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으로 통하는 붉은 불꽃 구멍 너머, 먹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낙양의 하늘 아래로 차가운 장우(長雨)가 쏟아지고 있었다. 빗줄기는 뜨겁게 달아오른 지하궁의 열기와 부딪쳐 자욱한 백색의 증기를 피워 올렸다.
그 안개 무리 너머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무림맹 위가(魏家)의 쇠뇌병들은 침묵하는 철의 군대와도 같았다. 벼락처럼 번뜩이는 번갯불이 그들의 철갑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졌고, 일백 자루가 넘는 강철 쇠뇌의 촉이 오직 단 한 사람, 위백의 심장을 향해 삼엄하게 정조준되어 있었다.
"결국 쥐새끼처럼 지하에 숨어 지맥을 탐하더니, 제 손으로 무덤을 파고 올라오는구나."
쇠뇌병들의 중심에서 굳건히 서 있던 무림맹 위가의 호위총관, 위사량(魏思良)이 번뜩이는 안광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냉소를 흘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명문가의 권세를 등에 업은 자 특유의 오만함과, 감히 가문의 권위에 도전한 배신자를 처단하겠다는 잔혹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가주님의 영맥을 도둑질하고 무림의 법도를 어지럽힌 대역죄인 위백! 그리고 사파의 무리와 내통하여 문파의 명예를 더럽힌 청운검파의 소천우! 너희 두 놈의 목을 베어 맹주단 앞에 바치는 것이 오늘 천도의 이름으로 집행될 단죄이니라!"
위사량의 가식 가득한 외침이 뇌성처럼 천장을 울렸다.
그러나 위백은 그 장엄한 명분론을 들으며, 가슴팍에서 치밀어 오르는 극렬한 화독(火毒)의 고통을 억누른 채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치이이익!
그의 얇은 장포 아래, 가슴팍 피부 위로 검은 양염(陽焰) 모양의 문신 같은 화독의 낙인이 붉고 검게 요동치고 있었다. 철검우와의 인과 계약을 맺은 지 벌써 수일이 지났건만, 청운검파를 옭아맨 위선의 원한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대가가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었다. 심장이 마치 펄펄 끓는 쇳물을 들이부은 듯 뜨겁게 타올랐고, 안구에는 핏발이 서며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약속된 시한 내에 원수를 갚지 못하면 이대로 전신이 기화하여 소멸하리라는 무서운 경고였다.
"천도(天道)라……."
위백이 갈라진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의 입술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숨결조차 붉은 열기를 품고 있었다.
"네놈들이 지껄이는 천도란 항상 힘없는 자의 골수를 빨아 채운 가마솥 위에 세워지는 법이지. 가소롭구나. 그 가증스러운 아가리를 찢어 발겨 주마."
"어리석은 놈! 쏘아라! 단 한 점의 살점도 남기지 말고 고슴도치로 만들어라!"
위사량의 손이 아래를 향해 매섭게 그어졌다.
타타타탕-!
현을 놓는 굉음과 함께, 백여 발의 강철 화살이 어둠을 가르고 일제히 쏟아졌다. 화살촉마다 푸르스름한 독기가 칠해진, 스치기만 해도 기혈을 굳게 만드는 독화살의 비였다. 파공음이 귀를 찢을 듯이 지하궁 사방을 메웠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위백의 왼손 손목에 감겨 있던 흑색의 팔찌가 은은한 한기를 뿜어냈다. 사파 흑월맹의 조여경이 장난처럼 던져주었던 비보, '한옥 마정고리(寒玉魔晶環)'였다.
본래 극양의 기운과 상극이어야 할 마정의 한기가 위백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구양진기와 만나자, 기이한 공명이 일어났다. 통제되지 않고 폭주하려던 극양의 화독이 마정고리의 차가운 마력에 흡수되며 순식간에 정제된 정양(正陽)의 폭발력으로 치환된 것이다.
