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정이현의 눈동자가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듯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비웃기 시작했다.
왼손이 먼저 반응했다. 이현은 제어권을 잃고 제멋대로 구부러지기 시작하는 오른손목을 왼손으로 낚아챘다.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악력은 살갗을 파고들어 손끝이 하얗게 죽을 때까지 더해졌다. 거울 속의 그 기괴한 미소는 이현이 자신의 피부를 짓이겨 피가 통하지 않게 만들 때쯤에야 비로소 서서히 일그러지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숨을 쉴 때마다 허파 밑바닥에서부터 비린내가 올라왔다. 방금 전 뇌세포 사멸 경고가 남긴 후유증이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린 붉은 선이 턱끝에서 맺혔다가 바닥의 거울 위로 툭, 떨어졌다.
"하하, 하하핫! 거 봐, 내가 뭐랬어? 이 인간은 자기 목을 졸라서라도 우리를 가둬둘 위인이라니까?"
윤직관의 목소리가 깨진 거울 조각들의 틈새에서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사방에서 반사되는 그의 얼굴들이 일제히 킥킥거리며 이현을 조롱했다.
"시끄러워."
이현은 목구멍을 찢고 나오는 쇳소리를 뱉어내며 거울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다리가 가볍게 떨렸으나, 그는 결코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전신에 힘을 주어 꼿꼿이 섰다.
"로직. 가상 현장을 띄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울의 방 사방을 가득 채우던 어둠이 기하학적인 격자무늬로 쪼개지며 변형되기 시작했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면 위로 하얀 타일들이 덧씌워지고,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눅눅한 왁스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하이퍼 네스트 요양 병동 3층 복도.'
가상으로 재구축된 공간은 지나치게 사실적이었다. 천장의 형광등 하나가 수명이 다해 가며 미세하게 지이잉 소리를 내며 깜빡였고, 그 차가운 불빛 아래로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남자의 몸은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머리맡에서부터 시작된 검붉은 액체가 타일 바닥의 이음새를 따라 느리게 번져 나가고 있었다.
한로직이 그 시체 옆에 서 있었다. 그의 무결한 안경 렌즈 위로 흰색의 데이터 스트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추론의 군더더기를 걷어내지."
한로직의 목소리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건조하고 엄격했다.
"피해자 김민우. 사인은 후두부 함몰 골절로 인한 지주막하 출혈. 바닥에 고인 혈액의 응고 상태를 분석했다. 점도와 피브린 그물망의 형성 밀도 84.2%. 흉부의 사후 강직 진행도와 직장 온도의 하강 곡선을 대입한 결과, 사망 시각은 정확히 22시 12분이다."
한로직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이현의 시야 허공에 푸른빛으로 빛나는 가상의 확인 창이 떠올랐다.
[ 가상 추리 승인: 사망 시각 22시 12분 ] [ 승인 대기 중... ]
"정이현. 뇌압을 승인해라. 이 타임라인을 확정 짓는 순간, 우측 전두엽의 산소 포화도가 정상 범주로 회복된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너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매초 10만 개 이상의 신경 회로가 불타 없어지고 있으니까."
한로직의 다그침은 논리적이었고, 그렇기에 거부하기 힘든 압박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이현의 귓가에는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찌릿한 통증이 두통의 형태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 경고: 주격 자아의 산소 포화도 82% 돌파. ] [ 뇌세포 영구 사멸 위험 지속 중. ]
하지만 이현은 뻗으려던 손을 멈췄다. 허공에 멈춰 선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방금 전, 현실의 감옥 외벽 너머에서 들려왔던 간호사들의 가벼운 잡담이 이현의 뇌수 속에서 역류했다. '딱 3시 정각이네.' '정말이네? 3분이나 빠르잖아.'
3분의 오차.
아주 일상적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제3자의 행동 사이에 숨겨진 그 단서가 이현의 이성을 날카롭게 긁었다.
하이퍼 네스트 요양 병동의 모든 시스템은 중앙 서버의 표준시를 따른다. 하지만 가상 현장 속 벽면에 걸린 아날로그시계는 22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로직."
이현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대입한 혈액 응고 데이터의 기준 온도는 몇 도지?"
한로직이 불쾌하다는 듯 안경테를 밀어 올렸다.
"병동 내부의 표준 설정 온도인 20도다. 하이퍼 네스트의 항온 시스템은 오차 범위 0.5도 이내로 유지되지. 비논리적인 의심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거 봐, 내가 뭐랬어! 이 형님은 의심이 병이라니까?"
거울 너머에서 윤직관이 상체를 불쑥 내밀며 소리쳤다. 그의 눈동자는 흥분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냥 누르면 편해지잖아, 이현아! 응? 저 파란 버튼만 누르면 머리가 시원해질 텐데, 왜 스스로 사서 고생을 해? 네 머리가 다 타버리면 그땐 내가 이 몸을 아주 재밌게 써 줄 텐데!"
"닥쳐, 직관."
백행동이 거친 발소리를 내며 이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억센 손이 이현의 어깨를 으스러질 듯 움켜쥐었다.
"이 자식아, 잴 거 없어! 내 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 산소가 부족해서 손가락 끝에 감각이 무뎌진다고! 저 안경잡이 새끼가 맞다잖아. 로직이 숫자로 틀린 적 있어? 빨리 승인하고 이 지옥 같은 두통부터 끝내!"
어깨를 누르는 백행동의 완력은 지독할 정도로 실재했다. 이현은 어깨뼈가 내려앉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의 시체, 그리고 바닥의 혈흔을 더 깊게 응시했다.
