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르르릉!
고막을 찢는 파쇄음과 함께 화강암 천장이 수직으로 하강했다. 초속 12미터. 자유낙하하는 암석의 질량은 최소 3톤을 상회한다. 먼지구름이 폐부를 찌르고 들어오자 강도진은 본능적으로 기침을 삼켰다. 들숨에 섞인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다.
"도진 씨! 뒤쪽은 완전히 막혔어요! 기둥이 무너집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백설아의 외침은 급격한 데시벨 저하를 겪으며 사그라졌다. 그녀의 목소리 톤은 평소보다 12옥타브 높았다. 공포로 인한 성대의 수축. 도진은 그녀의 생존 확률을 실시간으로 역산했다.
[아군 개체: 백설아] [잔여 생존율: 89.2% (퇴로 확보 시 99.4%로 수렴)] [조치: 방치 후 단독 탈출로 탐색]
도진에게 그녀는 구해야 할 동료가 아니었다. 손실 방지율 89.2%를 유지하는 이동형 자산에 불과했다. 정서적 효율 증후군. 도진의 뇌 신경망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영역이 영구적으로 정지해 있었다. 오직 수치와 도표, 그리고 완벽한 보존율만이 그의 사고를 지배했다.
"설아 씨, 우측 30도 방향으로 이탈하세요. 그곳의 구조적 응력 한계는 아직 40% 여유가 있습니다."
도진의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평평했다. 자신의 발목을 짓누르는 잔해의 압박 속에서도 호흡수 1분당 16회를 유지했다. 먼지 가득한 어둠 속에서 백설아의 실루엣이 비틀거리며 도진이 지시한 좌표로 사라졌다.
쿠구구구구!
두 번째 크랙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마포구 D급 던전의 중심핵을 지탱하던 중력 제어 수식이 완전히 붕괴한 결과였다. 천장에서 떨어져 나온 거대한 돌기둥들이 빗살무늬처럼 교차하며 도진의 사방을 폐쇄했다.
완벽한 밀실. 잔여 공간 가로 1.2미터, 세로 0.8미터, 높이 1.5미터. 산소 공급량은 성인 남성 기준 약 45분 분량.
"F급 서포터의 뇌 용량으로 계산할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도진은 자신의 오른쪽 대퇴부를 고정하고 있는 바위를 내려다보았다. 압착된 대퇴동맥에서 미세한 내출혈이 시작되고 있었다. 32분 이내에 지혈하지 않으면 저혈량 쇼크로 인한 심정지가 발생한다. 생존 확률은 4.12%로 급락했다.
그 순간, 허공이 찢어졌다.
지익, 하는 고주파 소음과 함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푸른색 광자가 분출되었다. 파장 450나노미터의 청색 스펙트럼.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공간의 기하학적 구조를 강제로 재배열하는 고차원 에너지의 흐름이었다.
위이잉—!
[경고: 허가되지 않은 차원적 간섭 유입.] [연산 오버플로우 발생. 소스 코드의 공백 영역 감지.] [개척 라이선스 코드: 0x88FF-VOID-TEMP]
도진의 망막 위로 반투명한 인터페이스가 강제로 겹쳐졌다. 정교한 정밀 기계의 내부 회로처럼 움직이는 파란색 홀로그램 선들이 그의 시야를 격자무늬로 동기화하기 시작했다.
"이건 던전의 시스템 규격이 아니군."
도진의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회전했다. 0.1초 단위로 갱신되는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는 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과해 있었다.
[시스템 독점 상점(Sole-Proprietorship Shop) 가동.] [경고: 본 상점은 상위 고차원 문명의 개척선 전용 인프라입니다. 하등 차원의 유기체는 접속 권한이 없습니다.] [강제 배출 시퀀스 연산 중...]
"권한이 없다고?"
도진의 입꼬리가 비정상적으로 차갑게 올라갔다.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뻗어, 깜빡이는 청색 홀로그램의 에러 로그 구역을 직접 터치했다. 그의 뇌 신경망에 각인된 강박적 합리주의가 시스템의 논리적 맹점을 파고들었다.
"상위 라이선스 규격 제4조 12항. '시스템이 미개척 영역에서 장기 정지 상태일 경우, 최초로 물리적 접촉을 달성한 지성체에게 임시 관리자 권한을 이양한다.' 이 던전은 생성된 지 72시간 동안 코어 결합률이 30% 미만이었다. 즉, 미개척 보이드 영역이다."
[……!]
인터페이스의 텍스트가 심하게 흔들렸다. 시스템의 기계적인 연산 장치가 도진의 초정밀 반박에 일시적인 연산 지연(Lag)을 일으킨 것이다.
"따라서 내 임시 동기화율은 100%로 고정된다. 배출 시퀀스를 즉시 기각한다."
스르륵. 어둠 속에서 푸른 광자들이 뭉치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정교하게 깎아지른 유리 인형 같은 실루엣을 가진 여성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눈동자 대신 톱니바퀴 모양의 홀로그램이 회전하고 있었고, 목소리에는 인간의 온기가 단 1퍼센트도 섞여 있지 않았다.
