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글몽글한 스팀밀크의 온기가 여전히 방 안 가득 포근하게 감돌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빚어낸 은빛 잔에 남아있는 카카오 음료는 한없이 평화롭고 달콤한 빛깔을 띠고 있지요. 갓 볶아낸 카카오빈의 쌉싸름하면서도 구수한 향내가 피어오르고, 그 뒤를 따라 크리미한 생크림의 부드러움과 달콤한 바닐라 빈의 향긋함이 콧방울을 부드럽게 간지럽힙니다. 입가에 가져가 한 모금 머금는 상상만으로도, 혀끝에 닿는 초콜릿의 묵직하고 실키한 단맛이 온몸의 긴장을 사르르 녹여내릴 것만 같은 매혹적인 음료입니다.
이 달콤한 마법 속에서, 날 선 날개를 움츠리고 메마른 신경질을 부리던 레온 도련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쌕쌕 고운 숨소리를 내며 깊고 단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분홍빛으로 발그레해진 포동포동한 뺨을 하얀 베개에 파묻은 모습은 세상 그 어떤 천사보다 사랑스럽습니다. 도련님은 입가에 묻은 갈색 거품이 간지러운지 웅얼거리며 잠꼬대를 속삭입니다.
"또꼬 마시써어…… 냐암, 또꼬 조아아……."
앙증맞은 앞발을 꼬물거리는 그 모습에 당신이 조용히 미소 짓는 것도 잠시, 등 뒤에서 앙칼진 비명이 고막을 찢고 들어옵니다.
"이, 이 독부 년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게냐! 도련님께 가증스러운 마법의 약을 먹여 잠재우다니!"
수석 메이드인 마르타 부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당신을 가리킵니다. 실상 그녀는 사악한 이라기보다, 마왕성이라는 혹독하고 살벌한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밤 신경부전증에 시달릴 만큼 겁이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불청객 같은 보모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감과, 지엄한 도련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목숨이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중압감이 그녀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린 것입니다.
"당장 저 여자를 쳐라! 도련님을 해치려 한 대역죄인이다!"
마르타 부인의 날카로운 외침과 동시에, 차가운 쇠비린내가 단숨에 방 안의 달콤한 향기를 헤집어 놓습니다. 콰앙! 소리와 함께 문을 부수고 들어온 이들은 푸르스름한 마력을 흘리는 시퍼런 대검을 손에 쥔 마왕성의 정예 경비병들입니다.
순식간에 사방이 서슬 퍼런 검끝으로 에워싸입니다. 목덜미에 닿을 듯 다가온 칼날의 냉기가 당신의 살결을 아릿하게 찌릅니다. 고요하고 아늑했던 영아실은 단숨에 일촉즉발의 전장으로 변하고, 경비병들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에 잠든 레온 도련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뒤척이기 시작합니다. 이 일촉즉발의 순간,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리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