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만약 승인 버튼을 그대로 눌렀다면 꼼짝없이 숨겨진 오차로 인해 뇌세포 전체가 영구 사멸할 뻔했음을 자각한 순간, 귓가에 뇌 손상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

고막을 찌르고 들어온 금속성 소음이 뇌척수액을 타고 척추 아래까지 찌릿하게 타고 내려갔다. 뇌압이 급격히 상승하며 시야가 붉은빛으로 번졌다. 거울의 방 사방 벽면이 붉은 액체처럼 출렁였고, 바닥에 엎드린 이현의 손끝에서부터 지독한 마비감이 올라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포가 얼어붙는 감각이었다. 외부에서 주입되는 신경안정제 혹은 최면 유도제의 농도가 한계치를 넘어선 것이 분명했다. 하이퍼 네스트의 감시자들은 지금 이현의 뇌파가 폭주하는 것을 감지하고 강제적인 셧다운을 시도하고 있었다.

"아하하! 이현아, 뇌가 타들어 가는 냄새 안 나? 아주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윤직관이 거울 벽면 너머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키득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흥분으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이현은 이빨을 악물었다. 턱관절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뇌 안쪽에서 공명했다. 가상 신체의 왼쪽 손목, 붉게 부풀어 오른 흉터와 함께 각인된 'HN-09'라는 글자가 불에 달군 인장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이퍼 네스트가 가한 강제 개조의 흔적이 뇌 신경의 붕괴와 동기화되어 실시간으로 통증을 송신하고 있었다.

여기서 의식을 놓치면 끝이다. 뇌세포의 30%가 영구 사멸하는 순간, 이 방을 지배하는 세 개의 인격 중 하나가 이현의 껍데기를 쓰고 현실로 걸어 나가게 된다.

이현은 고개를 들어 한로직을 노려보았다.

한로직은 여전히 부러진 안경다리를 손가락 끝으로 누른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이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세한 호선은 승리를 확신하는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틀렸어, 로직."

이현은 붉은 침을 바닥에 뱉어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내 연역은 무결합니다, 정이현 씨. 사망 시각은 22시 12분. 시체의 직장 온도가 증명하는 인과율의 한계선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한로직의 목소리는 잔인할 정도로 정갈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하지만 숫자를 수집하는 주체가 의도적인 누락을 저질렀다면 어떨까."

이현이 거울 바닥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릎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뇌내 공간에 무겁게 울렸다. 그는 한로직이 가상 공간에 재현해 놓았던 사건 현장, 그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누워 있는 가상의 시체를 가리켰다.

"너는 시체의 직장 온도 하강률을 계산할 때, 환경 변수를 철저히 고정값으로 설정했다. 실내 온도 18도. 습도 45%. 공기의 흐름은 무풍에 가까운 상태."

"논리적 추론을 위한 표준 규격입니다. 현장 감식 보고서에도 적시된 수치죠."

"그래, '감식반이 도착했을 당시'의 수치겠지."

이현의 손가락이 시체의 목덜미를 지나, 천장 구석의 어두운 음영을 향했다. 그곳에는 가상으로 구현된 낡은 에어컨 송풍구가 매달려 있었다.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간인 22시 전후, 이 방의 온도가 정말로 18도였을까? 아니, 그렇지 않아. 백행동."

이현의 부름에,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상황을 관망하던 거구의 백행동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의 거친 눈매가 이현을 향했다.

"왜 불러, 이 새끼야. 머리통이 깨지기 일보 직전인데 말장난할 시간 있어?"

"백행동, 네가 분석한 피해자의 미세 근육 긴장 상태와 의복의 뒤틀림을 다시 복기해 봐. 피해자의 셔츠 깃이 왼쪽으로 쏠려 있었지? 그리고 목덜미의 피부 표면에는 미세한 닭살, 즉 입모근 수축 현상이 국소적으로 강하게 나타나 있었다."

백행동이 눈을 좁혔다.

"그랬지. 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것처럼 왼쪽 목덜미만 유독 수축해 있었어. 난 그냥 죽기 직전의 공포 반응인 줄 알았는데?"

