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지금 밖 골목에 웬 검은 정장 선글라스 무리들이 식당 주변 사진을 마구 찍고 다녀서 무서워요!"
유리창을 똑똑 두드리는 진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조리실의 어스름한 주황빛 조명 아래에서, 서현은 쥐고 있던 행주를 바닥으로 떨어뜨렸습니다. 툭, 하고 가볍게 떨어지는 소리가 흡사 거대한 바위가 내려앉는 것처럼 귓가를 때렸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허파 깊숙이 들이쳐 가슴을 옥죄었습니다. 서현은 본능적으로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습니다. 이 지독한 감각. 목구멍에 모래가 가득 찬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고, 심장은 갈비뼈를 부술 듯이 쿵쾅거리는 이 증상은 서현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과거의 망령이었습니다. 강태윤. 그 이름 석 자가 머릿속을 스치자마자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습니다.
서현은 떨리는 걸음으로 조리실 구석에 설치된 CCTV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화면 속 식당 앞 좁은 골목길은 평소와 다른 기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낡은 가로등 아래, 어둠을 틈타 서성이는 세 명의 사내들. 그들은 진아의 말대로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습니다. 한 사내가 스마트폰을 높이 들어 '온기'의 간판을 정밀하게 촬영하더니, 이내 무인 계산대가 들여다보이는 유리창 안쪽으로 렌즈를 들이밀었습니다.
사내의 가슴팍에 고정된 은색 배지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번쩍였습니다. 태윤 F&B의 정식 로고였습니다.
"아……."
서현의 입술 사이로 억눌린 비명이 새어 나왔습니다. 다리가 스르륵 풀려 조리대 모퉁이를 꽉 움켜쥐었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갔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사냥감을 구석으로 몰아넣기 전, 영역을 확인하고 숨통을 조여오는 포식자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사장님? 저기,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경찰에 전화할까요? 제가 할게요, 사장님은 거기 가만히 계세요."
창문 너머로 진아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열일곱 살 소녀의 눈동자에도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지만, 진아는 서현을 지키겠다는 듯이 빗자루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서현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습니다. 경찰이 온다 한들, 그들이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처벌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대면 접촉이 일어나면 이 신비로운 '마음 기록 장부'의 기능이 영구히 정지될 터였습니다. 식당 '온기'는 서현에게 유일한 호흡기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이곳마저 빼앗긴다면, 정말로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서현은 조용히 숨을 내쉬며 생각했습니다. '숨지 마. 도망치지 마. 이번만큼은 내 공간을 지켜야 해.'
하지만 몸은 솔직했습니다. 여전히 사들사들 떨리는 무릎을 감싸 안으며, 서현은 어두운 조리실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차가운 타일 바닥을 적셨습니다.
***
그 시각, 서대문구의 한 고층 오피스텔.
유명 푸드 칼럼니스트 한강우는 스탠드 조명 하나만을 켠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앞에는 며칠 전 '온기'에서 가져온 영수증 몇 장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그는 보통 음식의 맛 뒤에 숨겨진 상업적 위선을 발라내는 독설가로 유명했지만, 오늘만큼은 그의 얼굴에 냉소 대신 깊은 고뇌가 서려 있었습니다.
"이 가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강우는 혼잣말을 읊조리며 영수증의 특정 항목을 펜 끝으로 톡톡 두드렸습니다.
[태양초 비정제 고춧가루 - 경북 청송 산골 농원: 120,000원] [천연 조미 조화수 원액 - 강원도 삼척 오지 약초방: 180,000원]
일반적인 무인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재료 단가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마진율을 극대화해야 하는 무인 운영의 특성상, 이런 고가의 특수 식재료를 발주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강우는 이 기묘한 영수증의 출처를 밝혀내기 위해 하루 종일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경북 청송의 산골 농원 주인과 연락이 닿았을 때, 그가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아, 그 서울 골목길에 있는 무인 식당 처자 말이오?" 수화기 건너편 늙은 농부의 목소리는 투박하지만 따뜻했습니다. "매번 식재료를 주문할 때마다 손 편지를 같이 보내준다오. 이번에 올 손님이 마음의 병이 깊어 몸이 많이 상하신 분 같으니, 가장 순하고 정성스럽게 키운 놈으로만 골라 보내달라고 말이요. 돈은 얼마든지 치를 테니 제발 부탁한다고 매번 싹싹 빌다시피 해요. 그런 처자가 파는 음식인데, 내가 어떻게 대충 보낼 수 있겠소?"
