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철이 피눈물로 전한 유언에 따라, 그의 귀여운 여동생이 오늘 밤 낙양 위씨 방계 무인들에 의해 기루로 영영 팔려 간다는 환영이 등 뒤에 타오르며 위백이 망향곡을 뛰쳐나간다. 단전 내부에서 요동치는 한 맺힌 혼백의 울부짖음은 가슴팍에 새겨진 검은 양염 무늬를 벌겋게 달구었고, 폐부를 도려내는 듯한 구양지독(極陽之毒)의 불길은 매 걸음마다 그의 골수를 태워 올렸다.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대지를 가르며 달린 끝에 마침내 당도한 낙양성. 밤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홍등의 불빛은 흡사 번뇌의 바다와 같았으나, 그 찬란함이 깊어질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고 음산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위백이 도달한 곳은 바로 소철의 피눈물이 젖어 있는 기루, 뇌향루(蕾香樓)의 차디찬 뒤뜰이었다.
담장 너머로 흘러나오는 것은 가야금의 간드러진 가락과 사내들의 기름진 웃음소리였다. 향취에 취하고 주색에 빠진 군상들의 소란함은 이 땅의 썩어 문드러진 위선을 대변하는 듯했다. 위백은 칠흑 같은 야반삼경의 어둠을 헤치고 담장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그의 신형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가벼웠으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극양의 진기는 이미 대지를 녹일 듯 장엄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뒤뜰의 으슥한 마당에는 몇 대의 수레와 마차가 서 있었고, 그 중심에 비단 장포를 걸친 사내 하나가 거드름을 피우며 서 있었다. 붉은 대추 빛깔의 얼굴에 탐욕스러운 안광을 번뜩이는 자, 그가 바로 소철의 가정을 파탄 내고 그의 누이 소민을 납치해 가문에 바치려던 위씨 가문의 방계 하급 지휘자, 위덕(魏德)이었다.
“일 처리가 이토록 더디어서야 어찌 가주님의 대업에 발맞추겠느냐! 서둘러라. 지하 밀실에 가두어 둔 소씨 가문의 계집을 마차에 싣고 본가로 압송할 준비를 마쳐라. 오늘 밤, 가주님께서 친히 그 계집의 정조를 꺾고 가문의 노비 장부에 낙인을 찍으실 것이다.”
위덕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도리어 약자를 짓밟고 일구어낼 자신의 공로에 도취되어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 위선적인 언사는 낙양 위가가 평소 대외적으로 내세우던 ‘의기(義氣)’와 ‘협행(俠行)’이라는 허울을 여실히 비웃는 증거였다.
“하늘의 법도는 준엄하여 그물이 성글어도 빠뜨림이 없고, 인간의 인과는 지극하여 심은 대로 거두는 법이거늘.”
어둠을 찢고 흘러나온 나직한 음성은 흡사 저승의 문턱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같았다.
“뉘냐!”
위덕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경계했다. 수하 무인들이 일제히 도검을 뽑아 들며 살기를 뿜어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오직 한 사내가 귀신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붉게 타오르는 안광,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비치는 냉소적인 미소. 가문에서 쓰레기처럼 내버려졌던 자, 위백이었다.
위덕의 눈동자가 경악과 의혹으로 물들었다.
“네, 네놈은…… 위백? 기맥이 끊기고 망향곡의 시체 구덩이에 던져진 폐물이 어찌 살아 돌아왔단 말이냐!”
위백은 대답 대신 기괴할 정도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술이 비틀리며 조소 섞인 혼잣말을 뱉어냈다.
“가문이 자랑하는 안목이 고작 이 정도더냐. 시체를 묻을 때는 숨통이 완전히 끊어졌는지 확인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모양이로군. 아니면, 가문의 권세라는 그 알량한 울타리가 네놈들의 눈과 귀를 가려 처참한 종말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인가.”
“건방진 놈! 기맥이 박살 난 불구자 주제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으면 쥐새끼처럼 숨어 살 일이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들이미느냐! 낙양 위가의 위엄이 두렵지 않단 말이냐!”
위덕이 악을 쓰며 손짓하자, 십여 명의 수하 무인들이 일제히 위백을 향해 쇄도했다. 검날이 밤하늘의 달빛을 받아 서늘한 백색의 궤적을 그렸다. 세찬 검풍이 대기를 가르고 위백의 전신을 찢어발길 듯 몰아쳤다.
그러나 위백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이 천천히 허공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 순간, 대지의 이치가 뒤바뀌었다.
쿵!
위백의 발끝에서 시작된 무형의 진동이 뒤뜰 전체를 뒤흔들었다. 아홉 개의 태양이 대지 위로 강림한 듯, 가공할 만한 극양의 진기가 그의 기경팔맥을 타고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내력이 아니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자들의 한을 양분 삼아 피어난, 세상을 불태울 구양의 신화(神火)였다.
콰아아앙!
습격해 오던 무인들의 검기가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붉은 열풍에 휩싸여 산산조각이 났다. 살을 에는 듯한 열기가 사방으로 몰아치자, 무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온몸이 붉은 불꽃에 휩싸여 뒤로 나자빠졌다. 쇠로 만든 도검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들의 기경은 순식간에 극양의 진기에 잠식되어 단전이 폭발해 버렸다.
단 한 초, 단 한 번의 손짓에 좌중의 무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마당에 남은 것은 타들어 가는 비린내와 일그러진 열기뿐이었다.
“이, 이것이 정녕…… 기맥이 끊겼던 자의 무공이란 말이냐? 말도 안 된다! 무림맹을 뒤흔드는 가주님의 음공조차 이토록 무지막지하지는 않거늘!”
