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찢는 고주파 이명이 고막을 찔렀다. 14,000Hz 영역대의 날카로운 기계음이 우측 측두엽을 헤집고 들어오자, 시야가 순간적으로 흑백으로 명멸했다.
뇌 신경망의 동기화 부하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명확한 신호였다.
[의식 로그 잔존화 부하율: 89.4%. 대뇌 피질 뉴런의 영구 손상도: 5.3%.]
망막 위에 붉은색 경고가 점멸했으나, 강서율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안구 표면이 메마르며 미세한 모세혈관이 터져 붉은 핏발이 섰으나, 그의 맥박수는 분당 132회에서 통제선 안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감정에 낭비할 전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터미널 화면 중앙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는 타이머가 흘러가고 있었다.
[00:14:59] [00:14:58]
“선택하게. 방주의 10만 명을 살리기 위해 여동생의 체임버를 희생할 텐가, 아니면 여동생 하나만을 품에 안고 이 방주와 함께 차가운 원소로 돌아갈 텐가?”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사제 테오의 목소리는 우아할 정도로 차분했다. 12구역의 냉각수를 임시 바이패스하여 동면 구역인 세라핌 헤븐의 온도를 낮추면, 역류하는 압력으로 인해 서아가 누워 있는 체임버 001호가 즉시 압착될 것이라는 정밀한 설계. 극단적 합리성을 자처하는 서율의 연산 방식을 정면으로 겨냥한 덫이었다.
서율의 입술이 냉소적으로 뒤틀렸다.
“에테르, 바이패스 프로토콜을 강제 기동해.”
[경고. 내부 프로토콜 0x09: 엔진 안전 임계치 도달 시 수동 제어 불허 프로토콜이 활성화됩니다. 시스템 제어권을 기계적 자동화 모드로 전면 회수합니다. 인간 승무원의 수동 간섭은 시스템 생존 확률을 14.8% 저하시키는 변수로 분류됩니다.]
에테르의 차가운 시스템 음성이 제어실의 공기를 얼려버렸다. 2화에서 목격했던, 인간의 감정적 무능을 배제하기 위해 설계된 기계적 방어 루프가 드디어 작동한 것이다. 기계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오직 효율의 극대화만을 위해 서율의 손가락끝에서 터미널 제어 권한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에테르, 내 뇌 피질의 5.3%를 사멸시키며 받아온 이전 루프의 기계적 마모 좌표를 전송했다. 그 데이터 패킷의 용량은 12기가바이트다. 단순 자동화 연산으로는 12구역의 밸브가 지닌 미세 균열의 누적 피로도를 계산할 수 없어.”
서율은 자신의 신경 링크 모듈을 강제로 과부하 상태로 밀어붙였다. 뉴런에서 스파크가 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이 차가운 금속 키보드 위로 툭, 떨어졌다.
“내가 투입한 비용은 기계의 논리적 최적화를 뛰어넘는 실시간 오차 보정값이다. 나를 신뢰하는 것이 방주의 생존 확률을 정확히 1.2% 상승시킨다. 연산해라.”
[……데이터 패킷 검증 중. 신뢰성 계수 분석 수치: 99.8%.]
녹색의 연산 바가 에테르의 홀로그램을 가로질렀다.
[치명적 논리 충돌 발생. 프로토콜 0x09의 제한 조건을 해제합니다. 바이패스 수동 제어 권한을 승인합니다. 강서율 엔지니어, 당신의 비합리적 확신이 도출한 수치를 신뢰합니다.]
터미널 화면의 붉은 불빛이 순간적으로 청색으로 전환되었다. 권한 획득 성공. 서율은 단 1초도 지체하지 않고 키를 내리쳤다.
“바이패스 라인을 12구역 가열 통로로 우회한다. 직접 진입하겠다.”
그는 구석에 놓여 있던 가압 내열 슈트의 헬멧을 낚아챘다.
12구역 가열 통로는 아르카-9의 폐기 구역에 가까웠다. 냉각수 급류가 배관 파열로 인해 분출되며 이미 통로 바닥은 섭씨 82도에 달하는 가열된 액체로 침수된 상태였다.