"구양(九陽)의 장막(帳幕)은 위선의 비를 허락하지 않는다."
위백이 양손을 넓게 펼치며 허공을 향해 밀어 올렸다.
쿠구구구궁-!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금빛 진기가 순식간에 청색과 적색이 기묘하게 뒤섞인 광염(狂焰)의 거대한 장막으로 화하여 천장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단순한 기의 방어벽이 아니었다. 한옥 마정의 잔기가 더해져 극도로 압축된, 물질을 분쇄하는 열기의 폭풍이었다.
치이이이익-!
쏟아지던 백여 발의 강철 독화살들이 광염의 장막에 닿는 순간, 쇠가 녹아내리는 비명과 함께 시커먼 연기로 변해 허공에서 증발했다. 화살에 발라져 있던 독액은 지상에 닿기도 전에 기화되어 매캐한 재가 되어 흩어졌다.
"무, 무슨 이런 괴물 같은 공능이……!"
지상에서 조준하고 있던 쇠뇌병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하얗게 질려갔다.
그러나 경악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지하궁의 바닥이 거세게 울렸다. 위백의 신형이 대지를 박차고 허공을 향해 탄환처럼 쏘아 올려진 까닭이었다. 그의 신형은 이미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한 줄기 거대한 정양의 무형기검 그 자체가 되어 뚫린 구멍을 관통했다.
"막아라! 방패병, 전방을 막아라-!"
위사량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철갑을 두른 대형 방패병 대여섯 명이 급히 전면에 나서며 가문의 보루를 쌓았다. 하지만 위백의 낙하는 태산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천붕(天崩)의 기세였다.
콰아아앙-!
강철 방패들이 단 한 번의 충돌로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방패를 들고 있던 무인들의 뼈가 으스러지는 가공할 파골음이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자욱한 먼지와 빗방울을 뚫고 대지에 착지한 위백의 눈빛은 안광으로 번뜩였다. 그는 착지와 동시에 신형을 낮추어 위사량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놈이……!"
위사량이 급히 허리춤의 도를 뽑아 대각선으로 그어 내렸으나, 위백의 신형은 이미 그의 가슴팍 아래에 닿아 있었다.
퍼억-!
위백의 오른발이 위사량의 오른쪽 무릎 관절을 정확하게 짓밟았다. 단순한 신체적 타격이 아니었다. 발끝을 통해 주입된 구양의 극양진기가 관절 내부의 기경을 순식간에 태워 없앴다.
오도독! 콰득!
"아아아악-!"
뼈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튀는 소리와 함께 위사량이 비명을 지르며 진흙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단 한 일격에 무림맹의 정예 호위총관이 무릎을 굽힌 채 흙탕물 속을 구르게 된 것이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군단병들이 일제히 뒤로 주춤하며 무기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위백은 인간이 아니라, 지옥에서 걸어 나온 염화(炎火)의 악귀였다.
그때, 지하의 구멍에서 또 하나의 신형이 정포를 휘날리며 가볍게 도약해 올라왔다.
청운검파의 후기지수이자, 가문의 부정한 멍에를 짊어지고 고뇌하던 소천우였다. 그의 전신은 피와 진흙으로 얼룩져 있었으나, 그 눈빛만큼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기이한 투지로 빛나고 있었다.
"소천우! 네놈이 정녕 사파와 손을 잡고 맹을 배신하겠다는 것이냐!"
쓰러진 위사량이 흙탕물을 뱉어내며 이빨을 갈았다.
"너의 가문 청운검파가 무림맹의 은혜로 연명하고 있음을 잊었단 말이냐! 배은망덕한 놈!"
그 가식적인 외침에 소천우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여전히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문파의 존립과 정파의 대의라는 쇠사슬이 무겁게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던 위백이 차가운 비웃음을 흘리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소천우의 발밑에 툭 던졌다. 그것은 붉은 진흙이 묻은 가죽 주머니에서 꺼낸, 청풍오결의 품에서 회수했던 서찰 사본이었다.
