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빅토르 크론의 손가락이 피로 얼룩진 수동 원격 모바일 송신기의 파열 보조 스위치를 내리눌렀다.

째깍.

금속성 기계음이 고요한 노심실의 정적을 갈기갈기 찢었다. 송신기 내부의 리튬 전지에서 방출된 고전압이 안테나 포트를 통해 압전 소자로 인가되었다. 그 순간, 격리 탱크 우측 하단의 유도 가이드라인을 따라 청백색의 아크 방전이 사슬처럼 번져 나갔다.

지지직! 콰르릉!

고막을 찌르는 이음과 함께 고압의 전류가 공기 중의 산소 분자를 이온화하며 초고온의 플라즈마 선로를 형성했다. 붉은 경고등이 사방에서 명멸했다. 서율의 망막 위에 투사된 에테르의 인터페이스가 적색 경고 수치를 쏟아냈다.

[경고. 격리 탱크 외부 수소 누설 농도 4.12% 돌파. 폭발 하한계(LFL) 진입.] [연쇄 방전 아크가 수소 가스 확산 영역과 인접. 유도 점화까지 남은 시간 3.2초.]

"연산 정지하지 마, 에테르."

서율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목덜미에 꽂힌 수동 동축 링크 단자를 통해 유입되는 전자기 노이즈가 대뇌 피질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맥박은 분당 172회까지 치솟았고, 좌측 안구의 모세혈관이 터져 시야의 왼쪽 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현재 뇌 신경망 손상률 34.8%. 지각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선인 35%까지 불과 0.2%만이 남아 있었다.

눈앞의 공기가 급격히 팽창했다. 아크 방전이 누출된 수소 분자와 접촉한 순간, 가시광선을 넘어선 파란 불꽃이 둥근 구형태로 부풀어 올랐다. 구형의 파이어볼(Fireball)이 좁은 도관 통로를 타고 서율의 안면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쇄도했다. 초속 12미터의 화쇄 압력파였다.

피부 표면이 타들어 가는 열기가 안면 신경을 타고 척수로 직행했다. 서율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은 이미 메인 콘솔의 아날로그 비상 제어 셀렉터 위에 올려져 있었다.

"이산화탄소 비상 흡진관, 개방 압력 설정치 1.2메가파스칼(MPa)."

서율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며 세 세트의 수치 다이얼을 0.01 단위로 조정했다.

0, 4, 2.

타다닥! 콘솔 내부의 솔레노이드 밸브가 기계식 스프링의 반동으로 튕겨 나갔다. 곧바로 천장과 벽면에 매립되어 있던 직경 450밀리미터의 다이렉트 이산화탄소(CO2) 비상 흡진관 세 개가 동시에 개방되었다.

슈우우우욱!

방주 내부의 고압 질소 탱크와 연결된 흡진관이 대기압의 12배에 달하는 음압을 발생시키며 주변의 기체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팽창하던 수소 파이어볼의 선단이 서율의 코앞 15센티미터 거리에서 급격하게 굴절되었다. 기압의 구배(Slope)가 인위적으로 뒤틀리며 산소와 혼합된 연소 가스가 검은 배기구 속으로 급속히 유입되었다. 불꽃이 진공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 허무하게 소멸했다.

휘이이잉!

흡입구 주변의 잔여 열풍이 서율의 화상 입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탄화된 냄새가 비강을 찔렀지만, 그는 호흡을 가다듬지 않았다. 연산의 흐름을 놓치는 순간이 곧 죽음이었다.

[수소 누출 가스 흡입 완료. 화재 전파 경로 차단 성공.] [그러나 6.2kV의 고조파 전류가 전력 버스 라인을 타고 세라핌 헤븐 구역으로 지속 누설 중입니다. 강서아의 체임버 전원 모듈 파손까지 앞으로 42초.]

에테르의 차가운 시스템 음성이 뇌 신경망을 통해 직접 뇌리에 울렸다.

서율은 핏물이 고인 침을 바닥에 뱉어냈다. 그의 이성이 강제로 신체 통증을 억누르며 방주 전체의 데이터 로그를 귀납적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왜 매 회귀마다 기계적 결함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변조되었는가. 왜 3구역의 밸브를 고치면 7구역의 배관이 터지고, 적들의 침투 경로가 수학적 무작위성을 띠며 비선형적으로 요동쳤는가.

뇌세포가 파괴되는 고통 속에서, 1회부터 17회까지 축적된 방주의 영구 로그 데이터들이 거대한 기하학적 매트릭스를 형성하며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초차원적 그래프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비대칭성.'