"공포 반응은 온몸에 균일하게 나타난다. 특정 부위만 국소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그건 '물리적인 대류 현상'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이현이 한 발짝 걸어가 한로직의 코앞에 섰다. 뇌 손상 경고음이 이현의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때렸지만, 그의 이성은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건 현장의 폐쇄회로 시스템과 전력 사용 기록을 확인했다면 삼 분의 오차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겠지. 로직, 너는 알고 있었어.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직전인 22시 05분부터 22시 15분까지, 이 방의 에어컨 송풍구는 강풍 모드로 가동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로직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돋아났다.

"그게 사망 시각과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에어컨 바람이 조금 불었다고 해서 시체의 중심 온도가 급격히 변하진 않습니다. 열전도 법칙에 따르면――"

"변하지. 시체의 전신 온도는 천천히 식겠지만, '대류에 의한 국소적 열손실'은 공식을 완전히 뒤흔든다. 특히 에어컨 바람이 직접 닿는 목덜미와 경동맥 부위는 일반적인 열전도보다 3배 빠르게 온도가 내려간다. 감식반이 직장 온도를 측정했을 때, 그들은 이미 에어컨이 꺼진 지 한 시간이 지난 뒤의 평균값을 측정했을 뿐이다."

이현의 목소리가 거울의 방 전체를 얼려버릴 듯 차갑게 내리꽂혔다.

"풍속 2.5m/s의 차가운 바람이 경부의 열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 이로 인해 초기 열 하강 곡선에 왜곡이 발생했지. 에어컨 송풍구의 강제 가동 기록을 대입해 열역학 공식을 보정하면, 실제 사망 시각은 네가 주장한 22시 12분이 아니라 정확히 22시 09분이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윤직관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딱 멈췄다. 백행동은 턱을 괴고 한로직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고, 한로직의 얼굴은 가차 없이 일그러졌다.

"3분의 오차. 너는 내가 그 미세한 시간 차이를 무시하고 네가 제시한 22시 12분의 알리바이를 승인하게 만들려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가짜 알리바이를 추론의 기초로 삼는 순간, 브레인 필터의 제2규칙인 '현실 단서와의 100% 일치'가 깨지면서 내 뇌세포는 사멸의 길을 걸었겠지."

이현이 한로직의 멱살을 잡듯 다가갔다.

"너는 나를 구하려 온 탐정이 아니야. 내 파멸을 설계하러 온 포식자지."

한로직의 입가에 머물던 차가운 유도형 미소가 완전히 유리 파편처럼 깨져 나갔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불복종의 눈빛이 검푸른 독기처럼 피어올랐다. 논리의 화신이라 자부하던 인격이, 자신이 누락시킨 단 하나의 '현실적 변수'에 의해 완벽하게 역추격당한 것이다.

"정이현……!"

한로직이 이를 갈며 손을 뻗으려 한 순간, 거울의 방 천장에서 찬란한 청록색 빛이 쏟아져 내렸다.

[ 시스템 경고: 왜곡된 변수 감지 및 수정 완료. ] [ 추론 정합성: 100% 일치. ] [ 뇌압 안정화 단계 진입. 시냅스 붕괴율 0.2% 이하로 급감. ]

귀를 찢던 이명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관자놀이를 조이던 무거운 중력이 씻은 듯이 걷히며, 가빠졌던 이현의 호흡이 제자리를 찾았다. 바닥의 붉은 액체들이 다시 단단한 거울 벽면으로 굳어졌다.

동시에 이현의 머릿속 깊은 심연에서, 굳게 닫혀 있던 철문 하나가 삐걱거리며 열리는 감각이 전해졌다. 기억의 사멸을 막아낸 대가이자, 시스템이 제공하는 등가교환의 보상이었다.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과 함께 텍스트가 떠올랐다.

'마포구 아현동 432-10, 지하 1층.'

현실의 주소였다. 하이퍼 네스트가 은폐하려 했던 '피해자 명부'의 첫 번째 현실 좌표. 이현이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연쇄살인의 알리바이를 설계해 주었던, 혹은 그가 구하려 했던 누군가의 흔적이 남겨진 곳이었다.

"하, 겨우 목숨은 건졌군."

백행동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에는 이현의 생존에 대한 안도감 따위는 없었다. 그저 먹잇감이 쉽게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사냥꾼의 아쉬움만이 묻어났다.

