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콰아아아앙!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고막을 찢어발겼다. 광장의 대리석 바닥이 일순간 거대한 불꽃의 해일로 화하여 솟구쳤고, 그 무자비한 폭풍의 중심에서 대지가 아가리를 벌렸다. 밑바닥이 통째로 꺼져 내리며 드러난 칠흑 같은 매몰처, 고대의 지하궁이 삼킬 듯한 인력으로 두 사내를 끌어당겼다.

화약의 매캐한 황염(黃炎)이 허공을 메운 가운데, 위백은 추락하는 와중에도 구양진기를 전신에 급격히 순환시켰다.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극양지독(極陽之毒)이 심장을 바늘로 찌르듯 옥죄어 왔으나, 그는 이를 악물고 신형을 뒤틀었다. 그의 손아귀에는 내력이 다해 낙엽처럼 떨어지던 소천우의 옷자락이 단단히 쥐여 있었다.

스스스스-!

낙하의 가속도가 뼈를 깎아내는 바람 소리를 만들어냈다. 위백은 무형의 기검을 허공으로 뿜어내어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낙석들을 디딤돌 삼아 밟았다. 콰직, 소리와 함께 돌덩이가 부서지며 반동이 일어났고, 그 완충을 이용해 두 사람은 마침내 지하궁의 차가운 바닥 위로 거칠게 굴러떨어졌다.

"콜록! 쿨럭……!"

자욱한 먼지 구덩이 속에서 소천우가 밭은기침을 토해냈다. 그의 자랑이던 청련의 도포는 이미 갈가리 찢겨 피와 흙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손에서 놓치지 않은 청련검만이 희미한 비취색 검망을 유지하고 있었다.

위백은 몸동작을 바로 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등 뒤의 가죽 주머니에 넣어둔 청풍오결의 서찰 사본이 가슴에 닿는 감촉을 느끼며, 그는 어둠이 지배하는 사방을 냉랭하게 둘러보았다. 천장은 무너진 돌더미로 완전히 막혀 버렸고, 오직 고대의 벽면에 박힌 야광석들만이 푸르스름하고 기괴한 안개를 비추고 있었다.

"쳇, 제 한 몸 간수하지 못해 이 깊은 구렁텅이까지 기어들어 오다니. 명문 청운검파의 후기지수라는 이름이 아깝구나, 소천우."

위백의 입매가 비틀리며 특유의 냉소적인 조소가 흘러나왔다.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그의 안구에는 철검우의 원한을 대속한 부작용인 붉은 열기가 핏발처럼 서려 있었다.

소천우는 청련검을 지팡이 삼아 대지를 짚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맑던 눈동자에는 배신감과 비장함이 기형적으로 뒤섞여 있었다.

"위 소협…… 내 가문을 지키기 위해 무림맹의 명을 받들었으나, 그 끝이 이토록 추악한 덫이었을 줄은 몰랐소. 허나, 내 아직 검을 쥘 힘이 남아 있는 한, 가문의 의기를 꺾지 않을 것이오."

"의기라? 가소롭군. 네놈들이 말하는 그 가당찮은 의기가 결국 너를 이 시체 구덩이로 밀어 넣은 것이다."

위백이 차갑게 말을 받아치려던 찰나, 사방의 어둠 속에서 스스스 하는 불길한 마찰음이 고막을 긁어댔다.

푸른 야광석 빛줄기 사이로, 성인의 몸통만 한 흑색 전갈 괴수들이 떼를 지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고대의 지하궁에 갇혀 피비린내를 굶주려 온 사락전갈(沙落蠍)들이었다. 그들의 꼬리 끝에 매달린 독침에서는 푸르스름한 독액이 뚝뚝 떨어지며 돌바닥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오월동주(吳越同舟)라 했던가. 위 소협, 사담은 이 벌레들을 치운 뒤에 나누어야겠소."

소천우가 이를 악물며 검을 비스듬히 세웠다. 그의 전신에서 청련의 검기가 가늘게 떨리며 피어올랐다. 비록 내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명문가의 천재다운 기품과 기상은 한 치도 흐려지지 않았다.

"방해나 되지 마라. 내 갈 길을 가로막는 것은 그것이 벌레이든, 위선적인 인간이든 전부 불살라 버릴 뿐이니까."

위백이 신형을 날렸다. 그의 양손 끝에서 정양화(正陽化)된 무형기검의 붉은 검기가 번쩍였다.

카강! 카가가각!

