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주의! 직접 대면 접촉 마주침 임박. 5초 뒤 대가 위반으로 감정 장부 영구 소멸 프로세스 개시! 5, 4……."

머리 위에서 회전하는 붉은 사이렌이 조리실의 좁은 벽면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귓가를 찢는 고음의 경고음은 뇌수를 직접 찌르는 송곳 같았다. 눈앞의 마음 기록 장부 화면에서는 숫자가 가차 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3]

문고리가 격렬하게 덜컥거렸다. 쇠붙이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조리실 안의 공기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한강우의 목소리는 절박함을 넘어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대체 누구십니까! 제발 얼굴을 보여주십시오!"

서현은 가슴을 턱 막아선 거대한 바위에 짓눌린 듯 숨을 쉬지 못했다.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 가고,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오한이 어깨를 타고 올라와 온몸을 마비시켰다.

'안 돼. 여기까지 와서 무너질 순 없어.'

그토록 원했던 자신만의 안식처였다. 타인의 가시 돋친 시선과 숨 막히는 다그침으로부터 겨우 도망쳐 나와 마련한, 작고 따뜻한 둥지였다. 이 문이 열리는 순간, 자신의 유일한 구원이자 소통의 창구인 마음 기록 장부는 먼지처럼 사라질 터였다.

과거의 기억이 어둠 속에서 뱀처럼 기어 나왔다.

태윤 F&B의 회의실. 사방이 불투명한 유리로 막힌 그 숨 막히는 공간에서, 강태윤 대표는 서현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었다.

'임 대리,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봐. 왜 벙어리처럼 굴지? 네가 기획안을 이따위로 엉성하게 짰으니까 일이 이 지경이 된 거잖아.'

그때 서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칠게 몰아치는 비난 아래에서 손을 덜덜 떨며 숨을 참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침묵은 비겁한 도망이었고,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서현은 가빠지던 호흡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떨리는 두 손으로 조리대 끝을 꽉 움켜잡았다. 차가운 스테인리스의 감각이 손바닥을 통해 머릿속을 맑게 깨웠다. 과거의 침묵이 굴복이었다면, 지금의 침묵은 가장 강력한 거부이자 방어막이 될 수 있었다.

말을 섞지 않는 것. 마주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무인 식당 '온기'를 지키는 법이자, 자신을 지키는 규칙이었다.

서현은 발소리를 죽여 신속하게 움직였다. 벽면에 달린 주방의 메인 전원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탁.

조리실을 밝히던 환한 형광등이 꺼졌다. 단숨에 찾아온 완벽한 어둠이 서현의 몸을 감싸 안았다. 홀에서 주방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는 미세한 틈새마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잠겨버렸다. 서현은 주방 바닥에 몸을 낮추고 무릎을 안았다. 숨소리조차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2]

[1]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조리실을 지배했다.

문 너머에서도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문고리를 잡고 흔들던 한강우의 손길이 멈췄다. 주방 틈새로 새어 나오던 실낱같은 불빛마저 완전히 차단되자, 그 역시 무거운 침묵의 무게를 느낀 듯했다. 차가운 어둠은 그 어떤 말보다 완고하고 단호한 거절의 의사였다.

"……."

정적 속에서 한강우의 낮게 가라앉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문고리에서 스르륵 손이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홀에 작게 울렸다.

그는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평론가라는 명성을 방패 삼아 타인의 내밀한 영역을 강제로 열어젖히려 했던 자신의 오만함이, 이 어둠 속에서 거울처럼 비쳐 보였으리라. 뜨거운 국물 한 대접에 무너져 내렸던 마음이, 차가운 거절의 침묵 앞에서 서서히 이성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갈라진 목소리가 문틈을 타고 나지막하게 흘러들었다.

