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동시에 현실의 격리실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의문의 하이퍼 네스트 수석 연구원 서하진이 미소를 지으며 이현에게 다가온다.

묵직한 철문이 벽에 부딪히며 비명을 질렀다. 차가운 형광등 불빛이 서하진의 하얀 가운 위로 잘게 부서졌다. 그의 구두굽이 대리석 바닥을 찍는 소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방 안을 채웠다.

탁. 탁. 탁.

민도혁 형사가 테이블 모서리를 두드리던 박자와는 전혀 다른, 기계적이고 가차 없는 규칙성이었다.

정이현은 움직일 수 없었다. 두꺼운 가죽 스트랩이 그의 가슴과 양팔, 그리고 허벅지를 특수 휠체어에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다. 하이퍼 네스트가 설계한 이 휠체어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미세 전류가 이현의 근육을 수시로 마비시키며 무력감을 심어주는 기계적 감옥이었다.

"아직도 고집을 부리고 있구나, 이현아."

서하진이 이현의 눈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고개가 비스듬히 꺾였다.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것은 가증스러운 동정이었다. 마치 길가에 버려진, 다리가 부러진 짐승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 슬픔을 가장한 그 눈빛 아래에는 관찰자 특유의 차가운 흥분이 도사리고 있었다.

"서 박사."

민도혁이 서하진의 어깨를 가로막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이 피의자는 아직 내 관할 하에 있다. 이송 서류가 정식으로 접수될 때까지 10분의 유예 시간이 있어. 그동안은 내 취조실에서 당장 꺼져."

서하진은 민도혁의 거친 손길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민도혁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민도혁의 소매 깃을 스칠 때, 아주 미미한 마찰음이 일었다.

"민 형사님, 법이라는 건 참 편리한 핑계지요."

서하진이 나직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 환자의 뇌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대기해 주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멸하고 있으니까요."

서하진의 시선이 다시 이현에게로 향했다. 이현은 이를 악물었다. 왼쪽 손목 안쪽, 살갗 아래에 묻힌 'HN-09' 칩이 이물감과 함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민도혁이 보내던 교란 신호가 끊어지자마자, 뇌파를 옥죄는 하이퍼 네스트의 고유 주파수가 다시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한 탓이었다. 관자놀이가 터질 것처럼 욱신거렸다.

서하진이 느릿하게 다가왔다. 그의 손가락이 이현의 뺨에 닿았다. 차갑고 건조한 감촉이 피부를 타고 소름처럼 번졌다.

톡. 톡.

그가 이현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린아이의 재롱을 귀여워하는 듯한, 그러나 명백한 모욕이 담긴 손짓이었다.

"우리가 함께 완성해 나갔던 가장 완벽한 무대, 기억나니? 네가 대본을 쓰고 내가 연출을 맡았던 그 아름다운 밤들 말이야. 이제 그 다음 막이 열릴 참인데, 주인공이 이렇게 망가져 있어서야 쓰나."

이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머릿속의 이성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분노라는 감정이 결여된 이현의 내면에서도, 무언가 뜨겁고 불쾌한 덩어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을 제어하려는 서하진의 손길, 그리고 그가 뱉어내는 '공범'이라는 단어들이 이현의 뇌세포를 자극했다.

- 닥쳐.

이현은 속으로 뇌까렸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온 것은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화가 나나 보구나."

서하진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깊게 지었다.

"하지만 그 분노조차 네 뇌세포를 태우는 연료일 뿐이야. 네가 발버둥 칠수록, 네 안의 사냥개들이 더 날뛸 테니까."

사냥개들. 뇌내 탐정 인격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 순간, 이현의 머릿속에서 한로직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렸다.

[정이현, 감정에 지배당하지 마라. 인과관계를 봐라. 저자의 도발은 네 뇌압을 올려 분석 능력을 저하시키려는 저급한 수작이다.]

한로직. 오직 논리와 숫자만을 신봉하는 이현의 첫 번째 인격. 이현은 차가운 침묵 속에서 한로직의 목소리를 따라 자신의 기억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서하진의 도발. 그의 존재.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사건의 인과관계.

이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어긋나 있던 톱니바퀴가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실타래의 끝부분이 보였다.

'아니야.'

이현은 뇌내 회의실의 한로직을 향해 차갑게 일갈했다.

'한로직, 네가 틀렸어.'

[뭐라고?]

한로직의 목소리에 균열이 갔다. 언제나 완벽한 연역을 자랑하던 인격의 당혹감이 이현의 신경망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2화에서 네가 제시했던 가상 살인 현장.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각을 너는 22시 12분이라고 단정했지.'

[그것은 현장의 시강 강직도와 안구 수액의 화학적 변화, 그리고 체온 하강 곡선을 완벽하게 계산한 결과다. 오차 확률은 0.01% 이하다.]

'아니, 오차가 존재해.'

이현은 서하진의 가증스러운 얼굴을 응시하며, 머릿속으로 한로직의 연역 데이터를 통째로 펼쳐 들었다.

'네 계산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었다. 살인 현장인 거울의 방 내부의 공조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지. 그 공조기는 단순한 온도 조절 장치가 아니었어. 하이퍼 네스트의 특수 냉각 장치였지. 기화열과 공기 밀도의 미세한 변화를 계산에서 제외했더군.'

[...!]

'현실의 온도와 강직도를 대조했을 때, 실제 사망 시각은 22시 15분이다. 정확히 3분의 오차가 존재해.'

이현의 뇌 속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일어나는 듯한 충격이 지나갔다. 한로직이 침묵했다. 그의 침묵은 곧 패배의 시인이었다.

