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적한 백색 점액이 기도를 틀어막았다.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의 온도는 기이할 정도로 미지근했다. 현실의 취조실, 철제 의자에 구속되어 있던 정이현의 척추가 순식간에 활처럼 팽팽하게 꺾였다. 등가교환의 법칙이 청구한 피의 대가였다.
삐이이이-.
벽면에 부착된 하이퍼 네스트의 뇌파 모니터가 비명을 질렀다. 붉은색 발광 다이오드가 뿜어내는 빛이 취조실의 회색 벽면을 선혈처럼 물들였다. 머릿속 신경망들이 한꺼번에 타들어 가는 초열지옥 속에서, 이현의 의식은 급격히 하강했다.
"정이현! 이봐, 정이현! 눈 떠, 이 새끼야!"
민도혁 형사의 거친 손길이 이현의 어깨를 흔들었다. 수갑을 풀기 위해 열쇠를 찾는 쇳소리가 귀를 찔렀지만, 그 소리조차 점차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먹먹하게 멀어졌다.
의식의 심연, 거울의 방.
백행동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부하가 검은 타르의 형상으로 바닥에서부터 차올랐다. 발목을 적신 어둠은 순식간에 무릎을 넘어 허리까지 잠식해 들어왔다. 뇌세포의 영구 사멸을 알리는 붉은 경고등이 가상 공간의 하늘을 가득 메웠다.
두통이 관자놀이를 망치로 내리치는 것 같았다. 이현은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유리 바닥에 손을 짚었지만, 손바닥에 닿는 것은 오직 타르 같은 어둠의 끈적거림뿐이었다.
이대로 자아의 주도권을 뺏기는가.
뇌해석 엔진이 사멸해 가는 뉴런들의 비명을 실시간으로 인코딩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음에도, 이현의 초이성적 뇌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진동을 수학적 기호로 분해하여 머릿속에 펼쳐놓았다.
위이이이잉-.
주파수 440헤르츠의 비상 사이렌. 하이퍼 네스트의 내부 경보 장치다.
타닥, 타다닥, 탁.
구두굽이 콘크리트 바닥을 불규칙하게 때리는 마찰음. 발자국의 보폭과 속도로 보아 무장한 보안 요원 네 명이다. 그들이 지하 3층 격리 구역을 향해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지하 3층, 환자 뇌파 폭주! 강제 진정제 준비해!"
가청 주파수의 한계를 넘어선 외부의 외침이 이현의 머릿속에서 기하학적인 선과 텍스트로 변환되었다. 뇌세포가 파괴되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이현은 생존 수칙 둘째 조항을 상기했다.
'추리의 근거는 반드시 현실의 단서와 일치해야 한다.'
외부의 소음은 현실이다. 지금 이곳을 덮쳐오는 보안 요원들의 움직임은 명백한 물리적 사실이다. 이현은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으며 그 소리들의 궤적을 뇌내 지도 위에 그려 넣었다.
바로 그때였다.
쿵!
현실의 취조실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이현의 오른손에 묵직하고 뜨거운 온기가 더해졌다. 민도혁이었다. 구속대를 풀지 못한 형사가 이현의 차갑게 식어가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똑, 똑, 똑똑똑, 똑.
민도혁의 손가락 끝이 이현의 손등을 일정한 리듬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작을 진정시키려는 불규칙한 두드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의도를 담은 타격이었다. 피부의 압점 신호가 척수를 타고 뇌간으로 활공했다.
똑, 똑, 똑똑똑, 똑.
모스 부호식 비트 패턴.
이현의 감각 수용체가 그 리듬을 받아들이는 순간, 가상의 거울의 방 전체가 크게 요동쳤다. 사방을 에워싸고 있던 깨진 유리 벽면들이 그 진동에 공명하며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현의 시야에 비정상적으로 왜곡된 빛의 굴절이 포착되었다.
