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윤직관의 손가락 끝이 닿은 거울 벽면이 피 흘리듯이 붉게 물들며, 거울 표면에 새로운 숨겨진 수칙들이 피로 새겨진다.

붉은 액체는 유리 표면의 미세한 균열을 타고 흘러내려 잔인한 단어들을 조합해 나갔다. 그것은 이현의 망막을 태워 버릴 듯이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브레인 필터' 가동 규칙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예외 조항이었다.

[수칙 제0조: 주격 자아의 붕괴가 90%를 초과할 시, 탐정 인격은 주격의 동의 없이도 뇌세포의 잔여 지분을 강제 징수할 수 있다. 단, 가상현실 내의 '시간적 왜곡'이 증명될 경우 본 조항은 일시적으로 유예된다.]

이현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거울에 새겨진 붉은 문장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갔다.

뇌수를 타고 흐르는 차가운 감각은 현실의 취조실과 의식의 심연을 강제로 이어 붙이고 있었다. 손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선혈이 테이블 위의 기소 서류를 적시는 감각이 너무도 생생했다. 코끝을 찌르는 쇠 냄새는 단순히 육체의 비강에서 흐르는 피 때문이 아니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소리였다.

"시간적 왜곡이라……."

이현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맞은편에 앉은 민도혁 형사의 눈썹이 꿈틀거렸으나, 이현은 이미 현실의 시공간 너머에 도달해 있었다.

거울의 방 사방에 서 있는 세 개의 형상들. 윤직관은 기괴하게 뒤틀린 웃음을 지은 채 거울 벽에 이마를 대고 있었고, 덩치 큰 백행동은 주먹을 움켜쥔 채 이현의 목덜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단정한 양복 차림의 한로직이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얼음처럼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의미한 발악이군, 정이현."

한로직의 목소리가 뇌내 회의소의 허공을 찢었다.

"수칙 제0조의 기동은 수학적 필연이다. 네 뇌세포의 지분은 이미 우리에게 넘어오고 있어. 네가 윤직관을 억누르며 소모한 에너지는 고스란히 우리의 양분이 되었지. 이제 순순히 육체의 제어권을 넘겨라."

"그럴까."

이현은 거울의 방 중앙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갔다. 발밑에서 깨진 유리 파편들이 서글픈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탐정들의 적의가 피부를 바늘처럼 찔러댔다. 초이성주의자로 다듬어진 그의 정신방어벽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틈을 타, 세 인격의 기운이 사방에서 조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현의 시선은 한로직의 발끝, 그가 제시했던 가상 살인 현장의 재구성 데이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로직. 네가 설계한 그 완벽한 연역적 추리 말이야."

"내 추리에 오류는 없다. 확률은 100%를 가리키고 있지."

"아니, 99.9%다."

이현의 목소리가 기하학적인 콘크리트 벽면에 부딪혀 차갑게 공명했다.

"네가 제시했던 가상 살인 현장의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각은 22시 12분이었지. 주변 온도와 시반의 진행 상태, 그리고 위 내용물의 소화 정도를 정밀하게 역산한 값이라며 의기양양하게 떠들었어."

한로직의 미간에 아주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그의 이성적인 데이터망에 미세한 노이즈가 발생하는 신호였다.

"그 계산은 완벽했다. 오차 범위는 제로에 수렴해."

"틀렸어. 3분의 오차가 존재하지."

이현이 검지를 들어 한로직의 미간을 가리켰다.

"피해자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고급 기계식 시계의 초침이 멈춘 시각은 22시 15분이었다. 너는 그것을 범인이 사후에 조작한 가짜 알리바이의 흔적이라고 단정했지. 피해자의 체온 저하 속도가 방 안의 에어컨 작동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야."

"그것이 논리적이다."

"그 에어컨의 필터를 확인해 봤나?"

이현의 질문에 거울의 방 전체가 일시적으로 얼어붙었다.

"에어컨 필터에 쌓인 먼지의 두께와 토출구의 풍향 조절 날개에 낀 이물질의 상태로 보아, 당시 기기는 설정 온도보다 실제 작동 효율이 12%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즉, 방 안의 공기가 식어가는 속도는 네가 계산한 수식보다 정확히 3분 더 느리게 진행되었다는 뜻이지. 실제 사망 시각은 22시 12분이 아니라, 시계가 멈춘 22시 15분이 맞다."

