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모니터가 내는 기계음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은 비프음이 커튼 너머로 얇게 찢어지며 울린다. 환자의 수축기 혈압은 80mmHg 선 턱밑까지 주저앉았고, 분당 맥박수는 120회를 상회하는 빈맥을 보이고 있다. 복부 초음파(FAST) 상 모리슨 와(Morrison's pouch)에 가득 찬 검붉은 유체. 비장 파열 또는 복막 후강 출혈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당신이 병원장실의 회신을 기다리며 메스를 쥔 손끝을 식히고 있을 때였다.
"지혜로운 선택은 때로 차가운 외피를 쓰는 법입니다, 선생."
정갈하게 다듬어진 구두 굽 소리가 타일 바닥을 두드리며 다가온다. 이사회 직속의 자산 운용가이자, 병원 안팎의 은밀한 거래를 조율하는 브로커, 한승태다. 방금 전까지 무균실의 소독약 냄새로 가득하던 공기 위로 고가의 시가 향과 가죽 가방의 냄새가 얇게 내려앉는다. 그의 손에 들린 태블릿 PC 화면에는 당신의 이름이 적힌 연구 계획서와 수십억 원 단위의 지원금 액수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다.
"이사회 산하의 미래 의료 재단 아산 병동으로 이 환자를 이송해 주십시오. 사설 구급차와 모바일 ICU가 이미 지하 승강기 앞에서 대기 중입니다. 거기서라면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외상 센터 설립 연구비를 아무런 제약 없이 집행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차분하다. 하지만 그의 제안 이면에 숨겨진 의도는 명확하다. 병원장 세력의 VIP 유치 구상을 무너뜨리고, 동시에 환자의 생명권을 담보로 이사회의 판돈을 키우려는 정치적 포석.
실시간으로 수액 백의 수위가 낮아질 때마다 환자의 모니터는 경고음을 더 날카롭게 가다듬는다. 지금 전원을 수락하면 환자는 구급차 내부라는 극도의 저산소, 저혈압 환경 속에서 수십 분을 견뎌야 한다. 혈관 내 대동맥 폐쇄용 벌룬 카테터(REBOA)조차 제대로 삽입하지 못한 채 이송하는 것은 사실상 심장 정지를 자초하는 외과의로서의 직무유기다. 반면, 이 제안을 거절하고 당장 수술실로 환자를 밀고 들어간다면 규정 위반을 빌미로 당신의 의사 면허와 외과의로서의 생명은 이 자리에서 끊어질 것이다.
시간을 알리는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모니터의 비프음과 엇박자로 얽힌다. 골든타임은 이제 15분도 남지 않았다. 브로커는 품 안에서 계약서 봉투를 꺼내 차가운 메탈 카트 위에 조용히 올려놓는다.
선택의 무게가 당신의 어깨 위로 무겁게 내려앉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