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배신자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타 구단과의 은밀한 접촉 선로를 확보했던 내부 스파이를 숙청하고, 한지혁의 해외 유출 계약서를 찢어발겼을 때만 해도 승전고를 울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숙청의 후폭풍은 생각보다 깊은 흉터를 남겼다.

락커룸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불펜 마운드에서는 서로를 불신하는 눈초리가 교차한다. 훈련장에는 기계적인 외침만 가득할 뿐, 팀을 하나로 묶어주던 단단한 결집력은 간데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가을 야구 진출 티켓. 단 1승만 더하면 자이언츠는 꿈에 그리던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모래성처럼 바스러질 것이 자명하다.

당신은 태블릿 PC에 기록된 한지혁의 피칭 데이터를 가만히 응시한다.

[한지혁 세부 스탯] -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 151.4 km/h (직전 경기 대비 -1.8 km/h) - 회전수(RPM): 2,420 RPM -> 2,280 RPM (하락세) - 익스텐션(끌고 나오는 거리): 1.98m -> 1.85m (릴리스 포인트 흔들림)

수치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심리적인 동요가 투구 메커니즘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한지혁이 불펜에서 공을 뿌릴 때마다 포수 미트에 꽂히는 파열음이 예전 같지 않다. "쾅!" 하는 묵직한 울림 대신, 빗맞는 듯한 약한 마찰음만 허공에 흩어진다.

"지혁아, 릴리스 포인트가 너무 앞에서 풀려. 손끝에 채는 느낌이 안 살잖아."

포수 배영민이 미트를 벗으며 한숨을 쉰다. 평소라면 "죄송합니다, 선배님. 다시 해보겠습니다!" 하고 씩씩하게 답했을 한지혁이,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로진백만 만지작거린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했던 스파이 소동의 여파가 고작 스무 살짜리 괴물 신인의 껍질마저 갉아먹은 것이다. 배트 스피드 143km/h를 상회하던 주전 타자들의 스윙 궤적도 둔탁해졌다. 타석에서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니 슬라이더 유인구에 방망이가 힘없이 돌아간다.

"와아아아아-!"

연습 경기임에도 자이언츠 파크를 가득 메운 모의 관중들의 함성이 이명처럼 귓가를 때린다. 실전 상황을 가정한 9회 말, 2사 만루, 풀 카운트. 3볼 2스트라이크의 벼랑 끝 상황. 7천여 명의 가상 함성이 야구장의 공기를 짓누르자, 마운드 위의 한지혁은 호흡 조절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가슴의 들썩임이 심박수 160BPM을 넘어서고 있음을 스카우터인 당신의 안목은 단번에 포착한다.

쾅! 하고 터지는 함성 속에서 던진 슬라이더는 밋밋하게 꺾이며 포수 키를 훌쩍 넘어 백스톱을 맞춘다. 폭투. 팀원들의 어깨가 동시에 축 떨어진다.

이대로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은커녕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대패하고 가을의 문턱에서 좌절할 것이 뻔하다. 스파이를 도려낸 상처가 곪아 터지기 전에, 당장 선수들의 퓨즈를 다시 연결할 특단의 동기 부여책이 필요하다.

당신은 전직 스카우터의 예리한 시선으로 난장판이 된 덕아웃을 가로지른다. 대안은 크게 두 가지로 좁혀진다. 이 차가운 분위기를 정면 돌파할 극단적인 자극제인가, 아니면 상처받은 마음을 안쪽에서부터 치유해 단단한 응집력을 만들 온정인가.

당신의 선택에 따라 자이언츠의 가을 운명이 결정된다. 자, 이제 어떤 카드를 꺼내 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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