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한때 은사(銀絲)로 정교하게 자수 놓인 청람색 벨벳 드레스는 더럽혀지고 찢겨 나가, 이제는 낡은 걸레짝과 다름없었다. 귀밑에서 랑데부 컷으로 찬란하게 흔들려야 할 남양 진주 귀걸이는 한쪽이 떨어져 나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남은 한쪽만이 녹슨 쇠창살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을 간당간당하게 반사할 뿐이었다.

아카데미 지하 감옥은 듣던 대로 지독하게 추웠다. 땅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한기는 단단히 결빙된 북부의 대지, 그 자체가 내뿜는 살의 같았다.

"하하, 진짜 너무하네. 여주인공 빙의는커녕 악녀 빙의면 최소한 사기적인 계약 시스템 창이라도 띄워 주든가."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손끝을 모아 쥐며, 당신은 허탈한 헛웃음을 삼켰다. 원래대로라면 이 시점에 철창을 부수고 들어와 쓰러진 당신을 거칠게 안아 올려야 할 남자가 있었다. 북부의 지배자이자 검은 야수, 성격은 파탄 났지만 얼굴 하나만큼은 신이 온갖 보석을 갈아 부어 만든 듯한 가짜 약혼자, 카시안 보레알리스.

하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무거운 군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들리는 것은 오직 음습한 지하 벽면을 타고 내리는 차가운 물방울 소리와, 저 멀리 지상에서 흘러나오는 축제의 아련한 음악 소리뿐이었다. 마수들이 날뛰던 숲에서 정적들이 쳐놓은 그물을 빠져나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아났던 기억이 문득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당신은 살고 싶었다. 그 차가운 북부대공에게 매달려서라도, 원작의 비참한 단두대 엔딩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무모한 도박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카시안은 오지 않았다. 그에게 당신은 그저 가문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 잠시 곁에 둔, 다루기 쉬운 장난감에 불과했던 걸까.

'…정말 조금은, 당신이 나를 다르게 봐준다고 착각했었는데.'

처음으로 그의 사나운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얽혔던 날, 으르렁거리던 냉소 속에서 "레티시아"라는 부드러운 음절이 비틀려 당신의 귓가를 간지럽혔던 순간들. 그 미묘한 온도의 변화가 모두 가짜였단 말인가. 가슴 한구석이 지하의 한기보다 더 쓰라리게 얼어붙었다. 카시안의 은밀한 온기를 갈망했던 스스로의 어리석음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기운이 급격하게 빠져나갔다. 이마저도 연출의 일부라면 차라리 화려한 오페라의 막이 내리는 장면이기를 바랐지만, 시야는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손가락 끝은 이제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지하 감옥 내부로 서리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당신의 숨결 또한 한 자락 희미한 백색 연기가 되어 차가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마치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의 숲에서 길을 잃은 한 마리 나비의 마지막 날갯짓 같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둠 속에서, 찬란했던 악녀 가문의 막내딸은 그렇게 서서히 얼어붙어 갔다. 차갑고 고요한 소멸이 당신의 세계를 덮어 내렸다. 단 한 번의 구원도 허락되지 않은 채, 당신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것이 당신의 마지막 겨울이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