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럭이는 군용 막사의 천막 너머로 붉은 먼지바람이 불어옵니다. 에어컨의 차가운 기계음 대신, 가죽처럼 질긴 바람 소리와 배터리로 간신히 구동되는 휴대용 산소 포화도 측정기(Pulse Oximeter)의 단조로운 비프음만이 막사 안을 채웁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물은 소독액 냄새가 섞인 지하수입니다. 대학병원의 자동 센서 수전 대신 대동이 달린 양철 양동이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손을 씻으며, 당신은 자문합니다. 그 화려하고 오만한 하얀 성벽을 걸어 나온 것을 후회하는지.
거대 이사회의 회유와 협박, 법적 고소장으로 가득했던 서울의 겨울은 멀고도 아득합니다. 이곳은 국경 없는 의사회의 임지이자 만성적인 자원 부족에 시달리는 사막의 끝자락. 환자는 대형 트럭 전복 사고로 이송된 10세 소년입니다. 비장 파열로 인한 대량 복강 내 출혈(Hemoperitoneum). 혈압은 70에 40mmHg까지 떨어져 있고, 소년의 검은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어갑니다.
"혈액 팩이 부족합니다. 수혈 가능한 양은 겨우 두 유닛뿐이에요." 현지 간호사가 닳아빠진 마취기를 조절하며 이마의 땀을 훔칩니다. 무영등 대신 허공에 매달린 몇 개의 손전등과 당신의 머리에 얹힌 헤드램프의 가느다란 불빛이 수술 시야의 전부입니다.
대학병원의 첨단 하이브리드 수술실이었다면 순식간에 끝났을 처치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손에 쥔 것은 몇 번이나 소독해 날만 간신히 세운 10번 메스뿐입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피어나는 서늘한 긴장감이 오히려 당신의 감각을 지독할 정도로 선명하게 깨웁니다.
"자가 수혈(Autotransfusion) 준비해 주세요. 복강 내로 흘러나온 피를 거러서 다시 넣어야 합니다. 혈액 한 방울도 아끼지 마세요."
당신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단호합니다. 감정에 휩쓸려 흔들릴 여유는 없습니다. 살려야 한다는 집념은 신파적인 감상이 아닌, 오직 정확한 손놀림과 냉철한 이성에 의해서만 증명될 뿐입니다.
메스 끝이 소년의 복벽을 가르는 순간, 낡은 헤드램프의 빛줄기가 메스의 날카로운 금속 표면에 닿아 하얗게 부서집니다. 그 작은 반사광 속에서, 당신은 비치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발견합니다. 병원의 권력 암투 속에서 굳어 가던 번민과 피로는 온데간데없습니다. 오직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빛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영웅의 미소입니다.
천막의 틈새로 아프리카의 차갑고 푸른 밤하늘이 보이고, 그 위로 쏟아질 듯한 별무리가 빛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수술실. 그러나 당신이 쥔 메스 끝에서, 가장 존엄한 생명의 기적이 다시 한번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손을 뻗어 견인기(Retractor)를 잡으며, 어둠 속의 소년을 향해 나직하게 지시합니다.
"소작기(Bovie) 켜세요.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