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한의 손끝이 허공을 긋는 순간, 마치 4K UHD 화질의 홀로그램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물 흐르듯 유려하면서도 팝핑의 절제미가 살아있는 지한의 독보적인 댄스 각도는 90도 직각을 정교하게 그리며 보는 이의 뇌리에 청량하고도 날 선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메인보컬 준우가 후렴구를 지르는 찰나, 공기 중에 미세하게 흩어지는 은가루 같은 미성이 고막을 간지럽히며 숨겨진 감각을 하나하나 깨운다. 소년들의 풋풋함과 치명적인 오라가 결합한 30초짜리 챌린지 영상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트렌드를 집어삼켰다.

발매 한 달 만에 기적 같은 멜론 실시간 차트 9위 진입. 기획사 사무실에 비명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aster_world: 미친 아스테르 멜론 탑 10 입성!!!!! ㅠㅠㅠ 지한이 춤출 때 그 특유의 나른청량한 눈빛이랑 골반 각도 때문에 나 숨 안 쉬어짐... 준우 청음 깡패 보이스는 진짜 고막에 꿀 바른 수준이다 이 갓기들을 왜 이제야 알아본 거임? └ @star_shining: 이번 챌린지 기획한 사람 진짜 삼대가 번창해라 ㅠㅠ 인플루언서 제이랑 케미 터짐! └ @real_duck: 근데 제이랑 붙여놓으니까 아스테르 비주얼 오라가 그냥 제이를 압살하네 ㅋㅋㅋ 화면에서 광채가 남. --------------------------------------------------

당신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모니터를 바라보지만, 대박의 단맛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실시간 차트의 붉은 눈금처럼 타오르던 기쁨은 순식간에 차가운 비상사태로 변한다. 120만 팔로워를 거느린 챌린지 파트너, 인플루언서 '제이'의 인성 폭로와 대기실 내 갑질 녹취록이 커뮤니티 전반을 폭격하듯 강타한 것이다.

불똥은 즉각 아스테르에게로 튄다. '끼리끼리 놀았다', '뜨려고 제이의 갑질을 묵인하고 친한 척 챌린지를 찍었다'는 악의적인 낚시 글들이 삽시간에 급상승 티어를 타기 시작한다.

-------------------------------------------------- [네이트판] 아스테르 얘네도 제이 논란 터질 거 알고 빨아먹은 거 아님? (조회수: 28만) - 글쓴이: ㅇㅇ 백만 대기업 인플루언서 눈치 보느라 사장까지 나서서 굽신댔다는데 ㅋㅋㅋ 이번 챌린지 영상 보면 아스테르 애들 표정 묘하게 굳어있음. 갑질 현장 다 목격해 놓고 조회수 빨아먹으려고 둥둥 띄워준 거 진짜 역겹다. 역바이럴 냄새 심하게 나더니 결국 이렇게 터지네. - 댓글(402) └ 레알 ㅋㅋㅋ 신인인데 끼리끼리 노는 거지 뭐. 탈덕한다. └ 헐... 애들 표정 어두운 거 진짜네; 기획사는 피드백 안 올리고 뭐 함? └ 야 억까 지린다 애들이 뭔 힘이 있어서 갑질을 말려 ㅋㅋㅋ --------------------------------------------------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려대고, 사무실은 폭탄을 맞은 듯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뒤이어 들어온 부장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당신을 바라본다. "이민아 씨, 이거 어떡할 거야? 기껏 올려놓은 차트 다 터지게 생겼어! 제이 그 인간 때문에 우리 애들 이미지까지 나락 가게 생겼다고!"

일생일대의 고비다. 하지만 전생의 뼈저린 덕질 데이터와 여론 조작술을 탑재한 당신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내리며 도리어 명확해진다. 대중의 손가락질을 다른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돌파구로 치환해야 한다. 지금 아스테르가 지닌 매혹적인 아우라를, 이 위기 속에서 완벽하게 증명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당신은 떨리는 손을 움켜잡고, 모니터 화면에 띄워둔 두 가지 기획안을 내려다본다. 이 위기 속에서 여론의 판도를 뒤흔들 최선책은 어느 것인가. 당신의 입술이 천천히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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