거울의 방 바닥에 비친 이현의 가상 신체. 그의 왼쪽 손목바닥에 새겨진 정체불명의 수술 흉터와 거친 서체로 각인된 일련번호 'HN-09'가 기이하게 발광했다.
현실에서 민도혁이 이현의 귀가에 대고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뇌파의 균열을 타고 흘러들었다.
"정이현, 정신 똑바로 차려. 네 놈 손목에 새겨진 그 수술 자국... 그리고 HN-09라는 낙인. 그게 뭔지 알아냈어."
민도혁의 목소리는 거울의 방 내부에서 신의 음성처럼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그거 하이퍼 네스트 지하 비밀 실험 구역의 강제 뇌개조 수용 대상자 낙인이다. 네 놈은 과거에 이미 그들의 실험체였거나, 혹은 그 시스템의 핵심 설계자 중 하나였다고. 여기서 뇌사 상태로 뒈져버리면 그 진실은 영원히 묻히는 거야!"
머릿속을 강타하는 충격에 이현의 눈이 번쩍 뜨였다.
HN-09.
그것은 단순한 양모의 흔적이나 과거의 사고 흉터가 아니었다. 하이퍼 네스트가 그의 뇌에 프로그래밍을 시도했던 낙인이자, 그가 그 거대 세력의 심장부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었음을 증명하는 물리적 증거였다.
"그렇군..."
이현의 입술이 마른 가뭄처럼 갈라졌다.
민도혁이 손등을 두드리는 모스 부호의 리듬은 단순한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이퍼 네스트가 이현의 뇌를 통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방사하고 있던 뇌파 동기화 주파수를 교란하는 물리적 간섭파였다. 형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의도적으로 이현의 무의식적 방어 기제를 깨우는 트리거를 작동시킨 것이다.
쿠구구궁!
거울의 방 하늘을 뒤덮고 있던 검은 타르의 구름 사이로 거대한 번개가 내리쳤다. 민도혁이 만들어낸 모스 부호의 리듬이 천둥소리가 되어 온 공간을 정화하듯 휩쓸었다.
그 순간, 저편에서 이현의 파멸을 기다리며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던 존재가 보였다.
한로직.
이현의 '논리적 연역'이자, 기회를 틈타 그의 육체를 완벽히 찬탈하려 했던 이 차가운 인격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한로직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정교한 수식과 기하학적 그래프들이 민도혁의 교란 주파수에 부딪혀 깨진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이... 이 파동은 뭐지? 내 연역 회로가... 연산이 불가능하다!"
한로직이 머리를 감싸 쥐며 비틀거렸다.
그의 오만한 눈동자에 생전 처음 보는 당혹감이 서렸다. 모든 것을 숫자의 확률과 인과관계로만 재단하던 논리의 화신이, 현실의 물리적 간섭이라는 무작위 변수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백행동을 완전히 흡수한 그의 육체적 감각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한로직의 미세한 동공 수축, 어깨 근육의 미세한 떨림, 호흡의 박자까지 모두 이현의 뇌 해석 장치에 실시간 데이터로 기록되었다.
"한로직."
이현의 목소리는 차가운 메스 같았다.
"네가 설계한 가상 살인 현장. 아주 정교했어. 피해자의 사후 강직도와 체온 하강 속도를 기반으로 사망 시각을 22시 12분으로 도출했지."
한로직이 이현을 노려보았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게... 뭐가 잘못됐다는 거지? 논리적으로 완벽한 인과였다!"
"아니, 틀렸어."
이현이 한 걸음 내딛자, 그의 발밑에서 타르가 걷히고 투명한 거울이 복원되었다.
"너는 3분의 오차를 고의로 숨겼다. 실제 피해자의 사망 시각은 22시 15분이야."
"무슨 유치한 헛소리를...! 3분의 오차 따위가 연역의 결론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나?"
"바꿀 수 있지."
