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끝이 목덜미를 스치던 서늘한 감각은 아직도 피부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실크 오간자 블라우스 깃 끝에 매달린 펜듈럼 모양의 라피스 라줄리 핀을 매만집니다. 푸르스름한 보석이 당신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살았어. 일단 목덜미에 구멍이 뚫리는 대참사는 면했는데…… 대공님의 미간에 잡힌 저 험악한 주름은 어쩔 거야? 저 얼굴로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내니, 갓 짜낸 레몬즙을 눈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기분이야.'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겉으로는 누구보다 우아한 악녀의 미소를 유지해야 합니다. 당신은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감추며 어깨를 곧게 폈습니다.
북부의 매서운 눈보라를 고스란히 담아낸 듯한 은백색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기며, 카시안이 당신을 내려다봅니다. 흑철색 제복 칼라 위로 보이는 그의 단단한 목선이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습니다. 심해처럼 어둡고 푸른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당신을 향한 불신과 경계심이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당신이 던진 정보가 꽤 흥미롭긴 했지만, 가문의 악명 높은 스파이라는 낙인은 그리 쉽게 지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군, 레티시아 영애."
카시안이 한 걸음 다가섭니다. 그의 크고 다부진 체구가 당신 위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은은하게 감도는 시원한 설목(雪木)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순간, 당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방금 전까지 날카롭게 맞부딪히던 대치 상태가, 눈이 오가는 찰나의 순간에 기묘한 열기로 변모합니다. 그의 시선이 당신의 잘게 떨리는 속눈썹을 지나 붉은 입술에 잠깐 머물렀다가, 이내 가늘게 흐려집니다. 조금 전의 살기는 희미해졌지만, 대신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이 두 사람의 좁은 간격을 채웁니다.
"하지만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온 대가는 치러야 하는 법이지. 당신이 들고 온 정보가 진짜인지, 혹은 나를 더 깊은 함정으로 빠뜨리기 위한 미끼인지 내가 어찌 알겠어?"
그의 목소리가 한낮의 얼음골짜기처럼 가라앉으며, 당신의 귓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카시안은 날 선 검날을 검집에 밀어 넣으며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턱을 괴었습니다. 그의 손가락끝에 박힌 흑요석 반지가 어두운 조명 아래서 불길하게 번뜩입니다.
"내 의심을 거두고 싶다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손이라는 걸 증명해 봐라. 내게는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거든."
그의 수려한 입술 끝이 비틀려 올라가며 위험천만한 제안을 던집니다. 덫을 놓아둔 포식자처럼 당신을 투명하게 꿰뚫어 보는 그 눈빛 속에, 당신은 선택을 내려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