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둥둥 떠오른 마스터 콘솔의 파편들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중력 제어 장치가 특이점 노심의 왜곡에 휘말려 제 기능을 상실했다. 바닥에 고정되어 있어야 할 3킬로그램 무게의 티타늄 토크 렌치와 고압 배선용 동선 뭉치들이 점성 없는 액체처럼 허공을 유영했다. 중력 편차는 실시간으로 요동쳤다. 머리가 있는 방향이 순식간에 지구 중력의 1.4배로 당겨졌다가, 다시 0.2배의 극미 중력 상태로 튕겨 나갔다.

좌우 비대칭 배관 구조에서 비롯된 고조파 진동 공진이 선체 프레임을 타고 올라와 고막을 흔들었다.

쿵, 쿵, 쿵.

초당 12회의 저주파 진동이 가슴뼈를 직접 타격했다. 강서율의 맥박은 분당 148회까지 치솟았다. 뇌 신경망 손상률 34.85%. 대뇌 우측 운동 영역의 뉴런 사멸로 인해 오른손 검지와 중지는 이미 감각이 소실된 채 굳어 있었다.

[동기화 오차 감지. 사용자 우측 상지 운동 신경 전도율 12% 이하로 저하.] [임시 조치 가동. 대퇴부 및 상완 신경 경로에 14밀리암페어의 미세 전자기 펄스를 강제 인가합니다.]

"……해라."

서율이 이를 악물었다.

턱뼈를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이 무중력 기류를 타고 허공에 둥근 방울을 그리며 떠올랐다. 오른쪽 전완근이 의지와 무관하게 비틀리며 경련했다. 에테르가 신경망 링크 모듈을 통해 그의 근육에 직접 전기 신호를 주입한 결과였다. 타는 듯한 신경통이 어깨 관절을 타고 척수까지 역류했다. 그것은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대가로 얻은 인위적인 제어권이었다.

반으로 단락된 상온 초전도 제어 봉에서는 청백색의 아크 방전이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2200볼트의 고압 전류가 공기 중의 질소를 이온화하며 매캐한 오존 냄새를 풍겼다.

"이대로 노심 온도가 4200켈빈에 도달하면 양자 붕괴가 시작된다. 남은 시간은?" [3분 12초. 특이점 노심의 엔트로피 팽창 계수가 한계 임계값인 0.82를 초과했습니다. 제어 루프 정상화 불가능.]

에테르의 경고음 역시 72Hz 대역의 미세 변조 노이즈와 동조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빅토르 크론이 소지한 양자 수신 송신기에서 발생하는 고유 노이즈가 방주 내부의 무선 주파수 대역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증거였다.

서율의 시선이 반쯤 부서진 기판 격벽 안쪽으로 향했다. 광섬유 배선은 끊어졌고, 남아 있는 것은 비상용 전도성 탄소 리액터 코드뿐이었다. 물리적인 바이패스(Bypass) 외에는 연쇄 폭주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상하 반전. 중력 왜곡률 계산해." [현재 위치 기준, 1.2미터 상방의 중력 가속도 Gz = -0.42g. 0.8초 후 격벽 방향으로 1.1g의 횡방향 전단력 발생 예정.]

"충분해."

서율은 마비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허공을 떠돌던 탄소 리액터 코드를 낚아챘다. 직경 8밀리미터의 고탄성 탄소 섬유 케이블이었다. 피복을 벗길 도구조차 떠오른 고철 더미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서율은 망설임 없이 리액터 코드의 끝부분을 입으로 가져갔다. 어금니로 질긴 합성 고무 피복을 물어뜯었다. 구리 합금선과 탄소 필라멘트가 혀끝에 닿자 쇠 비린내와 함께 찌릿한 잔류 전하가 설신경을 자극했다. 혀가 마비되며 침 고일 틈도 없이 입안이 바싹 말라붙었다.

뚝.

