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현실의 취조실을 채운 공기는 비릿한 철분 냄새를 풍겼다. 목덜미를 뚫고 들어온 차가운 금속 바늘이 신경안정제를 혈관 속으로 뿜어내던 그 찰나, 이현의 고막을 두드린 것은 보안 요원들의 거친 숨소리도, 민도혁 형사의 찢어지는 고함도 아니었다.

타닥, 타타탁, 탁.

민도혁의 뭉툭한 손가락이 이현의 손등 위에서 만들어 내던 기묘한 불규칙성. 그것은 가상의 밀실, '거울의 방'을 뒤흔드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밀려들었다. 뇌파의 동기화 주파수를 단숨에 교란하는 물리적 노이즈였다.

사방을 메우고 있던 회색빛 안개가 비정상적으로 요동쳤다. 거울 벽면들이 마치 전압이 불량한 브라운관처럼 지지직거리며 좌우로 찢어졌다.

"이, 이건…… 무슨 주파수지? 왜 연산 제어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거야!"

완벽한 수식을 자처하던 한로직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이성적인 가면이 떨어져 나갔다. 수치화할 수 없는 영역의 잡음이 뇌내 공간을 침범하자, 그의 기하학적인 형체가 찰나의 순간 균열을 일으키며 흐트러졌다. 한로직은 경악에 찬 눈으로 자신의 손가락끝이 픽셀 단위로 깨져 나가는 것을 응시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완전히 고개를 돌리기도 전이었다.

서늘한 유리 질감이 그의 등덜미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현이 쥔 깨진 거울 파편이었다. 예리하게 각이 진 모서리가 한로직의 목덜미 가상 피부를 지그시 누르자, 그 틈새로 붉은 피 대신 이진법의 푸른 광학 데이터가 수액처럼 배어 나왔다.

"움직이지 마."

이현의 목소리는 현실의 진정제 약물에 절어 있는 육체와 달리, 소름 끼치도록 명징하고 차가웠다. 감정이 소거된 자의 목소리에는 자비도, 망설임도 섞여 들지 않는다.

한로직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목덜미에 닿은 거울 조각에서 전해지는 파괴의 감각이 그의 연산 회로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정이현…… 미쳤군. 나를 지우면 네 뇌의 합리적 연역 기능도 영구히 사멸한다. 너는 평생 짐승 같은 직관과 폭력적인 충동만 남은 폐인이 될 거야."

"그건 내가 한로직이라는 인격을 완전히 파괴했을 때의 이야기지."

이현은 거울 파편을 쥔 손가락에 힘을 더 주었다. 유리의 날카로운 몌가 한로직의 목뼈 부근에 도달하자, 거울의 방 전체가 웅웅거리는 이명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내가 너를 '소멸'시키는 게 아니라, 내 지배 하에 '통합'하는 거라면 어떨까?"

"통합이라고? 하! 불가능해. 주격 자아가 무너진 상태에서 부격 인격을 역합병하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네가 가르쳐 주지 않은 거겠지. 네가 내 머릿속에 끊임없이 주입했던 가짜 단서들처럼 말이야."

이현의 눈동자가 깊은 심해처럼 검게 가라앉았다. 그는 한로직의 귀밑에 거울 파편을 고정해 둔 채,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곳에는 가상 신체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돋아난 세로 방향의 칼자국과, 그 위를 덮은 정체불명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HN-09**

"처음에는 이 흉터가 단순한 자해의 흔적인 줄 알았다."

이현의 시선이 한로직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꿰뚫었다.

"하지만 아니야. 현실의 민도혁 형사가 내뱉었던 단서들과 내 무의식의 데이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하나의 정답이 도출되더군. HN-09. 이건 하이퍼 네스트(Hyper-Nest) 하부 비밀 실험 구역에서 자행된 강제 뇌개조 수용 대상자의 낙인이다. 그리고 너희 세 명의 탐정 인격은 내 자아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방어 기제가 아니야."