위덕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마차 바퀴에 등이 부딪히자, 그는 더는 도망칠 곳이 없음을 깨닫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방금 전까지 부하들을 호령하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비굴한 생에 대한 집착만이 그의 얼굴을 흉측하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사, 살려다오! 위백 도련님! 소인은 그저 가주님과 방계 어르신들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소철을 모함한 것도, 그 계집을 잡아 온 것도 모두 윗분들의 지시였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애걸하는 위덕을 바라보는 위백의 눈동자에는 오직 깊고 어두운 심연만이 가득했다. 그의 뇌리 속에는 과거 자신이 친부 위헌의 자비로운 미소 뒤에 숨겨진 비열한 배신으로 영맥을 끊기던 그 순간이 겹쳐 보였다.
‘살려달라 머리를 조아리던 나를 향해, 가문의 장로들과 친부라는 자는 어떤 눈빛을 보냈던가.’
인간의 본성이란 이토록 얄팍하고 추악한 법인가. 강할 때는 약자를 한없이 짓밟고, 약해질 때는 짐승보다 못한 비굴함으로 목숨을 구걸한다. 위백의 심장 속에서 지독한 냉소벽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기괴할 정도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위덕의 앞으로 다가갔다.
“살려달라? 너희가 짓밟은 수많은 이들이 그 비굴한 목소리로 애원할 때, 너희는 단 한 번이라도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더냐. 은원은 갚아야 하고, 인과는 돌고 도는 법이다. 내 너에게 가문이 가르쳐주지 않은 참된 천도의 법도를 깨우쳐 주마.”
위백이 손가락을 뻗어 위덕의 인영혈(人迎穴)과 기문혈(期門穴)을 가볍게 찔렀다.
툭, 툭.
가벼운 타격이었으나, 위덕의 몸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굳어버렸다. 그의 후두부 혈도가 완벽히 봉쇄되어 비명 소리조차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오직 끅, 끅 대는 탁한 신음만이 목을 긁을 뿐이었다.
“아아……!”
위덕의 눈동자가 공포로 뒤덮였다. 그의 체내로 주입된 한 줌의 양강 지기는 들불처럼 번져나가 그의 기경팔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으나, 그의 내장과 뼈는 끓는 기름 속에 던져진 것처럼 소리 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가문의 이름을 등에 업고 온갖 악행을 일삼던 악당이, 비명 한 자락 지르지 못하고 체내부터 서서히 타들어 가는 극형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위백은 차디찬 눈빛으로 위덕의 기맥이 파괴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고통에 겨워 온몸을 뒤트는 위덕의 신형에서 점차 생기가 꺼져가는 그 순간, 위백의 영적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졌다.
화아아아.
위덕의 몸속에서 흩어지는 잔류 진기 속에서, 아주 이질적이면서도 낯익은 파동이 위백의 뇌리를 때렸다. 그것은 차갑고 음습하면서도, 어딘가 기형적으로 일그러진 기운이었다.
‘이 기운은……!’
위백의 안광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것은 친부 위헌이 자신에게서 찬탈해 간 원래의 영맥, 즉 천고의 영묘함을 지닌 극양의 영맥 파동이었다. 위헌은 그 영맥을 빼앗아 자신의 고유한 극음 음공(極陰陰功)을 대성하려 했으나, 불과 물이 섞일 수 없듯 극양의 영맥과 극음의 마공은 서로를 끊임없이 밀어내며 불완전한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위덕의 체내에 남아 있던 가문 비급의 미세한 흔적은, 위헌의 내공이 겉으로는 화려하고 강대해 보일지언정 내부적으로는 주기적인 주화입마의 위험을 안고 있는 시한폭탄과 같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과연 그렇군.”
위백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억지로 빼앗은 하늘의 선물은 결국 독이 되는 법. 위헌, 네놈이 이룩한 그 위대한 무공의 탑은 사소한 균열 하나로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내가 반드시 네놈의 그 불완전한 음공을 역류시켜, 네놈의 뼈와 살을 스스로 찢어발기게 만들어 주마.”
가문이 저지른 배신의 대가가 어떻게 돌아갈지, 위백은 이미 머릿속으로 완벽한 인과의 고리를 완성하고 있었다.
스스스스.
위덕의 몸은 마침내 내면에서 완전히 연소되어 한 줌의 검은 재와 진액으로 화해 차디찬 뒤뜰의 흙바닥으로 스러졌다. 낙양 위가의 방계 지휘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위백이 숨을 고르기도 전에, 뒤뜰의 지하 밀실을 막고 있던 두꺼운 철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
“어서 움직여라! 마차에 싣고 서둘러 가문으로 압송해야 한다!”
거친 고함과 함께 포박당한 채 끌려 나오는 가녀린 인형이 보였다. 소철의 누이, 소민이었다. 그녀의 옷자락은 찢겨 있었고, 눈가에는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그녀의 등 뒤로,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나타난 그림자들이 뒤뜰의 담장과 지붕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기괴하게 휘어진 검은 가사도(袈裟刀)가 쥐어져 있었다. 무림맹의 비밀 살수이자 위씨 가문이 은밀히 육성한 정예 봉쇄대였다.
서늘한 살기가 뒤뜰의 공기를 얼려버릴 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수십 자루의 가사도가 동시에 위백의 목을 겨눈 순간, 사방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침입자를 격살하라.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는다.”
위백은 사방을 포위한 살수들을 바라보며, 가슴팍을 죄어오는 구양지독의 열기를 느끼면서도 지독한 조소벽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결의 서막은 이제 막 올랐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