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사악한 인간 보모년이 감히 가문의 보육동을 제멋대로 개조하고 아이들을 세뇌하고 있었구나!"

보육실의 튼튼한 참나무 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들이닥친 시녀장, 가웨인의 수하가 째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화려한 비단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뒤편으로, 쇠사슬을 쩔렁이는 소리와 함께 사나운 숨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붉은 눈을 번뜩이며 으르렁거리는 마성 사냥개 세 마리.

침을 흘리는 그 괴수들의 목줄을 쥔 채, 차가운 철제 갑옷을 입은 사병들이 하은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왔다. 은은하게 감돌던 달콤한 딸기 우유 푸딩의 향기가 순식간에 피와 쇠붙이의 서늘한 냄새에 짓눌려 흩어졌다.

"루이, 내 뒤로 오렴."

하은은 본능적으로 루이의 여린 어깨를 감싸 안으며 제 등 뒤로 숨겼다. 손끝이 바르르 떨렸지만, 눈빛만큼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단단하게 가라앉았다. 과거 보육원의 불길 속에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던 그 끔찍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다시는 소중한 존재를 잃지 않겠다. 그 맹세가 차가운 두려움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하은아... 저 개들, 이상해. 무서워..."

언제나 당차게 으르렁거리던 아기 늑대 루이가 하은의 옷자락을 꼭 쥔 채 낑낑거렸다.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귀가 머리칼 뒤로 바짝 누웠고, 둥근 꼬리는 가랑이 사이로 말려 들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보육실 구석에 모여 있던 다른 아기 늑대들도 서로를 껴안은 채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 가련한 울음소리가 하은의 귓가를 때리자, 그녀의 눈앞에 도감의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이 붉은빛을 뿜으며 떠올랐다.

[경고: 보육동 아기 수인들의 스트레스 수치 급상승!] [루이 윈터우드: 스트레스 수치 78% (위험 단계 진입)] [보육 시설 안정도: 하락 우려]

시녀장은 하은의 눈앞에 황금빛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위임장을 흔들어 보이며 기고만장하게 웃었다.

"대공 전하의 특별 위임을 받아 보육동의 모든 권한을 회수한다! 저 불경한 인간 보모를 당장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라!"

"위임장이라뇨."

하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사병들의 칼날이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그녀는 오히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시녀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공작가의 가통을 수호하시는 마샤 님도 모르는 위임장이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발급될 수 있는지 의문이군요. 게다가 시녀장님, 보육권을 회수하시기 전에 제 질문에 먼저 답해주셔야겠습니다."

하은은 품 안에서 몽글몽글한 분홍빛 가죽으로 감싸인 '힐링 레시피 도감'을 꺼내 들었다. 시녀장의 눈에는 그저 평범하고 낡은 가계부 장부로 보였겠지만, 하은의 시야에는 그동안 도감이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분류해 둔 영지 경영 장부의 수치들이 눈부신 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수작이냐! 감히 대공 전하의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게냐?"

"거역이 아니라, 성채의 살림을 책임지는 자로서 철저한 계산을 하자는 것입니다."

하은이 도감의 책장을 스르륵 넘겼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얼어붙은 보육실의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지난 석 달 동안, 보육동의 아기 늑대들을 위해 배정되었던 최고급 눈꽃 우유 120병. 그리고 아이들의 마력 안정을 위해 사용되어야 했을 단맛의 이슬 설탕 열 가마니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군요. 장부에는 분명 보육동으로 출고되었다고 적혀 있으나, 아이들의 식단에는 단 한 방울의 우유도, 단 한 알의 설탕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시녀장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콧방귀를 뀌며 표정을 굳혔다.

"흥, 나약한 인간 년이 어디서 감히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거냐! 증거도 없는 헛소리로 시간을 끌려 하지 마라!"

"증거요? 여기 있습니다."

