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아카데미 대강당의 거대한 샹들리에가 연푸른 사파이어와 물방울 모양의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한 빛을 허공에 흩뿌립니다. 당신은 은은한 살구빛이 도는 최고급 실크 자카드 드레스를 입고 서 있습니다. 가슴께를 장식한 정교한 진주 자수와 에메랄드 귀걸이가 당신이 움직일 때마다 우아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지요.

‘살았다! 드디어 악녀 가문의 데드 플래그를 꺾고 살아남았어!’

속으로는 당장이라도 탬버린을 흔들며 샴페인을 원샷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당신은 애써 우아하게 턱을 치켜세웁니다. 하지만 눈앞에 서서 당신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사내 때문에 심장의 템포가 멋대로 흐트러집니다.

칠흑 같은 흑발을 단정히 넘기고, 은실로 화려하게 수놓인 검은 제복을 입은 사내. 북부의 냉혈한이자 황실조차 두려워하는 권력자, 카시안 보르헤스. 언제나 서리가 서려 있던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지금, 빙하가 완전히 녹아내린 듯한 열렬하고도 애틋한 온기가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레티시아."

그가 나직하게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늘 '영애' 혹은 '계약자'라는 서늘하고 딱딱한 호칭으로 선을 긋던 그가, 당신을 온전히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듯 이름을 속삭이는 순간, 척추를 타고 찌릿한 전율이 흘러내립니다.

가면무도회의 치명적인 독살 위협 속에서, 당신은 오직 그를 살리기 위해 가녀린 몸을 던졌습니다. 오만하고 외롭던 북부대공의 심장은 그 순수한 헌신 앞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을 이용하려는 악녀 가문의 첩자가 아니라, 기꺼이 목숨을 나눌 유일한 구원자임을 깨달은 것이지요.

카시안이 당신을 향해 천천히 한 걸음 다가옵니다. 그의 가죽 장갑을 벗은 맨손이 당신의 가냘픈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맞잡습니다. 마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지극히 조심스럽고도 절박한 감각입니다.

"더는 기만적인 거짓 연기도, 기한이 정해진 계약도 필요 없어."

그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대강당의 웅성거림을 일시에 잠재웁니다. 건국 연회에 참석한 아카데미의 모든 귀족들이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주목하는 가운데, 카시안이 주머니에서 심해처럼 깊은 푸른빛의 벨벳 상자를 꺼냅니다.

상자가 열리자, 차가운 북부의 만년설을 닮은 은빛 백금 위로, 밤하늘의 성좌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블루 다이아몬드 약혼반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내 평생을 너에게 저당 잡히지. 이제는 계약이 아닌, 나의 온 영혼을 건 약속이야."

어느새 당신의 무릎 높이로 시선을 맞추며 한쪽 무릎을 꿇는 대공의 모습에, 당신의 눈가에 벅찬 눈물이 고입니다. 차가운 얼음 성벽 같았던 지배자의 꿇어 엎드린 고백.

마침내 두 사람의 시선이 완벽하게 얽히고, 당신의 하얗고 가느다란 약손가락에 눈 눈부신 은빛 반지가 매끄럽게 끼워집니다. 얼어붙은 북부에 기어이 흐드러진 봄을 몰고 온,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찬란한 해피엔딩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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