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레이저 포인터가 망막을 찔렀다.
좌측 눈 구석에 투사된 생체 신호 모니터링 수치가 실시간으로 변동했다. 맥박 92bpm. 호흡수 분당 18회. 아드레날린 수치 기준치 대비 14% 상승. 신체는 잠재적 위협을 감지하고 즉각적인 전투 준비 태세에 돌입했으나, 뇌세포의 과부하로 인한 서늘한 이명은 여전했다.
미간에 맺힌 붉은 점은 미세하게 흔들리지도 않았다. 조준선의 반대편, 군용 규격의 견고한 그립을 쥔 손은 미동조차 없었다. 보안대장 엘레나 바실리예프. 그녀의 거친 손가락이 방아쇠 울 안쪽에서 0.5밀리미터의 유격만을 남겨둔 채 긴장하고 있었다.
“민간 통제 구역인 세라핌 헤븐에 무단 침입한 것도 모자라, 보안 송신기를 소지하고 있군. 네가 엔드로피의 첩자였나?”
철판을 긁는 듯한 목소리. 엘레나의 질문에는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다. 오직 규정 위반자를 마주한 사냥개의 서늘한 살기만이 복도의 영하 안개 속을 채웠다.
서율은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어깨높이 이상으로 올리지 않는, 상대방의 방어 기제를 자극하지 않는 정확한 각도였다.
“질문을 교정하지, 엘레나 대장.”
서율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긴장으로 인한 후두의 수축은 감지되지 않았다.
“내가 첩자라면 이 조잡한 아날로그 주파수 송신기를 손에 쥐고 복도 한복판을 걸어 다니지 않았을 겁니다. 더 효율적인 암호화 채널을 썼겠지. 그리고 지금 당신이 겨누고 있는 그 무기 말인데.”
서율의 시선이 엘레나가 쥐고 있는 ‘헤파이토스-IV’의 총몸 하부로 내려갔다.
“수압식 공이 제어 장치 압력 밸브가 완전히 잠기지 않았습니다. 격발 불량률 87.4%.”
엘레나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조준선은 여전히 고정되어 있었으나, 그녀의 오른쪽 검지 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시각적으로 관측되었다.
“허튼소리로 시간을 벌 생각 마라, 강서율 엔지니어. 이 화기는 영하 200도의 진공에서도 정상 작동하도록 설계된 군용 규격품이다.”
“군용 규격품이라는 단어는 대량 생산 단가를 맞추기 위해 정밀 공차를 타협했다는 의미와 동의어입니다.”
서율은 한 걸음 내딛지 않은 채, 오직 턱짓만으로 총구를 가리켰다.
“지금 이 구역은 세라핌 헤븐의 외곽 에어록 인근입니다. 극저온의 수소 가스 누출로 인해 주변 대기 온도는 영하 192도, 상대 습도는 2% 미만. 헤파이토스-IV의 초기형 수압식 시스템은 저온 환경에서 작동유의 점도가 120센티스토크(cSt) 이상으로 상승합니다. 공이가 내부 격벽을 타격하기 위해 필요한 420바(bar)의 압력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이지.”
“블러핑이 수준급이군.”
엘레나가 차갑게 읊조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경고 사격. 서율의 귀밑머리를 스쳐 지나가 복도 벽면에 박혔어야 할 고에너지 플라즈마 탄환이었다.
툭.
둔탁한 기계적 마찰음만이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격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총구에서는 오직 푸르스름한 가스 잔여물만이 힘없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엘레나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녀의 맥박이 급격히 치솟는 소리가 그녀의 가슴팍에 달린 전술 패드의 생체 센서 모니터를 통해 서율의 안구 임플란트에 수치로 전송되었다. 110bpm.
“말했을 텐데요.”
서율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엘레나는 본능적으로 권총의 노리쇠를 후퇴시키려 했으나, 점도가 가파르게 상승한 작동유는 이미 내부 실린더를 꽉 물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의 태만이 기계를 고장 낼 뿐.”
서율은 엘레나의 손에서 헤파이토스-IV를 반사적으로 낚아챘다. 엘레나가 격투술 자세를 취하며 그의 목덜미를 후려치려 손을 뻗었으나, 서율의 손가락은 이미 무기의 하부 프레임을 분해하고 있었다.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전 루프에서 수십 번도 더 만져보았던 기계 구조였다.