하은이 도감의 한 페이지를 가볍게 톡 쳤다. 그러자 도감의 시스템 마력이 실시간으로 복사해 낸 투명한 마력 영수증들이 사르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종이들 위에는 시녀장의 개인 인장과 함께, 식재료들이 그녀의 사가(私家) 창고와 차남 파벌의 연회장으로 흘러 들어간 상세한 유출 경로가 날짜와 시간 단위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도난된 식재료들은 모두 시녀장님의 개인 창고로 들어갔더군요. 게다가 어제는 성채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시녀장님의 전용 보관함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은은 시녀장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붉은 양념 단지. 겉보기에는 평범한 향료 단지 같았으나, 그 안에는 아주 귀한 '고대 마력 중화 성분'이 들어 있더군요. 가문의 허락 없이는 결코 소지할 수 없는 물건이자, 제국에서 흘러 들어온 금지된 약물이지요. 이것 역시 시녀장님이 은밀하게 빼돌려 보관하시던 귀중품 중 하나가 아닙니까?"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사병들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시녀장의 개인 인장이 찍힌 횡령 장부의 수치와, 금기시되는 제국의 약물 이름이 흘러나오자 그들의 기세가 눈에 띄게 꺾인 것이다.

[영지 내 평판 지표: 반등 시작!] [시녀장의 신뢰도: 99% -> 12% 격하]

"이, 이 간사한 인간 년이... 감히 나를 모함해?!"

추악한 민낯이 순식간에 폭로되자, 시녀장은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그녀는 바르르 떨리는 손가락으로 하은을 가리켰다.

"더 들을 것도 없다! 저년이 마법으로 장부를 조작한 것이다! 당장 물어뜯어라! 저 사악한 마녀를 찢어 죽여라!"

시녀장이 쥐고 있던 쇠사슬을 거칠게 놓아버렸다.

"크르르르!"

사나운 마성 사냥개 세 마리가 침을 튀기며 하은과 아기 늑대들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돌진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고, 괴수들의 아가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사병들조차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헉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하은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녀는 이미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책을 세워둔 상태였다.

"루이, 눈을 감으렴."

하은은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 둔 작은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는 아까 딸기 우유 푸딩을 연성하면서, 도감의 레시피를 통해 특별히 제작해 둔 '특제 마력 억제 향 조각'이 들어 있었다. 2화에서 스캔해 두었던 붉은 양념 단지 속 고대 마력 중화 성분을 도감 시스템으로 분석하여, 부드러운 라벤더와 달콤한 박하 잎을 섞어 굳혀 만든 향 조각이었다.

하은이 향 조각을 공중을 향해 힘껏 던지며 마음속으로 도감의 마력을 가동했다.

'발효해라.'

파스스―!

공중에서 부서진 향 조각이 몽글몽글한 분홍빛 안개 가루가 되어 보육실 전체로 사르르 퍼져나갔다.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향기가 사방으로 번지는 순간, 돌진하던 마성 사냥개들의 붉은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깨갱...?"

가장 먼저 달려들던 사냥개의 앞다리가 스르륵 풀렸다. 분홍빛 안개 가루를 들이마신 괴수들은 흉포한 기세를 잃고, 마치 따뜻한 봄볕 아래 누운 강아지처럼 바닥에 엎드렸다. 그들의 꼬리가 나른하게 바닥을 몇 번 탁탁 치더니, 이내 눈을 스르륵 감고 쿨쿨 코를 골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우와아...! 강아지들이 자요!"

"하은이가 마법을 부렸어!"

숨죽이고 있던 아기 늑대들이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루이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은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시녀장은 제 발치에서 잠든 사냥개들을 보며 넋이 나간 듯 주저앉았다. 사병들 역시 완전히 전투 의지를 상실한 채 멍하니 하은을 바라볼 뿐이었다.

바로 그때.

보육실의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김이 서릴 정도로 차갑고 서늘한 기운. 뼈를 얼려버릴 듯한 압도적인 마력이 문가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곳에서 무슨 소란이지."

