 소리를 차례로 훑었다.

인과율의 실타래가 얽히고설키며 더 거대한 음모의 소용돌이가 그들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위백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 썩어빠진 강호의 목줄을 쥘 기회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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