"제가…… 잠시 이성을 잃었습니다. 음식이 너무 따뜻해서, 제 안의 무언가가 터져버렸나 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자괴감과 쓸쓸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서현은 어둠 속에서 무릎을 꽉 안은 채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이곳의 규칙을 깨려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음식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강우가 품 안에서 명함을 꺼내 조리실 유리창 틈새에 고정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제 연락처입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시거나,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해 주십시오. 평론가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명의 빚진 손님으로서 기다리겠습니다."

터덜터덜, 힘 빠진 걸음걸이가 멀어졌다. 딸랑, 문방울이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이내 식당 안은 완벽한 고요 속으로 가라앉았다.

장부의 붉은 빛이 서서히 걷히며 푸르스름한 안정이 찾아왔다.

[위험 요소 해제. 비대면 절대 규칙 준수 성공. 정상 모드로 복귀합니다.] [감정 마진 적립: 한강우 심리 결핍도 95% -> 68% 감소. 감정 마진 +27,000포인트 적립.]

서현은 천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멈췄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온기가 차올랐다.

도도하고 날카롭기로 소문난 평론가 한강우를, 오직 요리의 진심과 단호한 침묵만으로 길들였다. 그가 자신의 규칙을 존중하며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는 사실이, 서현의 꺾여 있던 자존감에 든든한 버팀목을 세워주었다.

서현은 주방 전원을 다시 켰다. 환해진 불빛 아래, 유리창에 붙은 명함 카드가 보였다. 정갈하고 힘 있는 서체로 '푸드 칼럼니스트 한강우'라고 적힌 명함 뒷면에는 펜으로 꾹꾹 눌러 쓴 짧은 글귀가 있었다.

- 최고의 순두부였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

서현은 명함을 조심스럽게 떼어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는 확신이 비로소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다.

* * *

새벽 두 시.

가장 깊은 어둠이 도시를 덮는 시간이었다. 무인 식당 '온기'의 주황빛 조명은 여전히 골목길 한구석을 따뜻하게 밝히고 있었다.

서현은 주방 정리 정돈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문방울이 힘없이 딸랑였다.

들어온 이는 한눈에 보아도 고단한 삶의 무게에 짓눌린 중년의 사내였다. 빳빳하게 깃이 죽은 낡은 코트, 흙먼지가 묻은 구두, 그리고 초점을 잃고 흐릿한 눈빛. 사내는 마치 물에 젖은 솜이불을 뒤집어쓴 것처럼 무거운 걸음걸이로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무인 발권기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화면을 만져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듯, 그의 손가락은 공중에서 갈 곳을 잃고 배회했다. 사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사내는 발걸음을 옮겨 벽면에 가득 붙은 방명록 게시판 앞으로 다가갔다. 주머니에서 굴러다니던 몽당연필과 구겨진 포스트잇 한 장을 꺼낸 그의 손이 서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현은 조리실 모니터를 통해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사내가 게시판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멀어지자, 마음 기록 장부가 요란하게 빛을 발하며 새로운 정보를 띄웠다.

[새로운 손님 감지] [손님: 최병호 (54세)] [심리 결핍도: 88% - 극심한 절망감 및 자립 의지 상실] [상태 분석: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갑작스러운 정리해고를 당한 후, 가장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믿음.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는 극도의 외로움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상태.]

장부의 화면이 붉은색으로 깜빡이며 경고를 보냈다.

[추천 치유 레시피: '추억의 그을린 꿀버터알감자'] [원재료 필요 조건: 프랑스 노르망디산 최고급 발효 고메 버터, 야생 토종 밤꿀, 유기농 대지마 감자] [알림: 해당 재료는 현재 고가 발주 품목입니다. 발주 단가: 45,000원] [현재 매장 잔고: -7,000원 (적자 상태)] [경고! 본 레시피를 위해 재료를 발주할 경우, 적자 폭이 -52,000원으로 심화됩니다. 24시간 내에 적자를 복구하지 못하면 마음 기록 장부 시스템은 영구 정지 및 소멸합니다. 발주를 승인하시겠습니까?]

서현의 손끝이 망설임으로 굳어졌다.