"아직도 저들의 주둥이에서 나오는 썩은 고기 냄새에 미련이 남았느냐, 소천우."
위백의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소천우의 귓전을 때렸다.
"직접 네 눈으로 확인해 보아라. 네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가문의 평화가 어떤 더러운 피 위에서 춤추고 있었는지."
소천우가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서찰을 주워 들어 펼쳤다. 빗물에 번지는 글씨 속에는, 무림맹 수뇌부와 사파 흑월맹이 청운검파의 목줄을 죄기 위해 은밀히 체결한 '피의 부채' 채무 계약서의 실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문파의 모든 이권과 영맥을 무림맹에 영구히 귀속시키며, 불응할 시 사파의 무리를 동원해 청운검파를 '사파의 앞잡이'로 몰아 멸문시키겠다는 가공할 음모가 적혀 있는 문서였다. 그것은 명백히 소천우를 사냥개로 부리기 위해 무림맹이 파놓은 더러운 함정이었다.
"이…… 이것이……."
서찰을 쥔 소천우의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가 문파의 존립을 위해 온갖 수치와 굴종을 견디며 행했던 모든 일들이, 결국 무림맹의 추악한 착취를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했다는 진실. 가짜 평화를 위해 바쳤던 그의 청춘과 눈물이 통째로 기만당했다는 사실이 그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크하하핫! 이제야 깨달았느냐, 어리석은 청련(靑蓮)이여!"
지하 구멍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조여경이 붉은 입술을 젖히며 광소했다. 그녀는 손목의 한옥 마정고리를 만지작거리며 비틀린 만족감으로 이 아수라장을 관전하고 있었다.
"정파 놈들의 가식적인 대의란 언제나 그런 법이지. 가장 순결한 자의 피를 제물로 삼아 자신들의 기름진 배를 채우는 것. 위백, 저 녀석은 진작에 그걸 알고 저 쓰레기들의 목을 베고 있는 거란다."
소천우는 서찰을 꽉 쥐어 움켜잡았다. 그의 등 뒤로 가느다란 청색의 기운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굴종의 사슬을 끊어버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지극히 순수하고도 매서운 분노의 검기였다.
"……검은 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이라 할지라도, 그 뿌리가 썩은 물을 마시고 있다면 어찌 푸르다 할 수 있겠는가."
소천우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검끝이 향한 곳은 위백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는 무림맹 위가의 군단병들이었다.
"오늘, 청운검파 소천우는 무림맹이 씌운 가짜 의기를 버리겠다. 오직 참된 천도와 검의 도리만을 따를 뿐이다!"
슈우우우웅-!
그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세찬 청련의 검기가 장우의 빗줄기를 가르며 위백의 등 뒤편으로 밀려드는 위가 무인들의 무기를 정확하게 격파했다.
두 천재가 마침내 한 자리에 서서 서로의 등을 맞댄 것이었다. 위백의 정양화된 무형기검과 소천우의 청련검기가 공명하며, 사방으로 거대한 검풍의 장막을 형성했다. 대지 위에 서린 비장미는 극에 달했다.
"반역이다! 저놈들이 미쳤구나! 맹의 군사들이여, 저 역적들을 처단하라!"
위사량이 진흙 바닥에서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무인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져 있었다. 그들 중 다수는 무림맹에 소속된 하위 명문가와 약소 문파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위백의 가공할 무력과 소천우가 폭로한 '피의 부채'의 실체를 똑똑히 처목했다. 무림맹이 대의라는 이름 하에 자신들과 같은 약소 문파를 어떻게 착취하고 버리는지, 그 추악한 진실을 목도한 무인들의 가슴속에 걷잡을 수 없는 동요와 회의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지키는 명분이 정녕 의로운 것인가……?"
"청운검파마저 저렇게 짓밟혔다면, 다음은 우리 차례가 아닌가……."