이현은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손목을 보았다. 'HN-09'라는 낙인은 여전히 붉게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더 이상 타는 듯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첫 번째 인격의 반역을 완벽하게 제압한 순간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한로직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한로직은 거울 벽면 깊숙한 곳으로 밀려나, 형체가 흐릿해진 채 이현을 증오 서린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주도권을 빼앗긴 인격의 비참한 최후였다.

"첫 번째 판은 내 승리다."

이현이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 방의 룰은 단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았다.

스으으으으.

거울 바닥에서부터 기분 나쁜 금속 마찰음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이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제 무언가가 거울 표면을 긁으며 다가오는 소리였다.

이현의 시선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거울 벽면 중 하나가 마치 진흙처럼 흐물거리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 일그러진 거울 너머의 어둠 속에서, 우직하고 거대한 체격의 실루엣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백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현의 옆에 서 있는 백행동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서 걸어 나오는 백행동의 손에는 타르 같은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는 알루미늄 야구배트가 들려 있었다. 금속 배트의 끝부분이 거울 바닥을 쓸며 기괴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치이이익, 치이익.

"어이, 이현아."

옆에 서 있던 진짜 백행동이 돌연 기괴하게 미소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거울 속에서 걸어 나온 또 다른 백행동이 이현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지독한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풍겼다.

"로직 그 샌님 새끼가 대가리 굴리다 처박히는 꼴 잘 봤다."

거울 속에서 나온 백행동이 배트를 어깨에 걸치며 이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짐승의 그것처럼 번들거렸다.

"하지만 난 그 새끼처럼 말로 안 해."

쾅!

그가 배트를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거울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충격파가 이현의 가상 신체를 뒤흔들었다.

"이제 몸뚱이를 내놓을 시간이다, 정이현."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행동의 거친 손이 번개처럼 뻗어 나와 이현의 가상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숨이 막히는 압도적인 완력이 이현의 목을 부러뜨릴 듯 조여왔다.

목을 조여오는 악력은 단순한 물리적인 힘이 아니었다. 그것은 척수액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타르처럼, 이현의 신경망 구석구석을 마비시키며 타고 내려갔다.

허파가 텅 빈 가죽 자루처럼 쪼그라들었다. 기도가 막히자 뇌로 가는 산소 공급이 차단되며 시야 가장자리부터 빠른 속도로 암전이 시작되었다. 거울의 방 천장에 매달린 붉은 경고등이 비명 같은 고주파음을 내지르며 다시 요동쳤다.

"어때? 로직의 말장난보다 훨씬 직관적이지?"

목을 움켜쥔 백행동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거친 피부 모공 하나하나에서 풍기는 비린내가 이현의 후각을 마비시켰다.

이현은 버둥거리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를 까딱이는 것조차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상태였지만, 그의 눈동자만큼은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백행동의 이목구비를 샅샅이 해체하고 있었다.

숨이 막히는 고통의 심연 속에서, 경계선도 없이 투명한 기억의 파편이 이현의 시야를 덮쳤다.

...사방이 조용한 하얀 병실이었다. 볕이 잘 드는 창가 옆, 초록색 카디건을 입은 중년의 간병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사과를 깎고 있었다. 서걱, 서걱. 얇게 깎여 나간 붉은 껍질이 끊어지지 않고 아래로 늘어졌다. 그녀의 시선은 텔레비전 화면의 홈쇼핑 채널에 고정되어 있었고, 손안의 과도만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아주 평범하고, 지루할 정도로 일상적인 풍경.

하지만 그 일상적인 칼질 속에서 간병인의 오른쪽 어깨는 필요 이상으로 굳어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둥근 과육을 파고들 때마다, 그녀의 엄지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강한 압력이 가해졌다. 그것은 과일을 깎는 동작이 아니었다. 언제든 방 안의 누군가를 찌를 수 있도록 신체 중심을 뒤로 무너뜨린, 극도의 방어적 긴장 상태였다.

그녀가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은 병상에 누워 미동도 하지 않던, 기억을 잃기 전의 정이현 자신이었다.

"틀렸어."

이현은 기도가 막힌 와중에도 턱뼈를 움직여 쇳소리를 내뱉었다.

"뭐라고?"

"너는... 지금 연기하고 있어, 백행동."

이현의 젖은 눈동자가 백행동의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 관절로 향했다.

