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를 짓누르는 손아귀는 차가운 납덩이 같았다. 거울 뒤에서 우직한 체격의 인격 백행동이 야구배트를 끌며 걸어 나오더니 이현의 가상 목덜미를 휘어잡았다. 사방을 둘러싼 거울 벽면이 쩍쩍 갈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들이치는 냉기가 기도를 틀어막았다. 이현은 바닥에 무릎을 꿇린 채 고개를 꺾었다. 시야가 붉게 충혈되고 뇌압을 측정하는 가상의 계기판이 경고음도 없이 붉은빛으로 타올랐다.
"이현아. 네 뇌세포가 몇 개나 남았는지 세어본 적 있냐?"
백행동의 껄렁한 목소리가 고막을 짓이겼다. 그의 다른 손에 들린 알루미늄 배트가 바닥을 긁으며 거친 쇳소리를 냈다. 기괴한 진동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거울에 비친 그의 거대한 실루엣은 이현의 목을 부러뜨릴 것처럼 단단하게 조여들고 있었다. 목구멍에서 컥, 하는 젖은 기침이 터져 나왔다. 뇌 속에서 실시간으로 산소가 희박해지는 감각이 온몸의 신경망을 타고 흐른다. 가상의 고통은 가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등가교환의 법칙. 여기서 숨이 끊어지면, 현실의 정이현 역시 뇌사 상태로 영원히 잠들게 될 터였다.
머릿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현은 붉게 물들어가는 시야 너머로 백행동의 움직임을 응시했다.
그가 배트를 쥐고 있는 오른손, 어깨의 비대칭적인 기울기, 그리고 이현의 목덜미를 누르는 왼손의 미세한 떨림.
이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고통으로 허덕이는 와중에도 그의 뇌세포는 사물의 이면을 뜯어내고 있었다. 심리 분석가의 칼날은 스스로의 무의식 속에서 태어난 괴물에게도 예외 없이 작동했다.
"오른쪽 어깨가... 지나치게 내려앉아 있군."
이현이 짓눌린 목구멍 사이로 쇳소리를 뱉었다. 목덜미를 쥔 손아귀에 힘이 더해졌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이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배트를 휘두르려는 게 아니야, 넌. 그 자세... 아주 익숙하군. 누군가에게 사지를 붙잡힌 채, 위에서 내리꽂히는 타격을 고스란히 버텨내야 했던 방어 기제다."
백행동의 신형이 미세하게 굳었다.
"그 투박하고 거친 공격 행동. 그건 네가 강해서가 아니야. 과거에 네가... 아니, 내 뇌가 진범에게 당했던 고문의 트라우마를 필사적으로 재현하고 있을 뿐이지. 가해자의 흉내를 내지 않으면, 피해자로 남을 수밖에 없으니까."
"닥쳐."
백행동이 이빨을 드러냈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단순한 살의가 아니었다. 짓밟힌 들개처럼 거칠고 비열한 방어 본능. 이현은 그 내면의 균열을 정확히 포착했다. 프로파일링은 타인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 아니다. 상대가 감추고 싶어 하는 가장 추악한 심연의 지도를 강제로 펼쳐 보이는 잔인한 난도질이다.
"때려 봐."
이현이 피 묻은 침을 바닥에 뱉으며 미소 지었다.
"네 배트가 내 머리를 날리기 전에, 네 그 나약한 방어 기제가 먼저 붕괴할 테니까. 넌 날 죽일 수 없어, 백행동. 넌 단지 내 안에서 가장 겁에 질린 조각에 불과하니까."
백행동의 손이 떨렸다. 그가 쥔 알루미늄 배트가 허공에서 기괴한 궤적을 그리며 멈췄다. 폭력의 화신이라 자처하던 인격이, 단 몇 마디의 분석만으로 그 본질을 들켜버린 채 얼어붙은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백행동이 이현의 목덜미를 거칠게 내던지듯 놓아주었다. 이현은 바닥을 짚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기침이 터져 나올 때마다 거울 바닥에 붉은 파편들이 투두둑 떨어졌다.
이현은 가쁜 숨을 고르며 바닥을 짚은 백행동의 손목을 보았다.
백행동이 입고 있는 가상의 환자복 소매가 거친 움직임 탓에 위로 밀려 올라가 있었다. 그 아래로 드러난 단단한 손목 피부. 그곳에 기괴한 형태로 일그러진 흉터가 보였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수술 자국. 그리고 그 흉터의 중심부에 레이저로 지져진 듯한 선명한 푸른빛의 글자가 박혀 있었다.
**HN-09**
이현의 동공이 강하게 수축했다.
그것은 단순한 가상의 상처가 아니었다. 이현 자신의 가상 신체 손목에도 똑같은 위치에 존재하던 흉터였다. 하지만 'HN-09'라는 저 선명한 낙인은 무엇인가.
'HN'. 하이퍼 네스트(Hyper-Nest).
