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 아카데미의 한구석, 출입이 통제된 유리 온실의 공기는 숨이 막힐 듯 무겁고 축축했습니다. 밤에만 개화한다는 미드나이트 릴리의 진득하고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지요.
당신이 걸을 때마다 얇은 라벤더 실크 시폰 드레스 자락이 밤이슬에 젖어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칼라뼈 뫼를 툭툭 건드리는 자수정 귀걸이가 마치 운명의 초읽기를 하듯 가늘게 흔들립니다.
'아니, 악녀 가문 막내딸 인생이 고달프다지만, 무도회 가면 뒤에서 자객을 마주하는 건 선을 넘었잖아! 다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게 없는 거야?'
북부의 매서운 칼바람을 닮은 사내, 카시안은 당신을 이 한적한 온실로 유도해 두고는 교묘하게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의 의심을 거두기 위한 위험한 시험은 이 조용한 밤바마저 피로 물들이려 하고 있었습니다.
수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세 명의 괴한은 온통 잿빛 망토를 둘러쓰고 있었습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빼어 문 단검의 자루에는 조잡한 청람석이 박혀 있었지요. 당신의 가문인 싱클레어와 정적 관계에 있는 베인 후작가의 전속 암살단이 분명했습니다. 퍼르스름한 독기가 서린 칼날이 달빛을 받아 섬뜩하게 번뜩였습니다.
"싱클레어의 막내 영애. 곱게 자란 온실 속 화초가 피를 흘리며 시드는 모습은 꽤 볼만하겠군."
자객의 음산한 목소리에 당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살기 어린 시선이 뺨에 닿는 순간, 로코틱한 불평불만은 썰물처럼 씻겨 내려가고 오직 생존을 향한 서늘한 감각만이 두뇌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두 굽 소리를 죽이며 뒤로 물러섰지만, 거대한 온실의 유리벽은 도망칠 곳 없는 투명한 감옥과 같았습니다. 카시안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정말로 당신을 버린 것인지, 아니면 이 죽음의 경계에서 당신의 '패'를 드러내기를 기다리며 관망하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지요. 확실한 것은 지금 당장 가느다란 목덜미에 닿기 직전인 저 독검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뿐이었습니다.
등 뒤로 서늘한 석조 기둥이 닿았습니다. 다급히 손을 짚은 순간, 기둥 손잡이 부근에 새겨진 기묘한 마법 기하학 문양이 손끝에 걸려왔습니다.
'잠깐, 이 문양은……!'
머릿속에서 원작 소설의 활자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온실은 단순한 식물원이 아니라, 고대 엘프의 유적 위에 세워진 봉인 구역이었습니다. 당신의 손가락이 닿은 곳은 침입자를 섬멸하기 위해 설계된 강력한 마력 트랩의 제어 장치였습니다.
이 트랩을 가동한다면 자객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겠지만, 마력 제어에 실패하면 온실과 함께 자신마저 날아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존심이고 계약 조건이고 전부 접어두고 괴성을 질러 카시안을 불러들이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그의 초인적인 감각이라면 이 비명을 듣고 단숨에 달려와 자객들의 목을 꺾어놓을 터였습니다. 비록 그 후에는 '쓸모없는 약혼녀 후보'로 낙인찍혀 소모품처럼 버려질지라도 말입니다.
포위망이 좁혀지고, 독 묻은 칼날이 코앞까지 육박해 옵니다. 당신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세차게 흔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