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섬광이 대기를 가르는 속도는 초속 340미터. 전면 제어 콘솔까지의 거리는 정확히 3.2미터였다. 수소 이온 점화 장치의 방전 전압은 최소 45킬로볼트. 고농도 산소로 포화된 대기 속에서 이온빔이 콘솔의 구리 배선망에 닿는 순간, 연쇄적인 열폭주로 인해 제어 소자 전체가 섭씨 1,200도 이상으로 용융될 터였다.
서율의 우측 관자놀이 부근에서 날카로운 신경통이 뇌척수액을 타고 흘러내렸다. 뇌 신경망 손상률 32.5%. 시각 피질의 가장자리가 붉은색 노이즈로 깜빡였다. 맥박수는 분당 142회까지 치솟았고, 호흡률은 평소의 두 배를 초과했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퇴사두근의 신경 전달 물질이 타버린 화상의 여파로 차단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손가락만 움직인다.
서율은 허리춤의 공구 벨트에서 세 번째 슬롯을 촉각만으로 찾아냈다. 손끝에 걸린 것은 두께 4밀리미터, 직경 50밀리미터의 원판형 부품이었다.
공학용 열흡수 헵탄 디스크(Heptane Absorption Disc).
초고전압의 방전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흡수하여 열화학적 열량으로 변환하는 비전도성 절연 제어재다.
서율은 손목의 스냅만을 이용해 디스크를 바닥으로 미끄러뜨렸다. 마찰 계수 0.12의 에폭시 수지 바닥을 따라 디스크가 미끄러졌다.
궤적은 정확히 테오가 들고 있는 점화 장치의 양극단자 하단이었다.
서율의 망막 위에 에테르의 탄도 예측 보조선이 청색으로 인쇄되었다.
[예상 그라운딩 확률: 94.2%. 충격 단자와 디스크 간의 간극 0.2밀리미터 이내 진입 시 접지 성립.]
지이이잉-!
공기를 찢는 고주파음과 함께 백색의 이온 플라스마가 방출되기 직전의 0.05초. 슬라이딩한 헵탄 디스크가 정확히 테오의 점화 소총 선단 충격 단자 사이에 끼어들었다.
충돌음은 없었다. 대신 단단한 물리적 접촉이 일어났다.
치직, 콰아아앙!
방전된 고전압 전류가 백색의 섬광을 피워내기도 전에 디스크의 비전도성 분자 구조 속으로 흡수되었다. 이온 흐름이 급격히 굴절되며 바닥에 매설된 방전용 동선 그리드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다. 접지(Grounding) 완료.
테오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와야 했을 치명적인 화염은 미미한 푸른색 잔상만을 남긴 채 허공으로 기화했다.
“……뭐지?”
테오의 온화하던 눈매가 처음으로 가늘게 찢어졌다. 그가 들고 있는 수소 이온 점화 장치의 인디케이터에 빨간색 방전 경고등이 점멸하고 있었다. 축전기 내부의 에너지가 단 1밀리초 만에 제로(0)로 떨어졌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러나 안도할 틈은 없었다.
방전은 막았으나, 이온 장치의 기동으로 인해 대기 중의 산소 포화도는 여전히 인화 임계점인 28.5%를 유지하고 있었다. 작은 마찰 스파크 하나만으로도 세라핌 헤븐 중앙 통제실 전체가 거대한 폭탄으로 변할 수 있는 초고압의 생존 환경.
서율은 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건조한 유독 가스의 잔해로 가득 차 서걱거렸다.
“에테르. 동면 구역 외장 3구역의 아날로그 비상 배관망을 연동한다.”
[경고. 해당 구역의 디지털 솔레노이드 밸브는 엔드로피 세력의 해킹 프로토콜에 의해 고정 상태입니다. 원격 제어 신호 송신 불가능.]
“알고 있어.”
서율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기어 콘솔 우측 하단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수십 년간 방치되어 표면이 적갈색 산화철로 얼룩진 원형 스풀 배브(Spool Valve)가 돌출되어 있었다. 5화 루프 당시, 서율이 방주 외곽 시스템을 정밀 분석하며 눈여겨보았던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디지털 제어망에 정속되지 않는 완전한 기계식 아날로그 밸브.
