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수도꼭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물줄기가 양손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자극적인 클로르헥시딘 비누 거품이 거친 솔질 아래에서 하얗게 일어납니다. 손가락 사이, 손톱 밑, 그리고 양팔 팔꿈치 위 10센티미터까지. 세차게 쓸어내리는 스크럽 솔의 마찰음이 고요한 준비실을 채웁니다.

세상은 마침내 찾아온 정의를 두고 '기적'이라 불렀습니다. 터널 붕괴 사고의 참사 속에서 수술실을 폐쇄하려 했던 경영진의 탐욕은 낱낱이 폭로되었고, 당신에게 씌워진 추잡한 누명은 법원의 엄정한 판결과 환자들의 눈물 어린 탄원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부패한 이사회는 퇴진했고, 병원의 장막 뒤에 숨어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하던 이들은 법의 심판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새로이 문을 연 독립형 권역외상센터의 센터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법정에서의 승리는 그저 흘러간 어제의 소음일 뿐입니다. 의사의 진짜 싸움터는 기름진 법정이 아닌, 바로 눈앞의 생과 사가 부딪히는 이 0.03평의 수술대 위입니다.

자동문이 부드러운 기압음을 내며 열립니다. 온도가 18도로 유지되는 차가운 수술실 내부. 멸균된 공기의 냄새와 함께 익숙한 기계음들이 당신의 청각을 두드립니다. *삑, 삑, 삑...* 마취기 모니터가 그리는 녹색의 파형과 심박 수 108회의 날카로운 비프음. 수술대 위에는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비장 파열과 복강 내 출혈로 급박하게 실려 온 젊은 환자가 누워 있습니다. 혈압은 85에 50. 이미 저혈량성 쇼크의 길목에 들어선 상태입니다.

"준비되었습니다, 센터장님."

소독 간호사가 펼쳐 든 파랗고 뻣뻣한 멸균 가운에 양팔을 밀어 넣습니다. 뒤이어 그녀가 찢어낸 포장지 속에서 비쳐 보이는 것은, 당신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보랏빛 멸균 글로브입니다. *탁.* 탄력 있는 라텍스가 당신의 손목을 단단하게 죄어오며 밀착됩니다.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팽팽한 긴장감. 거친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당신의 메스는 오늘 밤도 여전히 정교하고 날카롭습니다.

"메스."

당신이 나직하게 손을 내밀자, 차갑고 묵직한 메스 자루가 보랏빛 글로브의 손바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옵니다. 기적이란 신의 요행이 아닙니다. 포기하지 않는 이성적인 판단, 그리고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손끝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당신은 무영등 아래로 허리를 숙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정의 대신, 오직 눈앞의 가녀린 생명 하나를 살려내기 위해. 당신의 차가운 메스 끝에서, 또 하나의 따뜻한 기적이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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