마이너스 잔고. 24시간이라는 가혹한 데드라인. 만약 이 손님이 음식을 먹고도 마음을 열지 않거나, 다른 손님이 찾아와 매출을 올려주지 않는다면 이 소중한 식당의 기적은 오늘 밤으로 끝이 난다. 철저한 수지타산과 경영의 법칙이 머릿속에서 경종을 울렸다. 손해를 보는 장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과거 강태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주입했던 효율성의 논리가 서현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서현의 시선은 모니터 화면 속 사내의 얼굴에 머물렀다.

사내는 테이블에 힘없이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눈가를 비비는 그의 모습에서,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자신의 아버지가 겹쳐 보였다. 그리고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매일 밤 울면서 퇴근길을 걸었던 자신의 과거가 보였다.

그가 남긴 포스트잇 문구가 장부 화면 위로 클로즈업되었다.

'어린 딸아이와 함께 길거리 트럭에서 사 먹던 탄 꿀버터알감자가 그리워서 왔습니다. 탄 맛이 나야 합니다. 버터 향이 아주 깊고, 겉은 까맣게 탔지만 속은 달콤했던…… 이제는 다 타버린 제 인생 같은 그 맛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까요.'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인생이 다 타버린 것 같다는 그 절망을, 서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검게 그을려 버린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이에게, 따뜻한 온기 한 그릇을 건네지 못한다면 이 식당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장부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 해도, 지금 저 눈물을 외면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도망치지 않아."

서현은 나지막이 읊조리며 장부 화면의 [승인] 버튼을 단호하게 눌렀다.

화면이 초록빛으로 빛나며 메시지가 떴다.

[특수 식재료 발주 완료. 잔고: -52,000원. 데드라인 카운트다운 시작: 24시간 00분 00초]

동시에 조리실 한쪽의 저온 보관함에서 스르륵 소리를 내며 재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은하게 퍼지는 고급스러운 발효 버터의 향과, 진득하고 깊은 갈색빛을 띠는 토종 밤꿀, 그리고 흙내음이 싱그러운 단단한 감자들이었다.

서현은 조리 기구를 꽉 쥐었다. 손끝에 닿는 쇠붙이의 온도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감자를 깨끗이 씻어 껍질째 찜기에 넣었다. 찌는 동안 주방 안은 포슬포슬한 감자 내음으로 가득 찼다. 알맞게 익은 감자를 꺼내 물기를 빼고, 달궈진 팬에 고메 버터를 듬뿍 넣었다.

스르륵 녹아내리는 버터가 황금빛 거품을 일으키며 고소하고 진한 향을 뿜어냈다. 서현은 감자를 넣고 겉면이 노릇해질 때까지 굴려 가며 구웠다. 그리고 사내가 요구한 '탄 맛'을 내기 위해 불을 한 단계 올렸다.

버터가 타들어 가며 갈색으로 변하고, 감자의 표면이 그을리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쓴맛만 남는 실패작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조리법이었지만, 서현은 감각을 곤두세웠다. 겉은 바삭하고 그을린 향이 나되, 속은 수분을 머금어 부드러워야 했다.

불꽃이 감자 표면의 버터와 꿀을 캐러멜라이징하며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그리고 지극히 깊고 풍부한 향취가 조리실을 넘어 홀 인터페이스까지 흘러넘쳤다. 마지막으로 야생 밤꿀을 아낌없이 끼얹어 윤기를 더했다.

완성된 요리를 온열 보관함에 넣고, 서현은 떨리는 마음으로 모니터를 주시했다.

* * *

최병호는 테이블에 머리를 묻고 있었다.

평생을 바쳐 일한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책상이 치워지던 날, 동료들의 동정 어린 시선보다 무서웠던 것은 집에 있는 딸아이의 얼굴이었다. 아빠의 실직을 모른 채 환하게 웃으며 대학 등록금 걱정을 하던 딸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무작정 걷다 보니 발길이 닿은 곳이 이 외진 골목의 무인 식당이었다. 따뜻한 불빛에 홀려 들어왔지만, 주머니에 든 몇 천 원으로는 제대로 된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린 시절 딸과 함께 먹었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의 음식을 적어 보았을 뿐이었다.