무인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번져 나갔다. 몇몇 문파의 장로들은 슬그머니 검을 거두며 뒤로 발을 빼기 시작했다. 무림맹의 공고했던 지배 체제와 여론이, 위백의 단호하고 잔혹한 의기 앞에서 아래서부터 송두리째 분열되고 있었다.
"이, 이 비겁한 놈들! 맹주님의 명령이다! 물러서는 자는 삼족을 멸할 것이다!"
위사량이 발악하듯 소리쳤으나, 이미 꺾인 군심(軍心)은 돌아오지 않았다.
위백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위사량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의 걸음마다 진흙 바닥이 극양의 열기에 말라붙으며 쩍쩍 갈라졌다. 위백의 가슴에 새겨진 검은 양염의 낙인이 더욱 붉게 타오르며 그에게 피의 인과를 완성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무림의 의기? 가문의 권세?"
위백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 서린 구양진기가 금빛의 아지랑이를 피워 올렸다.
"그런 가증스러운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남의 고혈을 빠는 아귀들이야말로, 이 강호에서 가장 먼저 쓸려 나가야 할 쓰레기들이다."
석커억-!
위백의 거친 손길이 위사량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커, 헉……! 위백…… 네놈이 정녕 살아서 낙양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가주님께서…… 위헌 가주님께서 너를 반드시 지옥으로 보낼 것이다……!"
위사량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여전히 가문의 권세를 믿고 이빨을 드러냈다. 그의 눈빛에는 명문가의 총관으로서 가졌던 얄팍한 자존심과 오만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그 지옥, 내가 직접 그 노견(老犬)을 끌고 내려갈 터이니 걱정하지 마라."
위백의 눈동자가 기괴한 조소로 가득 찼다.
그는 움켜쥔 위사량의 목덜미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허공으로 대롱대롱 매달린 호위총관의 신형이 빗속에서 처량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위백의 팔에 깃든 구양의 폭발적인 도산역해(倒山力海)의 힘이 아래를 향해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앙-!
일말의 자비도 없는 무자비한 낙하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위사량의 머리가 단단한 낙양의 석판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수박이 깨지는 듯한 끔찍한 파쇄음과 함께, 붉은 혈흔과 뇌수가 진흙물과 섞여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명분을 앞세워 수많은 약자를 짓밟고 기만했던 무림맹의 호위총관은, 단 한 마디의 단명(斷命)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지면 위에 한 줌의 짓이겨진 고기떡으로 화하여 지워졌다. 압도적이고도 잔혹한 통쾌함이 사방의 빗소리를 집어삼켰다.
주변의 무인들은 공포에 질려 일제히 무기를 떨어뜨렸다. 누구도 감히 불꽃을 뿜어내는 위백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러나 그 순간, 완전히 으스러진 위사량의 핏빛 구체 사이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기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단전 깊은 곳에 심어져 있던 위헌의 음공(陰功) 주술이 육체의 소멸과 함께 마지막 자백을 토해내는 형국이었다.
"크, 크흐흡…… 으아아악-!"
죽은 자의 입술이 기괴하게 벌어지며, 위사량의 잘려 나간 목구멍에서 위헌의 음산한 목소리가 섞인 비명이 흘러나왔다.
"위백…… 소천우…… 너희가 여기서 발버둥 쳐봐야 이미 늦었다……! 가주님께서는…… 이미 청운검파의 본영을 사파의 앞잡이로 규정하고…… 방계들의 불멸 음공 가마솥에 제물로 처넣으셨다……! 지금쯤 너희 문파의 부녀자들과 아이들은 가마솥의 음독에 녹아내려 가문의 영맥을 완성하는 거름이 되고 있을 것이다……! 크하하하핫-!"
기절초풍할 자백이 낙양의 빗줄기 속으로 비설(飛雪)처럼 흩어졌다.
그 소리를 들은 소천우의 안색이 순식간에 시체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그가 쥐고 있던 청련의 검끝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