이현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백행동의 데이터가 그의 시야에 겹쳐졌다. 피해자의 손가락 끝에 남은 미세한 사후 강직의 시작점, 손톱 밑의 미세한 혈류 정체 현상.
"22시 12분과 15분 사이. 그 3분 동안 현장의 방 온도는 하이퍼 네스트의 공조 시스템 점검으로 인해 정확히 1.2도 급감했다. 온도의 저하는 시체의 냉각 속도를 가속화하지. 너는 그 온도 변화를 연산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했어. 내가 22시 12분이라는 가짜 타임라인에 갇혀 엉뚱한 용의자를 지목하게 만들고, 그 추리 오류의 대가로 내 뇌세포를 영구 사멸시키기 위해서."
한로직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너는..."
"너는 나를 돕는 탐정이 아니다. 내 뇌를 먹어치우고 현실로 나가려는 기생충일 뿐이지."
이현의 선언과 동시에, 거울의 방 전체가 그 논리적 무결성의 붕괴를 견디지 못하고 진동했다. 한로직이 구축해 놓았던 가상 살인 현장의 시뮬레이션이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사이다 같은 쾌감이 이현의 신경을 관통했다.
외부에서 전해지는 형사의 물리적 신호(태핑)를 뇌 속 가상 밀실의 물리 법칙을 뒤흔드는 주파수 무기로 치환하는 두뇌 아웃풋의 정수. 하이퍼 네스트의 통제망을 역이용해 자신의 내면을 지탱하던 적대적 인격을 단숨에 무력화시킨 순간이었다.
"아아아악!"
한로직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짜 안았다. 그의 몸을 구성하던 푸른빛의 이진법 코드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민도혁의 손가락은 여전히 이현의 손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똑, 똑, 똑똑똑, 똑.
그 리듬은 이제 거울의 방에서 거대한 장벽이자, 한로직을 가두는 감옥의 창살이 되었다. 통제 불능의 물리 주파수 속에서 한로직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을 찾지 못했다.
이현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날카롭게 깨진 거울 파편 하나가 그의 발치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파편의 뒷면에 흐릿하게 새겨진 붉은 글씨가 보였다.
[가장 완벽한 동조는 적조차 나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기억을 잃기 전, 정이현 본인이 직접 남긴 옛 필적이었다.
서하진의 공범으로 낙인찍힌 자신의 과거. 하지만 이 필적은 다른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공범이 아니라, 서하진을 완벽히 무너뜨리기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되어 이 거대한 판을 설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현은 허리를 굽혀 그 거울 파편을 집어 들었다.
손끝에 닿는 유리의 서늘함이 현실의 감각보다 더 생생하게 전해졌다.
한로직은 이 통제 불능의 주파수 현상과 자신의 완전한 패배에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려 했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공포가 극에 달한 순간이었다.
서스스슥-.
소리도 없이 한로직의 등 뒤로 다가간 이현이 손을 뻗었다.
차가운 거울 파편의 날카로운 단면이 한로직의 하얗게 질린 등덜미에 스치듯 닿았다. 미세한 유리의 마찰음이 한로직의 귓가를 긁었다.
"움직이지 마."
이현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한로직의 척수를 얼려버렸다.
"논리적으로 말해봐, 한로직. 이 상황에서 네가 내 뇌세포를 더 파괴하고 살아남을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되는지."
한로직의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의 등덜미를 타고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유리 파편의 끝이 그의 목 피부를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0퍼센트."
한로직의 목소리는 잘 조율된 건반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목줄기를 파고드는 거울 유리의 서늘함에도 그의 눈동자는 미세한 떨림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꼬리가 기이한 각도로 비틀려 올라갔다.
"소멸은 내 연산 결과에 존재하지 않아, 정이현. 네가 나를 완전히 지우는 순간, 네 뇌의 전두엽 연역 기능 40%가 함께 타버릴 테니까. 그건 지능의 거세이자, 완전한 자멸이다."