'가장 완벽한 동조는 적조차 나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잃어버린 기억의 심연 속에서 문득 떠오른 필적 하나가 이현의 척추를 관통했다.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과거의 자기 자신이 남겨둔 경고였다.
탐정 인격들의 조언을 맹신하지 말 것. 그들은 나를 돕는 조력자가 아니라, 내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는 포식자들이다.
이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비린 피 맛이 혀끝을 적셨다.
"로직. 너는 의도적으로 한 가지 변수를 누락시켰어."
"뭐?"
한로직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굳어졌다. 안경 렌즈 위를 흐르던 데이터 스트림이 일시적으로 정지했다.
"하이퍼 네스트 요양 병동 3층은 중증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는 구역이다. 매일 밤 22시부터 22시 30분까지는 환자들의 과잉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공조 시스템의 환기량이 극대화되지. 그 과정에서 복도의 온도는 일시적으로 17.5도까지 떨어진다."
이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발밑의 가상 타일이 그의 걸음에 맞춰 파르르 떨렸다.
"온도가 2.5도 낮아지면 피브린의 중합 반응 속도는 느려진다. 즉, 네가 계산한 22시 12분이라는 시간은... 실제 온도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가짜 타임라인이야."
"그건 미세한 오차일 뿐이다. 전체 추론의 뼈대를 흔들지 못해."
한로직이 억지로 목소리를 평정하게 유지하려 애썼지만, 그의 왼쪽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이현의 행동 분석 본능이 놓치지 않았다.
"아니, 결정적인 오차지."
이현의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가상 복도의 벽면을 울렸다.
"그리고 하나 더. 간호사들의 교대 시간은 22시 정각이다. 하지만 오늘 밤, 중앙 제어실의 마스터 클록에 3분의 동기화 오차가 발생했어. 실제 시간보다 3분 빠르게 설정되어 있었지. 즉, 네가 수집한 모든 디지털 로그, 피해자의 마지막 약물 투여 기록과 CCTV 타임스탬프는 모두 '3분 빠르게' 기록되었다."
이현은 허공에 떠 있는 푸른색 확인 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실제 온도의 하강으로 인한 혈액 응고 지연 시간 3분. 그리고 시스템 클록의 오차 3분. 이 두 가지가 겹치면서 네가 제시한 가상 현장은 완벽하게 왜곡되었다. 피해자 김민우가 사망한 진짜 시각은 22시 12분이 아니라..."
이현의 손가락이 푸른 창의 '승인' 버튼이 아닌, 그 옆의 '기각 및 재분석' 버튼을 강하게 내리눌렀다.
"22시 09분이다."
콰아아앙-!
마치 유리창이 동시에 깨지는 듯한 굉음이 이현의 뇌리를 강타했다.
그와 동시에 푸른색 확인 창이 붉은색 파편으로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튀었다. 가상으로 구축되어 있던 하이퍼 네스트의 복도가 지진을 만난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하얀 타일들이 벗겨지고 형광등이 폭발하며 연기를 뿜어냈다.
"윽...!"
한로직이 짧은 신음을 뱉으며 뒤로 비틀거렸다. 그의 안경 한쪽 알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가더니, 그 틈새로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의 논리가 완벽하게 깨졌음을 증명하는 시각적 붕괴였다.
"미친... 진짜였잖아!"
백행동이 이현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때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하하! 아하하하하! 로직이 틀렸어! 그 잘난 천재 새끼가 아주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고!"
윤직관은 거울 속에서 구르며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에는 이현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한로직의 오만이 박살 난 것에 대한 가학적인 희열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이현은 숨을 몰아쉬며 한로직을 똑바로 응시했다.
"너는 알고 있었어, 로직."
"......"
한로직은 대답하지 않았다. 깨진 안경 너머의 눈동자에는 평소의 오만함 대신, 깊이를 알 수 없는 차가운 살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내가 이 오차를 잡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승인 버튼을 눌렀다면, 나의 뇌는 잘못된 추론의 대가로 30% 이상의 뇌세포를 영구히 상실했을 터였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가장 먼저 잠식하려 했던 건... 바로 너였겠지."
이현의 지적에 한로직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부러진 안경다리를 손가락 끝으로 고쳐 쓰며,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을 뿐이다.
"영리하군, 정이현. 하지만 이 방에서 나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거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가상의 공간이 완전히 소멸하고 다시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밀실이 나타났다.
그러나 안도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삐----------
이현의 고막을 찢을 듯한 이명이 밀실 전체를 가득 채웠다. 이전의 경고음과는 궤를 달리하는, 날카롭고 기계적인 마찰음이었다.
이현은 급격히 가빠지는 호흡을 억누르며 자신의 가상 신체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언제 새겨졌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수술 흉터와 함께, 붉게 충혈된 글자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HN-09'
그리고 그의 시야 한구석에서,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 위험: 동기화 해제 거부 반응 발생. ] [ 외부로부터 강제적인 신경 차단 신호 유입 중. ] [ 뇌 손상 경고: 시냅스 붕괴율 급증. ]
"이건... 무슨..."
이현의 몸이 급격하게 무거워졌다. 마치 중력이 수십 배로 늘어난 것처럼, 무릎이 바닥을 향해 꺾였다. 거울 바닥에 닿은 그의 손끝이 제어할 수 없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하하... 이현아, 조심해. 밖에서 누군가 네 뇌에 아주 독한 약을 주사하고 있나 봐."
윤직관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의식 너머에서 속삭였다.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