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성의 육신이 한 줌의 재가 되어 낙양의 밤바람 속으로 허망하게 흩어졌다. 가속(家屬)을 겁박하고 약자를 짓밟으며 위세를 떨치던 자의 종말은 참으로 허무했다. 흩날리는 잿가루가 위백의 붉게 달아오른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승리의 여운을 음미할 틈도 없이, 사방에서 메마른 쇠붙이 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타다다닥!
지붕의 기왓장을 밟는 가벼운 신법의 음향과 함께, 사방의 어둠 속에서 청색의 장포를 입은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림맹의 정예 집행단인 묵영대와, 문파의 사활을 걸고 사지로 내몰린 청운검파의 검수들이었다. 그들이 펼쳐 보인 검진(劍陣)은 물 샐 틈 없이 촘촘하여, 달빛조차 통과하지 못할 듯한 살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그 검진의 선두, 서늘한 청련의 검기를 아지랑이처럼 피워 올리며 소천우가 다가왔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 위백."
그의 목소리는 갈라진 쳇바퀴처럼 서글픈 울림을 담고 있었다. 가문의 명예와 문파의 생존이라는 가혹한 멍에를 짊어진 소천우의 눈가에는 붉은 핏발이 서 있었다. 차마 흘려보내지 못한 통한의 눈물이 달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다.
그가 쥔 청련검이 위백의 목을 가리켰다. 검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에 대한 무인으로서의 정직한 비명이었다.
"너를 베지 않으면, 청운검파의 남은 이들은 모두 무림맹의 칼날 아래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소천우의 눈에서 마침내 한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문파의 비리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무림맹의 사냥개가 되어야만 하는 비장한 처지. 그의 어깨에 얹힌 짐은 이미 청운검파의 생존을 넘어, 스스로의 신념을 짓밟는 쇠사슬이 되어 있었다.
위백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핏빛으로 물든 가슴팍에서 지독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가슴에 새겨진 검은 양염의 낙인이 마치 살아 숨 쉬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극통을 유발했다. 철검우의 원한을 대속한 대가, 약속된 시한 내에 모든 인과를 청산하지 못하면 온몸이 타버려 죽게 되는 구양지독(極陽之毒)의 징조였다.
"하하하……! 소천우, 네놈은 여전히 그 가식적인 가문과 문파라는 이름의 가위(枷鎖)에 스스로 목을 매다는구나!"
위백의 목소리가 광장의 벽을 울리며 포효했다. 그의 전신에서 일어난 붉은 기류가 밤안개를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문파를 지키기 위해 무림맹의 사냥개가 되겠다고? 썩어 빠진 대의를 위해 정당한 복수를 가로막겠다면, 내 기꺼이 그 쇠사슬째로 네놈을 베어 주마! 그 비열한 얽힘 자체를 이 극양의 불꽃으로 남김없이 태워버리겠다!"
"나의 검을 받아라, 위백!"
소천우가 대지를 박차고 솟구쳤다.
징청(澄淸)한 청색의 강기가 그의 청련검을 타고 뿜어져 나와 허공에 거대한 푸른 연꽃을 피워 올렸다. 청운검파의 비전 무공인 청운강기(靑雲罡氣)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대기를 찢어발겼다. 그것은 가문을 지키고자 하는 한 사내의 숭고하면서도 참혹한 의지의 발현이었다.
위백 역시 단전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구양진기 제3경의 힘이 온몸의 끊어졌던 기맥을 타고 폭발적으로 흘러넘쳤다. 철검우가 남긴 청운검파의 검리와 자신의 극양진기를 융합하여 완성한 '정양화된 무형기검(正陽化 無形氣劍)'이 그의 손끝에서 붉은 검광으로 화하여 뿜어졌다.
콰앙!
푸른 검기와 붉은 열풍이 충돌하는 순간, 광장의 대리석 돌바닥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균열을 일으켰다. 거대한 돌 파편들이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두 사람의 내력에 쓸려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소천우의 검은 한없이 맑고 고결했다. 뜬구름처럼 유려하게 움직이면서도, 그 끝에는 태산 같은 무게를 담아 위백의 혈도를 노려왔다. 낙화유수(落花流水)의 검리가 펼쳐질 때마다 청련의 잎사귀가 가을바람에 흩날리듯 위백의 전신을 에워쌌다.
