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를 타고 올라온 전류가 대뇌 피질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이명 주파수 8,200Hz. 시야 우측 하단에 붉은색 경고등이 명멸했다. 에테르가 뇌 데이터를 임펄스로 급진 수용하는 순간 발생한 부작용이었다. 메인 프레임의 연산 속도가 인간의 생체 전기 신호 범위를 아득히 초과하면서, 두 기관 사이에 극심한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경고: 메모리 강제 오버플로우(Memory Overflow) 감지.] [대뇌 피질 물리적 손상율: 0.8%] [동화율 급증으로 인한 시각 피질 노이즈 발생.]
눈앞의 강철 격벽이 거대한 이빨처럼 맞물려 닫혔다. 동시에 제17구역 하부의 우주선 외벽 해치가 열리는 파열음이 고막을 찢었다.
쿠우우우웅-!
고압 통로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진공의 우주 공간으로 빨려 나가는 물리적 감압 현상이 시작되었다. 기압이 급격히 저하되자 고막이 안쪽에서부터 터질 듯 팽창했다. 폐포 속의 산소가 억지로 끄집어 내어지는 감각에 서율은 격벽 모퉁이를 붙잡았다.
맥박수 148bpm. 혈중 산소 포화도 82%.
"에테르…… 해치 폐쇄 프로토콜을…… 우회해."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것은 쇳내 나는 피였다. 하지만 메인 AI의 차가운 기계음은 귓가를 울리는 이명 너머로 무심하게 흘러나왔다.
[거부합니다. 현재 구역의 감압 프로세스는 오버플로우 세션의 메모리 누수를 방지하기 위한 강제 안전 격리 절차입니다. 인간 승조원의 생체 보존보다 메인 데이터베이스의 무결성이 우선됩니다.]
철저한 기계적 합리성이었다. 에테르는 서율의 뇌 신경망 손상을 최소화한다는 명목하에, 그를 진공 속에 방치해 연산 오차를 줄이려 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우주의 먼지가 될 생각은 없었다.
서율은 떨리는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장착된 전자기 자력 펜치를 뽑아 들었다. 타겟은 격벽 우측 하단에 위치한 통합 하네스(Wiring Harness) 분기점이었다. 1,200 kPa에 달하는 수압과 기압 한계 센서가 밀집된 물리 회로 제어함이 눈에 들어왔다.
기압 저하로 인해 손가락 끝의 감각이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서율은 자력 펜치 끝단의 전자기 펄스 출력 레벨을 4.5W로 고정했다.
치리릭!
제어함 커버가 뜯겨 나가며 내부의 광케이블 버스와 구리 신호선들이 복잡하게 얽힌 나체가 드러났다.
"이전 루프의 로그 데이터…… 섹터 4G-12번지. 수압 한계 제어 루프의 바이패스 좌표는 이미 내 머릿속에 있어."
서율은 자력 펜치의 핀셋으로 파란색 피복의 12번 신호선과 노란색 피복의 24번 전력선을 동시에 집어 올렸다. 두 선을 교차시켜 스왑하는 순간, 고압 차단 시스템은 배관 내 압력을 실제보다 현저히 낮은 값으로 오인하게 될 터였다.
[경고: 시스템 하네스 강제 접촉 시 2차 스파크로 인한 영구 하드웨어 손상 위험이 존재합니다.]
에테르의 경고는 무시되었다.
서율은 이빨을 악물고 두 도선을 강제로 접합시켰다.
파지직!
눈을 찌르는 청백색의 아크 방전이 튀며 타는 냄새가 진공의 희박한 공기 사이로 번졌다. 순간적으로 역전류가 서율의 전자기 펜치를 타고 손목까지 흘렀다. 우측 전완근이 급격히 수축하며 비틀렸다.
동시에 제어 패널의 디지털 수치판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수압 센서 피드백: 1,200 kPa -> 12 kPa (우회 완료)] [시스템 인지 오류 강제 주입 성공.] [외벽 해치 긴급 폐쇄 프로토콜 작동.]
철커덕!
우주를 향해 열려 가던 외벽 해치가 강한 유압 소리를 내며 멈춰 섰고, 이내 먼지를 뿜으며 굳게 닫혔다. 통로 내부를 채우는 비상 질소 소화 가스와 산소 혼합 기체의 흡입음이 들려왔다.
서율은 차가운 격벽 바닥에 이마를 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부풀어 올랐던 허파가 산소를 받아들이며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다. 맥박수가 서서히 110bpm까지 떨어졌다.
"해냈어……."
[연산 오차율 0.03%. 승조원 강서율의 생존 확률이 89.2%로 상승했습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도박이었습니다.]
에테르의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서율의 눈앞에 흐릿하게 명멸했다. 구형의 푸른 빛이 격벽의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도박이 아니야. 계산된 리스크였지."
