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망막 위에 각인된 붉은색 카운트다운이 소수점 아래 두 자리까지 가파르게 깎여 나가고 있었다.

[03:39.12] [03:38.98]

심장 박동수가 138bpm을 돌파했다. 흉곽을 압박하는 기압복의 내압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뇌 신경망과 직결된 동기화 모듈이 고주파의 진동을 일으키며 관자놀이를 찔러댔다. 9번째 루프의 부작용인 시각적 아티팩트가 시야 우측 하단에 미세한 노이즈 선을 그렸다.

- “보안대장 엘레나다! 서율, 듣고 있나? 지휘 본부의 전용 셔틀이 벌써 도킹 베이를 떠나 세라핌 헤븐의 외부 폐쇄 밸브로 향하고 있다. 세르게이 그 영감이 완전히 미쳤어!”

무전기 너머 엘레나의 쉰 목소리가 금속성 파찰음과 함께 짓겨졌다. 서율은 12구역 배수 밸브 제어 터미널의 광케이블을 거칠게 뽑아내며 통신 모듈을 전환했다.

“엘레나, 보안대 권한으로 탑승 구역의 초고속 리프트 샤프트를 강제 개방해. 내 이동 경로상의 모든 격벽 도어록을 바이패스(Bypass)한다.”

- “미쳤군! 가속도 제한을 풀면 네 뇌가 먼저 터질 거다!”

“3분 20초 남았다. 세라핌 헤븐이 사출되면 내 여동생뿐만 아니라 방주 외벽의 구조적 강도도 18.4% 저하된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서율은 고속 이송 튜브의 해치를 열고 몸을 밀어 넣었다. 에테르의 인공 신경망 링크가 동축 케이블 없이도 그의 두개골 내부에 직접 텍스트를 투사했다.

[경고: 현재 뇌 피질의 산소 포화도 91%. 강제 중력 가속 시 인지 에러 발생률이 34% 증가합니다.]

“연산 보정해, 에테르. 감속 제어는 네 몫이다.”

[입력 신호 수신. 고속 셔틀 기동.]

쿠웅! 하는 중압감과 함께 서율의 신체가 시트 깊숙이 파묻혔다. 순간적인 3.5G의 가속도가 가슴을 짓눌렀다. 안구 표면의 모세혈관이 터지며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귓가에는 고주파의 이명이 8200Hz의 고정 톤으로 울려 퍼졌다. 뇌세포가 사멸해 가는 물리적 통증이었지만, 서율은 도면상의 디지털 수치들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재배열했다.

엘레나가 열어젖힌 격벽들이 스쳐 지나갔다. 목표지는 섹터 1, 중앙 지휘 본부였다.

[01:12.45]

셔틀이 비상 정지 장치와 충돌하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토해냈다. 서율은 해치가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지휘 본부의 이중 압력 방벽 너머로 세르게이 지휘관의 격앙된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면 구역의 액체 질소 온도가 기준치보다 4.2도 상승했다. 이건 명백한 나노 바이러스 오염 징후다. 사제 테오의 조언대로 전원 차단 후 방출한다. 승인 코드를—”

“동작 그만.”

서율이 압력 도어의 수동 레버를 꺾으며 본부 안으로 난입했다.

중앙 콘솔을 둘러싸고 있던 기술 장교들과 세르게이 지휘관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로 쏠렸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서율은 기압복 곳곳에 냉각수 배관의 녹과 유압 오일이 얼룩진, 일개 하급 엔지니어에 불과했다.

“누구냐? 경비대! 이 무뢰한을 당장—”

“세라핌 헤븐의 온도 상승은 생물학적 오염이 아닙니다.”

서율이 세르게이의 말을 자르며 콘솔 전면에 자신의 데이터 패드를 격렬하게 내던졌다. 패드가 금속 테이블에 부딪히며 둔탁한 파열음을 냈다.

“12구역 배수 밸브의 압력이 사보타주로 인해 420bar까지 급증했습니다. 그로 인해 유압이 보조 매니폴드로 역류해 단열 팽창(Adiabatic expansion)을 일으킨 겁니다. 열역학 제1법칙도 잊었습니까? 배관 내 가스의 급격한 압축으로 인한 국소적 열팽창을 바이러스 오염으로 오인하다니, 지휘부의 연산 장치들은 전부 장식입니까?”