한로직의 형상이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연역적 수식들로 이루어진 가상의 데이터 스크린들이 붉은색 경고등을 켜며 사방에서 깨져 나갔다.

"이건…… 단순한 계산 착오가 아니야."

이현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의 눈빛은 맹수를 사냥하는 사냥꾼의 그것처럼 집요하고 냉정했다.

"너는 내가 이 오차를 간파하지 못하고 22시 12분이라는 가짜 전제를 참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랐겠지. 규칙에 기댄 추리가 현실의 단서와 불일치하는 순간, 내 뇌세포가 무더기로 사멸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내 파멸을 유도해 육체를 독차지하려는 교묘한 덫이었어."

"크윽……!"

한로직이 머리를 감싸 쥐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안경 너머로 수많은 이진법 코드들이 흘러내리며 소멸해 갔다. 2화에서부터 심어둔 그의 음험한 기만이 마침내 이현의 초이성적인 분석력 앞에 완전히 발가벗겨진 순간이었다.

[시스템 메시지: 탐정 인격 '한로직'의 추리 오류가 증명되었습니다. 등가교환 법칙에 의거, 한로직의 연역 데이터 지분 40%가 주격 자아에게 강제 흡수됩니다.]

뇌 속을 관통하는 강렬한 전류에 이현은 이를 악물었다. 한로직이 소유하고 있던 방대한 범죄 심리 데이터와 논리적 연역 능력이 그의 회색질 속으로 무자비하게 이식되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고통의 뒤를 이어 찾아온 것은 극상의 해방감이었다. 한로직의 기만이 무너지면서 거울 벽면에 새겨진 붉은 수칙들의 빛이 급격히 바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거친 욕설과 함께 백행동이 거울 벽을 뚫고 현실의 경계로 손을 뻗어 왔다. 그의 우람한 팔근육이 이현의 목덜미를 조여들 듯 다가왔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윤직관 역시 미친 듯이 웃으며 이현의 발목을 붙잡았다.

"끝까지 버티시겠다? 하지만 여긴 우리 놀이터야!"

"너도 결국 공범이잖아, 안 그래? 같이 지옥으로 가자고, 이현아!"

세 인격이 일제히 폭주하며 이현의 정신 신경망을 사정없이 찢어 발기기 시작했다. 주격 자아의 붕괴율이 급격히 상승하며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뇌세포가 사멸해 가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한 이명으로 변해 전해졌다. 극단적인 위기이자, 영혼이 완전히 분해되기 직전의 찰나였다.

이현은 비틀거리며 거울 벽면에 몸을 부딪쳤다.

쨍그랑!

강한 충격에 거울 벽의 한 모퉁이가 부서져 내렸다. 사방으로 튀는 거울 파편들. 그 깨진 파편의 이면, 거친 콘크리트 벽면의 틈새에 아주 오래되어 바랜 필적 하나가 드러났다.

이현의 시선이 그 필적에 가닿았다. 그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가장 완벽한 동조는 적조차 나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남겨둔 옛 필체였다. 기억을 잃기 전, 스스로가 이 정신적 수용소를 구축하고 미끼를 던지기 전에 새겨둔 진짜 자기 구제용 진실의 단서였다.

그 문장을 마주하는 순간, 이현의 뇌리 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그가 과거에 설계해 둔 '브레인 필터'의 숨겨진 트리거였다.

"내가 너희를 만든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이현이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 위로 차갑기 그지없는 이성이 빛났다.

"너희는 나를 갉아먹는 기생충들이 아니야. 내가 진범의 눈을 속이기 위해 내 뇌 속에 가두어 둔, 가장 완벽한 연극의 배우들일 뿐이지."

그 깨달음이 이현의 이성을 완벽한 제어 상태로 돌려놓았다. 그가 과거에 남겨둔 진짜 수칙, 즉 자신조차 속여야만 완성되는 완벽한 알리바이의 실체가 드러나자, 폭주하던 세 인격의 손길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들의 적대감은 이현이 쳐놓은 더 거대한 논리의 감옥 속에 완전히 봉쇄되어 버렸다.

