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끝이 매서운 남해의 연습 구장. 우완 투수의 손끝을 떠난 시속 146km의 포심 패스트볼이 몸쪽 보더라인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회전 수 2,420rpm의 강력한 구위. 하지만 타석에 선 한지혁의 하체는 미동조차 없습니다.
*꽝!*
경쾌함과는 거리가 먼, 둔탁하고 파괴적인 파열음이 배트 중심부에서 터져 나옵니다. 둔근에서 시작되어 오른쪽 무릎을 축으로 회전하는 완벽한 지면 반발력의 전달. 대퇴사두근 재활을 통해 무릎 가동 범위가 15도 이상 확보되자, 골반의 회전 각속도는 초당 720도까지 치솟았습니다. 타구 속도 176km/h, 발사각 28도. 빨랫줄처럼 뻗어 나간 타구는 좌중간 펜스를 가볍게 넘어 장외 야산 중턱에 처박힙니다.
"좋아, 무릎 흔들림 전혀 없어. 임팩트 시점에 체중 이동이 완벽하게 이뤄지고 있어."
스톱워치를 든 당신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립니다. 메디신 볼을 이용한 코어 트레이닝과 편신성 수축 루틴을 6주간 소화한 결과입니다. 무릎 부상 이전의 부드러운 힙 턴(Hip Turn)이 고스란히 복원된 것입니다. 올 시즌 30홈런 이상을 보장하는 괴물 타자의 완벽한 부활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감탄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합니다. 화면에 뜬 것은 타 구단 스카우트 팀장으로 있는 대학 선배의 이름입니다.
- "야, 너희 대단하더라? 독립리그 구석에 처박혀 있던 한지혁을 어떻게 그렇게 깎아 놓았냐? 랩소도(Rapsodo) 데이터 보니까 회전 효율이랑 컨택 지점 일관성이 리그 최정상급이던데."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 내립니다. 한지혁의 트랙맨 역학 분석표와 세부 재활 보고서는 구단 내부 서버 중에서도 고도의 보안이 걸린 1급 대외비 폴더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선배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온 PDF 캡처본을 확인한 당신의 눈이 가늘어집니다. '한지혁 신체 역학 분석 및 타격 메커니즘 복원 리포트.' 당신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의 고유 워터마크가 선명하게 박혀 있습니다. 내부 스파이가 데이터를 빼돌려 타 구단에 유출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상태입니다. 지방의 명가라 불리는 A 구단과 모기업의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B 구단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한지혁의 에이전트 측에 보장 금액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가계약 조건을 제시했다는 첩보가 실시간으로 입수됩니다.
경기장 뒤편, 재활을 마치고 배트를 정리하는 한지혁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의 에이전트 역시 밀려드는 전화를 받느라 구석에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어렵게 살려낸 괴물의 싹을 수확하기 직전, 내부의 배신과 외부의 공세가 당신의 목을 조여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경쟁 구단들이 정식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이 판을 정리해야 합니다.
당신의 두뇌가 최고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