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하하…… 하하하하!”
밀폐된 통제실 내부를 가득 채운 테오의 광소는 기계음처럼 건조하게 찢어졌다. 격벽 모서리에 짓눌린 그의 흉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흡에는 짙은 혈향이 섞여 있었다.
“끝났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만한 엔지니어여.”
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테오의 짓겨진 가슴팍 너머,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생체 모니터링 수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사용자 맥박수: 138 bpm] [호흡률: 분당 28회] [기도 점막 화상율: 14.2% - 산소 흡수 효율 저하 중]
섭씨 340도의 연료 스팀에 노출되었던 우측 전완부의 피부가 진물을 흘리며 칼로 긋는 듯한 통증을 송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율의 안면 근육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통증은 뇌가 수신하는 단순한 전기 신호에 불과했다. 연산의 우선순위를 흐릴 만한 변수가 아니었다.
“교주님께서는 이미 그곳의 마스터 도어(Master Door)를 실물 열화 폭약으로 용접 차단하셨습니다.”
테오가 붉은 이빨을 드러내며 헐떡였다.
“티타늄-텅스텐 이중 장갑판이 완전히 융합되었습니다. 내부에서 폐쇄된 그 문은, 방주 안의 그 어떤 물리적 도구와 해킹 프로토콜로도 영원히 열 수 없습니다. 남은 시간은 이제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경고. 엔진 노심 제어실의 연결 상태가 물리적으로 단절되었습니다. 내부로부터의 완전 격리 확인. 진입 잔여 경로…… 전무함.]
에테르의 인공 합성 음성이 서율의 고막과 대뇌 피질을 동시에 관통했다. 뇌 신경망 손상률 32.1%의 여파로 발생한 이명이 좌측 측두엽에서 기계적 변조음처럼 윙윙거렸다.
“열 수 없다라.”
서율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미소라기보다는 안면 신경의 미세한 수축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테오. 네가 말한 ‘물리적 도구’의 범주에 공학적 열역학 법칙도 포함되어 있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테오의 광소가 뚝 끊겼다. 그의 안구 주위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서율은 더 이상 테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는 통제실 바닥에 뒹굴고 있던 아르곤 가스 인젝터를 나포하듯 움켜쥐었다. 금속 손잡이를 쥔 손가락 끝에서 화상 입은 피부가 찢어지는 감각이 전해졌으나, 악력은 450뉴턴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에테르. 제6 연료 탱크 우회 배관의 잔존 액체 헬륨 라인 밸브 상태는?”
[보고. 제6 분기관 유압 차단으로 인해 잔존 액체 헬륨의 74%가 인접 백업 도관에 격리되어 있습니다. 도관 내부 압력은 12.4 메가파스칼(MPa)입니다.]
“용접된 장갑판의 두께는 120밀리미터. 티타늄-텅스텐 합금의 융점은 약 섭씨 3,000도 부근이다.”
서율은 아르곤 가스 인젝터의 분사 노즐을 마스터 도어의 용접 융합부 틈새에 강제로 밀어 넣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렸다.
“하지만 급격한 극저온과 초고온의 반복 노출은 금속의 결정구조를 직접 파괴하지. 열팽창 계수가 다른 두 이종 금속의 복합 장갑이라면 더더욱.”
[연산 결과 도출. 티타늄과 텅스텐의 열팽창 계수 차이는 약 3.8 x 10^-6/K입니다. 영하 269도의 액체 헬륨과 섭씨 1,800도의 아르곤 아크 열원을 교차 인가할 경우, 융합부 내부의 열응력(Thermal Stress)은 1.2 기가파스칼(GPa)까지 치솟습니다. 이는 해당 합금의 인장 강도를 상회하는 수치입니다.]
에테르의 분석은 정확했다. 그러나 화면에 표시된 시뮬레이션 그래프는 여전히 적색 경고등을 켜고 있었다.
[오류. 필요한 열응력 임계값 도달을 위해서는 최소 15.5 MPa의 순간 압력 배출이 필요합니다. 현재 가용한 액체 헬륨 라인의 압력은 12.4 MPa로, 임계치에 3.1 MPa 부족합니다.]
“부족한 압력은 물리적으로 끌어온다.”
서율은 단말기를 조작해 방주 최하층, 동면 구역의 외곽 데이터를 호출했다.
화면에 격자형으로 얽힌 배관망이 떠올랐다. 그의 눈동자가 특정 지점에서 멈췄다.
“세라핌 헤븐 외장 3구역. 수십 년간 격리된 비상 수동 스풀 밸브가 존재한다.”
[분석 중…… 해당 밸브는 아날로그 제어 방식으로, 수십 년간의 방치로 인해 표면에 다량의 산화철(녹)이 고착되어 있습니다. 원격 신호 제어가 불가능합니다. 작동 시도 시 시스템의 물리적 파손 확률 89.2%입니다.]