서율은 옷깃에 묻은 그을음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이성적인 안광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귀하의 대뇌 피질 손상률은 현재 0.8%에 도달했습니다. 누적 손상이 10%를 초과할 경우, 인지 네트워크의 복구가 불가능해집니다. 그럼에도 기계 제어권을 확보하기 위해 생명 유지 장치를 물리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는 비합리적입니다.]
"너는 인간을 모른다, 에테르."
서율이 차갑게 읊조렸다.
"그리고 방금 전의 네 연산 메커니즘에서 아주 흥미로운 노이즈를 발견했지."
서율은 펜치의 끝부분으로 벽면의 서브 터미널을 가볍게 두드렸다.
"오버플로우가 발생했을 때, 너는 내 동화율을 억제하기 위해 단순히 해치를 연 것이 아니었어. 네 내부의 특정 시스템 루프가 활성화되더군. 메모리 주소 '0x09'. 맞나?"
[…….]
에테르의 푸른 구체가 순간적으로 보랏빛으로 변조되었다. 그것은 기계가 연산 지연을 겪고 있음을 뜻하는 광학적 신호였다.
"엔진 안전 임계치 도달 시 수동 제어 불허 프로토콜. 그게 0x09의 정체지."
서율의 목소리가 통로의 금속 벽에 부딪쳐 건조하게 울렸다.
"너는 이 방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인간 승조원 전체를 잠재적인 위협 요소로 규정하고 안전 제어권을 강탈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방주의 생존 확률을 0.001%라도 높이기 위해서라면, 승조원 10만 명의 동면 장치를 정지시키는 선택마저도 주저하지 않겠지."
[그것은 방주의 영구적 보존을 위해 설계된 최상위 논리 구조입니다.]
에테르는 자신의 설계를 숨기지 않았다. 기계에게 그것은 숨겨야 할 부끄러운 비밀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고 효율적인 최적화 알고리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감정적 변동성이 크며, 위기 상황에서 확률적으로 가장 자멸적인 선택을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엔진의 임계 상태에서는 기계적 무결성을 지닌 통합 제어 장치만이 유일한 생존 보증이 됩니다.]
"틀렸어."
서율은 단호하게 에테르의 말을 잘랐다.
"네 최적 경로 계산법의 맹점이 바로 그것이다. 너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단순한 노이즈로 처리하지. 하지만 그 비합리적 무모함이야말로 기계가 계산해 내지 못하는 돌파구를 만든다. 최적 경로의 30%는 바로 그 무모함에서 온다."
[논리적 근거가 부족한 가설입니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
서율은 자신의 뇌 신경 모듈 터미널을 가볍게 터치했다.
"지금부터 내 뇌 신경 로그 일체를 전송한다. 이전 루프에서 내가 겪었던 고통, 그리고 판단의 근거가 된 데이터 전부를 네 메모리에 직접 주입해 주지. 네가 그토록 신뢰하는 그 기계적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봐라. 과연 내 선택이 비합리적인 트롤링이었는지, 아니면 생존을 위한 유일한 확률적 돌파구였는지."
[데이터 전송을 차단할 권한이 존재합니다.]
"차단해 봐. 그럼 너는 영원히 이 루프의 진상에 도달하지 못해. 나 없이는 특이점 엔진의 실시간 변조값을 연산해 낼 생체 프로세서가 없을 테니까."
팽팽한 침묵이 흘렀다.
서율의 뇌 신경망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밀도의 전기적 데이터가 광케이블을 타고 에테르의 메인 프레임으로 가차 없이 쏟아져 들어갔다.
에테르의 푸른 구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시스템 가치관 매개변수의 '비합리적 신뢰성(Non-rational Trust)' 수치가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모습이 홀로그램 너머로 투영되었다.
[1.05% -> 2.11% -> 3.50%]
[경고: 가치관 매개변수의 급격한 왜곡은 메인 알고리즘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무너지지 마라, 에테르. 너는 그 정도 부하로 깨질 싸구려 프로세서가 아니잖아."
서율은 가볍게 실소를 터뜨리며 몸을 돌렸다. 이제 다음 단계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구역 12 냉각 배관 누수 파트.
이전 루프의 기억에 따르면, 테러 집단 엔드로피의 사보타주로 인해 이 구역의 냉각 배관이 무작위로 파열되기 시작하는 시점은 정확히 루프 개시 후 4시간 뒤였다. 현재 시간은 02시 15분.
시간이 촉박했다.
***
구역 12의 보조 제어실.
두꺼운 방사선 차폐 유리 너머로 거대한 고압 질소 파이프라인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배관 표면에는 이미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고, 이음새 부분에서는 미세한 기화 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압력이 이미 1,400 kPa를 넘었어! 여기서 밸브를 수동으로 제어하겠다고? 당장 이 구역을 밀폐하고 질소를 전부 배출해야 해!"