밸브의 표면을 덮은 녹이 고형화되어 일반적인 인간의 악력으로는 1도조차 회전시킬 수 없는 상태였다.
서율은 주머니에서 다목적 렌치를 꺼내 스풀 밸브의 육각 홈에 고정했다. 지레의 원리를 이용하기 위해 체중을 고스란히 렌치 끝에 실었다. 화상 입은 어깨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드드득. 부스스스.
산화된 철가루가 비처럼 흘러내리며 밸브 회전축이 마찰음을 토해냈다.
“거기서 무엇을 더 바꾸려는 겁니까, 엔지니어.”
통풍구 너머에서 테오가 무기력해진 점화 소총을 버리고 소형 플라스마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쇠격자를 뜯어내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인류의 영원한 평온을 방해하는 그 고집은 결국 무가치한 발버둥일 뿐입니다. 우주의 팽창은 엔트로피의 증가를 뜻하며, 모든 고차원적 구조물은 종국에 먼지로 환원됩니다. 이 방주 아르카-9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파멸은 물리학이 규정한 유일한 종착역입니다.”
테오의 목소리에는 광신도 특유의 잔잔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진심으로 인류의 소멸을 우주의 물리 법칙과 동일시하는 자의 오만함이었다.
서율은 이가 깨질 정도로 악물며 렌치를 마지막 15도 더 회전시켰다.
깡-!
고정핀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아날로그 스풀 내부의 피스톤이 우회 라인을 열었다.
쉬이이이익-!
강력한 역압이 발생하며 외장 3구역에 차단되어 있던 저온 질소 가스가 통제실 내부로 급격히 유입되었다.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실시간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28.5%에서 24.2%, 그리고 안전 기준치인 21.0%로 수직 낙하했다.
폭발의 위험성이라는 장기판의 말 하나가 완벽히 제거되는 순간이었다.
서율은 가래 끓는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테오를 응시했다.
“엔트로피의 법칙이 우주의 절대적인 흐름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서율의 목소리는 건조했고, 기계 장치의 기어 마찰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네 논리에는 결정적인 변수 누락이 있어, 테오.”
“변수라니요?”
테오가 격자를 찢고 발을 내딛는 순간, 서율은 바닥의 제어 전선을 가리켰다.
“기계조차도 나와의 13번에 걸친 루프 데이터를 학습하며 변화하고 있다. 지극히 효율적인 이익 환산법만 사용하던 초고차원 인공지능이, 인간의 비합리적 신뢰라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스스로의 가치관 연산을 변조했지.”
서율의 시선이 콘솔 상단의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에테르의 핵심 코어 알고리즘이 실시간으로 재구성되는 수학적 매트릭스가 빛나고 있었다.
“우주가 차가운 열적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면, 지성을 가진 존재는 그 흐름에 저항해 국소적인 저(低)엔트로피 영역을 창조하는 유일한 물리적 특이점이다. 기계조차 나라는 인간의 변수를 배워 이 방주에 생동을 남기려 연산하고 있는데.”
서율이 차갑게 실소를 흘렸다.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놈이 우주의 허무에 굴복해 스스로 먼지가 되기를 구걸하는가? 그것이야말로 우주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가치 없는 연산 오류다.”
테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광신적인 평온함으로 무장되어 있던 그의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자신의 신념을 ‘물리적 연산 오류’로 치부하는 서율의 차가운 지적은, 그의 종교적 논리를 정면으로 관통하는 치명적인 송곳이었다.
“헛소리를……!”
테오가 이성을 잃고 플라스마 블레이드를 치켜들며 서율을 향해 도약했다.
그의 신체 중심선이 통제실 입구의 이중 슬라이딩 격벽 센서 라인을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서율의 입술이 가볍게 움직였다.
“에테르. 지금이다.”
[실시간 도어 제어 동조 가동. 지연 시간 0.1밀리초.]
쿵-!
엄청난 중량의 티타늄 합금 격벽이 단 0.1밀리초의 오차도 없이 수직으로 낙하했다.
그것은 인간의 동체시력으로는 감지조차 할 수 없는 속도였다. 테오가 검을 내리치려던 찰나, 차가운 금속 격벽이 그의 상체와 하체의 중간 지점을 정확히 가로막으며 바닥에 박혔다.