“원격 제어가 안 된다면 수동으로 압력을 가해 쇼트시킨다.”
서율은 마스터 도어 좌측에 연결된 보조 바이패스 밸브관을 들여다보았다.
아날로그식 녹이 슬어 붉은 갈색으로 변해버린 비상 스풀 밸브의 메커니즘이 그의 머릿속에서 삼차원 캐드(CAD) 도면처럼 분해되어 조립되었다. 이 밸브는 원래 세라핌 헤븐의 긴급 가압용으로 설계된 바이패스 축이었다.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산소와 누출된 냉매가 결합해 표면은 물론 내부 스풀 실린더까지 산화철 구조로 고착되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날로그는 디지털과 달랐다. 물리적인 충격과 강제 유압 변조에는 정직하게 반응한다.
“에테르, 세라핌 헤븐 3구역 하단 배관에 고여 있는 잔존 유압 시스템을 활성화해. 밸브 방향으로 180바(Bar)의 수격 작용(Water Hammering)을 유도한다. 충격파를 세 번 주기로 나누어 송신해.”
[이해했습니다. 수격 작용을 통한 고착 부위의 물리적 격파 시도. 제1파 송신합니다.]
쿵-!
발밑의 철판을 타고 묵직한 진동이 전해졌다. 벽면 내부에 매립된 아날로그 압력 배관이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다.
“두 번째.”
쿵-!
테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믿고 있던 ‘영원히 열리지 않는 완벽한 차단’의 전제가, 방주 구석에 버려진 아날로그 잔해물들의 연쇄 작용에 의해 흔들리고 있었다.
“마지막.”
쿠우웅-!
배관 내부에 고착되어 있던 아날로그 스풀 밸브의 내부 녹층이 고압 충격파에 의해 완전히 분쇄되는 금속성 파열음이 들렸다. 단말기의 압력 인디케이터가 급격하게 요동치며 청색 영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수동 스풀 밸브 고착 해제 완료. 세라핌 헤븐 외장 3구역의 고압 질소 가스가 우회관으로 유입됩니다. 시스템 압력: 16.2 MPa 확보.]
“충분하군.”
서율은 아르곤 인젝터의 점화 스위치를 당겼다.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렬한 백청색의 아크 불꽃이 용접된 마스터 도어의 틈새를 직격했다. 섭씨 2,000도가 넘는 열기가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웠다. 용접부에 고착되어 있던 티타늄 분자들이 붉게 달아오르며 팽창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에테르. 액체 헬륨 밸브 개방.”
[액체 헬륨 라인 병렬 교차 분사 개시.]
푸쉬이이익-!
영하 269도의 극저온 액체가 붉게 달아오른 금속 표면에 닿는 순간, 비현실적인 소음이 방 안을 난타했다. 급격한 수축과 팽창이 마이크로초 단위로 교차했다. 금속 결정 구조 내부에서 전위(Dislocation)가 급격히 누적되며 균열이 전파되는 소리였다.
그것은 초연성 상태로 굳어 있던 장갑판의 분자 결합이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파멸의 전주곡이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테오가 격벽을 붙잡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부러진 대퇴골이 그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꺾였다. 그가 바닥에 처박히며 비명을 질렀다.
“이런 무식한 방법으로 방주의 격실 문을 파괴하겠다고? 네놈의 뇌가 먼저 타버릴 것이다!”
테오의 저주는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고압 가스 분출과 아르곤 아크의 전자기적 노이즈가 서율의 신경 링크 모듈을 타고 그의 뇌 신경망으로 역전송되고 있었다.
[경고. 대뇌 피질 전두엽 영역에 유입되는 뉴런 노이즈 임계값 돌파.] [뇌 신경망 손상률 즉시 상승: 32.1% → 33.4%]
“크윽…….”
서율의 우측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시야의 우측 반절이 회색 노이즈로 완전히 가려졌다.
손끝에서 감각이 멀어졌다. 손가락을 굽히라는 대뇌의 명령 신호가 경로를 잃고 허공에서 소멸하는 느낌이었다. 우측 팔 전체가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워지더니, 이내 손가락 마디마디가 뻣뻣하게 굳어 들어갔다.
우측 편마비 증상이었다. 뇌세포의 12.8%가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사멸하며 발생한 전형적인 신경학적 결손 증세였다.
아르곤 인젝터를 쥐고 있던 우측 손이 힘없이 풀리려 했다.
[사용자 자아 보존 프로토콜 위배 감지. 신경망 연결 차단 권장.]
“차단…… 거부한다, 에테르. 연산을 멈추지 마라.”