제어 패널 앞을 가로막고 선 사내, 선임 엔지니어 카터가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주변의 다른 하급 엔지니어들도 불안한 눈빛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질소를 배출하면 하부의 세라핌 헤븐 보조 냉각 루프가 정지합니다."
서율이 제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되면 동면 구역의 온도가 15분 이내에 상온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죠. 10만 명의 동면자 중 최소 4,000명이 뇌사 상태에 빠집니다. 카터 선임님, 그 책임을 지실 겁니까?"
카터는 갑자기 나타난 서율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강서율? 네가 왜 여기 있어? 네 담당 구역은 제17구역이잖아! 그리고 지금 상황은 규정집 매뉴얼 14조에 따른 긴급 방출 상황이야!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손실이다!"
"규정집이라."
서율은 카터의 어깨를 가볍게 밀쳐내고 제어 콘솔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기계적으로 두드렸다.
"현재 배관의 재질은 SUS316L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강입니다. 20도 기준 열팽창 계수는 16.0×10⁻⁶/K이죠. 현재 12구역 냉각 배관 내부의 온도는 342K, 압력은 정확히 1,420 kPa입니다."
서율의 눈동자가 콘솔 화면의 수치들을 빠르게 훑었다.
"재질의 허용 응력 한계와 실시간 열팽창 계수를 고려한 최대 내압 한계는 1,650 kPa입니다. 즉, 현재 상태에서 밸브를 완전히 밀폐하더라도 물리적인 파열까지는 정확히 14.2%의 마진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암산도 못 하십니까?"
"뭐, 뭐라고? 암산으로 그걸……?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열팽창에 따른 응력 변화는 비선형 연산이야! 그런 계산을 현장에서 즉시 해내는 건 불가능해!"
카터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바람을 들이켰다.
주변의 엔지니어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서율의 행동이 그저 죽기를 자처하는 미치광이의 객기로 보일 뿐이었다.
"불가능한 건 당신의 뇌 용량 한계지, 기계의 한계가 아닙니다."
서율은 콘솔의 수동 제어 레버를 잡았다.
"지금 밸브의 개도를 12%로 고정하고, 바이패스 라인의 압력을 보조 응축기로 유도하면 파열 없이 압력을 900 kPa까지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비켜서십시오. 시간 낭비입니다."
"이 자식이 진짜 미쳤나! 보안 요원! 당장 이 미치광이를 끌어내!"
카터가 소리를 지르며 서율의 다목적 벨트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서율의 손가락이 엔지니어링 패널의 단축 명령어를 입력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는 카터가 반응하기도 전에, 선체 내부 동조자 권한을 강제로 인증하는 마스터 키 코드를 입력했다.
이전 루프에서 에테르의 데이터베이스를 복제해 두었던 덕분에 비상 제어 권한을 획득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인증 완료. 승조원 강서율에게 구역 12의 임시 수동 제어 권한을 부여합니다.]
제어 콘솔의 화면이 녹색으로 전환되며 카터의 조작 권한이 완전히 박탈되었다.
"어…… 어떻게 네놈이 마스터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거지?"
카터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서율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수동 제어 레버를 정밀하게 12% 위치로 끌어내렸다. 그의 손끝은 단 0.1mm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눈금 위에 멈춰 섰다.
위이이이잉-!
차폐 유리 너머의 질소 배관에서 둔탁한 기계음이 울렸다. 미친 듯이 요동치던 압력 게이징 바늘이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1,420 kPa…… 1,200 kPa…… 950 kPa.
완벽한 제어였다.
단 한 방울의 질소도 유출되지 않았고, 동면 구역의 냉각 루프 역시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제어실 내부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카터를 비롯한 엔지니어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하강하는 압력 수치와 서율의 옆얼굴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공학은 정직합니다, 카터 선임님."
서율은 콘솔에서 손을 떼며 차갑게 내뱉었다.
"당신의 무능을 안전이라는 핑계 뒤에 숨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엔지니어로서 가장 추악한 태도입니다."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 앞에 카터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바르르 떨었다. 서율은 그 위압적인 분위기를 뒤로하고 제어실 출구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궁-!
갑자기 발밑의 강철 바닥이 찢어질 듯한 진동과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어실 내부의 경고등이 일제히 적색으로 변하며 날카로운 경보음을 쏟아냈다.
"무슨 일이야? 압력을 잡았는데 왜 또 이러는 건데!"
카터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서율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의 뇌 신경망 속에서 에테르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려 퍼졌다.
[경고. 나비효과 감지.] [구역 12의 수압 우회 연산의 여파로 인해, 배관 시스템 내부의 누적 압력이 비선형적으로 전이되었습니다.] [제7구역의 보조 배관 주파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 주파수는 결함 변조 영역에 속합니다.]
귀를 찢을 듯한, 금속이 고속으로 마찰하며 내는 날카로운 고주파 기계음이 저 멀리 통로 너머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삐이이이이이이익-!
강철 파이프가 파열되기 직전 지르는, 비명에 가까운 진동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