그러나 위백의 무형기검은 대지를 태우는 불꽃이었다. 거침없고 파괴적이며, 한 치의 타협도 없는 양강(陽剛)의 기세가 청련의 검막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쇠붙이가 우는 소리가 아니라, 거대한 벼락이 치는 듯한 파공음이 낙양의 밤하늘을 갈랐다.
"크윽!"
소천우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위백의 기검에 담긴 온도가 너무도 뜨거워, 검을 타고 전해지는 열기가 그의 손바닥 가죽을 태워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검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검자루를 잡은 손귀에 피가 솟구칠 정도로 힘을 주며 검세를 굳건히 했다.
위백은 소천우의 초식을 받아내며, 그의 품속에 숨겨져 있을 서찰을 떠올렸다. 청풍오결의 가죽 주머니에서 획득했던 '피의 부채' 서찰 사본. 무림맹이 청운검파를 옥죄고 흑월맹과의 은밀한 거래를 성립시키기 위해 소천우에게 강요했던 수치스러운 채무 계약서의 실체가 떠올랐다.
'이 우둔한 놈이 짊어진 족쇄가 참으로 무겁구나.'
위백은 냉소를 지으면서도, 내심 소천우라는 인물이 가진 비장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결코 비열한 수단에 의지하지 않았다. 문파의 파멸을 막기 위해 스스로 무림맹의 앞잡이를 자처하면서도, 위백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오직 정정당당한 검법과 내력만으로 부딪쳐 오고 있었다.
"소천우! 네놈이 지키려는 문파가 이미 무림맹의 아귀들에게 뼈까지 갉아 먹히고 있음을 정녕 모른단 말이냐!"
위백의 기검이 횡으로 번뜩이며 소천우의 가슴팍을 스쳤다. 청색 장포가 찢어지며 붉은 피가 허공에 뿌려졌다.
"알고 있다!"
소천우가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그의 청련검이 다시금 원을 그리며 푸른 장막을 형성했다.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길이 있다! 내 발아래 엎드린 동문들의 목숨이, 내 등 뒤에 있는 어린 자제들의 눈물이 나를 이 길로 등 떠민다! 위백, 네가 가문의 배신에 울부짖는 것처럼, 나 또한 이 문파의 몰락을 방관할 수 없다!"
두 사내의 신념이 허공에서 다시 한 번 거칠게 맞부딪쳤다.
장엄한 풍류와 비장미가 어우러진 대결이었다. 소천우의 검초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의기를 닮았고, 위백의 기검은 천지를 개벽하여 위선을 정화하려는 정양(正陽)의 불길을 품고 있었다.
푸른 물결이 요동치는 대지에 창일한 태양이 내리쬐어 바다를 통째로 증발시키는 듯한 대자연의 격돌이 광장 한가운데서 펼쳐졌다.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묵영대와 청운검파의 무인들은 두 사람이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감히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그 순간, 위백의 가슴속 구양지독이 다시금 사납게 요동쳤다.
"흐읍!"
위백의 눈앞이 순간적으로 붉게 흐려졌다. 철검우의 원한을 대속한 이후 지속되던 안구의 열감과 심장의 통증이 극에 달한 것이다. 가슴팍의 검은 낙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기맥의 흐름을 방해했다. 이대로 지체하다가는 적을 제압하기도 전에 스스로의 화독에 몸이 먼저 무너져 내릴 판이었다.
그때, 저 멀리 어둠이 짙게 깔린 지붕 위에서 일어난 미세한 한기가 위백의 감각에 포착되었다.
거기에 조여경이 있었다.
그녀는 발밑에 쓰러진 시체들을 아무렇지 않게 구두 굽으로 짓밟은 채,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이 결투를 관전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흑월맹의 비보, '한옥 마정고리(寒玉 魔晶環)'가 뿜어내는 차가운 냉기가 위백의 폭주하는 열기를 미세하게 진정시켜 주는 듯했다. 장난감처럼 다루려는 그녀의 비뚤어진 독점욕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지만, 지금은 그 냉기마저도 가슴의 화독을 억누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위백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소천우의 검로를 꿰뚫어 보았다.