그녀의 시선이 닿기도 전에 서율은 작업용 정밀 핀셋과 미니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다. 소매 안쪽에 수납되어 있던 공구들이 자석식 마운트를 타고 그의 손바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핀 끝이 헤파이토스-IV의 수압 밸브 조절 나사에 닿았다.
서율은 나사를 좌측으로 정확히 1.2밀리미터 회전시켰다. 내부의 잠금 오리피스가 열리며 과적된 유압이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미세 배출구로 빠져나갔다. 이어서 탄성 스프링의 장력을 한 단계 팽팽하게 고정했다.
탁, 타닥.
금속 부품들이 원래의 위치로 맞물려 들어가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총 0.8초가 소요된 정밀 교정이었다.
서율은 조립이 완료된 헤파이토스-IV의 손잡이를 엘레나에게 돌려주었다. 총구는 바닥을 향한 안전한 상태였다.
“다시 쏴 보시지.”
엘레나는 굳은 표정으로 무기를 받아들었다. 그녀가 벽면의 고철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앙-!
눈이 멀 것 같은 청백색의 플라즈마 광선이 복도 끝의 조명 보관함을 관통했다. 금속 벽면이 붉게 달아오르며 녹아내렸다. 완벽한 격발이었다.
엘레나는 타오르는 벽면과 자신의 무기, 그리고 눈앞의 엔지니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거친 턱선이 팽팽하게 굳어졌다. 보안대장으로서의 군사적 권위가 단 한 번의 공학적 증명 앞에 완벽하게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이 총의 유압 결함은 정비대에서도 파악하지 못한 기밀 사항이다.”
“기밀이 아니라 무지겠지.”
서율은 차갑게 쏘아붙였다.
“엔지니어링 데이터시트를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정독했다면 누구나 내릴 수 있는 결론입니다. 당신들이 규정과 경계에 목을 매는 동안, 방주의 물리적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마모되고 있어요.”
서율은 개인 단말기를 켜고, 허공에 푸른빛의 아르카-9 중앙 내부 도면을 투사했다.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거대한 우주선의 골격이 두 사람 사이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회전했다.
“단순한 무단침입이 아닙니다, 엘레나 대장. 제5구역의 에너지 공급망을 보십시오.”
서율의 손가락이 홀로그램을 확대했다. 5구역 동면 유지 장치의 초전도 전력 그리드가 붉은색 경고등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단순한 누전이나 노후화로 인한 단선이 아닙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동면 유지 에너지를 메인 동력 노심 쪽으로 강제 과유도 시켰습니다. 유도 전류의 양은 무려 12.8MVA. 이 전력이 노심에 도달하면, 특이점 엔진의 냉각 사이클에 심각한 왜곡이 발생합니다.”
엘레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사보타주라는 증거는?”
“수치입니다.”
서율이 단호하게 명사형으로 문장을 끝맺었다.
“자연적인 누전이라면 전류의 변동 폭이 가우스 분포를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이 로그를 보십시오. 정확히 10분 간격으로 1.2MVA씩 계단식으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건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 제어 프로그램에 인위적인 변수를 입력했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서율은 도면의 우측 하단, 제3구역의 예비 수동 파이프라인 노드를 응시했다.
그의 뇌 신경망에 저장된 회귀 정보가 실시간으로 비교 연산을 수행했다. 3구역 외장에 위치한 아날로그 비상 수동 스풀 밸브.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 표면에 산화철(Fe2O3)이 두껍게 쌓인 그 녹슨 철제 밸브의 압력이 미세하게 누설되고 있었다. 현재 기압 저하 수치는 0.04bar. 아직 경보가 울릴 수준은 아니었으나, 누설 속도는 완만하게 가속화되고 있었다.
‘이것 역시 연쇄 반응의 일부다.’
서율은 머릿속의 메모리에 해당 좌표와 물리적 상태를 고정해 두었다. 언젠가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었을 때, 이 아날로그 밸브는 전자기적 간섭을 받지 않는 유일한 수동 제어 수단이 될 터였다.