저 기호는 하이퍼 네스트의 하부 비밀 실험 구역에서 자행되는 강제 뇌개조 수용 대상자들에게 부여되는 고유 낙인이었다. 이현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해일이 일었다. 이 인격은 단순히 이현의 뇌가 만들어낸 가상의 방어 기제가 아니었다. 실제 하이퍼 네스트의 실험 과정을 공유하고 있는, 혹은 그 상흔을 고스란히 나누어 가진 존재들이었다.
"너... 그 흉터."
이현이 손가락을 뻗으려 하자, 백행동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매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의 얼굴에 스친 것은 분노나 경멸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은폐되어야 할 치부를 들킨 자의 깊은 수치심과 공포였다.
"신경 끄시지, 정이현."
백행동이 침을 뱉으며 배트를 어깨에 걸쳤다. 그의 거친 말투에 짙은 피로감이 묻어났다.
"네가 똑똑한 척 굴어봐야 결국 이 뇌 속에서 썩어갈 운명인 건 똑같아. 네가 설계했던 그 빌어먹을 알리바이가 널 어디로 이끌었는지 똑똑히 기억해 내는 게 좋을 거다."
"내가 설계했다고?"
"그래. 넌 아주 훌륭한 공범이었지. 하이퍼 네스트가 널 왜 이 지하 깊은 곳에 가뒀겠냐? 네 머릿속에 든 그 알리바이의 공식만 있으면, 어떤 살인마도 완전무결한 성자가 될 수 있으니까."
백행동의 목소리에는 기이한 연대감과 동시에 뼈를 깎는 듯한 불신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는 이현을 증오하면서도, 이현의 파멸이 곧 자신의 소멸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허공에서 어지럽게 엉키던 그 찰나, 거울의 방 사방 벽면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웅하는 저주파의 굉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기압이 급격히 떨어지며 이현의 귀에서 붉은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렸다. 사방의 거울이 기하학적인 각도로 뒤틀리더니, 바닥이 수직으로 솟구치고 천장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급격한 중력 왜곡이었다.
"젠장, 최면제의 농도가 올라가고 있어!"
백행동이 비틀거리며 소리쳤다. 그의 형체가 먼지처럼 흐려지기 시작했다.
"현실의 네 육체에 약물이 주입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이현, 버텨라. 여기서 의식을 놓치면 내 주도권이고 뭐고 우리 전부 저 깊은 심해로 가라앉는 거야!"
바닥이 사선으로 기울며 이현의 몸이 굴러갔다. 깨진 거울 조각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렸다. 날카로운 유리가 가상의 뺨을 스치며 차가운 고통을 남겼다. 이현은 이를 악물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중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시야가 회전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들이 수백 개로 분열되어 회전 목마처럼 돌았다.
'가장 완벽한 동조는...'
문득 거울 파편의 이면에 새겨져 있던 자신의 옛 필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적조차 나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현은 회전하는 어둠 속에서 손을 뻗었다. 백행동의 폭력적인 주도권 찬탈 시도는 꺾였다. 프로파일링으로 그의 트라우마를 후벼 파 제압한 결과였다. 하지만 안도할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뇌내 수용소의 붕괴는 곧 현실로의 강제 송환을 의미했다.
사방의 거울이 일제히 빛을 발하며 깨어졌다. 하얀 백색 소음이 고막을 가득 채웠다. 지독한 소독약 냄새와 차가운 철의 질감이 가상의 감각을 밀어내고 이현의 실제 피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허파 가득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었다.
"허억!"
이현은 눈을 크게 뜨며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몸이 무거웠다. 가슴을 가로지르는 두꺼운 가죽 벨트가 그의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사방은 어두웠다. 거울의 방이 아니었다.
사방을 둘러싼 것은 불투명한 유리가 아니라, 녹슬고 차가운 강철 쇠창살이었다. 그리고 그 쇠창살 너머, 푸르스름한 형광등 아래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가죽 재킷을 걸친 사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현을 내려다보는 그의 손에는 차갑게 빛나는 금속 배지가 들려 있었다.
경찰 배지.
그리고 사내의 입술이 열렸다.
"드디어 눈을 떴군, 정이현."
민도혁 형사였다. 그의 눈빛은 굶주린 야수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민도혁의 거친 가죽 재킷에서 축축한 밤안개와 싸구려 담배 냄새가 훅 끼쳐왔다. 가상의 거울 방이 무너지며 남긴 지독한 이명 속에서도, 그가 쇠창살을 붙잡은 손가락으로 만들어내는 기묘한 박자는 이현의 고막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딱. 따닥. 딱.
불규칙해 보이는 그 타격음이 고막을 통과하는 순간, 이현의 후두부 아래쪽 뇌간이 가늘게 떨렸다. 뇌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미세한 신경망이 강제로 전류를 흘려보내듯 찌릿한 통증이 일었다. 하이퍼 네스트가 주입한 신경안정제의 장벽을 뚫고, 흐릿하던 시야가 일순간 비정상적일 정도로 또렷해졌다.
"……민 형사."