강우는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생각했던 '비대면 무인 식당'은 인간적인 소통을 회피하고 편리함만을 좇는 현대 적자들의 위선적인 대피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얼굴을 마주하지 않기에, 자신의 온 정성과 영혼을 음식이라는 매개체에 온전히 쏟아붓는 지독할 정도로 우직한 공간이었습니다.
"내가…… 틀렸던 건가."
강우는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하게 아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떠나보낸 후 그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불면증과 세상에 대한 냉소뿐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늘 혀끝에는 모래알 같은 까칠함만 남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온기'에서 먹었던 그 소박한 감자 요리와 따뜻한 국물은 그의 얼어붙은 위장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을 향해 조용히 건네는 구원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때, 딩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고요한 오피스텔에 울려 퍼졌습니다.
강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차가운 복도 바닥에 정갈하게 포장된 스티로폼 상자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상자 위에는 분홍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습니다. 낯익은, 그러나 단정한 손글씨였습니다.
[칼럼니스트님께. 차가운 글 뒤에 숨겨진 깊은 밤의 외로움을 보았습니다. 이 게장은 당신의 굳어버린 마음을 녹여줄 작은 온기입니다. 부디 따뜻한 밤이 되시기를.]
박스를 열자, 은은한 바다 향과 함께 붉고 고운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진 게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고추장게장'. 서현이 오직 한강우의 결핍을 치유하기 위해 해금된 레시피로 정성껏 빚어낸 밀키트였습니다.
강우는 홀린 듯이 주방으로 가 밥 한 공기를 퍼 왔습니다. 그리고 게장 한 조각을 입에 넣었습니다.
"……!"
입안 가득 퍼지는 맛은 자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은은한 단맛과 함께 칼칼한 매운맛이 혀를 부드럽게 자극하더니, 이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위장을 따뜻하게 데워주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가 끓여주던 옛날 집밥의 맛이자, 길 잃은 아이의 등을 가만히 토닥여주는 다정한 손길 같았습니다.
강우의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밥공기 위로 떨어졌습니다. 오랜 시간 그를 괴롭히던 죄책감과 불면의 밤들이, 이 한 그릇의 음식 앞에서 소리 없이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직한 진심을……."
강우는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이토록 눈물겨운 정성을 짓밟으려는 자들이 누구인지,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태윤 F&B. 마진율과 효율성만을 앞세워 가맹점주들의 고혈을 짜내고, 타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손쉽게 훔쳐 가기로 악명 높은 대기업.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목에 걸려 있던 카메라를 집어 들고, 그의 시선은 창밖의 어두운 밤하늘로 향했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 냉소가 아닌, 소중한 것을 지키겠다는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습니다.
***
다시 깊은 밤의 식당 '온기'.
골목길의 정장 사내들은 더욱 대담해져 있었습니다. 한 사내가 급기야 무인 계산대의 잠금장치를 강제로 열어보려는 듯 도구를 꺼내 들었습니다. 조리실 안에서 CCTV 화면을 지켜보던 진아는 무서움에 부들부들 떨며 서현의 옷자락을 붙잡았습니다.
"사장님, 저 사람들이 가게 문을 부수려고 해요! 어떡해요……."
서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강태윤 대표의 방에 불려 가 "네가 만든 기획안은 쓰레기야. 넌 우리 회사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기생충일 뿐이야"라며 폭언을 듣던 기억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때처럼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거기, 뭐 하는 짓들입니까?"
골목길 끝에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사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걸어 나오는 남자는 다름 아닌 한강우였습니다.
사내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며 건들거리는 태도로 다가왔습니다. "당신은 또 뭐야? 상관 말고 갈 길 가시지."
강우는 대꾸 대신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들어 사내들의 얼굴을 향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습니다. 찰칵, 찰칵 하는 날카로운 기계음과 함께 강렬한 불빛이 어두운 골목을 번쩍이며 비추었습니다.
"아악! 뭐야, 이 새끼가! 카메라 안 치워?" 사내들이 눈을 찌푸리며 강우의 덜미를 잡으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강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카메라를 단단히 거머쥔 채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습니다.
