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이이이이이이익—!
가늘고 날카로운 고주파음이 고막을 찔렀다. 귓바퀴를 타고 흘러내린 기분 나쁜 진동이 두개골 내부의 뇌하수체를 직접 타격하는 듯했다. 단순한 파이프 마찰음이 아니었다. 초당 22,000회에 달하는 미세 진동. 주 배관 내부의 압축 유체가 임계 속도를 넘어섰을 때 강철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
"무슨 일이야? 압력을 잡았는데 왜 또 이러는 건데!"
카터가 일그러진 얼굴로 제어 콘솔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적색 경고등이 그의 이마와 뺨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서율의 시선은 이미 제어실 화면 모퉁이에 표시된 압력 벡터 다이어그램에 고정되어 있었다. 수십 개의 배관 선로가 복잡한 그물망처럼 얽힌 3D 모델링 위로, 붉은색 에너지 흐름이 제12구역에서 제7구역으로 급격히 역류하는 기하학적 파형이 그려졌다.
"나비효과다."
서율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목소리에는 동요가 없었다. 심박수는 분당 142회까지 치솟았으나, 그의 손끝은 여전히 콘솔 프레임을 단단히 움켜쥔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12구역의 질소 배관을 수동으로 조여 압력을 낮춘 반작용입니다. 밀폐된 루프계 내부의 총 압력 에너지는 보존됩니다. 우리가 차단한 1,420킬로파스칼(kPa)의 유체 역학적 에너지가 갈 곳을 잃고 가장 취약한 우회로인 7번 보조 배관 주파수 대역으로 전이된 겁니다."
"말도 안 돼! 7번 배관은 이중 합금 사양이라고! 설계상 압력 한계치가 훨씬 높아!"
"설계가 완벽하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서율은 더 이상 카터와 논쟁하는 데 연산 능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콘솔 옆 벽면에 거치된 휴대용 플라즈마 용접기와 알루미늄-티타늄 합금 용접봉 세트를 거칠게 낚아챘다.
좌뇌 뒤편에서 짜릿한 신경통이 일어났다. 1회 차 루프의 대가로 지불된 뉴런 손상의 흔적이었다. 시야의 왼쪽 하단이 미세하게 깜빡이며 노이즈가 끼었다.
[동기화 링크 비정상 주파수 감지.] [경고. 승조원 강서율의 뇌 피질 과열 감지. 현재 뉴런 부하율 84.2%. 자아 분열 영역 경계선에 도접하고 있습니다.]
귀를 타고 흐르는 것은 기계음이 아닌, 뇌 신경망에 직접 주입되는 에테르의 무기질적인 음성이었다.
'무시해.'
서율은 속으로 뇌까리며 제어실 해치 도어의 수동 개폐 레버를 당겼다.
두꺼운 티타늄 차폐문이 열리자마자 7번 구역 통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공기 중의 수분이 급격히 기화하며 발생한 백색 증기가 배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시야 제로. 가시거리는 채 50센티미터도 되지 않았다.
[수리 한계 시간 산출: 3분 40초.] [해당 시간 초과 시, 7번 보조 배관의 피로 파절(Fatigue Fracture)이 시작됩니다. 누출된 액체 질소가 인접한 동면 구역의 주 동력 케이블을 동결시켜 15분 이내에 세라핌 헤븐의 산소 공급이 영구 중단됩니다.]
에테르의 연산은 정확했다. 냉혹할 정도로 객관적인 수치였다.
"서율! 미쳤어? 방호복도 없이 거길 들어가겠다고?"
뒤에서 카터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동료를 걱정하는 이타심보다, 수동 제어 권한을 쥔 유일한 기술자를 잃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에 대한 공포가 더 짙게 깔려 있었다.
서율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비키십시오. 3분 40초 뒤에는 당신이 아끼는 그 가죽 옷도 액체 질소에 얼어붙어 유리가루처럼 깨질 테니까."
자욱한 증기 속으로 몸을 던졌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강철 바닥판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이 종아리뼈를 울렸다. 온도는 섭씨 48도까지 상승해 있었다. 배관 내부의 고압 마찰열이 파이프 외벽을 붉게 달구고 있는 것이 스모그 너머로 희미하게 보였다.
서율은 머릿속에 기억된 아르카-9의 3차원 설계도를 펼쳤다.
'우측으로 세 걸음, 45도 방향으로 꺾인 밸브 조인트 아래.'
정확한 위치에 도달하자, 굉음의 발원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제7구역의 보조 배관 외경 150밀리미터짜리 티타늄 파이프였다. 관이 찢어질 듯 팽창해 구부러진 호처럼 휘어 있었다. 파이프의 이음새 부근에서 가느다란 균열이 발생해, 초고온의 섭씨 120도 증기가 분수처럼 내뿜어지고 있었다.