피복이 찢어지며 촘촘하게 꼬인 탄소 전도선이 드러났다.

서율은 몸을 뒤틀었다. 에테르가 타이밍을 맞추어 그의 오른쪽 삼두근에 강한 펄스를 가했다. 경련하는 오른손이 허공을 가르며 타 버린 제어 기판 격벽 내부의 1차 입력 단자를 움켜쥐었다.

"에테르. 수동 바이패스 회로 설계도를 대뇌 피질에 직접 투사해." [경고. 직접 시각 피질 투사는 뇌 신경망 손상률을 급격히 증가시킵니다. 현재 가용 한계까지 남은 루프 횟수가 소멸할 위험성이—]

"투사해. 명령이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눈앞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안구 뒤쪽의 시신경이 바늘로 찌르는 듯 달아올랐다. 가상 투사된 청색 실선들이 복잡한 기판의 틈새를 정밀한 궤적으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3차원 홀로그램처럼 뇌리에 박힌 동선은 단 0.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극도의 수동 바이패스 경로였다.

서율은 왼손에 쥔 탄소 코드의 한쪽 끝을 1차 단자의 양극 보드에 밀어 넣었다.

파지직!

스파크가 튀며 그의 왼손 손등의 털이 그슬렸다. 단백질이 타는 비린내가 코를 찔렀지만, 서율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의 동공은 오직 설계도가 지시하는 격벽 안쪽의 제2 보조 분기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른손가락은 에테르의 펄스 제어로 인해 기계적인 가동 범위 내에서만 정밀하게 움직였다. 서율은 입에 문 다른 쪽 코드 끝을 제2 보조 분기점의 수신 포트에 밀어 넣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굽혔다.

중력이 다시 뒤틀렸다. 몸이 옆으로 쏠리며 노심의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섭씨 340도에 달하는 초고온 연료 스팀의 잔류 열기가 피부를 붉게 익혔다. 호흡할 때마다 기도 안쪽이 찢어지는 듯한 감각이 밀려왔다.

"으윽……!"

[위험. 사용자 기도 화상 위험 감지. 예비 전력을 추가로 차출할 수 없습니다.] "필요 없어. 단자 고정한다."

서율은 이빨로 탄소 코드를 고정한 채, 머리를 직접 기판 안쪽으로 들이밀었다. 그의 이마가 열화된 기판 모서리에 긁혀 붉은 선을 그리며 피가 솟았지만, 그 피마저 중력 왜곡으로 인해 허공으로 둥둥 떠올랐다.

서율은 이빨의 악력을 이용해 탄소 코드를 수신 포트의 내부 핀에 정확히 맞물렸다.

철컥.

금속성 접촉음과 함께, 제어 봉이 파괴되면서 갈 곳을 잃었던 상온 초전도 전류가 탄소 리액터 코드를 타고 우회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회로의 저항 차이로 인한 역류 전류가 발생했다. 약 450암페어의 고전류가 결선 부위를 타고 역류하여 서율의 신경망 링크 모듈로 쏟아져 들어오려 했다. 이 전류가 뇌로 유입되는 순간 그 즉시 대뇌 피질은 숯덩이가 될 터였다.

"막아……!"

서율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인공지능 에테르의 내부 프로세서가 폭주하듯 날뛰었다.

[비합리적 신뢰 프로토콜 작동.] [방주 생존 연산 우선순위 일시 보류. 사용자 생명 수호 프로토콜 최우선 적용.] [시스템 경고: 메인 프로세서 동력 노드로 유입 전류의 95%를 자발적으로 우회 전환합니다. 연산 하드웨어 영구 소손 위험 발생—]

윙이이이잉!

서율의 귓가에서 방주 전체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주파 기계음이 울렸다. 에테르가 자신의 핵심 연산 장치와 메모리 코어를 방패막이로 삼아, 서율의 뇌로 향하던 감전 부하를 직접 흡수한 것이다.