소천우의 검 끝에 담긴 기운. 그것은 낙양 위가의 무공이 가보로 삼는 극음의 음공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으면서도, 근본적으로 뒤틀려 있는 위헌의 무공과는 달랐다. 위백은 빼앗긴 자신의 원래 영맥과 공명하는 기이한 감각 속에서, 위헌이 훔쳐 간 원래 영맥이 그의 음공과 맞지 않아 주기적인 주화입마를 부른다는 치명적인 불완전성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
'가짜는 결국 부서질 뿐이다.'
위백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무형기검의 위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소천우! 이것이 무인의 길이라면, 내 너에게 최고의 예우를 갖추어 주마!"
"오너라, 위백!"
두 사람은 서로의 기세와 칼날 뒤에 숨겨진 무거운 슬픔을 대등한 경지에서 이해했다. 서로를 가짜라 멸시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진정한 무인들의 신전(神戰)이었다. 푸른 강기와 붉은 열화가 낙양의 광장을 반으로 갈랐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위백의 발밑, 그리고 소천우의 발밑을 지나 광장 전체의 돌바닥 아래에서 기이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쿠구구구구-.
단순한 내력의 충돌로 인한 진동이 아니었다. 대지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타들어 가는 고약한 냄새가 올라왔다. 유황과 초석의 냄새. 화약의 냄새였다.
'이것은……!'
위백의 눈이 가차 없이 좁혀졌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무림맹 집행단, 묵영대의 인물들이 슬그머니 광장 외곽으로 물러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차가운 조소와 살기가 서려 있었다.
무림맹 수뇌부의 추악한 음모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위백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는 청운검파의 소천우마저 이 광장에서 동시에 제거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청운검파의 생존을 미끼로 소천우를 사지로 몰아넣고, 결국에는 반역자 위백과 함께 폭사시켜 모든 진실을 묻어버리려는 비열한 계책.
"소천우! 피해라!"
위백이 소리쳤으나 이미 늦어 있었다. 광장 바닥 아래 설치된 비밀 벽력 작약 장치(霹靂 炸藥 裝置)의 도화선이 전력을 다한 두 사람의 기세가 일으킨 열기에 반응하여 일제히 점화된 것이었다.
콰아아앙-!
하늘을 뒤흔드는 가공할 굉음과 함께, 광장의 대리석 돌바닥이 거대한 불꽃의 해일이 되어 솟구쳤다.
화약의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광장 아래 잠들어 있던 고대의 무덤 터, 지하궁의 천장이 폭발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일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싱크홀처럼 대지가 쩍 갈라지며 깊고 어두운 심연이 드러났다.
"아아아악!"
주변에 있던 청운검파 자제들이 폭풍에 휘쓸려 사방으로 날아갔고, 광장의 중심부는 통째로 밑바닥이 꺼져버렸다.
전력을 다해 내력을 소모한 소천우는 폭발의 충격파를 정면으로 받고 중심을 잃은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의 손에서 청련검이 떨어져 나갔고, 그의 신체는 힘없이 어두운 지하의 구렁텅이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위백 역시 폭발의 반동으로 허공에 붕 떴으나, 구양진기를 휘감아 신형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무너져 내리는 대지의 거대한 인력과 가슴속에서 발작하듯 끓어오르는 구양지독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어둠이 아가리를 벌린 지하 고대 무덤의 심연 속으로 소천우의 신형이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위백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기괴하게 미소 지었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냉소벽이 가득한 그였으나, 이토록 위선적인 무림맹의 음모에 놀아나 허망하게 죽어가는 라이벌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참된 천도의 인과가 아니었기에.
"쳇, 멍청한 놈."
위백은 스스로 몸을 던져 소천우의 옷자락을 낚아챘다.
두 사내의 신형이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돌덩이들과 함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하 궁전의 깊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무섭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는 광장이 통째로 붕괴하는 굉음이 길게 메아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