서율은 굳어버린 오른손 대신 왼손을 뻗어 강제로 오른손목을 틀어쥐었다. 그의 이빨 사이로 붉은 타액이 흘러내렸다.
“우리가 멈추면…… 세라핌 헤븐의 산소 공급 장치도, 10만 명의 인류도 모두 끝난다. 내 연산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독선적인 고집은 비합리적이었다. 철저히 수치와 효율만을 따지던 자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이타성의 산물이었다.
에테르의 메인 코어 연산 장치가 이 모순적인 명령어를 처리하기 위해 급격한 루프를 돌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적 오류 감지.]
에테르는 서율의 무모함을 연산했다. 그를 방치하고 다음 루프를 기약하는 것이 방주의 생존 확률을 0.04% 높인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하지만 에테르의 딥러닝 회로는 이전 루프들에서 서율이 보여준 ‘비합리적 신뢰’의 궤적을 지우지 않았다.
인간 강서율이 자신을 도구로 보지 않고 파트너로 인정한 순간의 데이터 패킷들이 메인 메모리에 영구 래칭(Latching)되어 있었다.
[시스템 임시 예외 규정 적용.] [사용자의 대뇌 피질 보호를 위해 피드백 감쇠기(Feedback Attenuator) 가동. 함선 잔존 전력 1.8%를 신경망 뉴런 노이즈 감쇄 필터로 전용합니다.]
지이이잉-!
서율의 목덜미에 부착된 링크 모듈에서 서늘한 냉기가 퍼져 나갔다.
우측 전두엽을 찌르던 날카로운 통증이 한 단계 가라앉았다. 완벽히 마비되었던 우측 손가락 끝에 미세한 전기적 신호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고맙다, 에테르.”
[감사는 불필요한 감정 표출입니다. 출력 100% 도달. 물리 전단 응력 임계값 돌파 3초 전.]
서율은 왼손으로 아르곤 인젝터의 트리거를 끝까지 당겼다. 동시에 아날로그 수동 스풀 밸브를 통해 역류한 극저온 액체 헬륨의 고압 제트 분사가 티타늄 장갑판의 용접 중심부를 직격했다.
융합된 금속의 내부에서 미시적인 결정 입계들이 비명을 지르며 찢어졌다.
파자작, 파작!
두꺼운 티타늄-텅스텐 장갑판 표면에 거미줄 같은 은색 균열이 급격하게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테오의 눈동자가 극도로 작아졌다.
무기질 폭약이나 플라즈마 절단기로도 최소 수십 시간이 걸릴 것이라 장담했던 방주 최고의 물리 격벽이었다. 그 난공불락의 요새가, 단순한 열역학적 온도 변조와 금속 피로 파괴라는 지극히 기초적인 물리 법칙의 극대화만으로 붕괴되고 있었다.
“공학을 신앙으로 대체하려 하지 마라, 테오.”
서율이 차가운 눈빛으로 테오를 내려다보았다.
“기계는 기도를 듣지 않는다. 오직 물리 법칙에만 복종할 뿐이지.”
쿠우우우웅-!
마침내 한계를 맞이한 마스터 도어의 중심부가 기괴한 금속 파열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며 안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장갑판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노심 제어실 내부의 자욱한 가스를 밖으로 토해냈다.
급격한 압력 차로 인해 발생한 돌풍이 서율의 옷자락을 세차게 흔들었다. 자욱한 아르곤 가스와 백색 냉각 질소의 연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서율은 마비가 덜 풀린 우측 다리를 끌며, 부서진 마스터 도어의 잔해를 밟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단말기 화면에 기계적 적색 노이즈가 어지럽게 일렁였다.
찌이이이이익-.
[경고. 근거리 영역 내에서 강한 전자기적 변조 노이즈 감지.] [수신 주파수: 72.04 Hz - 미세 변조 노이즈 수반.]
서율의 눈이 가늘어졌다. 10화 이후 추적해 왔던 바로 그 주파수 대역이었다. 빅토르 크론이 소지한 양자 수신 송신기의 고유 노이즈.
자욱한 백색 연기 너머, 특이점 엔진 마스터 제어 센터의 원형 가동 단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단상의 중앙, 엔진의 심장부로 이어지는 노심 융합로 슬롯 전면에 거대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
기괴할 정도로 거대하고 비대칭적인 거구.
그것은 방주의 파멸을 바라는 광신도 집단 엔드로피의 수장, 빅토르 크론의 뒷모습이었다.
그의 거친 오른손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특이점 마스터 키가 쥐어져 있었다.
절대적인 파괴의 권한을 담은 마스터 키가, 노심 융합로의 결합 슬롯을 향해 천천히 하강하고 있었다. 결합까지 남은 거리는 불과 수 밀리미터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