'너는 내 뇌세포를 파괴하기 위해 일부러 그 3분의 오차를 숨겼어. 내가 비논리적인 추론에 도달해 뇌압 상승으로 자멸하도록 유도한 거지. 브레인 필터의 두 번째 규칙, '추리의 근거는 현실의 단서와 100% 일치해야 한다'를 교묘하게 위반하게 만들어서 내 주격 자아를 지우려 했던 거야.'

이현의 논리적 분석이 한로직의 본질을 꿰뚫었다. 한로직의 형상이 이현의 의식 저편에서 급격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연역 데이터가 이현의 본래 자아로 무섭게 흡수되어 들어왔다. 흡수된 데이터는 이현의 머릿속을 한층 더 투명하고 날카롭게 제련했다.

뇌세포의 영구 사멸이라는 리스크를 딛고, 이현은 마침내 한로직이 쳐둔 가장 정교한 첫 번째 함정을 완벽하게 파괴해 낸 것이다.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며 이현의 시야가 기괴할 정도로 선명해졌다.

그 선명해진 시야로, 이현은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서하진을 응시했다.

서하진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이현의 뺨을 만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현의 눈에는 서하진의 우아함 뒤에 숨겨진 기묘한 일탈 행동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하진이 말을 할 때마다 오른쪽 눈꼬리가 미세하게 실룩였다. 그가 '아름다운 연출'이라는 단어를 뱉을 때, 그의 왼손 검지손가락은 허공에 반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렸다. 그리고 상대를 내려다볼 때 머리를 오른쪽으로 15도 가량 기울이는 특유의 각도.

이현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이 감각은...'

이현은 자신의 뇌 속에서 이미 통합되어 잠잠해진 두 번째 인격, '윤직관'의 데이터베이스를 강제로 가동했다.

윤직관. 본능과 직관의 화신. 살인마의 살의를 동물적으로 감지하던 미친 인격.

윤직관의 행동 템플릿과 지금 서하진이 보여주는 몸짓, 그리고 단어 선택의 주파수를 대조했다.

동기화율 99%.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서하진이 구사하는 특유의 어휘, 몸짓의 궤적, 심지어 호흡의 간격까지도 윤직관의 행동 양식과 소름 끼치도록 일치하고 있었다.

'윤직관은... 서하진을 모방해 만들어진 인격인가? 아니면 서하진 본인의 정신적 복사본이 내 뇌 속에 심어진 것인가?'

거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자신이 과거에 설계했다는 '공범의 흔적'이 단순한 알리바이 조작에 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어쩌면 자신의 뇌 속을 헤집고 다니는 탐정 인격들 자체가 서하진과의 공조 과정에서 태어난 기괴한 피조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렴풋이 걸렸다.

물리적으로는 휠체어에 묶여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심리적인 전장에서는 이제 이현이 칼자루를 쥐기 시작했다. 상대의 패를 읽어낸 타짜의 여유가 그의 눈동자에 깃들었다.

"서 박사님."

이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졌지만 극도로 침착했다.

"말을 할 때마다 오른쪽 눈꼬리가 떨리는 건, 전두엽의 미세한 기능 장애 때문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두려워하는 유아기적 불안의 잔재인가요?"

서하진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아름다운 연출'이라는 단어를 쓰실 때마다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시는데."

이현은 서하진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상대의 영혼을 해부하는 차가운 메스가 들려 있었다.

"그건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강박증의 발현입니다. 완벽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주 작은 변수 하나에도 발작을 일으키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증거지요. 당신이 설계했다는 그 '무대'라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통제 불능에 대한 공포를 숨기기 위한 유치한 장난감 성에 불과합니다."

서하진의 얼굴에서 가증스러운 미소가 완전히 증발했다.

그의 입꼬리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현의 분석은 서하진이 평생 동안 정교하게 쌓아 올린 지적 오만함의 가장 깊숙한 틈새를 정확히 찔러 들어갔다.

주변의 공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민도혁 형사조차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기류에 침을 삼켰다. 이현은 휠체어에 구속된 상태에서도, 오직 혀끝과 눈빛만으로 거대한 침략자를 사정없이 난도질하고 있었다.

"정이현."

서하진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그의 눈빛에서 방금 전의 가식적인 동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날 것 그대로의 살의와, 기괴한 소유욕만이 번들거렸다.

"너는 참... 끝까지 재미있는 장난감이구나."

서하진이 천천히 이현의 귓가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숨결이 이현의 귓바퀴를 적셨다. 뱀이 살갗을 쓸고 지나가는 듯한 불쾌한 온도가 느껴졌다.

그가 이현의 귀에 대고 아주 낮고, 오직 이현에게만 들릴 정도의 크기로 속삭였다.

"인격들이 슬슬 네 뇌를 완전히 파먹고 있을 텐데. 기한은 앞으로 사흘이야."

서하진이 몸을 일으키며 다시 오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흘 뒤, 네가 스스로 네 머리에 총구를 겨누게 될지, 아니면 내 발아래에서 완전히 굴복하게 될지... 아주 기대가 되는구나."

그는 미련 없이 뒤를 돌아 취조실 밖으로 걸어 나갔. 철문이 닫히는 육중한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이현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의 왼쪽 손목을 꽉 쥐었다.

사흘. 그것이 그에게 허락된 마지막 시간이었다.

뇌 속 깊은 곳에서, 아직 굴복시키지 못한 마지막 인격 '백행동'이 붉은 눈을 빛내며 이현의 이성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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