낮고 묵직한, 그러나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

사병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길을 열었다. 그 사이로 검은 모피 코트를 휘날리며 걸어 들어오는 사내, 블레이드 윈터우드 공작이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난장판이 된 보육실과 엎어져 자는 마수들, 그리고 하은이 들고 있는 장부를 차례로 훑었다.

"전, 전하...!"

시녀장은 기회라는 듯 블레이드의 군화 발치로 허겁지겁 기어갔다.

"이 사악한 인간 년이 가문의 재산을 탐내고 저를 모함했습니다! 마수를 부려 사병들을 위협하고 대공 전하의 위임장마저 무시했사옵니다! 당장 저년을 처단하셔야..."

"시끄럽다."

블레이드의 서늘한 음성이 시녀장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그는 하은이 내민 투명한 마력 영수증과 장부를 받아 들었다. 그의 시선이 장부에 적힌 수치들을 훑어 내려갈 때마다, 보육실의 공기가 점점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너의 인장이 찍힌 이 장부의 수치들은 무엇이지?"

"그, 그것은... 조작된 것이옵니다! 저 인간이 마법으로..."

"내 눈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블레이드가 손에 들고 있던 시녀장의 황금빛 위임장을 툭 던졌다. 위임장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파랗게 얼어붙더니, 이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얼음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부서졌다. 위조된 마력이 주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진짜 동결 마력에 완전히 박살 난 것이었다.

"가문의 식재료를 횡령하고, 그것도 모자라 제국의 금지된 약물을 숨겨 들여와? 게다가 감히 내 가문의 후계자들에게 사냥개를 풀어 위협을 가하다니."

블레이드의 푸른 눈동자에 서린 살기가 시녀장의 숨통을 조였다.

"이 추악한 자들을 당장 영지 밖으로 추방하라. 가문의 이름을 더럽힌 죄를 물어, 다시는 이 북부의 땅에 발을 들이지 못할 것이다. 방관한 자들 역시 예외는 없다."

"전하! 대공 전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전하! 살려주십시오!"

시녀장은 사병들에게 거칠게 양팔을 붙잡힌 채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갔다. 그녀를 따르던 수수방관 파벌의 하인들과 사병들 역시 질질 끌려가며 보육동에서 완전히 퇴출당했다.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자, 보육실에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 아기 늑대들은 안도하며 하은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하은아! 네가 이겼어! 정말 대단해!"

루이가 신이 나서 하은의 품으로 뛰어들려 했다.

하지만 하은은 루이를 안아줄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이 기이할 정도로 뻣뻣하게 굳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머리가...'

급박한 상황 속에서 대량의 마력 억제 향 조각을 연성하고, 도감의 마력을 무리하게 쥐어짜 낸 대가가 들이닥쳤다. 손가락 끝부터 시작된 하얀 서리가 손목을 타고 올라오며 피부를 얼려버릴 듯한 극심한 저체온증이 시작된 것이다.

[경고: 사용자 체온 34.1도. 급격한 저체온증 진행 중!] [경고: 마력원 고갈 우려. 즉각적인 온기 충전이 필요합니다!]

이빨이 딱딱 부딪히고, 전신이 사르르 떨리며 감각이 마비되어 갔다. 하은은 밀려오는 어지러움에 중심을 잃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앞이 흐려지며 숨을 쉴 때마다 차가운 얼음 파편이 목구멍을 긁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몸이 얼어붙어 죽어가는 이 끔찍한 감각 속에서, 오직 단 한 사람만이 그녀의 유일한 구원줄이었다.

하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제 앞에 서 있는 블레이드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외면 속에 태양보다 뜨거운 마력을 품은 사내.

그녀는 살아야 했다. 아이들을 지키고 자신만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완성하기 위해, 결코 여기서 쓰러질 수 없었다.

하은은 떨리는 손을 뻗어 블레이드의 차가운 검은 모피 코트 자락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힘겹게 그의 손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온기를 빼앗아야만 했다. 너울거리는 시야 속에서 블레이드의 푸른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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