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당신의 도발적인 제안에, 북부의 얼어붙은 지배자라 불리는 카시안의 눈동자가 깊게 요동칩니다.

서가 뒤편의 좁고 어두운 그늘 속이었지만, 당신이 걸친 파스텔 블루 색조의 최고급 파유(Faille) 실크 드레스와 그 소맷자락에 섬세하게 수놓아진 백진주들은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가슴팍에 정교하게 세공된 백금과 아쿠아마린 펜던트가 당신의 가쁜 호흡을 따라 흔들리며 다채로운 빛을 흩뿌립니다.

‘좋아, 제대로 물었어! 역시 돈과 권력 앞에서는 그 잘난 대공 전하도 흔들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하는구나!’

머릿속으로는 이미 오케스트라 선율에 맞춰 대리석 연회장을 독무로 가로지르는 상상을 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에버그린 가문의 고귀한 막내딸다운 우아하고 나른한 미소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앞을 가로막은 사내, 카시안 폰 헤일버그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그의 시선이 당신의 살짝 위로 올라간 입꼬리에서부터, 가느다란 목덜미를 지나, 이윽고 허공에서 딱 마주칩니다. 순간, 서가 사이로 찬 바람이 훅 끼쳐오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그의 검은색 울 코트에 은실로 촘촘히 짜인 늑대 문양이 마치 살아 숨 쉬듯 당신을 압박해 옵니다.

"에버그린 영애."

그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듭니다. 공적인 자리에서의 형식적인 호칭 대신, '에버그린 영애'라는 사적인 무게감을 담은 부름. 그의 눈빛은 도서관의 흐릿한 등불 아래서도 밤하늘의 시리우스성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대의 제안은 확실히 매력적이군. 황실 마탑의 독점권과 대륙 서부의 지분이라니. 하지만..."

카시안이 당신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옵니다. 그의 가죽 장화가 대리석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듭니다. 그가 고개를 약간 숙이자, 가볍게 흐트러진 은색 머리타래가 당신의 이마 끝에 닿을 듯 내려앉았습니다. 체온이 낮을 것만 같은 그에게서 의외로 뜨거운 숨결과 차갑고도 깊은 시더우드 향이 짙게 배어 나옵니다.

"그대의 가문이 어떤 자들인지 내 모를 거라 생각하나? 탐욕스럽고, 간사하며, 단 한 번도 신의를 지킨 적 없는 배신자들의 소굴."

그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천천히 올라와 당신의 쇄골 부근에 닿았습니다. 얇은 실크 직물 너머로 전해지는 단단한 손끝의 자극에 몸이 움찔 떨립니다. 숲속의 맹수가 포획물의 목덜미를 살피는 듯한 집요하고도 은밀한 시선. 그의 눈동자 속 얼어붙은 호수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입니다. 당신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 오만한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 봅니다.

"가계약서 한 장으로 묶어두기엔 그대들은 너무나 위험해. 내 등 뒤를 맡기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배신하지 못할 절대적인 '구속력'이 필요하다."

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집니다. 이제 장난기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오직 생존을 건 포식자들의 기 싸움만이 두 사람 사이의 좁은 틈새를 밀도 높게 채웁니다. 카시안의 시선이 당신의 붉은 입술 위에 잠시 머무르며 기묘한 텐션을 자아냅니다.

긴장감으로 터질 것 같은 침묵 속에서,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눈빛이 집요하게 당신의 영혼을 옭아맵니다. 이 차가운 북부의 야수를 완벽히 납득시키고 파트너로 승격시키기 위해, 당신은 준비해 온 최고의 수단을 꺼내 들기로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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