갈라진 목소리가 젖은 모래처럼 긁혀 나왔다. 이현은 가슴을 압박하는 가죽 벨트를 풀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손끝은 여전히 감각이 무뎌 제멋대로 허공을 더듬을 뿐이었다.
민도혁은 대답 대신 창살 틈새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단단한 손아귀가 이현의 환자복 깃을 움켜쥐고 제 쪽으로 거칠게 잡아당겼다. 쇠창살에 이현의 이마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미온의 액체가 시야를 반쯤 가렸다.
"정신 차려, 정이현. 네가 여기서 잠들어 있는 동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똑똑히 봐."
민도혁이 다른 쪽 손에 쥐고 있던 젖은 비닐봉투를 이현의 머리맡으로 던졌다. 툭, 하고 무거운 낙하음과 함께 떨어진 봉투 속에는 핏물이 채 마르지 않은 폴라로이드 사진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이현의 시선이 사진으로 향했다. 뇌내 탐정 회의소가 다시 기동하기도 전에, 그의 시각 피질이 이미지를 강제로 해체하고 분석했다.
어두운 지하실. 쇠사슬에 묶인 채 의자에 고정된 남자의 사체. 머리는 뒤로 꺾여 있고, 오른쪽 어깨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아래를 향해 무너져 있었다. 조금 전 이현이 거울의 방에서 백행동의 멱살을 잡고 간파해 냈던, 그 고문의 상흔과 완전히 일치하는 기하학적 구도였다.
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는 듯한 오한이 척추를 타고 내려앉았다.
"마포구 아현동 432-10."
민도혁이 쇠창살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낮게 읊조렸다. 그의 굵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바래 있었다.
"네가 무의식중에 흘렸던 그 주소에서 방금 수습된 시체다. 피해자는 하이퍼 네스트의 전임 연구원. 그리고……."
민도혁이 사진 한 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피해자의 뒤틀린 오른손 손목을 확대한 컷이었다. 살점이 짓겨 나간 그 가느다란 손목 가죽 위에, 검붉은 핏자국 사이로 선명하게 드러난 문양이 있었다.
**HN-09**
이현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흔들렸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잔인하게 뭉개지며 뇌압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등가교환의 법칙이 머릿속에서 경고 기적을 울렸다.
'내 뇌 속의 흉터가, 왜 현실의 사체에 낙인찍혀 있는 거지?'
"이건 네가 설계한 알리바이가 아니야."
민도혁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이건 경고장이다. 서하진이 너한테 보내는 초대장이라고. 네가 공범으로서 짜 맞추었던 그 완벽한 퍼즐 조각이, 이제 네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되어 돌아온 거야."
그때였다. 이현의 머릿속 사각지대에서, 차갑고 건조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논리의 인격, 한로직의 목소리였다. 백행동의 폭주가 가라앉자마자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그가 차가운 연역의 칼날을 들이밀었다.
[저 형사가 가져온 사체의 사망 추정 시각. 그리고 혈흔의 건조 상태를 봐. 저 사진 속 혈액의 점도는 22시 12분에 멈춘 온도 저하 공식과 맞지 않아. 미세하게 어긋나 있어. 딱 3분의 오차.]
이현은 숨을 멈췄다.
한로직이 제시했던 가상 현장의 오차와, 민도혁이 가져온 실제 사건 현장의 오차가 소름 끼치도록 맞물려 들어가고 있었다. 한로직은 이현의 뇌세포를 파괴하기 위해 일부러 거짓 단서를 주입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현실의 진행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민 형사."
이현이 피가 섞인 침을 삼키며 민도혁을 쳐다보았다. 그의 초이성적인 눈빛이 다시 차갑게 침잠했다.
"당신, 이 사진을 어디서 구했지? 아현동 현장에 먼저 도착한 건 경찰이 아니야."
민도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쇠창살을 두드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딱. 따닥. 딱.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정이현. 내가 직접……."
"거짓말 마."
이현이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경찰의 공식 수사관이 현장을 보존했다면 사진의 구도가 이렇게 사적인 시선에서 나올 수 없어. 이건 관찰자의 시선이다. 살인마가 자신의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찍은 완벽한 각도지. 당신…… 서하진을 만났군?"
민도혁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고, 가죽 재킷 아래로 숨겨둔 그의 진짜 표정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복도 끝에서 붉은 경보등이 회전하며 사이렌 소리가 지하 3층의 정적을 찢어발겼다. 하이퍼 네스트의 보안 요원들이 들이닥치는 발소리가 멀리서부터 울려 퍼졌다.
민도혁은 창살 틈새로 이현의 가슴팍에 작은 금속 열쇠 하나를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가 몸을 돌리기 직전, 이현의 귀에 대고 가장 잔혹한 진실을 속삭였다.
"서하진이 전해달라더군. 결승선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네 진짜 뇌를 가지고 나오라고 말이야."
쇠창살 너머로 민도혁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격리실의 이중 철문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것은 보안 요원들의 실루엣이 아니었다. 짙은 안개와 함께, 거울의 방에서 보았던 깨진 유리 조각들이 현실의 바닥을 굴러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