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중환자실(ICU) 3번 베드. 바이탈 모니터가 내는 규칙적인 '비프-' 음이 주위의 건조한 공기를 가른다.

[BP 110/70mmHg, HR 74bpm, SpO2 98%]

화면에 표시된 숫자는 평온하다. 12시간에 걸친 췌장십이지장절제술(Whipple’s operation)의 결과는 완벽하다. 미세하게 남은 췌장 조직을 공장과 문합하는 과정에서 실 한 올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던 손가락 끝에 뒤늦은 피로가 몰려온다.

당신은 멸균 포비돈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손을 씻기 위해 싱크대 앞에 선다. 차가운 물이 스크럽복 소매 너머로 흘러내릴 때, 등 뒤에서 조용한 인기척과 함께 구두굽 소리가 들려온다.

"훌륭한 수술이었네. 이사회에서도 자네의 실력만큼은 부정하지 못하더군."

거울 속에 병원장 임형준의 얼굴이 비친다.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동자에는 온기가 전혀 없다. 그가 건넨 것은 축하의 악수가 아닌, 짙은 파란색 가죽 폴더다.

"이게 무엇입니까?"

물기를 닦아내며 묻는 당신에게 임 원장은 조용히 폴더를 열어 보인다. 그 안에는 한 남자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임상 심사 보고서가 들어 있다. 기획조정실장 민태훈. 당신에게 메스를 잡는 법을 가르치고, 의사로서의 척추를 세워준 스승의 이름이다.

서류의 내용은 정교하고도 가혹하다. 3년 전 민 교수가 집도했던 복부대동맥류 수술 당시 발생한 불가항력적인 척수 허혈 합병증을 '집도 부주의로 인한 치명적인 판단 착오'로 왜곡해 둔갑시킨 조작 문서다.

"이사회는 민 실장이 물러나길 원하네. 자네가 이 보고서에 동의 서명을 하고, 내일 아침 징계위원회에서 전문의로서 소견을 밝혀주게. 수술을 성공시킨 자네의 목소리라면 그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테니까."

임 원장의 목소리는 수술실의 무영등 아래보다 더 서늘하다.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요?"

"자네가 수술 전에 작성한 면책 서약서가 아직 내 금고에 있지. 기적은 매번 일어나지 않네. 실패한 서약서 한 장이면 자네의 의사 면허를 정지시키는 건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임 원장의 시선이 당신의 손을 향한다. 환자의 배를 열고 생명을 건져 올리던 그 깨끗한 손에, 이제는 스승의 목줄을 쥘 펜이 들려지려 하고 있다.

이 병원이라는 거대한 유기체는 오직 생명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당신을 가장 비열한 정치의 진흙탕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스승을 제물로 바쳐 의사로서의 앞날을 보장받을 것인가, 아니면 더러운 권력 암투의 칼날을 정면으로 받아낼 것인가.

당신은 조작된 서류 위로 떨어지는 하얀 형광등 불빛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당신의 가슴 속에서, 무거운 결심이 무거운 고동을 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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