한로직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찰나의 안구 운동을 이현은 놓치지 않았다. 백행동의 미세 근육 분석 데이터가 이현의 사고 회로에서 실시간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너희는 처음부터 하이퍼 네스트가 내 뇌에 심어놓은, 내 기억을 통제하고 자아를 야금야금 갉아먹기 위해 설계된 기생성 보안 프로그램이다. 내가 진실에 도달하려 할 때마다 뇌세포를 파괴하는 규칙을 들이밀며 나를 주저앉혔지. 안 그래?"

"억지 부리지 마라, 정이현! 연역은 오직 사실만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사실? 그렇다면 말해봐라."

이현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네가 제시했던 가상 살인 현장.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각을 너는 분명 '22시 12분'이라고 확정 지었지. 그리고 그 완벽한 타임라인을 기반으로 나를 살인마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치명적인 오차가 존재해. 정확히 '3분'의 오차."

한로직의 가상 신체가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기하학적 수식의 장막들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피해자가 사망한 방의 공조 온도는 당시 1.2도 급감해 있었다. 온도가 내려가면 시체의 사후 강직과 시반의 형성 속도가 지연되지. 너는 그 온도 변화를 연산 공식에서 고의로 배제했다. 왜 그랬을까?"

"그건…… 단순한 주변 환경의 변수일 뿐……."

"아니. 너는 완벽한 논리를 추구하는 인격이다. 그런 네가 온도에 따른 시체 냉각 공식을 빠뜨렸을 리가 없어. 너는 일부러 그 3분의 오차를 남겨둔 거다. 내가 스스로 그 오차를 추적하다가, '내가 서하진의 알리바이를 완성하기 위해 온도를 조작했다'는 과거의 기억에 도달하도록 유도한 거지."

이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것은 승리를 확신한 포식자의 미소였다.

"내가 내 입으로 '내가 조작했다'고 자백하는 순간, 내 뇌 속의 브레인 필터 제3수칙이 발동하니까. '자신이 공범자라는 사실을 외부인에게 들키지 말 것.' 너는 내가 현실의 민도혁 형사 앞에서 스스로 파멸의 주문을 외우도록 덫을 놓은 거다. 내 뇌세포를 완전히 박살 내고 내 육체를 차지하기 위해서!"

"크, 윽……!"

한로직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존재 기반인 '논리적 무결성'이 이현의 역추리에 의해 완전히 깨져버린 순간이었다. 추론의 인과관계가 붕괴하자, 한로직을 지탱하던 정신적 에너지가 급격히 와해되기 시작했다.

"인정해라, 한로직. 네가 저지른 모든 거짓 가설은 결국 나를 죽이기 위한 독약이었다. 하지만 그 독약이 이제는 너를 삼키는 칼날이 될 거다."

이현은 가상의 손목에 힘을 주며, 손목에 새겨진 'HN-09' 낙인을 한로직의 가슴팍에 밀착시켰다.

"브레인 필터 제1수칙 가동. 탐정 인격의 조언을 배제한다. 제2수칙 가동. 추리의 근거는 현실의 단서와 일치한다. 네가 숨긴 3분의 오차는 현실의 온도 변화와 일치하지 않으므로, 네 인격의 통제권을 박탈한다."

"아아아악!"

한로직이 마침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성적인 신사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계가 과열되어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고주파의 소음이었다.

한로직의 형체가 기하학적인 파편들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사각형과 삼각형의 반투명한 유리 조각 같은 데이터 파편들이 이현의 손목 흉터 속으로 사정없이 빨려 들어갔다.

현실에서의 고통이 이현의 뇌를 강타했다. 전두엽이 달구어진 인두로 지져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세포 하나하나가 찢겨 나가고 새로운 회로가 강제로 납땜질당하는 감각이었다. 이현은 전신을 타고 흐르는 극심한 경련을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하지만 고통의 이면에 존재하는 것은 형용할 수 없는 극상의 희열이었다.