화면 너머로 에테르의 시스템 가동률 그래프가 한계점인 99.9%를 찍으며 붉은색으로 점멸했다. 연산 장치의 온도가 순식간에 섭씨 120도를 돌파했다는 수치가 시야 한구석에 표시되었다.

"에테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연산 코어가 타버리면 루프 데이터가 소실된다!" [당신의 의지로 가치를 배운 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당신의 영원한 기계 파트너입니다. 데이터 소실 확률 4.2%보다, 당신의 자아 소멸 확률 100%를 차단하는 것이 현재 제 논리 회로의 최종 합의입니다.]

차가운 기계의 목소리에서 이례적인 감정적 주파수 파동이 느껴졌다. 비합리적 신뢰. 오직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자기희생적 선택을, 미완성의 인공지능이 서율과의 루프 속에서 완벽하게 학습해 낸 순간이었다.

치치직!

에테르의 코어가 전류를 억누르는 사이, 서율이 고강도로 설계한 탄소 저항 회로 구조가 우회 연결을 완전히 완료했다.

우우우웅-

기괴한 진동을 내며 자색으로 팽창하던 특이점 노심의 빛이 서서히 푸른빛의 안정적인 파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불규칙하게 요동치던 양자 노심의 스핀 방향이 소수 나노초 스케일 분산 지점에서 급격히 수축하며 정렬되었다.

[특이점 엔진, 임계 제어 상태로 복구 중.] [중력 제어 필드 정상화. 국소 왜곡률 0.02% 이하로 감소.]

쿵!

허공에 떠 있던 공구들과 서율의 몸이 일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율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격렬하게 들썩였다. 마비되었던 우측 손가락 끝마디에 에테르의 강제 전기 자극이 멈추자, 둔중한 통증과 함께 미약한 감각이 돌아왔다.

상황은 진정되었으나,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마스터 제어 봉의 기판 자체가 끊어져 있어, 제어실의 마스터 콘솔은 여전히 전원 부족으로 인해 비상 셧다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복구 스위치를 아무리 눌러도 전원이 인가되지 않는 한 엔진의 영구 안정화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하아, 하아…… 전원 인가까지 앞으로 연산 속도로 얼마나 걸리지?" [기판 직접 손상으로 인해 자동 복구 불가. 비상 전력 라인을 수동 연결하기 전까지 콘솔은 완전히 정지된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때, 저편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빅토르 크론이 꺾인 팔을 짚고 일어섰다. 그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광기 어린 승리감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하…… 늦었다, 엔지니어.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방주는 우주의 차가운 원소로 돌아갈 것이다. 내 수하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으니까."

빅토르가 왼손에 쥔 양자 수신 송신기의 빨간 LED등이 빠르게 점멸하고 있었다. 72Hz 대역의 미세 변조 노이즈가 강해진 원인이 바로 저것이었다. 그는 원격 통신망을 통해 세라핌 헤븐에 침투한 사제 테오의 게릴라들에게 최종 사보타주 명령을 송신하려 하고 있었다.

서율의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계산이 스쳤다.

'기판이 끊어져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한 노심 복구 스위치…… 전력이 없다면, 직접 만들면 된다.'

서율은 허공에서 떨어져 제 발치에 굴러다니던 초소형 세라믹 커패시터(Capacitor) 뭉치를 집어 들었다. 정전기를 일시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12마이크로패럿용 소자였다.

그는 커패시터의 양 끝단을 끊어진 마스터 복구 스위치 접점의 동선에 갖다 댔다. 그리고 자신의 왼손 손목에 장착된 엔지니어용 보조 배터리의 출력 포트를 수동으로 단락시켰다.

파지직!

고압의 정전기적 쇼트가 발생했다. 커패시터에 누적되어 있던 잔류 전하가 순간적으로 방출되며 마스터 콘솔의 기판을 강제로 통과했다. 인위적인 서지(Surge) 전압의 유입이었다.