"자멸이라."
이현은 손목에 힘을 주었다. 기하학적으로 각진 유리 파편이 한로직의 가상 피부를 찢고 들어가며 푸른빛의 데이터 입자가 방울져 흘러내렸다. 그 빛방울이 이현의 손등에 떨어져 번지는 순간, 백행동에게서 흡수했던 행동 분석 회로가 격렬하게 공명했다.
그 찰나의 공명 속에서, 이현의 망막 위로 한로직의 연산 과정 이면에 숨겨진 진짜 '기억의 궤적'이 겹쳐졌다.
그것은 한로직이 임의로 조작한 데이터가 아니었다. 하이퍼 네스트조차 손대지 못한 뇌의 가장 깊숙한 심연, 검은 바다 깊은 곳에 잠겨 있던 진짜 과거의 기록이었다.
3분의 오차.
피해자의 사후 강직을 지연시키기 위해 현장의 공조 시스템 온도를 강제로 조작했던 진짜 설계자의 손길.
그 손길의 주인공은 서하진이 아니었다.
단정한 셔츠깃을 세우고, 감정이 거세된 차가운 눈빛으로 제어 장치의 온도를 1.2도 낮추던 사내. 깨진 거울 조각 이면에서 이현을 내려다보고 있는, 기억을 잃기 전의 정이현 자신이었다.
"알아챘군."
한로직이 낮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 섞여든 조롱이 이현의 고막을 긁었다.
"그 3분을 지운 건 내가 아니야. 바로 너다. 네가 서하진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완성하기 위해, 현장의 온도를 조작해 수사망을 교란했지. 너는 처음부터 그의 가장 충실한 사냥개이자, 완벽한 공범이었어."
쿵!
현실의 세계에서, 취조실의 철문이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열려 젖혀졌다.
"강제 진정제 투입해! 환자 격리실로 이송한다!"
보안 요원들의 거친 손길이 이현의 어깨와 사지를 무자비하게 내리눌렀다. 민도혁이 그들을 온몸으로 가로막으며 고함을 질렀지만, 차가운 금속 바늘이 이현의 얇은 목덜미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진정제 약물이 혈관을 타고 뇌 수용체로 직행했다.
거울의 방 전체가 회색빛의 안개로 빠르게 침식되기 시작했다. 의식이 강제 종료되는 신호였다.
동시에, 이현의 성대가 현실에서 제멋대로 떨리기 시작했다. 뇌세포의 과부하와 과거의 진실이 준 충격이 혀를 마비시키며 무의식의 고백을 뱉어내려 했다.
"내가... 그 온도를... 내가..."
[경고: 브레인 필터 제3수칙 위반 위기.]
[수칙: 자신이 과거 연쇄살인마 '설계자'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조작해 준 '공범자'라는 사실을 외부인에게 들키지 말 것.]
[위반 시, 주격 자아 소멸 프로세스가 즉시 가동됩니다.]
머릿속에서 붉은 글씨가 피처럼 흘러내리며 이현의 시야를 가렸다. 현실의 민도혁은 이현의 흐려지는 눈동자를 붙잡고 귀에 대고 소리치고 있었다.
"정이현! 뭐라고? 똑바로 말해! 네가 뭘 어쨌다는 거야!"
한로직은 안개 속에서 서서히 흐려지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말해라, 정이현. 네가 가진 그 추악한 진실을 형사에게 자백하고, 이 뇌 속에서 영원히 소멸해라."
이현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목을 찌르는 진정제의 차가움과, 뇌를 찢는 듯한 수칙 위반의 경고음 사이에서 그의 이성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진실을 뱉고 뇌사할 것인가, 아니면 한로직의 목을 베어 내고 공범자의 굴레를 정면으로 돌파할 것인가.
이현은 거울 파편을 쥔 손에 마지막 남은 모든 악력을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