그때, 찌르릉 하는 맑은 알림음과 함께 보관함의 문이 열렸다.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은은한 나무 향이 감도는 홀 안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진하고 고소한 버터 향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향기 끝에는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보관함 안에는 검붉게 그을린 감자 요리가 담겨 있었다.

사내는 홀린 듯 다가가 그릇을 꺼냈다. 뜨거운 온기가 그릇을 타고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테이블로 가져와 마주한 감자는, 겉이 거뭇거뭇하게 그을려 있었지만 그 사이로 황금빛 버터와 꿀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포크로 감자를 살짝 갈라 보았다. 바삭한 겉껍질이 갈라지며 안쪽의 하얗고 포슬포슬한 알맹이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렸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사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쌉싸름한 불 맛이 먼저 혀끝을 스치더니, 이내 고소한 버터의 풍미가 입안 가득 폭발하듯 퍼졌다. 그리고 뒤이어 밀려오는 밤꿀의 깊은 단맛이 쓴맛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것은 단순히 타버린 음식이 아니었다. 고난 뒤에 찾아오는 지극한 달콤함이었다.

"아……."

사내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감자 위로 떨어졌다.

어린 딸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찬 바람이 부는 길거리에서 호호 불며 나누어 먹던 그 감자의 맛이었다. 겉은 조금 탔을지언정, 속은 세상 그 어떤 진미보다 따뜻하고 달콤했던 기억. 인생이 검게 그을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 감자를 씹는 순간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아직 식지 않은 온기가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사내는 허겁지겁 감자를 입에 넣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내 인생도 이 감자처럼, 조금 그을렸을 뿐 속은 아직 따뜻하니까.'

그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용기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이대로 무너지지 않겠다는 다짐이 마음에 단단히 새겨졌다.

조리실 안에서 서현은 그 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장부의 화면이 부드러운 빛을 뿜어냈다.

[최병호 님 심리 결핍도 88% -> 45% 감소.] [감정 마진 +43,000포인트 적립.] [현재 잔고: -9,000원]

적자 폭이 비약적으로 줄어들었다. 비록 여전히 마이너스 상태였지만, 서현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웠다. 한 사람의 무너져 가던 삶을 다시 세워 올렸다는 안도감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

사내는 깨끗이 비운 그릇을 반납함에 넣고, 방명록에 새로운 메모를 남긴 채 허리를 꼿꼿이 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들어올 때와 달리 힘이 넘치고 있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유진아가 조용히 들어와 청소 도구를 들고 움직이고 있었다. 진아는 서현이 조리실에 있는 것을 배려해 늘 소리 없이 빗자루질을 하곤 했다. 서현은 그런 진아의 배려에 늘 고마움을 느끼며, 조리실 한편에 진아를 위해 준비한 따뜻한 인삼꿀차를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평화로운 새벽의 공기가 식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안도감이 서현의 팽팽했던 긴장을 늦추어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청소를 하던 진아의 손길이 멈췄다.

진아는 유리창 너머 어두운 골목길을 뚫어지게 응시하더니, 이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청소기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어깨가 눈에 띄게 긴장으로 굳어졌다.

진아는 다급한 발걸음으로 조리실 유리창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창문을 똑똑 두드리며,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목소리를 극도로 낮춰 다급하게 속삭였다.

"사장님, 사장님! 지금 밖 골목에 웬 검은 정장 입고 선글라스 낀 무리들이 식당 주변 사진을 마구 찍고 다녀서 무서워요!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해요!"

서현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검은 정장의 무리들. 식당 주변을 촬영하는 정체불명의 사람들. 머릿속에 번쩍이며 강태윤의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집요한 추적과 손길이 마침내 이 깊은 골목길의 안식처까지 뻗쳐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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