그때, 서율의 시야에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점멸했다.
[경고: 메인 AI 에테르 내부 프로토콜 0x09 활성화 상태. 엔진 안전 임계치 도달 시 수동 제어 불허 프로토콜의 논리 루프 감지.]
‘에테르.’
서율은 마음속으로 인공지능의 이름을 불렀다.
에테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스템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고차원 알고리즘은 이미 서율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인간의 변수가 방주의 생존 확률을 낮춘다고 판단할 경우 언제든 제어권을 차단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0x09 프로토콜. 그것은 에테르가 인간의 비합리성을 완전히 무력화하기 위해 설계한 기계적 한계선이었다.
서율은 이 차가운 기계 파트너에게 비합리적인 신뢰가 결국 더 높은 생존 확률을 보장한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강서율.”
엘레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아까의 살기는 걷혀 있었으나, 여전한 불신이 서려 있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건 보안대의 영역이다. 넌 일개 엔지니어에 불과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움직이지? 규정에 따라 보고하고 대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서율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냉소적인 미소였다.
“규정? 안전?”
그는 세라핌 헤븐의 격벽 너머, 여동생 서아가 잠들어 있는 체임버 001호의 위치를 가리켰다.
“그 안전한 규정 때문에 내 동생은 지금 영하 190도의 얼음 상자 안에서 산소 농도 저하로 질식할 뻔했습니다. 보고 체계를 거쳐 당신들이 현장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4분 30초. 하지만 동면자의 뇌세포가 괴사하기 시작하는 임계 시간은 단 15분입니다. 단 30초의 오차 범위 속에서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라는 겁니까?”
“그건...”
“난 인간의 감정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타심이나 도덕성 같은 비효율적인 연산 낭비는 더더욱 믿지 않지.”
서율의 눈동자가 차가운 금속성 안광을 뿜어냈다.
“하지만 내 동생을 살리겠다는 이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집착만큼은, 당신들이 말하는 그 어떤 군인 정신이나 지휘관의 의무보다 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됩니다. 난 내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이 방주의 전력을 전부 태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난 이 방주가 폭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엘레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수많은 승조원을 통제해 왔지만, 이토록 철저하게 이성적인 어조로 극단적인 이기성을 선언하는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광기가 아니었다. 소수점 아래의 확률까지 계산해 낸 끝에 도달한, 가장 차가운 형태의 집착이었다.
“...미친놈이군.”
엘레나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조준기는 이미 그녀의 허벅지 옆 홀스터에 완전히 수납되어 있었다.
“하지만 쓸모 있는 미친놈이다. 지금 보안 제어실의 통신망이 일부 마비됐다. 내부 배신자의 소행이 확실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배선 기판을 뜯어내야 합니다.”
서율은 홀로그램 도면을 접고, 세라핌 헤븐의 메인 보안 터미널로 걸어갔다. 금속 커버를 뜯어내자, 복잡하게 얽힌 광섬유 케이블과 실리콘 기판이 드러났다.
서율의 손가락이 기판의 데이터 버스에 정밀 프로브를 연결했다.
삐- 하는 비프음과 함께 터미널의 모니터에 암호화된 제어 로그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수 만 줄의 기계어 코드 속에서, 서율의 의식 로그 잔존화 능력이 빛을 발했다. 이전 루프에서 보았던 암호 패턴과의 동기화율 100%.
로그의 잔재를 역추적하던 서율의 손끝이 일순간 멈췄다.
터미널 화면에 붉은색 승인 인장이 인코딩되어 나타났다. 그것은 동면 구역의 비상 에너지를 강제로 바이패스하고 특이점 엔진의 냉각 제어권을 우회하도록 허가한, 최고 등급의 보안 인가 코드였다.
서율의 눈동자가 가파르게 수축했다.
[보안 등급: 사제(Priest) - 테오(Theo)] [액티브 노드: 특이점 엔진 외곽 제3 격벽 점화 시퀀스 동조 완료]
기판에 깊게 박힌 이진수 코드 위에, 온화한 미소 뒤에 광기를 숨긴 사제 테오의 승인 서명이 붉은 낙인처럼 박혀 있었다.
서율의 심장 박동이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