기술 장교 중 가장 직위가 높아 보이는 수석 분석관이 콧방귀를 뀌며 앞으로 나섰다. 가슴팍에 화려한 훈장을 단 그의 얼굴이 모욕감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수리공 놈이 감히 지휘부의 결정을 가로막는가? 우리는 방주 안전 위원회의 공식 오염 방지 가이드라인에 규정된 프로토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네놈이 방주의 압력 계통 전체를 이해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서율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이해하느냐고 물었습니까?”

서율은 콘솔의 광역 모니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에테르와의 동기화 모듈이 실시간으로 방주 전체의 센서 데이터를 그의 안구 안쪽으로 송신하고 있었다. 서율은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화면에 표시되지도 않은 배후 수치들을 기계적으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섹터 3의 열교환 효율 현재 14.22% 저하. 7구역 냉각 루프의 질량 유량 초당 0.087kg 손실. 동면 구역 외곽 3구역에 수십 년간 방치되어 녹슨 아날로그 비상 수동 스풀 밸브의 고착 상태율 92%. 그리고 현재 지휘 본부 환기 시스템의 필터 차압 변동 폭 0.003%.”

장교들의 숨소리가 일순간 멎었다.

“이 수치들을 실시간으로 역산해 보면, 세라핌 헤븐을 우주 공간으로 방출할 시 발생하는 반동 질량 변동으로 인해 방주 주 추진축의 정렬 점 오차가 0.12도 벌어집니다. 그 결과는 주 동력원인 특이점 엔진의 전단 응력 한계 초과입니다. 방출 후 정확히 14분 뒤, 방주는 반으로 쪼개집니다.”

서율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직 물리적 법칙과 수치만이 차갑게 공간을 지배했다.

“당신들이 무식해서 방주를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내 여동생이 있는 구역을 무지로 인해 수장시키겠다면, 그 연산 오류는 내가 직접 교정합니다.”

수석 분석관의 입술이 경련하듯 떨렸다. 그는 콘솔의 수치들을 확인하려 허겁지겁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서율이 제시한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의 정밀한 계산값을 반박할 조율 데이터를 찾아내지 못했다. 본부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기술 장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그때, 서율의 인공와우를 통해 에테르의 건조한 합성음이 흘러들었다.

[서율, 세르게이 지휘관의 개인 암호화 단말기에서 사제 테오와의 통신 세션 로그를 검출했습니다. 세르게이는 테오가 보낸 가짜 환경 분석 보고서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감청 데이터를 지휘 본부 광역 스피커로 즉시 무단 송출하겠습니다. 그의 반역 혐의를 입증하면 상황은 즉각 종료됩니다.]

서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좁혀졌다.

‘보류해, 에테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직관적이고 가장 빠른 폭로 프로토콜입니다. 세르게이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것이 생존율을 12% 향상시킵니다.]

‘아니, 그건 기계적 단견이다.’

서율은 마음속으로 빠르게 연산을 돌렸다. 지휘관의 반역 행위를 이 자리에서 폭로하면 본부 내 경비병들과 기술진 사이에 즉각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 밀폐된 지휘 본부에서의 총격전은 시스템 제어권의 완전한 상실로 이어진다. 인간의 정치적 서열 격식과 심리적 방어기제를 무시한 효율성은 종종 최악의 트롤링이 된다.

‘에테르, 간접 데이터 대조 방식의 유연한 권장안(Soft Recommendation) 프로토콜을 가동해라. 세르게이가 스스로 속았음을 깨닫게 하되, 그의 권위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정보를 재가공해서 내 단말기로 보내.’

[……인간의 비합리적 자존심 보존을 위한 우회 연산 중. 프로토콜 가동.]

서율은 자신의 패드를 세르게이 앞으로 밀어 넣었다.

“지휘관님, 사제 테오가 제공한 에너지 설계 패널 정보의 원본 소스코드를 열어보십시오. 기술 장교들이 확인하지 못한 백도어가 심겨 있습니다.”

세르게이의 주름진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서율이 제시한 가공된 데이터 패널을 응시했다.

“이건…….”

“테오가 제시한 오염 계수는 실제 생물학적 수치가 아닙니다. 방주의 구조적 균등 붕괴를 유도하기 위해 입력된 정밀 진동 주파수 필터 값입니다. 지휘관님은 인류를 구하기 위한 결단을 내리려 하셨겠지만, 실상은 교단의 방주 파괴 계획에 이용당하신 겁니다.”