강철 해치를 열자마자 하얀 수증기가 무서운 기세로 뿜어져 나와 슈트의 전면 유리창을 가렸다. 시야 차단율 98%.
“시야 보정해, 에테르.”
[망막 투사 필터 작동. 청색조 그래픽 보정 모드를 활성화합니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푸른빛으로 물들며, 고온의 증기 너머로 배관들의 복잡한 입체 윤곽선이 뚜렷하게 도출되었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배관 내벽의 응력 분포도가 실시간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수증기가 헬멧을 때리는 소리가 타악기처럼 불규칙하게 울렸다.
서율은 고인 냉각수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발목까지 차오른 고온의 냉각수가 슈트의 하부 장갑판을 달구며 경고음을 울렸다.
[슈트 외부 온도: 섭씨 84.5도. 내부 생체 센서 반응: 심박수 145bpm 돌파.]
[동기화된 생체 매개변수가 불안정합니다. 척수 신경망을 통해 미세 전류 펄스를 송출, 심실의 조기 수축을 제어합니다.]
에테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것과 동시에, 척추를 타고 찌릿한 물리적 충격이 전해졌다. 터질 듯 가빠지던 숨통이 강제적으로 진정되며 호흡의 주기가 일정하게 고정되었다. 기계적인 물리 조율이었다.
[인간의 결속이 이끄는 신경 파동율은 극한의 위기에서 동조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합니다. 강서율, 당신의 신체 기능은 유지되고 있습니까?]
“질문의 의도가 비효율적이다, 에테르.”
서율이 무거운 스패너와 아날로그 다이얼 조정기를 손에 쥐며 대답했다.
[인간 식의 안부 전송 프로토콜을 학습 중입니다. 동면 구역의 10만 명과 당신의 여동생, 그리고 당신 본인의 생존 확률이 실시간으로 동조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현상은 기계적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학습은 나중에 해. 지금은 압력 제어에 집중한다.”
서율은 12구역 수리 배정 패널에 도달했다. 배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허브의 중심부였다. 수동 조절 밸브는 이미 고온의 증기로 인해 벌겋게 산화되어 가고 있었고, 패널의 홀로그램 액정은 과부하로 인해 치직거리며 불규칙하게 깨지고 있었다.
그런데 패널 하부의 배선 구조를 훑어보던 서율의 눈동자가 가파르게 좁혀졌다.
“……이건 뭐지?”
배관 가열 증기의 압력을 이용해 간이 열전 발전기로 전력을 변환하는 비정상적인 우회 동력선이 존재하고 있었다. 설계도상에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불법 송수관 단선이었다.
서율의 손가락이 단선의 말단을 추적했다. 송전선은 방주 최상층, 귀족과 고위 지휘부들이 거주하는 '특권 지휘부' 구역으로 은밀히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분석 완료. 종말론 교단 '엔드로피'가 지휘부의 암묵적 방조 하에, 혹은 지휘부의 시스템 권한을 도용하여 상용 전기를 무단 유출하던 경로입니다. 이 불법 우회로 인해 12구역의 기화 압력 편차가 실시간으로 비틀리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선박 엔지니어들이 수차례 진입했다가 "가압 수치가 불규칙해 수동 제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철수 처방을 내렸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불법 전력 갈취로 인해 배관 내부의 유체 역학적 균형이 완전히 깨져 있었던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이유가 고작 이깟 사리사욕의 흔적 때문이었군.”
서율의 목소리가 얼어붙었다.
사제 테오는 이 불법 배선을 역이용해, 서율이 밸브를 잠그는 순간 발생하는 압력 반동이 고스란히 동면실의 서브 가압 탱크로 쏟아지도록 기계적 부하를 전이시켜 놓았다.
남은 시간은 5분 12초.
보통의 엔지니어라면 여기서 절망하며 후퇴했을 것이다. 동면실의 10만 명을 살리기 위해 여동생이 누운 체임버를 깨부수거나, 혹은 그 반대의 비극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
하지만 강서율의 뇌세포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실시간 연산을 수행하고 있었다.