위백의 무형기검이 선두로 달려들던 전갈의 단단한 등껍질을 단숨에 갈라버렸다. 뜨거운 구양의 진기가 전갈의 체내로 침투하자, 괴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내부에서부터 바싹 타들어가며 재가 되었다.

그 순간, 소천우 역시 몸을 날렸다. 청련검법의 정수가 어둠 속에서 푸른 연꽃처럼 피어났다. 비록 위력이 전성기에 미치지 못했으나, 그의 검끝은 정확하게 전갈들의 관절과 눈을 꿰뚫었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전갈들의 파도 속에서,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등을 맞댔다.

"동쪽에서 셋!"

소천우의 외침과 동시에 위백의 신형이 회전했다.

위백의 오른손에서 뿜어진 극양의 검기가 소천우의 어깨너머로 뻗어나가 공중에서 낙하하던 전갈 세 마리를 꿰뚫어 폭사시켰다. 그와 동시에 소천우는 허리를 숙이며 위백의 하체를 노리고 파고들던 전갈의 집게발을 청련검으로 쳐내어 궤적을 비틀었다.

서로를 죽일 듯 겨누던 검끝이, 이제는 서로의 사각을 완벽히 메우는 방패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단 한 번의 합도 맞춰본 적 없는 두 자웅이었으나, 무리의 정점에 선 천재들의 직관은 단숨에 서로의 호흡을 동조시켰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쿠구구구구-!

지하궁 전역이 크게 요동치며, 사방의 석벽에 조각되어 있던 거대한 돌사자 네 마리가 붉은 안광을 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대의 주술로 움직이는 파수 군단이었다. 그들의 거구는 연신 돌가루를 휘날리며 두 사람을 포위해 들어왔고, 그 무거운 발걸음마다 대지가 비명을 질렀다.

"고대의 진법이 작동한 모양이오. 저들의 진형을 깨뜨리지 않으면 이 방을 벗어날 수 없소!"

소천우가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며 소리쳤다.

위백은 기괴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가슴속 구양진기가 광폭하게 요동치며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진형이라니, 그딴 번잡한 것에 얽매일 시간은 없다. 단 한 번에 부순다!"

"좋소, 내가 길을 열겠소!"

소천우가 남은 진기를 쥐어짜 청련검법의 절예인 '청련만개(靑蓮滿開)'를 펼쳤다. 푸른 검기의 꽃잎들이 폭풍처럼 휘날리며 좌우에서 압박해 오던 돌사자 두 마리의 시야와 관절을 일시적으로 봉쇄했다. 대지가 푸른 빛으로 가득 찬 순간, 위백의 신형이 그 틈을 뚫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정양(正陽)의 불꽃으로 명하노니, 스러져라!"

위백의 손끝에서 발현된 무형기검이 거대한 태양의 형상을 그리며 하강했다. 구양진기 제3경의 정수가 응축된 붉은 검강이 돌사자들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앙-!

그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었다. 극양의 열기가 돌사자를 구성하는 고대 석재의 수분을 순간적으로 증발시키며, 내부에서부터 팽창시켜 산산조각 내는 가공할 위력이었다. 굉음과 함께 돌사자 파수 군단의 견고한 진형이 단 한 번의 격돌로 완전히 박살 나 사방으로 비산했다.

사방을 메우던 적들이 초토화되자, 고대의 석실에는 오직 두 사내의 거친 숨소리만이 흩어졌다.

"하아, 하아……."

소천우는 검을 바닥에 박은 채 무릎을 꿇었다. 전신을 쥐어짜 낸 대가로 그의 기맥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위백은 냉랭한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다가, 척벅척벅 걸어가 소천우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가차 없이 그의 멱살을 잡아채려다, 생각을 바꾸어 그의 손목을 억세게 움켜쥐었다.

"이게 무슨……!"

소천우가 반발하려 했으나, 위백의 손끝에서 흘러든 따스하고도 맹렬한 기운에 몸을 떨었다. 그것은 구양의 진기였다. 타오르는 불꽃 같으면서도, 기이하게도 상처 입은 내장과 막힌 기맥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소생시키는 치유의 힘이었다.

"닥치고 가만히 있어라. 네놈이 여기서 죽으면, 내 인과의 고리가 꼬이게 되니까."

위백은 차갑게 쏘아붙이며 구양의 진기로 그의 막힌 혈도를 뚫어주었다. 인간에 대한 혐오와 조소를 품고 있으면서도, 참된 천도의 길을 걷기 위해 라이벌의 목숨을 부지시키는 비틀린 아집이었다.