"하하, 재밌네. 정말 지독하게 똑똑한 벌레가 덫에 걸렸구나?"
가상 의식체, 상점의 빌러이자 관리자인 엘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허공에 걸터앉아 도진의 피투성이가 된 다리를 내려다보며 조소했다.
"임시 권한을 뜯어내다니 제법이지만, 그래봐야 F급 유기체잖아? 네 영혼의 잔여 가치는 겨우 0.003% 수준이야. 이 상점에서 파는 가장 저렴한 개념 설계도 하나조차 네 평생의 생명력을 다 털어 넣어도 구매할 수 없어. 그냥 여기서 짓눌려 죽는 게 우주의 엔트로피 관점에서도 훨씬 이득 아닐까?"
엘라의 목소리는 완벽한 냉소로 가득했다. 그녀는 도진이 고통과 절망에 울부짖으며 구걸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고차원 존재들이 하등 생명체를 구경할 때 느끼는 가장 전형적인 유흥이었다.
하지만 도진의 심박수는 여전히 분당 72회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도, 분노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사냥감을 해부하는 학자의 이성만이 서려 있었다.
"영혼의 잔여 가치 0.003%. 그것은 현재 내 육체의 탄소 결합 상태와 잔여 수명을 단순 산술 평균한 수치에 불과하다."
도진이 피 묻은 손을 뻗어 엘라의 홀로그램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물리적인 접촉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도진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파동이 엘라의 데이터 구조를 강제로 교란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독점 라이선스'의 가치는 얼마로 책정되어 있지? 우주 개척선의 상용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키다. 이 행성에서 오직 나만이 이 상점의 인터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 내가 죽으면, 이 상점의 동기화 코드는 영구 결손 처리된다. 맞나?"
엘라의 눈동자 속 톱니바퀴가 역방향으로 급격히 회전했다. "너, 설마……."
"내 사망으로 인해 발생할 시스템의 손실 비용과, 내가 요구할 초도 거래의 인과율 채무 비용을 비교 연산해라. 어느 쪽이 더 큰 마이너스인가?"
도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거래 테이블 위의 완벽한 감가상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연산 중...] [손실 평가액: 99,840,000,000 칼로리 데이터] [초도 거래 비용: 15,000 칼로리 데이터] [결론: 거래 승인이 경제적으로 극도로 유리함.]
엘라의 얼굴에서 조소와 여유가 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녀의 반투명한 뺨이 수치심과 당혹감으로 가려졌다. 한낱 하등 행성의 F급 헌터에게 우주 시스템의 최상위 거래 공식을 역으로 간파당하고, 강제로 손익분기점 계약을 요구받은 것이다.
"미친 인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시스템을 협박하다니."
"협박이 아니다. 가장 합리적인 자산 포트폴리오의 재구성일 뿐."
도진이 허공의 인터페이스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계약 체결: 시스템 독점 상점의 영구적 소유권 및 불법 라이선스 탈취 완료.] [초도 거래 항목 선택: '임전용 개념칼날(Concept Blade)' 임대 계약.] [지불 대가: 인과율 채무 15,000 포인트 발생.]
"거래를 승인한다."
도진의 선언과 동시에, 그의 손바닥 위로 칠흑 같은 어둠을 흡수하는 형태의 무형의 검자루가 쥐어졌다. 그것은 물리적인 철로 만들어진 무기가 아니었다. 공간의 '절단'이라는 개념 자체를 고정해 놓은 고차원 에너지의 결정체였다.
스으으으—!
개념칼날이 소환되는 순간, 상점의 고성능 거래로 인한 가공할 페널티가 즉각적으로 발동했다.
[경고! 고성능 거래로 인한 '부하 피드백(Load Feedback)' 발생!] [주변 대기 밀도 급팽창. 엔트로피 수치가 통제 한계를 초과합니다.] [현실 에너지 밀도 폭증률: 412%]
"아하하하! 계약은 했지만,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엘라가 다시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상점에서 고차원의 개념을 꺼내 쓴 대가야! 네가 빌린 에너지의 반작용으로 주변의 마나 농도가 폭주하기 시작했어! 저기 오는 녀석이 어떻게 변하는지 똑똑히 봐!"
쿠구구구구궁!
던전 깊은 곳, 보스 룸의 두꺼운 철문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원래라면 평범한 D급 보스인 '대지 붕괴의 그롤'이어야 했다. 하지만 폭증한 부하 피드백의 에너지를 직격으로 받아들인 괴수의 육체는 기괴한 변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콰드득! 콰드득!
괴수의 등뼈가 가죽을 찢고 솟아올랐다. 원래 3미터에 불과했던 체구는 주변의 화강암 잔해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며 순식간에 8미터가 넘는 거대한 바위 거인으로 재구성되었다. 괴수의 눈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마력의 안개는 대기 중의 산소를 급격히 연소시키고 있었다.
[변이 보스: 부하 피드백 종말종 - 그롤 (위험도: 측정 불가)]
"크르르르어어어어어억!"