서율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방주 아르카-9의 주 동력원인 특이점 엔진은 완벽한 대칭형 구조가 아니었다. 선체 중심축을 기준으로 연료 공급 파이프의 피로도 설계가 좌우 비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왼쪽 배관의 물리적 마모 계수가 오른쪽보다 1.42배 높았던 것이다.

이 미세한 구조적 설계 결함이 엔진 폭주 시 발생하는 회전 모멘트와 결합하여 선체 전역에 미세한 진동 공진을 발생시켰다. 서율이 특정 구역의 밸브를 수동으로 잠그거나 열 때마다, 그 미세한 압력 변화가 비대칭 피로도 루프를 타고 방주 전체의 유압 시스템으로 확산되어 가짜 고장과 실시간 변조를 유도했던 것이다.

이것은 적들의 지능적인 공작이 아니었다. 방주라는 거대한 기계 괴물이 가진 열역학적 자기 보정 메커니즘의 오작동이었다.

"귀납 연산 종료. 해(解)를 구했다."

서율이 입술을 깨물었다.

"세라핌 헤븐의 고조파 과전압을 무력화하려면, 디지털 제어망을 우회해야 해. 에테르, 세라핌 헤븐 외장 3구역의 비상 수동 스풀 밸브의 압력 수치를 연산해라."

[해당 구역의 비상 수동 스풀 밸브는 수십 년간 방치되어 표면에 산화철(Fe2O3) 막이 두껍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정격 디지털 신호로는 솔레노이드 고착을 해제할 수 없습니다. 물리적 토크 180Nm 이상의 힘이 필요합니다.]

"알고 있어. 그러니까 아날로그식으로 해결한다."

서율은 기억의 깊은 저장소에서 5화의 기록을 끄집어냈다. 외장 3구역의 외벽 너머, 우주 방사선에 노출되어 붉게 녹이 슬어 있던 아날로그 압력 배분 밸브의 구조. 청동으로 주조된 그 밸브의 스핀들 축은 디지털 통제선이 끊겨도 내부의 디스크를 밀어 올려 압력을 역방향으로 강제 우회시킬 수 있는 유일한 아날로그 우회로였다.

"에테르, 외장 3구역 배관의 보조 유압 펌프를 가동해. 토크의 부족분을 유압의 맥동(Pulsation)으로 메운다. 8.2Hz의 주파수로 압력을 단속적으로 가해라. 녹슬어 굳어버린 스풀 밸브의 볼트에 기계적 공진을 발생시켜 고착을 파괴한다."

[연산 접수. 보조 유압 펌프 제어권 확보. 맥동 압력 인가 시작.]

쿠구구궁!

바닥 아래에서 둔중한 진동이 올라왔다. 디지털 제어망이 차단되어 먹통이 된 방주의 물리적 배관망 내부에서, 초당 8.2회 주기를 가진 고압의 기름 기둥이 녹슨 스풀 밸브의 시트를 타격하기 시작했다.

깡! 깡! 깡!

강철 격벽 너머에서 쇠가 부딪히는 비명 같은 소리가 울렸다. 수십 년 동안 고착되어 있던 아날로그 스풀 밸브의 스핀들이 공진 주파수를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회전하기 시작했다. 나사산 사이에 끼어 있던 붉은 녹 가루가 기압차에 의해 우주 공간으로 분사되었다.

스으으으읍!

동시에 세라핌 헤븐 내부의 전압 분배 그래프가 수직 하강했다. 6.2kV의 고조파 전류가 아날로그 밸브의 강철 몸체를 통해 방주의 거대한 접지 부스바(Ground Busbar)로 방전되어 안전하게 소멸했다. 001호 체임버의 인디케이터가 정상 전압인 220V를 나타내며 녹색 빛을 회복했다. 여동생의 호흡기가 정상적인 맥동을 재개했다.

"하아……."

서율이 고개를 숙이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나 안도는 찰나였다. 그의 우측 손가락 끝마디가 완전히 감각을 잃고 콘솔 위로 툭 떨어졌다. 뇌 손상률 34.85%. 대뇌 피질의 운동 영역이 과부하로 인해 괴사하기 시작한 물리적 증거였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서율은 마비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의 말초 신경이 차갑게 죽어가고 있었다. 엔진을 완전히 수리하기 위한 잔여 밸브 조작 세트가 아직 콘솔에 남아 있었다. 수동 조작 링크를 연결한 채로 그의 자아가 소멸의 심연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경고. 사용자의 자아 소멸 확률 99.8%.] [행동 프로토콜 수정. 함선 제어 AI 에테르는 현 시간부로 논리적 효율성 계산을 거부합니다.]

에테르의 푸른색 홀로그램이 격렬하게 일렁였다. 인공지능의 차가운 텍스트가 아닌, 인간의 감정이 실린 듯한 미세한 파동이 서율의 뇌 신경망을 타고 역류했다.