세르게이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사제 테오의 감언이설에 속아 방주의 척추를 스스로 끊을 뻔했다는 사실이, 서율이 제시한 논리적 수식과 데이터 동조 주파수 그래프를 통해 명백하게 증명되고 있었다.

“내가…… 속았단 말인가?”

세르게이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승인 콘솔 위에서 마침내 떨어졌다.

[동면 구역 격리 폐기 시퀀스 중단.] [시스템 정상 복구 중.]

녹색의 상시 점등 신호가 지휘 본부의 메인 홀로그램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서율은 안도감 대신 가슴을 쓸어내리는 물리적 반응을 억제하며 차갑게 돌아섰다. 심장 박동수가 92bpm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루프에서의 첫 번째 위기를 공학적 계산과 유연한 제어로 넘겼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은 허락되지 않았다.

삐이이이이이이—!

지휘 본부의 전력 그리드가 급격하게 요동치며, 비상용 오렌지색 경보등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전력 제어실은 정상화되었을 텐데!”

수석 분석관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서율의 시야 전면에 에테르가 생성한 대형 오렌지색 홀로그램 경고창이 강렬한 빛을 뿜으며 현출되었다. 그 정보는 서율의 심장을 다시 한번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위험: 아르카-9 외곽 고농축 연료 탱크의 무작위 유압 분사 현상 감지.] [원인: 12구역 배수 밸브 안전 모드 진입에 따른 유압 나비효과. 외곽 제4연료 탱크의 압력 밸브 강제 개방.] [경고: 고농축 추진체가 우주 공간으로 무단 방출되고 있습니다. 궤도 복구 불가능 시점까지 남은 시간 12분 30초.]

배수 밸브를 고쳤더니, 그 압력의 반동이 외곽 연료 탱크를 터뜨렸다. 동적 결함 시스템의 잔인한 연쇄 작용이 시작된 것이었다.

서율의 뇌리에 새로운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01:12.45]

셔틀이 비상 정지 장치와 충돌하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토해냈다. 서율은 해치가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지휘 본부의 이중 압력 방벽 너머로 세르게이 지휘관의 격앙된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면 구역의 액체 질소 온도가 기준치보다 4.2도 상승했다. 이건 명백한 나노 바이러스 오염 징후다. 사제 테오의 조언대로 전원 차단 후 방출한다. 승인 코드를—”

“동작 그만.”

서율이 압력 도어의 수동 레버를 꺾으며 본부 안으로 난입했다.

중앙 콘솔을 둘러싸고 있던 기술 장교들과 세르게이 지휘관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로 쏠렸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서율은 기압복 곳곳에 냉각수 배관의 녹과 유압 오일이 얼룩진, 일개 하급 엔지니어에 불과했다.

“누구냐? 경비대! 이 무뢰한을 당장—”

“세라핌 헤븐의 온도 상승은 생물학적 오염이 아닙니다.”

서율이 세르게이의 말을 자르며 콘솔 전면에 자신의 데이터 패드를 격렬하게 내던졌다. 패드가 금속 테이블에 부딪히며 둔탁한 파열음을 냈다.

“12구역 배수 밸브의 압력이 사보타주로 인해 420bar까지 급증했습니다. 그로 인해 유압이 보조 매니폴드로 역류해 단열 팽창(Adiabatic expansion)을 일으킨 겁니다. 열역학 제1법칙도 잊었습니까? 배관 내 가스의 급격한 압축으로 인한 국소적 열팽창을 바이러스 오염으로 오인하다니, 지휘부의 연산 장치들은 전부 장식입니까?”

기술 장교 중 가장 직위가 높아 보이는 수석 분석관이 콧방귀를 뀌며 앞으로 나섰다. 가슴팍에 화려한 훈장을 단 그의 얼굴이 모욕감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수리공 놈이 감히 지휘부의 결정을 가로막는가? 우리는 방주 안전 위원회의 공식 오염 방지 가이드라인에 규정된 프로토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네놈이 방주의 압력 계통 전체를 이해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서율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이해하느냐고 물었습니까?”

서율은 콘솔의 광역 모니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에테르와의 동기화 모듈이 실시간으로 방주 전체의 센서 데이터를 그의 안구 안쪽으로 송신하고 있었다. 서율은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화면에 표시되지도 않은 배후 수치들을 기계적으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섹터 3의 열교환 효율 현재 14.22% 저하. 7구역 냉각 루프의 질량 유량 초당 0.087kg 손실. 동면 구역 외곽 3구역에 수십 년간 방치되어 녹슨 아날로그 비상 수동 스풀 밸브의 고착 상태율 92%. 그리고 현재 지휘 본부 환기 시스템의 필터 차압 변동 폭 0.003%.”