치료를 마친 위백은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돌사자가 부서진 잔해 너머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반쯤 무너진 고대의 제단이 있었고, 그 틈새에 붉은 비단으로 감싸인 궤짝 하나가 처참하게 부서진 채 끼어 있었다.

위백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먼지 쌓인 궤 상자 안에서, 묵직한 가죽 양피지 뭉치와 함께 무림맹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서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집어 든 위백의 안광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가죽 양피지의 표지에는 '청운부채 연판장(靑雲負債 聯判狀)'이라는 글귀가 검붉은 피로 적혀 있었다.

"이것이…… 네놈이 그토록 수호하려던 청운검파의 위대한 유산이냐?"

위백의 목소리에 서린 지독한 조소가 소천우의 고막을 때렸다.

소천우는 비틀거리며 다가와 위백의 손에 들린 서책을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이, 이것은…… 우리 문파의 비전 결산서가 아니오? 이것이 어찌 여기에……."

"눈이 있으면 똑똑히 보아라, 멍청한 군자 놈아."

위백은 가혹하게 서책의 첫 장을 넘겼다.

그 안에는 청운검파가 무림맹 수뇌부와 흑월맹 사이에서 맺은 은밀한 채무의 원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놀랍게도 서찰의 하단에는 무림맹의 직인뿐만 아니라, 청운검파를 세운 사조(祖)들과 역대 장로들의 수결(手決)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내용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청운검파의 존립과 무림맹 내에서의 지위를 보장받는 대가로, 매년 문파의 하급 제자들과 연고 없는 부녀자들을 무림맹의 비밀 노역장과 사파의 인체 실험체로 상납하겠다는 피의 계약서였다.

"아, 아닐세…… 그럴 리가 없소! 우리 사조들께서, 우리 문파의 어른들께서 도대체 왜 이런……!"

소천우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그의 전신이 마치 엄동설한의 낙엽처럼 파르르 떨렸다.

그는 평생 동안 청운검파가 무림맹의 부당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의기를 지키는 고결한 문파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파의 몰락을 막기 위해 온갖 수모를 짊어지면서도, 조상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정정당당하게 싸워왔던 그의 삶 자체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순간이었다.

"크하하핫! 하하하하!"

지하궁의 적막을 깨고 위백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그의 웃음에는 뼈를 깎는 듯한 냉소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보았느냐? 이것이 네놈이 목숨을 바쳐 지키려던 가문의 정의다. 네놈들의 고결한 조상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자들의 피와 살을 팔아 그 잘난 군자의 명예를 사들였던 것이다!"

"으아아악-!"

소천우는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마음속에서 견고하게 버티고 있던 신념의 성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박살 난 그의 눈에서 붉은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워왔단 말인가……."

웅크려 흐느끼는 소천우를 바라보는 위백의 눈빛에는 동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위선 가득한 강호의 추악한 민낯을 폭로했다는 가혹한 만족감만이 그의 가슴을 채웠다.

바로 그때였다.

지지직, 지지직-!

무너진 석실의 틈새와 바닥의 균열 사이에서, 아까의 사락전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기괴한 한기가 피어올랐다. 이어서 수천, 수만 마리에 달하는 연체 독벌레(軟體 毒蟲)들이 파도처럼 꿀렁이며 어둠 속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벌레들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끈적한 점액질이 바닥을 적시며 고약한 악취를 풍겼다.

"이런 끈질긴 놈들이……."

위백이 다시 검기를 끌어올리려 신형을 바로 세운 순간이었다.

쿵!

그의 가슴속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아…… 윽!"

위백의 입에서 비명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검은 양염 무늬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붉은 낙인으로 변해갔다.

철검우의 원한을 대속하기로 계약한 기한이 임박했음에도, 낙양 위씨의 핵심 세력을 완벽히 처단하지 못하자 구양의 극양지독(極陽之毒)이 그의 신체를 본격적으로 침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커헉!"

위백은 무릎을 꿇으며 바닥을 짚었다. 전신의 골격이 쩍쩍 갈라지는 듯한 극통이 뇌리를 난타했다. 그의 모공에서 붉은 피와 함께 검은 불길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구는 타들어 갈 듯 뜨거웠고, 귀청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의 비명과 조소가 환청이 되어 휘몰아쳤.

스스스스-!

그가 고통으로 주저앉은 사이, 수만 마리의 연체 독벌레들이 아가리를 벌린 채 위백과 정신을 잃어가는 소천우를 향해 파도처럼 덮쳐왔다. 검은 불길에 휩싸인 위백의 신형 위로, 독벌레들의 거대한 장막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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