"아직은 나올 때가 아니다."

이현이 나지막이 읊조리며 손을 뻗어 거울의 파편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뇌내 정신 수용소가 급격히 가라앉으며 현실의 감각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정이현!"

현실의 취조실. 민도혁이 이현의 어깨를 거칠게 흔들고 있었다.

이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HN-09-YIHYEON'의 처방전 서류가 놓여 있었고, 그의 왼쪽 손목의 흉터는 붉은 열기를 뿜어내며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신 차려. 수작 부리지 말고 대답해. 네가 설계자야?"

민도혁의 집요한 눈동자가 이현을 꿰뚫을 듯 노려보았다. 이현은 테이블 위의 서류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민도혁이 아까부터 반복하던 모스 부호식 비트 패턴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박자였다.

"민 형사님."

이현이 피 묻은 입술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갑고 단단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당신이 들고 있는 그 처방전의 마스터키 서명. 그건 내가 나를 가두기 위해 남겨둔 마지막 안전장치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설계자는 따로 있지요."

민도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무슨……."

철컥.

그때, 철저히 통제되어 있어야 할 격리실의 무거운 철문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요란하게 열렸다.

차가운 복도의 공기가 취조실 내부로 들이닥쳤다. 구두 굽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울리며 다가왔다. 하얀 가운을 걸친 채, 기이할 정도로 단정하고 오만한 미소를 지은 사내.

하이퍼 네스트의 수석 연구원이자, 이현의 기억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진짜 '설계자'.

서하진이 천천히 걸어 들어와 정이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가학적인 유희가 취조실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려 버렸다.

"안녕, 이현아. 네 뇌 속에서 벌어지는 연극은 아직 재미있니?"

서하진의 목소리는 취조실의 콘크리트 벽면에 부딪혀 가라앉지 않고, 기괴할 정도로 선명하게 이현의 귓가를 맴돌았다.

민도혁의 턱뼈가 단단하게 맞물렸다. 의자가 거칠게 뒤로 밀리는 소리와 함께 민도혁이 이현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허리춤의 가죽 홀스터 근처로 내려앉았다.

"여긴 일선 경찰의 공식 취조실이다, 서 박사. 허가받지 않은 민간 의료진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당장 나가."

"민 형사님, 법이라는 건 참 편리한 방패막이군요."

서하진은 민도혁의 경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들고 있던 은색 태블릿의 화면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 방패가 하이퍼 네스트의 상위 특별 조항 앞에서도 버텨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정이현 씨는 단순한 살인 용의자가 아니라, 우리 재단이 국가 안보 특별 위원회와 체결한 '뇌신경 범죄 예방 프로젝트'의 핵심 관리 대상입니다."

서하진이 태블릿 화면을 민도혁에게 내보였다. 청와대 직인이 찍힌 붉은색 전자 문서가 푸르스름한 광채를 내뿜었다. 민도혁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손가락 끝이 허리춤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허공에 굳어 버렸다. 거대한 권력의 압박 앞에서 그가 느낀 무력감이 등 뒤의 이현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대치 상황 속에서, 이현의 뇌는 폭발적인 속도로 회전을 시작했다.

한로직의 데이터 지분 40%가 그의 신경망에 완벽히 이식된 덕분이었다. 이현의 시야에 잡히는 서하진의 모든 움직임이 기하학적인 수치와 확률로 분해되어 뇌리에 박혔다.

'걸음걸이의 보폭 62cm. 오른쪽 어깨가 왼쪽보다 1.5도 처져 있음. 최근 48시간 이내에 극도의 피로를 유발하는 정밀 작업을 수행했음. 소매 끝에 묻은 미세한 백색 흔적은 하이퍼 네스트 지하 3층 격리 구역에서만 사용하는 특수 소독제 계열.'

이현은 서하진이 입은 의사 가운의 두 번째 단추 바로 아랫부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곳에 아주 미세하게 번진 푸른색 잉크 자국이 있었다.

'만년필 잉크. 펠리칸 에델슈타인 탄자나이트 색상. 내가 과거 심리 분석가 시절 즐겨 쓰던 바로 그 제품이다.'