공간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음파 병기가 도진의 고막을 때렸다. 흘러내린 피가 귓가를 적셨지만, 도진은 천천히 일어섰다. 개념칼날의 검은 종단면이 지면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감정의 동요가 배제된, 차가운 연산의 격자만이 가득 차 있었다.
"에너지 변환율 100%. 절단 확률 100%."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변이 괴수가 대지를 부수며 도진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돌 주먹이 도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괴수의 돌 주먹이 대기를 짓누르며 하강했다. 질량 약 18.5톤. 낙하 속도 초속 35미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물리적 충격량은 일반적인 F급 헌터의 신체 내구도로는 단 0.1초도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단백질과 유기 화합물로 구성된 인체는 이 충돌 직후 액상화에 가까운 파괴를 면치 못할 터였다.
두 우스운 유기체의 종말을 비웃듯, 엘라의 홀로그램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휘어졌다.
하지만 도진의 머릿속 연산 장치는 이미 정밀한 기하학적 궤적을 완성한 상태였다.
"개념칼날 가동 범위, 반경 1.5미터."
도진은 부러진 오른쪽 대퇴부의 통증을 신경계에서 강제로 격리했다. 뇌내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 분비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통각 수용체의 전기 신호를 차단한 결과였다. 그는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흑색 검자루를 수직으로 치켜세웠다.
스으으읍—!
소리도 없이, 공간이 분할되었다.
개념칼날의 검은 궤적이 지나간 자리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공기 분자, 떨어지는 암석 파편, 그리고 괴수의 거대한 화강암 주먹—이 분자 결합 수준에서 완벽하게 해체되었다. 가속도를 얻어 돌진하던 괴수의 오른팔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양분되어 바닥으로 추락했다. 단면은 마치 거울처럼 매끄럽게 빛나고 있었다.
"크그어어억?!"
보스 몬스터의 통각 수용기가 비정상적인 신호를 감지하고 비명을 질렀다. 잘려 나간 화강암 피부 아래로, 부하 피드백으로 인해 강제로 주입된 보라색 마력 혈관들이 꿈틀거리며 기괴하게 터져 나갔다. 고압의 마력 혈액이 사방으로 분출되며 천장의 잔해들을 산성 물질처럼 녹여 내렸다.
도진은 단 한 방울의 유독성 액체도 닿지 않는 각도를 계산해 반 보 뒤로 물러섰다.
"물리적 방어력 무시율 100%. 예상대로군."
[경고: '임전용 개념칼날'의 유지 시간은 기동 후 180초로 제한됩니다.] [현재 잔여 시간: 142초] [주의: 인과율 채무로 인한 주변 엔트로피 가속화가 감지되었습니다.]
망막에 붉은색 경고등이 점멸했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도진이 개념칼날을 휘두를 때마다, 던전 내부의 산소 밀도가 요동치며 기압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었다.
"이게 너희가 말하는 등가교환의 실체인가."
도진의 시선이 돌 주먹을 잃고 폭주하는 괴수의 가슴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붉은빛을 발산하는 주먹만 한 크기의 던전 코어가 박혀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핵이 아니라, 고차원 우주 시스템이 지구의 에너지를 송신하기 위해 설치한 '송신기'였다.
동시에 머릿속의 독점 상점 인터페이스가 새로운 연산 수식을 강제로 동기화했다.
[시스템 검출: 에너지 구매력 고정 앵커(Energy Anchor) 작동.] [현재 보유 골드: 0G (칼로리 대입 가치: 0)] [경고: 채무 상환을 위한 '던전 코어'의 칼로리 변환율을 산출합니다.] [대상: D급 변이 코어 → 가치 환산율: 12,000 칼로리 데이터]
"턱없이 부족하군."
도진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괴수의 코어를 파괴해 흡수하더라도 현재 발생한 채무 15,000 포인트를 전부 청산할 수 없다. 잔여 채무는 3,000 포인트가 남는다.
엘라가 그의 뒤편에서 차갑게 속삭였다.
"맞아, 똑똑한 인간아. 코어를 깨부숴도 넌 여전한 빚쟁이야. 그리고 우리 상점의 규칙은 아주 엄격하거든?"
[인과율 채무 미청산 시 페널티 예고.] [제한 시간: 10분 00초] [미청산 시 조치: 연산 구조 영구 포맷(Format) 시퀀스 작동.] [포맷 대상 구역: 대한민국 서울시 마포구 행정 구역 전체.]
쿵! 쿵! 쿵!
외팔이 된 괴수가 남은 왼손으로 바닥을 내려치며 두 번째 돌진을 시작했다. 변이의 부작용으로 괴수의 전신 도처에서 균열이 일어나며, 내부의 고밀도 에너지가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었다. 이대로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하면 괴수는 5분 이내에 자체 붕괴하며 대폭발을 일으킬 궤적이었다.
자폭 시 반경 500미터 이내의 생명체 생존율은 0%. 동시에 마포구 전체가 시공간 지도에서 영구적으로 삭제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남은 시간은 단 10분. 도진은 개념칼날의 자루를 쥐어 잡은 손가락의 압력을 45뉴턴으로 고정했다. 그의 무감각한 시야 너머로, 소멸의 연산 수식이 잔인하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