치이이이이익—!
스팀이 서율의 작업복 소매를 스치자마자 피부가 데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맥박수가 다시 상승했다. 155bpm.
"에테르, 파이프의 공진 주파수 분석해."
[분석 완료. 현재 주파수 120Hz. 진동 상쇄를 위한 역위상 방전 전류값 산출: 4.82암페어(A), 변조 주파수 240Hz.] [추가 경고. 승조원의 신체 신호 위험 수위 도달. 수동 용접 작업 시 발생하는 물리적 반동은 현재 신경 상태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시스템 권장 사항: 수동 제어를 즉시 해제하고 에테르에 선체 자동 복구 시퀀스를 위임하십시오.]
"거절한다."
서율은 플라즈마 용접기의 마스크를 내리며 이빨을 악물었다.
"네 자동 복구 시퀀스는 7번 구역 전체를 완전 폐쇄하는 시나리오잖아. 그렇게 되면 세라핌 헤븐의 백업 라인도 차단돼. 내 동생이 있는 구역의 산소 분압이 12% 이하로 떨어진단 뜻이다. 그 따위 연산 결과를 신뢰하라고?"
[그것이 방주 전체의 생존 확률을 1.2% 상승시키는 최적의 합리적 경로입니다.]
"닥쳐. 합리가 항상 정답은 아니야."
서율은 용접기의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즛, 즈즈즈즉—!
용접기 끝단에서 푸른빛의 플라즈마 아크가 뿜어져 나왔다.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광원이 어두운 증기 속을 갈랐다.
뒤따라온 카터와 보조 엔지니어 두 명이 저 멀리 안전 격벽 모퉁이에서 그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자식 미쳤어! 저 압력 상태에서 직접 용접을 하겠다고? 아크가 닿는 순간 파이프가 폭발할 거야!"
"서율, 당장 멈춰! 제어 권한을 나한테 넘겨라! 수동 차단 밸브를 잠그는 게 먼저다!"
카터가 휴대용 무전기를 통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권위를 무시당한 선배 엔지니어의 분노와, 폭사에 대한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서율은 무전기 수신 볼륨을 0으로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오직 미세하게 떨리는 파이프의 균열선만이 비쳤다.
"용접봉 투입 타이밍, 0.05초 단위로 쪼갠다."
서율은 알루미늄-티타늄 용접봉을 균열부 경계면에 밀착시켰다.
파이프는 120Hz로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만약 용접봉이 진동의 정점(Peak)이 아닌 최저점(Trough)에 닿는 순간 아크를 방전시킨다면, 불균일한 열팽창으로 인해 파이프는 그대로 연쇄 파열된다.
그것은 인간의 동체시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정밀 제어 영역이었다.
하지만 서율에게는 에테르와의 싱크로율 84%짜리 신경망이 있었다.
지릿—!
뇌리에 푸른색 눈금자가 겹쳐졌다. 파이프의 진동 파형이 뇌 신경 세포의 전기 신호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실시간 그래프로 그려졌다.
'지금이다.'
타악!
서율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마이크로 암페어 단위로 조절된 4.82A의 전류가 알루미늄-티타늄 용접봉 끝에서 방전 고리를 형성하며 터져 나왔다.
파지직! 콰아아아—!
고온의 플라즈마 아크가 균열부를 감싸 안았다. 차가운 액체 질소 기체의 냉기와 용접기의 초고열이 부딪치며 격렬한 스파크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허억……!"
서율은 신음했다. 용접기가 뿜어내는 반동이 손목 관절을 타고 어깨, 그리고 척추를 지나 뇌 신경망으로 역류했다. 이가 부딪칠 정도로 강한 진동이 전신을 휩쓸었다.
[뇌 신경망 부하 임계치 초과. 89.4%.] [인지 에러 레벨 2 발생. 시각 정보의 색상 채널이 소실됩니다.]
서율의 시야에서 붉은 경고등의 색이 지워졌다. 모든 세상이 흑백의 무성영화처럼 변했다. 오직 용접기 끝의 플라즈마 백색 광원만이 유일한 입체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직…… 멀었다."
그는 어금니를 질질 깨물었다. 입 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퍼졌다.
손끝의 감각이 사라져 가고 있었지만, 서율은 오직 뇌 신경망에 직접 각인된 수치적 좌표만을 믿고 용접기를 정확히 0.12밀리미터씩 우측으로 이동시켰다.
파지직, 파지직, 파지직—!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크 방전음이 기하학적인 리듬을 만들어냈다.
뒤에서 지켜보던 카터의 입이 벌어졌다.
