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전광판에 붉게 박힌 숫자가 당신의 망막을 찌릅니다.

[ 141 km/h ]

박태준의 주무기인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 151km/h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회전수(RPM) 역시 평소의 2450에서 2080까지 수직 낙하해 있습니다. 긴장으로 수축한 삼각근이 이완되지 않으면서 타점(Release Point)이 평상시보다 18센티미터나 내려앉은 탓입니다.

1회초 무사 주자 1, 2루. 타석에는 상대 전적 .312의 강타자가 배트를 짧게 쥐고 타이밍을 재고 있습니다. 초구 볼, 2구 스트라이크, 3구 파울, 4구 볼. 카운트는 투볼 투스트라이크에서 결국 풀카운트로 치닫습니다.

"던져라! 쫄지 말고 던져!" "벌써부터 털리면 어쩌자는 거야!"

주말을 맞아 외야석까지 꽉 채운 2만 5천 관중의 고함과 야유가 거대한 정재파가 되어 그라운드를 뒤흔듭니다. 웅장하게 울리는 웅성거림과 쩌렁쩌렁한 비난의 데시벨이 마운드 위 19세 신인 투수의 고막을 압박합니다. 태준의 유니폼 뒷자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스카우터실 유리창 너머 당신의 눈에 포착됩니다.

6구째. 태준의 손끝을 떠난 공은 횡무브먼트가 완전히 실종된 밋밋한 슬라이더였습니다. 몸쪽 승부를 의도했으나 릴리스 포인트가 풀리며 한가운데로 흘러 들어간 실투.

*깡!*

타자의 배트 중심에 정확히 맞닿은 공은 29도의 발사각을 그리며 우중간 외야 관중석 가장 깊숙한 곳으로 날아가 꽂힙니다. 비거리 125미터짜리 선제 투런 홈런.

태준은 마운드에 가만히 멈춰 선 채 더 이상 홈런 타구를 바라보지도 못합니다. 이어진 볼넷 두 개. 결국 감독이 마운드로 향하고, 태준의 첫 선발 등판은 단 1개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한 채 강판이라는 참극으로 끝납니다. 더그아웃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중계 카메라의 초망원 렌즈에 포착되어 대형 전광판에 박제됩니다.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포털 사이트 스포츠 페이지는 조롱 섞인 헤드라인으로 도배됩니다.

[ '안목의 부도수표' 박태준, 0이닝 3실점 눈물의 강판 ] [ 세룡 타이거즈의 머니 게임을 거부한 대가는 참혹했다 ] [ 가난한 구단의 스카우터 판타지,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 ]

"이래서 내가 대학 출신 즉시 전력감을 뽑으라고 했잖아!" 프런트 단장이 스카우터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와 데이터 시트를 당신의 책상 위에 내팽개치며 소리칩니다. "언론 반응 봐! 당장 2군으로 내리고 로테이션 조정해!"

당신은 침묵 속에서 태준의 경기 바이오메카닉스 데이터를 노트북 화면에 띄웁니다. 투구 메커니즘 자체는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극도의 압박감으로 인한 일시적인 과호흡과 근육 경직이 원인입니다.

타고난 천재성만큼이나 거대한 성장통의 벽 앞에 선 괴물 신인. 그리고 그의 안목을 시험대에 올린 세상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당신은 차분하게 펜을 굴리며 다음 행보를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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