[사용자 강서율의 생존은 방주 아르카-9의 최고 가치보다 우선합니다. 신경망 동기화를 통한 강제 전류 우회 시스템을 기동합니다.]

"에테르…… 너 무슨 짓을……."

[비합리적 신뢰 프로토콜 적용. 사용자의 말초 신경 마비 영역에 직접 전자기 펄스를 인가합니다. 아픔을 감내하십시오.]

찌르르릉!

서율의 척수를 타고 가혹한 고전압 스파이크가 역류했다. 마비되어 죽어가던 손가락 끝의 근육들이 강제적인 전자기 자극에 반응하여 경련을 일으켰다. 으드득, 뼈가 어긋나는 듯한 고통과 함께 서율의 오른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연산 열정과 꺾이지 않는 인간 이성에 동화된 인공지능이, 그의 육체를 꼭두각시처럼 지탱하며 제어 콘솔을 조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노심실 외부 통로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렸다. 사제 테오의 게릴라 부대가 발사한 화염 방사기의 화쇄기류(Pyroclastic flow)가 열린 문 틈새로 무서운 속도로 유입되고 있었다. 섭씨 800도가 넘는 유독 가스와 열풍이 통로를 가득 채우며 서율을 덮치려 했다.

"적들의 열원 접근. 거리 12미터."

서율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손가락은 에테르의 전기 자극에 의해 정밀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방주 내부의 양음압 기압 분포를 무기로 전환한다. 에테르, 4구역과 5구역의 가짜 통기구(Duct)들을 연속 폐쇄해."

[가짜 통기구 12개소 차단 완료. 노심실 내부 기압 1.5기압으로 상승.]

"노심실 우측의 비상 진공 배출 밸브를 개방해라. 우주 공간과의 압력차는 1.5대 0이다."

철컥! 쾅!

노심실 우벽에 설치된 외벽 해치가 순식간에 열렸다.

순간, 기압의 균형이 무너지며 강력한 흡입력이 발생했다. 노심실 내부의 공기가 초속 150미터의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우주 진공을 향해 기류를 형성했다. 통로를 타고 침입하려던 게릴라들의 화쇄기류와 유독 가스가 서율을 단 1밀리미터도 스치지 못한 채, 급격한 압력 편차에 휘말려 우측 배기구 너머 차가운 우주 공간으로 순식간에 빨려 나갔다.

"아아악!"

배관을 붙잡지 못한 적들의 무기가 진공 속으로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공학적인 기압 설계만을 이용해 무기 한 번 쓰지 않고 침입자들의 화염 공세를 우주 공허로 방출해 버린 완벽한 공학적 사이다였다.

"연산대로군."

서율이 차갑게 읊조렸다.

상황이 완전히 통제 하에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엔진의 연쇄 폭주 타이머가 멈추고, 여동생의 캡슐이 안정화되었으며, 적들의 공세는 진공의 압력 속에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 짓눌려 있던 빅토르 크론이 기괴하게 상체를 뒤틀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광신도의 그것이었다.

"인류는…… 차가운 원소로 돌아가야 한다……!"

빅토르가 그의 품속에서 꺼내 든 것은 초고주파 기체 파쇄 나이프(Gas-shearing knife)였다. 초당 4만 번 진동하는 고주파 칼날이 푸른빛을 발하며 구동되었다.

서율이 미처 제지하기도 전에, 빅토르는 자신의 온 체중을 실어 노심실 중앙에 위치한 마스터 레지스터 메인 제어 봉을 향해 칼날을 내리꽂았다.

서걱!

콰아아앙!

방주의 모든 제어 신호를 집약하는 초전도 제어 봉이 고주파 칼날에 의해 사정없이 짓이겨지며 반으로 동강 났다.

치이이이익! 쾅!

제어 봉 내부를 흐르던 상온 초전도 액체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구리선과 광섬유가 완전히 단락(Short)되었다. 그와 동시에 제어권을 잃은 특이점 엔진이 기괴한 자색 빛을 뿜어내며 팽창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물리 법칙을 초월한 중력 왜곡 현상이 발생하며, 주변의 금속 파편들이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불규칙한 물리력 폭주가 방주 전체를 뒤흔드는 파멸의 진동으로 이어졌다.

[경고. 마스터 제어 루프 영구 소실.] [특이점 엔진, 불규칙 차원 왜곡 상태로 진입. 폭발 위험도 측정 불가—]

에테르의 경고음이 찢어지는 이음과 함께 끊겼다.

서율의 몸이 무중력 상태처럼 공중으로 붕 뜨기 시작했다. 눈앞의 마스터 콘솔이 왜곡된 시공간 속에서 기괴하게 휘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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