"태윤 F&B 메뉴개발팀 소속 사설 용역들이죠? 지금 민간 무인 매장 앞에서 공동 주거 침입 및 재물 손괴 미수, 그리고 영업 방해를 자행하는 현장입니다. 방금 촬영한 고화질 사진들과 녹음본은 제 개인 서버로 실시간 전송되었습니다."
우두머리 사내가 코웃음을 쳤습니다. "증거? 우리가 그냥 길 가다가 사진 좀 찍은 게 무슨 죄가 된다고 그래? 당신 법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강우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습니다. 그 특유의 독설가다운 서늘한 미소였습니다.
"법이 쉬운지 어려운지는 내가 아니라 대중이 판단하겠지. 내 소개가 늦었군. 푸드 저널리스트 한강우입니다."
그 이름이 나오자, 사내들의 얼굴에 순간적인 동요가 일었습니다. 업계 탑이자 날카로운 펜대로 대기업 여러 곳을 침몰시켰던 한강우의 명성은 식음료 업계에 있는 이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한…… 한강우?"
"내일 아침 내 개인 블로그와 언론사에 송고될 기사의 헤드라인을 미리 들려주지. '태윤 F&B, 골목길 영세 무인 식당 불법 사찰 및 스토킹 자행'. 여기에 당신들 얼굴과 태윤 F&B 로고 배지가 아주 선명하게 들어갈 겁니다. 대기업이 대낮도 아니고 깊은 밤에 용역을 동원해 여성이 홀로 운영하는 무인 매장을 위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태윤 F&B의 주가가 어떻게 될지 아주 흥미진진하겠군요."
강우는 사내들의 코앞까지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었습니다. "더 찍어드릴까요? 아니면 이대로 경찰서로 동행해서 불법 사찰의 배후가 강태윤 대표인지 공식적으로 조사를 받아보시겠습니까?"
사내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강우의 말에는 티끌만큼의 거짓도,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법적 근거와 언론의 파급력을 철저히 계산한 팩트 폭격 그 자체였습니다.
"쳇…… 재수 없는 놈 걸렸네. 철수하자."
우두머리 사내가 침을 뱉으며 뒤로 돌아섰습니다. 사내들은 강우의 카메라를 피해 황급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며 골목길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들의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골목길에는 다시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조리실 안에서 모니터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서현은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툭 떨어졌습니다. 두려움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지켜준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도감의 눈물이었습니다.
진아 역시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와…… 대박. 저 아저씨 진짜 멋있다. 사장님, 우리 살았어요!"
강우는 사내들이 사라진 골목길을 끝까지 지켜본 뒤, 온기 식당의 유리창을 향해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마치 '이제 안심하라'고 말하는 듯한 묵묵한 위로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식당 안으로 들어오려 하거나 서현을 대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비대면이라는 식당의 규칙과 서현의 안전거리를 존중해 주는 그만의 배려였습니다.
그날 밤, 서현은 오랜만에 가위눌림 없이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정오.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의 식당 '온기'는 평소처럼 고요함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뜸한 시간, 무인 계산대는 푸른빛을 내며 대기 모드로 켜져 있었습니다.
딸랑.
문 위에 달린 종소리가 유난히 맑고 날카롭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소리. 또각, 또각, 또각.
묵직하고 거만하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검은 대형 명품 가죽 구두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이 고요하고 따뜻한 공간의 결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며 다가왔습니다.
조리실 안에서 저녁 영업 준비를 하던 서현은 그 구두 굽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극심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잊을 수 없는,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그녀의 영혼을 옥죄었던 바로 그 구두 소리였습니다.
무인 계산대 앞으로 다가온 남자는 검은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사내였습니다. 선글라스를 벗어 가슴 포켓에 꽂은 그의 얼굴에는 비열함과 오만함이 교차하는 서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태윤 F&B 대표, 강태윤이었습니다.
그는 거만한 태도로 무인 계산대 화면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화면에 떠 있는 고가의 특수 식재료 발주 내역과 영수증 화면을 살기 띤 눈빛으로 응시하던 태윤이, 이내 조리실과 연결된 불투명 유리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습니다.
"여기 숨어 있었군, 임서현 대리."
그의 서늘한 목소리가 굳게 닫힌 조리실 문틈을 타고 서현의 귓가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