장교들의 숨소리가 일순간 멎었다.

“이 수치들을 실시간으로 역산해 보면, 세라핌 헤븐을 우주 공간으로 방출할 시 발생하는 반동 질량 변동으로 인해 방주 주 추진축의 정렬 점 오차가 0.12도 벌어집니다. 그 결과는 주 동력원인 특이점 엔진의 전단 응력 한계 초과입니다. 방출 후 정확히 14분 뒤, 방주는 반으로 쪼개집니다.”

서율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직 물리적 법칙과 수치만이 차갑게 공간을 지배했다.

“당신들이 무식해서 방주를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내 여동생이 있는 구역을 무지로 인해 수장시키겠다면, 그 연산 오류는 내가 직접 교정합니다.”

수석 분석관의 입술이 경련하듯 떨렸다. 그는 콘솔의 수치들을 확인하려 허겁지겁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서율이 제시한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의 정밀한 계산값을 반박할 조율 데이터를 찾아내지 못했다. 본부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기술 장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그때, 서율의 인공와우를 통해 에테르의 건조한 합성음이 흘러들었다.

[서율, 세르게이 지휘관의 개인 암호화 단말기에서 사제 테오와의 통신 세션 로그를 검출했습니다. 세르게이는 테오가 보낸 가짜 환경 분석 보고서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감청 데이터를 지휘 본부 광역 스피커로 즉시 무단 송출하겠습니다. 그의 반역 혐의를 입증하면 상황은 즉각 종료됩니다.]

서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좁혀졌다.

‘보류해, 에테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직관적이고 가장 빠른 폭로 프로토콜입니다. 세르게이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것이 생존율을 12% 향상시킵니다.]

‘아니, 그건 기계적 단견이다.’

서율은 마음속으로 빠르게 연산을 돌렸다. 지휘관의 반역 행위를 이 자리에서 폭로하면 본부 내 경비병들과 기술진 사이에 즉각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 밀폐된 지휘 본부에서의 총격전은 시스템 제어권의 완전한 상실로 이어진다. 인간의 정치적 서열 격식과 심리적 방어기제를 무시한 효율성은 종종 최악의 트롤링이 된다.

‘에테르, 간접 데이터 대조 방식의 유연한 권장안(Soft Recommendation) 프로토콜을 가동해라. 세르게이가 스스로 속았음을 깨닫게 하되, 그의 권위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정보를 재가공해서 내 단말기로 보내.’

[……인간의 비합리적 자존심 보존을 위한 우회 연산 중. 프로토콜 가동.]

서율은 자신의 패드를 세르게이 앞으로 밀어 넣었다.

“지휘관님, 사제 테오가 제공한 에너지 설계 패널 정보의 원본 소스코드를 열어보십시오. 기술 장교들이 확인하지 못한 백도어가 심겨 있습니다.”

세르게이의 주름진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서율이 제시한 가공된 데이터 패널을 응시했다.

“이건…….”

“테오가 제시한 오염 계수는 실제 생물학적 수치가 아닙니다. 방주의 구조적 균등 붕괴를 유도하기 위해 입력된 정밀 진동 주파수 필터 값입니다. 지휘관님은 인류를 구하기 위한 결단을 내리려 하셨겠지만, 실상은 교단의 방주 파괴 계획에 이용당하신 겁니다.”

세르게이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사제 테오의 감언이설에 속아 방주의 척추를 스스로 끊을 뻔했다는 사실이, 서율이 제시한 논리적 수식과 데이터 동조 주파수 그래프를 통해 명백하게 증명되고 있었다.

“내가…… 속았단 말인가?”

세르게이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승인 콘솔 위에서 마침내 떨어졌다.

[동면 구역 격리 폐기 시퀀스 중단.] [시스템 정상 복구 중.]

녹색의 상시 점등 신호가 지휘 본부의 메인 홀로그램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서율은 안도감 대신 가슴을 쓸어내리는 물리적 반응을 억제하며 차갑게 돌아섰다. 심장 박동수가 92bpm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루프에서의 첫 번째 위기를 공학적 계산과 유연한 제어로 넘겼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은 허락되지 않았다.

삐이이이이이이—!

지휘 본부의 전력 그리드가 급격하게 요동치며, 비상용 오렌지색 경보등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전력 제어실은 정상화되었을 텐데!”