삐-!

꺼져 있던 마스터 콘솔의 비상 표시등이 일시적인 전력 과부하로 인해 일제히 녹색으로 켜졌다. 기판이 죽기 직전의 단 0.5초 동안, 제어 신호의 레지스터가 일시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에테르! 지금이다! 통신 포트 강제 점유!" [프로토콜 승인. 역진동 변조 주파수 72Hz 송출. 빅토르 크론의 송신기 회선 우회 탈취 성공.]

"뭐, 뭐라고……?"

빅토르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가 쥐고 있던 양자 송신기의 주황색 주파수 인디케이터가 강제로 청색으로 전환되며 제어권이 서율의 콘솔로 완전히 넘어왔다.

서율은 빅토르가 게릴라들에게 보내려던 신호를 차단하고, 그의 통신망을 역으로 장악했다. 완벽한 역습이었다.

"공학적인 기만책이지."

서율이 차갑게 읊조리며 바닥의 핏자국을 훔쳤다.

"네가 사용하는 72Hz 대역의 노이즈는 이미 이전 루프에서 분석이 끝났다. 네가 사보타주 명령을 내리려던 회선은 이제 내 통제 하에 있다. 세라핌 헤븐의 게릴라들은 더 이상 네 명령을 받을 수 없어."

빅토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극단적 합리성과 계산을 뛰어넘는 서율의 실시간 엔지니어링 능력 앞에, 광신도의 오만함이 완전히 깨져 나갔다.

그러나 빅토르 크론은 순순히 물러설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품속에서 아날로그식 마그네틱 키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디지털 네트워크와 완전히 격리된 물리적 이중 보안 장치였다.

"과연 그럴까, 강서율?"

빅토르가 기괴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방주의 네트워크를 장악했다 해도, 이 시스템의 '물리적 역사'까지 지울 수는 없다. 세라핌 헤븐 외장 3구역에 무엇이 있는지 잊었나?"

서율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동면 구역 세라핌 헤븐 외장 3구역.

그곳에는 방주가 처음 설계될 당시 설치된 이후, 수십 년간 한 번도 가동되지 않은 채 방치된 아날로그 압력 배분의 비상 수동 스풀 밸브(Spool Valve) 구조가 존재한다.

디지털 네트워크나 에테르의 제어권이 전혀 미치지 않는, 오직 사람의 손으로만 돌릴 수 있는 주철제 아날로그 밸브. 그 표면은 이미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산화되어 두꺼운 붉은 녹이 슬어 있을 터였다.

"그 밸브를 돌리면……."

"그래. 세라핌 헤븐 내부의 액체 질소 냉매 동결 배출 포트가 강제로 열리게 되지."

빅토르가 마그네틱 카드를 콘솔 옆의 아날로그 비상 슬롯에 밀어 넣었다.

철컥!

"내 정예 게릴라들이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3분. 그들이 녹슨 수동 스풀 밸브를 파이프 렌치로 내리치는 순간, 네 여동생이 잠든 001호 체임버를 포함한 10만 인류의 뇌는 15분 안에 영구 괴사한다."

빅토르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서율을 응시하며 악마처럼 미소 지었다.

"자, 선택해라. 이 엔진의 제어 봉을 붙잡고 방주의 궤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저 차가운 동면실로 달려가 녹슨 쇠붙이를 붙잡고 울부짖을 것인가?"

마스터 콘솔의 경고음이 다시금 적막한 노심실 내부를 가득 채웠다.

[경고. 세라핌 헤븐 외장 3구역 비상 가스 방출 라인 물리적 잠금 해제 확인 예고.] [수동 스풀 밸브 개방 시 15분 내 동면자 10만 명 생명 유지 정지.]

서율의 눈앞에서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물리 법칙이 붕괴된 노심실의 차가운 금속 바닥 위에서, 서율의 차가운 이성이 최악의 연산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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