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드디어 심판의 날이다. 대기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당신의 손끝이 바르르 떨린다. 수백 개의 외신 기자 카메라 플래시가 하얗게 대기를 찢어발기는 컴백 쇼케이스 현장. 공기마저 팽팽하게 긴장된 무대 위로, 당신이 피땀 흘려 키워낸 다섯 소년, '아스트룸(Astrum)'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시작은 정적이었다. 그러나 묵직한 베이스가 심장을 때리는 순간, 메인 댄서의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칼날처럼 정교한 손바닥 각도가 조명을 완벽하게 굴절시킨다. 신화 속 회랑처럼 펼쳐진 무대 위, 정확히 45도 각도로 꺾이는 칼군무의 동선은 흡사 한 편의 예술적인 뮤직비디오를 실시간으로 보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이어지는 메인 보컬의 입술이 열리자, 찬란한 은반지를 굴린 듯 청량하면서도 심장을 옥죄는 드라마틱한 고음이 터져 나온다. 그들의 몸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홀한 금빛의 아우라(Aura)가 온 쇼케이스장을 지배하며, 보는 이들의 시각과 청각을 완벽하게 마비시킨다. 그야말로 영혼을 매혹하는 극강의 미적 오감 체험이다.

바로 그 순간,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는 문자 그대로 초토화된다.

----------------------------------------- [커뮤니티] 핫게) 방금 아스트룸 쇼케 고음 라이브 쪼갰다;; 귀 청소 당함 - 익명1: 목소리에 에어컨 튼 줄 알았잖아 개싱그럽고 청량함;;; 인간 포카리스웨트임? - 익명2: 진짜 보컬 실력으로 대가리 빡빡 때림 ㄷㄷ 내 핏줄마저 아스트룸으로 흐른다... 춤선 손끝 각도 예수님이 재설계했냐? 물리 법칙 우시하네 ㄷㄷ - 익명3: 기획사 신입 민아 님 사옥 방향으로 하루 세 번 절한다. 저예산 티저부터 이 기획까지 진짜 덕후 맘 너무 잘 아는 천재 기획자임ㅠㅠ -----------------------------------------

실시간 트렌드는 이미 전 세계 1위를 점령하며 요동치고 있다. 무대 위에서 소년들이 마지막 아웃트로 포즈를 취하며 터져 나오는 거친 숨을 고를 때, 당신은 벅차오르는 눈물을 참아낸다.

바로 그때, 백스테이지의 무거운 정적을 깨고 품격 있는 발걸음 소리가 다가온다. 은발을 완벽하게 뒤로 넘기고 이탈리아제 맞춤 수트를 입은 사내.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거대 음반 레이블 '글로벌 소닉'의 아시아 총괄 부사장, 마이클 캐넌이다.

"경이로운 오라군요, 민아 씨. 이 아이들을 당장 미국 빌보드 메인 스트림 한가운데로 던져놓고 싶습니다."

그가 건넨 묵직한 가죽 바인더 안에는 전례 없는 초특급 독점 계약서가 번뜩이고 있다. 거대 자본의 무제한 지원이라는 달콤한 제안. 그러나 동시에 해외 매니지먼트 권한을 완전히 넘겨야 한다는 독소 조항이 당신의 파란만장한 덕질 데이터 레이더망에 걸려든다.

----------------------------------------- @astrum_world_99: 얘들아 실트 1위 와 미쳤다 글로벌 소닉 부사장 쇼케 관람석 VIP 구역에서 목격됨;;; 이거 미국 진출 각이냐? 나 지금 손발이 벌벌 떨리고 오열중임 기특기득기특ㅠㅠㅠㅠ └ RT 2.4만 ♡ 4.9만 -----------------------------------------

눈앞에 놓인 세계 거대 자본의 황금 열쇠. 이를 받아들여 단숨에 완벽한 자본의 힘으로 주류 빌보드를 정복할 것인가, 아니면 이 거대한 압력을 거부하고 아스트룸만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지키며 가시밭길 같은 독립 월드 투어를 개척할 것인가.

당신의 선택에 아스트룸과 당신의 운명이 다시 한번 뒤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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