“커흑……!”
테오의 신체 절반이 격벽과 바닥 사이에 끼였다. 이중 격벽에 내장된 고부하 압착 프레스가 그의 늑골을 압박하며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했다.
플라스마 블레이드가 바닥에 떨어져 힘없이 굴렀다.
테오의 손끝이 허공을 긁었지만, 격벽의 폐쇄 압력은 2.5톤에 달했다. 인간의 골격으로는 절대 자력으로 탈출할 수 없는 물리적 구속이었다.
완벽한 무력화.
서율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리의 화상 통증이 여전했지만, 승리의 감각이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통증을 경감시키고 있었다.
“상황 종료다.”
서율이 혼잣말하듯 내뱉었다.
그때, 테오가 떨어뜨린 양자 수신 송신기에서 미세한 노이즈가 발생했다.
지지직…… 지직…….
서율의 귀에 이명과 함께 섞여 들어오는 주파수 파형. 뇌 손상률의 부작용으로 극대화된 그의 청각 피질이 그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 냈다.
72Hz.
일반적인 방주 통신 규격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극도로 낮은 초저주파 대역의 변조 노이즈였다.
‘이 주파수는…….’
이전 루프의 기억 로그가 서율의 뇌리에서 스파크를 일으켰다. 빅토르 크론이 특이점 엔진의 노심 유속을 원격에서 교란하기 위해 숨겨둔 암호 대역이었다. 이 주파수의 진동을 역추적하면 빅토르의 실시간 위치와 그가 실행하려는 파괴 프로그램의 원격 경로를 포착할 수 있다.
“에테르. 저 송신기의 72Hz 변조 신호를 강제 포케팅(Pocketing)해. 주파수 대역을 고정하고 데이터 패킷을 실시간 복제한다.”
[명령 수신. 72Hz 대역 주파수 노이즈 포획 완료. 암호화 해독 프로토콜 가동 중. 신호의 근원지가 방주 중심부로 좁혀집니다.]
성공이었다. 배신자의 물리적 제압과 동시에, 최종 흑막인 빅토르 크론의 목덜미를 잡을 결정적인 공학적 단서를 확보한 것이다.
서율은 테오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격벽에 깔린 채 피침을 흘리는 사제의 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끝났다, 테오. 네 교주가 어디 있든, 이 주파수를 따라가서 숨통을 끊어 놓지.”
하지만 테오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서서히 고개를 들어 서율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붉은 피가 섞인 기괴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하…… 하하…… 하하하하!”
밀폐된 통제실 내부에 테오의 소름 끼치는 광소가 울려 퍼졌다.
“끝났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만한 엔지니어여.”
테오가 피를 토하며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이 하찮은 동면실의 산소 밸브를 돌리고, 기계와 교감을 나누는 그 가치 없는 시간 동안…… 교주님께서는 이미 방주의 진정한 심장에 도달하셨습니다.”
서율의 미간이 좁혀졌다. 맥박수가 다시 불규칙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지?”
“특이점 엔진 중심 노심 제어실…….”
테오의 눈동자에 서린 광기가 극에 달했다.
“빅토르 교주님께서는 이미 그곳의 마스터 도어(Master Door)를 실물 열화 폭약으로 용접 차단하셨습니다. 내부에서 완전히 폐쇄된 그 문은, 방주 안의 그 어떤 물리적 도구와 해킹 프로토콜로도 영원히 열 수 없습니다.”
테오가 붉은 이빨을 드러내며 조소했다.
“남은 시간은 이제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뛰어난 기술자라 한들, 들어갈 수 없는 방의 엔진이 폭주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겁니까? 당신과 당신의 동생, 그리고 저 잠든 10만 명의 시체들은…… 결국 이 강철 무덤 속에서 함께 타오를 것입니다!”
[경고. 엔진 노심 제어실의 연결 상태가 물리적으로 단절되었습니다. 내부로부터의 완전 격리 확인. 진입 잔여 경로…… 전무함.]
에테르의 건조한 보고가 서율의 뇌 신경망을 무겁게 때렸다.
서율의 시야가 다시 한번 붉은색 노이즈로 흐려졌다. 수십 번의 루프 끝에 도달한 길의 끝에, 완벽하게 용접되어 닫힌 강철의 장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