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을 두드리는 밤바람 속에서, 연회장의 소란은 저 멀리 아득한 메아리처럼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당신, 레티시아는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가문의 음험한 독살 기도를 저지하고 마수들의 습격을 기지로 맞받아치며, 원작이 당신에게 준비해 두었던 단두대라는 파멸의 운명을 완전히 박살 내버린 것입니다.
당신이 걸친 심해를 닮안 네이비 블루의 실크 드레스는 테두리마다 촘촘히 박힌 미세한 다이아몬드 가루와 은색 백합 자수 덕분에 은하수를 두른 듯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숨을 내쉴 때마다, 귓가에 걸린 아콰마린 귀걸이가 달빛을 받아 파르르 떨리며 옅은 푸른 광채를 흩뿌렸습니다.
‘정말 눈물겨운 사투였다, 레티시아! 이 정도면 원작의 빌어먹을 신도 내 생존 본능에 박수를 치며 퇴근했을 게 분명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공작가 막내딸의 미소를 유지하려 애쓰는 당신의 눈앞에, 어둠을 닮은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북부의 지배자이자 가짜 약혼자, 카시안.
그는 평소의 엄격 제복 대신 깃을 바짝 세운 검은 벨벳 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가슴팍의 황금 사슬과 소맷단을 장식한 오닉스 단추가 그의 차가운 잘생김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지요. 피와 연기에 얼룩진 싸움터에서 갓 빠져나온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완벽한 모습이었습니다.
“다 끝났군. 당신의 영리함이 가문의 수작을 완벽하게 틀어막았어.”
그의 붉은 눈동자가 잔잔하게 가라앉으며 당신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던 평소와 달리, 그의 그림자가 당신의 은빛 자수 드레스 위로 길게 겹쳐왔습니다.
‘음, 잠깐만. 왜 그렇게 그윽하게 보시죠, 대공님? 설마 계약 만료되었다고 그동안 주었던 수당을 환수하겠다거나 그런 냉혹한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심장이 쿵쿵 요동쳤습니다. 단지 살아남았다는 흥분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카시안이 장갑을 벗어 던진 맨손으로 당신의 뺨 옆, 대리석 벽면을 짚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짙은 침향나무 향과 얼어붙은 북부의 이질적인 열기가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레티시아.”
그가 처음으로 영애라는 호칭을 떼어내고 당신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렀습니다. 그 낮고 자석 같은 목소리가 가슴뼈 깊은 곳까지 진동을 일으켰습니다. 당신은 갈 곳을 잃은 손가락으로 드레스의 부드러운 실크 자락을 꽉 움켜쥐었습니다.
“원래의 계약은 오늘 밤으로 끝이었지. 하지만…….”
그의 시선이 당신의 붉게 물든 입술을 스쳤다가, 천천히 올라와 떨리는 눈동자에 단단히 얽혔습니다. 장난스러운 독백마저 삼켜버릴 만큼 밀도 높은 텐션이 두 사람 사이에 아슬하게 흘렀습니다.
“이 정도의 기지를 가진 파트너를 이대로 놓아줄 생각은 없다. 내 곁에 더 머물러라. 비즈니스를 위해서든, 혹은…….”
카시안이 고개를 부드럽게 숙이며 당신의 귀밑머리를 조심스레 쓸어 넘겼습니다. 그의 뜨거운 손가락끝이 닿는 곳마다 찌릿한 전류가 흘렀습니다.
악녀의 파멸은 저 너머로 사라졌지만, 그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위험한 덫이 당신의 발밑에 새로이 깔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여전히 가짜인 척 비즈니스를 속삭이는 그의 눈 속에는, 이미 계약서 따위는 불태워버릴 듯한 소유욕이 진득하게 타오르고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