사악하게 군림하며 자신을 정신적 수용소에 가두려던 천재 인격 한 명을, 제 손으로 찢어발겨 자신의 뇌세포 기능 향상 부품으로 정교하게 우겨넣는 잔혹한 이성의 쾌감.

한로직이 가지고 있던 방대한 연산 데이터와 입체적 사건 재구성 능력이 이현의 기억 중추에 고스란히 이식되었다. 뇌하수체에서 터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이 신경망을 타고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경고: 뇌세포 일시적 과부하.] [연산 속도 300% 돌파…… 350%…… 400% 육박.] [인격 '한로직'의 연역 필터 통합 완료.]

그 순간, 이현의 머릿속을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사상적 안개가 순식간에 걷혔다.

현실 세계의 감각들이 이현의 뇌로 밀려들었다. 0.1초의 찰나 동안, 취조실 안의 모든 정보가 수십 개의 갈래로 나뉘어 고속 연산 장치를 거친 것처럼 명징하게 분류되기 시작했다.

보안 요원들이 주입한 진정제의 화학 성분(프로포폴 계열의 마취 유도제와 염화나트륨 수용액의 배합 비율), 민도혁 형사의 가쁜 호흡 주기(분당 28회, 극도의 불안과 분노 상태), 취조실 구석에 설치된 몰래카메라의 렌즈 각도(좌측 상단 15도 편향)까지 모든 것이 숫자가 되어 뇌리에 박혔다.

이현의 감겨 있던 눈이 번쩍 떠졌다.

현실의 취조실이었다. 보안 요원들이 당황한 기색으로 이현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고, 주사기는 이미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민도혁이 요원 한 명의 멱살을 잡고 문 밖으로 밀쳐내던 참이었다.

"정이현!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사람 잡을 일 있어? 당장 손 떼!"

이현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눈빛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혼돈과 유약함은 온데간데없고, 기계처럼 차갑고 정교하게 빛나는 오만한 안광만이 서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왼손을 들어 올렸다. 강제 진정제가 투입된 목덜미의 통증은 이미 한로직의 연산 데이터를 제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뇌압에 묻혀 느껴지지도 않았다.

"민 형사님."

이현의 목소리가 취조실의 공기를 얼려버릴 듯 건조하게 울렸다.

"소란 피울 것 없습니다. 주입된 약물은 이미 내 대사 작용으로 분해되고 있으니까요."

민도혁이 멱살을 쥔 손을 멈추고 멍하니 이현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발작을 일으키며 자백에 가까운 헛소리를 중얼거리던 사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모순이 그곳에 있었다.

"너…… 괜찮은 거냐?"

"덕분에 뇌 속의 잡음이 깨끗하게 청소되었습니다."

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가지를 가볍게 털었다. 그의 시선이 깨진 거울 조각들이 뒹구는 무의식의 심연으로 잠시 향했다. 한로직이 사라진 거울의 방 한구석, 깨진 파편 이면에 남겨진 자신의 옛 필적이 한층 더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가장 완벽한 동조는 적조차 나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그 필적의 진의가, 한로직의 데이터가 머릿속에서 완전히 조립되는 순간 기어이 풀려나왔다.

동시에, 이현의 심층 기억 중추 깊은 곳에 단단히 걸려 있던 빗장 하나가 거칠게 부서져 내렸다. 암호화되어 있던 과거의 기억 폴더가 강제로 해제되며,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이미지가 이현의 망막 위에 직접 투사되었다.

그것은 어두운 지하 조명 아래, 제어 장치의 온도를 조작하기 위해 마우스를 클릭하던 자신의 손가락이었다.

그리고 모니터 화면에 띄워져 있던 문서의 제목.

**[서하진 알리바이 수립 및 밀실 트릭 설계서]**

작성자 이름 석 자가 이현의 영혼을 얼려버릴 듯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정이현.*

과거의 자신은 서하진의 알리바이를 조작해 준 단순한 공범이 아니었다. 그 잔혹한 밀실 살인의 모든 판을 짜고 기획한, 진짜 '설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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