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 삐- 삐-"
헤모글로빈 수치가 6.2g/dL까지 떨어졌음을 알리는 카디악 모니터의 경고음이 수술실 유리창 너머로 날카롭게 고막을 찌릅니다. 스프레이용 소독액의 차가운 알코올 향이 코끝을 스치는 수술실 앞 스크럽 구역(Scrub station). 당신이 발판을 밟아 흘러내리는 소독액으로 손가락 끝부터 팔꿈치까지 쓸어내리며 문지르고 있을 때, 등 뒤의 자동문이 열리며 묵직한 구두 굽 소리가 다가옵니다. 이 병원의 모든 권력 암투를 지시하는 병원장, 서현태입니다.
멸균 구역에 어울리지 않는 단정한 정장 차림의 그는, 손에 하얗고 빳빳한 서류 한 장을 들고 있습니다.
"이 환자, 후복막 자궁 동맥 파열에 골반골 분쇄 골절이야. 바이탈이 무너지기 직전이지. 살릴 확률이 십 퍼센트도 안 되는 환자야. 이사장님이 추진하시는 VIP 병동 유치 기념식 날에, 이런 가망 없는 외상 환자로 사망률 지표를 깎아 먹을 순 없지 않겠나."
그가 내민 종이 맨 위에는 굵은 서체로 '외상 환자 수술 집도에 따른 면책 및 자진 사직 서약서'라 적혀 있습니다.
"서명하게. 그럼 수술방은 열어주지. 하지만 환자가 테이블 데스(Table death)를 맞이하는 순간, 자네는 즉시 모든 직위에서 해제되며 병원을 떠나야 할 걸세. 병원 이사회에 자네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지."
서현태의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낮고 차분합니다. 소독 물방울이 당신의 양손 끝에서 바닥으로 뚝, 뚝 떨어집니다.
유리창 너머 수술실 안에서는 마취과 의사가 삽관 튜브를 고정하고 있고, 스크럽 간호사가 메스와 겸자(Forceps)를 정리하며 금속성 마찰음을 내고 있습니다. 모니터 속 환자의 심박수는 이미 분당 135회. 극심한 빈맥(Tachycardia) 상태입니다. 활동성 출혈을 잡지 못하면 15분 이내에 심정지가 올 것입니다.
이 서류에 서명하는 순간, 당신은 의사로서의 평생의 커리어를 단 10%의 확률에 걸어야 합니다. 반면 정해진 규정에 따라 이사회의 정식 승인을 요구하러 발길을 돌린다면, 그 행정적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환자는 차디찬 수술대 위에서 어처구니없이 질식하듯 숨을 거둘 것입니다.
병원장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만녀필을 꺼내 당신의 눈앞에 내려놓습니다. 만년필의 은색 촉이 무영등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납니다. 당신의 젖은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