수석 분석관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서율의 시야 전면에 에테르가 생성한 대형 오렌지색 홀로그램 경고창이 강렬한 빛을 뿜으며 현출되었다. 그 정보는 서율의 심장을 다시 한번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위험: 아르카-9 외곽 고농축 연료 탱크의 무작위 유압 분사 현상 감지.] [원인: 12구역 배수 밸브 안전 모드 진입에 따른 유압 나비효과. 외곽 제4연료 탱크의 압력 밸브 강제 개방.] [경고: 고농축 추진체가 우주 공간으로 무단 방출되고 있습니다. 궤도 복구 불가능 시점까지 남은 시간 12분 30초.]

배수 밸브를 고쳤더니, 그 압력의 반동이 외곽 연료 탱크를 터뜨렸다. 동적 결함 시스템의 잔인한 연쇄 작용이 시작된 것이었다.

서율의 뇌리에 새로운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초당 18.6리터.”

서율의 안구 안쪽에서 흘러가는 실시간 데이터 피드가 유압 센서의 붕괴 속도를 표시했다. 고농축 하이드라진계 추진체가 진공의 우주 공간으로 분사되며 아르카-9의 우측 선체에 미세한 반동력을 가하고 있었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방주의 궤도는 예정된 감속 각도에서 3.4도 어긋난다. 그것은 테라 투의 중력권 진입 실패, 즉 영원한 우주 미아를 의미했다.

“에테르, 제4연료 탱크의 솔레노이드 차단 밸브 강제 폐쇄 명령을 송신해.”

[시도 중…… 신호 거부되었습니다. 솔레노이드의 입력 데이터 포트에 지속적인 고주파 노이즈가 유입되고 있습니다. 주파수 대역 분석 결과, 72.03Hz. 엔드로피 교단의 원격 동조 신호입니다.]

“테오 이 개자식이…….”

서율의 관자놀이 부근에서 핏대가 굵게 솟구쳤다. 뇌 신경망 링크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뒤통수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일었다. 9번째 루프의 누적 대가가 신경 세포의 탈수초화(Demyelination)를 유발하고 있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입안에서 쇠비린내가 감돌았다.

- “서율! 외부 감시 카메라로 확인했다! 제4연료 탱크의 방출 노즐이 완전히 열렸어! 냉각 가스 구름이 선체를 뒤덮고 있다!”

무전기에서 엘레나의 급박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이미 현장으로 이동 중인 듯, 배경음으로 거친 기압복의 가쁜 호흡음이 섞여 들었다.

“엘레나, 밸브의 물리적 잠금장치를 손으로 꺾어야 해. 하지만 그 구역의 유압 매니폴드는 이미 300bar 이상의 고압으로 잠겨 있을 거다. 일반적인 공구로는 수동 핸들이 돌아가지 않아.”

- “그럼 어쩌라는 거야? 이대로 연료가 다 날아가는 걸 구경만 하라고?”

서율은 머릿속으로 아르카-9의 3D 배관 도면을 전개했다.

수만 개의 파이프라인이 얽힌 복잡한 미로 속에서, 그는 단 하나의 비선형적 우회로를 찾아내야 했다. 그의 시선이 세라핌 헤븐 구역 외벽의 구석진 모퉁이에 멈췄다.

“세라핌 헤븐 외장 3구역. 거기에 수십 년간 방치된 아날로그 압력 배분 비상 수동 스풀 밸브(Spool Valve)가 있다.”

- “아날로그 밸브? 거긴 이미 녹슬어서 고철 더미나 다름없는 곳이잖아!”

“원격 제어 라인이 차단된 상황에서 압력을 통제할 유일한 키다. 그 아날로그 스풀 밸브를 강제로 개방하면, 제4연료 탱크의 과도한 유압이 세라핌 헤븐의 비상 가스 팽창실로 분산된다. 유압이 떨어지면 차단 밸브의 수동 오버라이드가 가능해져.”

- “녹이 슬어서 굳어버렸을 텐데 어떻게 돌려!”

“기압복의 휴대용 공압 임팩트 렌치를 최대 토크인 450Nm으로 설정해라. 그리고 스풀의 6각 인렛에 고정하고 세 번에 걸쳐 충격을 줘. 녹슨 나사산이 전단 응력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면서 회전할 거다. 시간이 없다. 9분 남았다.”

- “빌어먹을, 공학 박사 흉내 한 번만 더 내면 대가리를 깨버리겠어! 간다!”