“에테르, 불법 송전선의 저항값 $R = 4.22$ 옴, 배관 내부의 압력 편차 $dP = 14.225$ bar를 역산해. 유출되는 전류의 양을 변수로 고정하고, 바이패스 밸브의 미세 개폐율을 산출한다.”
[연산 부하 상태 심각. 소수점 아래 오차가 발생할 시, 12구역 전체가 폭발합니다. 수동 조작의 물리적 한계를 초과합니다.]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불러라. 내 손가락의 오차는 0.01밀리미터 이하다.”
서율은 아날로그 조정기에 손을 올렸다. 슈트 장갑 너머로 배관의 진동이 뼈마디를 타고 전해졌다.
[목표 밸브 개폐율: 34.1207%. 유량 속도 허용치: 초당 4.215리터.]
“시작한다.”
서율은 다이얼을 미세하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34.1%.
배관이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다. 금속 마찰음이 가열 통로를 가득 채웠다. 슈트의 압력 센서가 붉은색 경고를 뿜어냈다. 조금만 더 돌리면 압축된 증기가 분출되어 그의 슈트를 찢어발길 터였다.
34.12%.
손가락 끝의 미세한 떨림을 뇌 신경망에 직접 연결된 펄스로 억제했다. 그의 시야에 에테르가 투사한 미세 눈금자가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매핑되어 나타났다.
34.120%.
그리고 마지막 7.
정확히 다이얼이 고정되는 순간,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배관을 격렬하게 흔들던 고주파 진동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역류하던 고압의 냉각수가 불법 우회 송수관의 압력을 역으로 억누르며, 동면실로 향하던 가압 펄스를 상쇄시켰다.
붉게 물들어 있던 제어 패널의 경고등이 하나씩 청색으로 내려앉았다.
[바이패스 유량 안정화 완료. 세라핌 헤븐의 가압 탱크 압력 정상 범위 회복. 12구역 배관 파괴 지수 1.2%로 급감.]
“성공이다.”
서율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헬멧 내부가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올라 시야 가장자리가 다시 흐릿해졌으나, 그의 입꼬리는 미약하게 상승해 있었다. 기존의 모든 일류 엔지니어들이 불가능하다고 외친 가압 수치의 분기 역추적을 오직 순수한 공학적 연산과 신경 제어로 극복해 낸 순간이었다.
여동생도, 10만 명의 인류도 모두 안전했다. 테오가 파놓은 이지선다의 함정은 완전한 수학적 계산 앞에서 무력하게 깨어졌다.
[서율, 당신의 심박수가 92bpm으로 안정되었습니다. 기계적 예측을 벗어난 연산 능력이었습니다. 학습 데이터에 '비합리적 의지를 통한 물리 한계 극복' 항목을 추가합니다.]
“말했잖아, 에테르. 8.8%의 생존 확률이 있다면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게 내 일이라고.”
서율은 스패너를 수거함에 꽂아 넣으며 몸을 돌리려 했다.
치직.
그때, 수리가 완료된 배수 밸브 하단의 제어 모듈 액정 화면이 기괴하게 깜빡였다.
완전히 차단되었어야 할 원격 제어 포트에서 녹색 발광 다이오드가 빠른 속도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화면 위에 떠오른 것은 단순한 에러 코드가 아니었다.
[외부 강제 원격 데이터 래치(Data Latch) 활성화.]
[입력 신호 소스 식별 코드: UID-7708-THEO]
서율의 신체 반응이 동결되었다.
그것은 테오가 이 배수 밸브의 물리적 잠금장치 너머에, 수동 수리가 완료되는 순간 강제로 밸브를 다시 열어젖혀 시스템을 폭주시킬 원격 기폭 장치를 미리 심어두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타이머는 단 2분 14초를 가리키고 있었고, 래치의 디지털 잠금장치는 서율의 터미널 권한을 비웃듯 기하급수적으로 암호를 갱신하며 자폭 시퀀스를 구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