그는 평생 방주에서 엔지니어로 일해 왔지만, 이토록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고압 파이프를 '실시간 스폿 용접'으로 때우는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손재주가 좋다는 수준을 넘어섰다. 기계와 인간의 뇌가 완벽한 하나의 피드백 루프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신기에 가까운 정밀성이었다.
마지막 방전 고리가 파이프의 미세 균열 종단점에 닿았다.
치이이이이— 툭.
마침내 내뿜어지던 하얀 증기가 차단되었다.
미친 듯이 울리던 고주파의 비명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용접부는 알루미늄-티타늄 합금의 은빛 물결무늬를 그리며 완벽하게 응고되어 있었다. 균열을 따라 형성된 비드(Bead)의 두께는 단 1.2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고 있었다.
[압력 게이지 정상화.] [제7구역 보조 배관 압력 420 kPa 유지. 시스템 안정화 완료.]
에테르의 기계적인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서율은 용접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털썩, 주저앉는 그의 호흡이 거칠었다. 흑백으로 변했던 시야가 서서히 원래의 붉은 경고등 색조를 되찾아 갔다.
"이…… 이게 되네?"
카터가 비틀거리며 다가와 파이프의 용접 부위를 장갑 낀 손으로 만졌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런 정신 나간 짓을 성공시키다니. 너, 정체가 뭐야? 어떻게 주파수를 감지하고 용접 타이밍을 맞춘 거지?"
카터의 눈빛에는 더 이상 안하무인 격의 오만함은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자신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기술적 심연을 마주한 자의 경외와 굴복만이 존재했다.
서율은 카터의 질문을 무시한 채, 흘러내린 땀을 소매로 닦아냈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는 이미 용접된 파손 부위의 단면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카터 선임님."
"어? 어, 왜 그러지, 서율?"
한껏 낮아진 카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파이프의 파절 단면을 보십시오."
서율이 가리킨 곳은 용접부 바로 옆, 원래 균열이 시작되었던 지점의 금속 경계면이었다.
"이건 단순한 압력 누적으로 인한 피로 파절이 아닙니다. 금속의 피로 한도를 넘어서 갈라진 단면은 보통 거친 무늬를 그립니다. 하지만 여기 이 미세한 직선 홈이 보이십니까?"
카터가 허리를 숙여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단면을 살폈다.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건…… 가공 흔적이잖아? 기계톱으로 썬 것처럼 깨끗한데?"
"자연 마모가 아닙니다."
서율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가라앉았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다이아몬드 와이어 커터를 사용해 배관 외벽의 80% 깊이까지 미리 절단해 둔 겁니다. 우리가 12구역의 압력을 우회시키자마자 기계적 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바로 터지도록 정밀하게 연산된 사보타주입니다."
"그럴 리가…… 방주 내부에 그런 미친 짓을 할 놈이 어디 있다고!"
"엔드로피."
서율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들의 침투는 이미 시작되었다. 매 회차 루프마다 그들의 사보타주 위치와 타이밍이 변조되는 나비효과의 정체가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기계를 부수는 것이 아니었다. 서율의 행동 패턴을 관찰하고, 그에 맞추어 실시간으로 파괴 공작의 알고리즘을 진화시키고 있었다.
소름 끼치도록 정교한 지능형 테러였다.
[상황 분석 완료.] [엔드로피 세력의 동적 결함 변조 확률 98.4%. 다음 예상 공격 목표지를 산출 중입니다.]
에테르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서율은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뉴런의 극심한 통증이 여전히 관자놀이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동생 서아가 잠들어 있는 '세라핌 헤븐' 구역을 지켜냈다는 안도감이 그를 지탱했다.
그때였다.
띠링—! 띠링—!
서율의 손목에 채워진 엔지니어 전용 휴대 단말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단순한 시스템 피드백 알림음이 아니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르카-9의 최상위 보안 프로토콜 관련 경고음이었다.
서율은 홀린 듯 단말기 스크린을 쓸어 넘겼다.
화면에 점멸하는 문자를 확인한 순간, 그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경고. 저온 동면 지구 '세라핌 헤븐' 중앙 온도 감지기 이상.] [동면 구역 001호 체임버 주변 온도: -190.0℃ → -189.5℃] [비정상적인 0.5℃ 불규칙 상승 감지. 원격 해킹 시도 감지됨.]
"서아……."
서율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동면실의 온도가 상승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냉각수 누출이 아닌, 누군가 외부에서 강제로 제어 코드를 해킹하여 동면 유체 시스템의 차단 밸브를 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에테르의 목소리가 차갑게 경고했다.
[제한 시간 15분. 해킹 프로토콜을 차단하지 못할 경우, 체임버 001호의 산소 차단 및 동면자 뇌 괴사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