"내 목을 짓누르는 네 손아귀 힘은 강해 보이지만, 네 전거근과 승모근은 전혀 수축하지 않았어. 진짜로 사람의 목뼈를 부러뜨릴 때 필요한 신체 역학적 체중 이동이... 배제되어 있지."

백행동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 힘의 본질은 물리적인 타격이 아니다. 외부에서 내 현실 육체에 주입되고 있는 '신경근 차단제'의 부작용을, 네가 내 무의식을 빌려 교묘하게 신체적 폭력으로 치환해 보여주고 있을 뿐이지."

이현은 가슴을 짓누르는 공포의 무게를 이성으로 가차 없이 찢어발겼다. 목을 움켜쥔 백행동의 손이 실재하는 가죽이 아니라, 뇌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확신이 서자마자 거짓말처럼 기도가 열렸다.

"내 뇌가 네 폭력이라는 연출에 속아 공포를 느끼는 순간, 심장마비로 현실의 육체가 정지한다. 그게 네가 설계한 진짜 함정이다."

이현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백행동을 마주 보았다. 그는 자신을 조이는 손길을 뿌리치려 발버둥 치는 대신, 오히려 목의 힘을 완전히 빼고 백행동의 가슴팍을 향해 상체를 파고들었다. 반작용이 사라진 백행동의 신체가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뒤로 비틀거렸다.

"젠장, 이 지독한 새끼가……."

백행동이 이빨을 드러내며 야구배트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현은 이미 그보다 한 걸음 더 앞서 있었다. 뇌압이 떨어지며 활성화된 뇌내 탐정 회의소의 분석 속도가 300%로 가속했다. 이현은 백행동의 발바닥이 거울 바닥에 닿는 면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마찰음의 주파수를 실시간으로 계산해 냈다.

"네가 딛고 선 거울 바닥, 그 균열의 시작점은 네 발밑이 아니다."

이현의 시선이 백행동의 뒤편, 조금 전 머릿속에 떠올랐던 현실의 주소 '마포구 아현동 432-10'이 새겨진 암흑의 틈새를 향했다.

"그 주소는 단순히 피해자의 명부가 있는 곳이 아니야. 그렇지?"

백행동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의 얼굴에서 거친 광기가 가시고, 기괴한 침묵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곳은... 내가 과거에 설계했던 알리바이의 '진짜 찌꺼기'가 남겨진 장소다. 하이퍼 네스트가 나를 이 밀실에 가두고 지우려 했던, 내 공범자로서의 흔적."

이현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밀실의 공기를 가르자, 백행동의 등 뒤에 서 있던 또 다른 백행동의 형체가 안개처럼 흐려지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서 걸어 나왔던 폭력의 화신은, 이현이 공포를 극복하고 진실의 꼬리를 잡는 순간 그 존재 의의를 잃고 흩어지는 무력한 데이터 조각에 불과했다.

"하하, 제법이네, 정이현."

백행동이 배트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깡그랑,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배트의 소음이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점차 현실의 소리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 주소로 가는 길을 형사들이 먼저 찾으면 어떻게 될까?"

백행동의 마지막 속삭임이 고막을 파고든 순간, 거울의 방 사방 벽면이 거대하게 요동치며 깨어져 나갔다.

와장창!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광음이 쏟아져 내렸다. 가상의 정신 수용소가 붕괴하고, 지독한 소독약 냄새와 차가운 쇠붙이의 감각이 이현의 진짜 피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현실이었다.

이현은 젖은 눈을 천천히 떴다. 사방이 불투명한 특수 유리로 가로막힌 하이퍼 네스트의 지하 병동 격리실. 그의 팔에는 여전히 두꺼운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고, 모니터의 바이탈 신호는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리고 격리실 유리창 너머, 어두운 복도 끝에서 둔탁한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뚜벅. 뚜벅.

이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하이퍼 네스트의 의사 가운을 입은 정체불명의 사내가 아니었다. 가죽 재킷을 걸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경비원들의 쓰러진 신체를 넘어오는 사내.

형사, 민도혁이었다.

그가 유리창을 주먹으로 거칠게 두드리며 이현을 응시했다. 그의 손가락 끝이 유리를 규칙적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탁. 타닥. 탁.

그것은 단순한 노크 소리가 아니었다. 이현의 심층 무의식을 뒤흔드는, 낯설지 않은 모스 부호식 비트 패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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