엘레나의 교신이 끊겼다.

서율은 지휘 본부의 전면 터미널로 다가갔다. 세르게이 지휘관과 기술 장교들은 붉게 변한 모니터 화면을 보며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 그들의 무능함은 극단적인 합리주의자인 서율에게 연산의 낭비에 불과했다.

“비켜라.”

서율이 수석 분석관을 밀쳐내고 메인 콘솔의 제어 인터페이스에 직접 손을 올렸다. 에테르와의 동화 링크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압복의 신경 커넥터를 콘솔의 직접 입력 단자에 꽂았다.

치지직!

스파크가 튀며 서율의 척수를 타고 강한 전류가 흘렀다.

[경고: 신경 동화율 88% 돌파. 대뇌 피질의 열 발생률이 안전 임계치를 초과합니다. 즉시 연결을 해제하십시오.]

“닥쳐, 에테르. 72Hz 동조 신호의 역위상 파형을 계산해. 녀석들이 무선으로 솔레노이드를 잠그고 있다면, 우리는 방주 내부의 전력선을 송신 안테나로 삼아 역진동 변조 신호를 쏜다.”

[……역위상 주파수 72.0315Hz 생성 완료. 출력 전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립니다. 이 조치는 전원 제어 장치에 영구적인 열 손상을 초과—]

“실행해.”

서율의 눈에서 핏물이 한 방울 흘러내려 뺨을 타고 흘렀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그의 손가락은 콘솔 위의 가상 키보드를 초당 8회 이상의 속도로 타격했다. 방주 전체의 전력망이 단 1초간 암전되었다가, 다시 오렌지색 경보등과 함께 되살아났다.

[역위상 신호 주입 완료. 솔레노이드 밸브의 무선 수신기가 일시적 래칭 프로텍트(Latching Protect) 상태로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엘레나, 지금이다! 밸브를 돌려!”

서율이 무전기에 대고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정말 미세한 간격의 정적.

그리고 무전기 너머로 팅-! 하는 날카로운 금속 파열음과 함께 기계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굉음이 흘러들었다.

- “돌아갔다! 압력 게이지 하강 중! 연료 방출이 멈췄어!”

[제4연료 탱크 차단 밸브 폐쇄 완료. 추진체 누출 정지.] [남은 연료 잔량: 81.2%. 약속의 행성 궤도 진입 가용 범위 내.]

서율은 콘솔을 짚은 채 바닥으로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거친 호흡이 헬멧 내부를 하얗게 흐렸다. 뇌가 타들어 가는 통증 속에서도, 그는 살아남았다는 계산 결과를 뇌 주름 사이에 각인했다. 여동생 서아를 지켰고, 방주의 파멸을 또 한 번 유예했다.

하지만 에테르의 시스템 음성은 그에게 안식의 0.1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경고. 심각한 연쇄 결함 감지.] [역위상 신호 주입 시 발생한 전력 서지(Surge)가 12구역의 노후화된 배전반으로 바이패스되었습니다.]

서율의 팽팽하게 조여진 신경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12구역 기본 배터리 뱅크에서 열 폭주(Thermal Runaway) 현상 시작. 3초 후 폭발이 예상됩니다.]

“뭐……?”

서율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지휘 본부 바닥을 타고 거대한 진동이 전해졌다. 먼지가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렸고, 메인 홀로그램 화면이 붉은색 경고 마크로 뒤덮였다.

쿠우우웅—!

[섹터 12 배전반 완파.] [세라핌 헤븐 구역의 주 전력 케이블 절단.] [저온 동면 보존실의 액체 질소 순환 펌프 가동 정지.] [동면자 10만 명의 체온 상승 시작. 뇌 괴사 임계 시간까지 남은 시간: 15분 00초.]

서율의 심장이 완전히 멈춰 서는 것 같았다.

방출 폐기는 막아냈으나, 전력 과부하의 나비효과가 가장 치명적인 형태로 여동생의 목숨을 겨누고 있었다.

[서율. 현재의 전력 복구 장비와 가용 인력으로는 15분 내에 12구역의 주 케이블을 재연결할 확률이 0.04%에 불과합니다. 귀하의 여동생 강서아를 포함한 동면 승조원 전원의 사망 시퀀스가 아르카-9의 물리 법칙에 고정되었습니다.]

에테르의 차가운 보고가 절망의 심연을 향해 서율을 사정없이 밀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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