기억의 심연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졌다.

거울의 방 이면에서 보았던 나의 옛 필적. 그리고 서하진이 몸에 묻히고 온 나의 흔적들. 이 모든 것이 끊어질 듯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서하진이 천천히 이현에게 다가왔다. 그의 구두 굽이 바닥을 딛을 때마다, 이현의 왼쪽 손목에 새겨진 'HN-09' 흉터가 미친 듯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고열이 아니었다. 살갗 아래에 이식된 마이크로칩이 서하진이 지닌 무선 송신기와 반응하며 기괴한 진동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이현아, 왜 그렇게 날 무섭게 보니?"

서하진이 상체를 숙였다. 그에게서 풍기는 차가운 알코올 냄새와 특유의 달콤한 향수 향이 이현의 호흡기를 파고들었다.

"네가 뇌 속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난 다 보고 있어. 윤직관을 굴복시키고, 방금 전에는 한로직의 데이터까지 집어삼켰더구나. 아주 훌륭한 생존 본능이야. 내가 설계한 '브레인 필터'의 한계를 매번 뛰어넘어 주니 관찰하는 맛이 있어."

이현은 입안에 고인 핏물을 삼키며 그를 쏘아보았다.

"내가 설계한 필터라고?"

"그래. 인정하기 싫겠지만, 네 뇌세포의 70%는 이미 내 손으로 재구성된 상태란다. 네가 스스로를 '설계자'의 공범이라고 의심하는 그 기억들조차, 실은 내가 아주 정교하게 조각해서 네 전두엽에 밀어 넣은 것일 수도 있지."

서하진이 이현의 뺨을 차가운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네가 진짜 공범인지, 아니면 내 완벽한 살인 예술의 희생양인지…… 그 진실을 밝히고 싶다면, 내 구역으로 돌아와야지 않겠니?"

그 순간, 이현은 민도혁 형사의 손가락을 주목했다.

민도혁은 서하진의 등장에 굳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오른손 검지는 여전히 테이블 모서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탁. 타탁. 탁.

그 비트 패턴을 인지하는 순간, 이현의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한로직의 연역 능력이 주입된 뇌가 그 소리를 실시간으로 해독해 냈다. 그것은 단순한 모스 부호가 아니었다. 하이퍼 네스트의 고유 보안 주파수를 교란하고, 이현의 손목에 박힌 'HN-09' 칩의 동기화를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특수 우회 신호였다.

'민도혁은 알고 있다.'

민도혁은 단순한 열혈 형사가 아니었다. 그는 이현의 손목에 새겨진 낙인의 의미를 알고 있었고, 서하진의 통제로부터 이현의 의식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서 박사."

민도혁이 마침내 손가락을 멈추며 서하진의 어깨를 억세게 움켜쥐었다.

"이 피의자는 아직 내 관할 하에 있다. 이송 서류가 정식으로 접수될 때까지 10분의 유예 시간이 있어. 그동안은 내 취조실에서 당장 꺼져."

서하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이 민도혁의 손을 거쳐, 이현의 차가운 눈동자로 옮겨갔다.

"10분이라……."

서하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걸린 오만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좋습니다. 10분의 마지막 자비를 드리지요. 하지만 이현아, 기억해라."

서하진이 취조실 문턱에 서서 이현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손가락 끝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네가 가진 세 명의 탐정들 중 마지막 하나인 '백행동'이 완전히 깨어나는 순간, 네 뇌는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어. 10분 뒤에 네가 마주할 현실이 진짜 현실일지, 아니면 내가 준비한 또 다른 거울의 방일지 기대해도 좋아."

철문이 요란한 쇠소리를 내며 닫혔다.

적막이 내려앉은 취조실 안에서, 이현은 자신의 왼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살갗 아래에서 요동치는 칩의 진동이 서서히 잦아들었지만, 뇌 속 깊은 곳에서 거친 숨소리가 다시금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굴복시키지 못한 마지막 탐정 인격.

가장 폭력적이고 실천적인 본능을 지닌 백행동이, 이현의 얇아진 정신의 경계선을 향해 발톱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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