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철갑을 두른 마필들이 뿜어내는 거친 숨결이 영흥의 서늘한 봄바람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말발굽이 진흙탕을 짓밟을 때마다 튀어 오르는 흙탕물이 야철장 마당에 늘어선 장인들의 발끝을 더럽혔다.

붉은 독기(纛旗) 아래, 한양 조정의 서슬 퍼런 위세를 등에 업은 특별 감찰단이 안마당을 가득 메웠다. 백여 명에 달하는 포조들이 일제히 장창을 세우며 야철장의 사방을 겹겹이 포위했다. 쇠사슬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대기를 찢었다.

“도평대군 이선은 들으라!”

말 위에서 내려선 자는 형조참의 임준양이었다. 세도자 민우식의 심복이자, 조정 내에서 가장 가혹하고 융통성 없기로 소문난 법관이었다. 그의 가늘게 찢어진 눈매가 이선의 온화한 낯빛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조정의 윤허 없이 사사로이 대형 철제 기동 장치를 제조하고, 천한 장인들을 모아 사사로운 결사를 조직하였으니, 이는 대명률(大明律)이 엄히 금하는 참람죄(僭濫罪)이자 불법 가가(私家) 주조 혐의에 해당한다! 전하의 어명이 담긴 교지를 받들어, 이 시간부로 영흥의 모든 야철장과 광산을 압수하고 관련자 전원을 국문하겠다!”

임준양의 성량이 쟁쟁하게 울려 퍼지자, 포조들이 함성을 지르며 장인들을 거칠게 밀쳐내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어라! 역당의 무리들아!”

“이, 이게 무슨 날벼락이오! 우리는 그저 대군 마마의 명을 받아 농기구와 보일러를 만들었을 뿐이오!”

최두칠이 억울함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으나, 돌아온 것은 차가운 창자루의 타격이었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최두칠이 바닥으로 굴렀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장인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사대부들의 가혹한 이념 사찰이 마침내 영흥의 심장부를 움켜쥔 것이다.

“마마, 피하셔야 하옵니다.”

서한주가 이선의 옷소매를 다급히 잡아끌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등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관아의 후방 가도로 빠져나가시면 일시적으로 몸을 피할 수 있사옵니다. 저들이 들고 온 교지는 명백히 조작되었거나, 혹은 훈구의 독단적인 횡포일 가능성이 크옵니다. 이대로 한양으로 압송된다면 국문장에 서기도 전에 명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서한주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이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임준양의 뒤편, 감찰단이 요란하게 싣고 온 수레 위의 커다란 가죽 상자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저들은 처음부터 나를 역모로 엮어 멸문할 덫을 치고 온 것이다.’

이선의 내면에 자리한 특유의 완벽주의적 비밀주의와 피해망상이 차갑게 고개를 들었다. 상대의 패를 완벽하게 읽지 않고서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선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머릿속의 신경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밀 설계의 혜안, 기동(起動).’

찰나의 순간, 이선의 망막 위에 푸르스름한 열역학적 에너지 선구와 물질의 분자 구조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전생의 기계공학적 동기화가 뇌리를 강타했다. 극심한 신경 과부하가 정수리를 송곳으로 찌르듯 파고들었고, 목구멍 끝에서 비릿하고 뜨거운 액체가 울컥 솟구쳤다. 이선은 어금니를 악물고 검붉은 핏방울을 입술 안쪽으로 삼켜냈다. 소매 안쪽의 주먹이 하얗게 바스러질 듯 쥐어졌다.

눈앞의 모든 사물이 투명하게 비쳐 보였다.

감찰단이 가져온 물품 상자의 두꺼운 가죽과 오동나무 판자가 혜안의 빛 아래에서 허물어졌다. 상자 내부의 조밀한 격자 구조가 드러났다. 그 안에는 조정의 공식 공문서 외에도, 짚단 사이에 은밀하게 숨겨진 무거운 쇳덩이들이 가득 차 있었다.

‘저것은…….’

이선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상자 안의 철제 도구는 정교하게 깎인 원형의 판이었다. 그 표면에는 조선의 공식 화폐인 '조선통보(朝鮮通寶)'의 뒷면 글자가 역순으로 정밀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한양 조정의 조폐 기관에서나 사용하는 위조 엽전 주조 틀이었다.

감찰단은 단순한 감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대군이 사사로이 돈을 찍어 군자금을 모았다는 확실한 역모의 증거를 이 영흥 야철장에 '식재(植栽)'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마마, 이것을 보십시오.”

서한주가 이선의 시선을 가로막으며, 소매 속에서 조심스럽게 누런 종이 한 장을 꺼내 이선의 손에 쥐여주었다.

“부윤의 서고 깊은 곳, 밀봉된 상자 틈바구니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옛 함경도 군용 수로와 구루마용 가도가 상세히 기록된 지적도 유실본이옵니다. 조정의 공식 지도에는 군사 보안을 이유로 누락된 북방 국경지대의 비밀 통로와 가도가 고스란히 그려져 있사옵니다.”

이선은 건네받은 서첩을 가볍게 펼쳤다. 혜안의 잔상이 가도의 굴곡과 수로의 깊이를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냈다. 영흥에서 북방 국경으로 이어지는 산악 지대의 협곡과, 과거 여진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닦아두었으나 지금은 폐쇄된 군치 가도의 정밀한 고도차가 이선의 뇌리에 완벽한 삼차원 지도로 각인되었다.

‘훌륭하구나, 한주야. 이것은 훗날 이 영흥을 지킬 가장 강력한 지리적 무기가 될 것이다.’

이선은 지적도를 소매 깊숙이 밀어 넣으며 서한주를 향해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이제 고통 대신 기묘할 정도로 차분한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때였다.

“찾았다! 참판 대감, 이 안을 보시옵소서!”

야철장 창고 구석을 이 잡듯 뒤지던 포교 하나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은 무거운 가죽 자루가 들려 있었다.

임준양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무엇이냐?”

포교가 가죽 자루를 바닥에 내던졌다. 자루가 터지며 사방으로 흩어진 것은, 조잡하게 주조된 엽전 수십 닢과 함께 그 엽전을 찍어내는 데 사용되는 무쇠 주조 틀이었다.

“야철장 뒤편 석탄 더미 속에서 발견했사옵니다! 대군께서 사사로이 전폐(錢幣)를 위조하여 군자금을 축적하고 있었던 명백한 물증이옵니다!”

마당에 모인 장인들이 경악하며 웅성거렸다.

“저, 저런 것은 우리 야철장에 없었소! 우리는 오직 보일러와 피스톤을 주조했을 뿐이오!”

최두칠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소리쳤으나, 임준양은 가소롭다는 듯 코방귀를 꼈다.

“닥쳐라, 이 천한 것들! 대군 이선이 역심을 품고 사사로이 사재를 털어 군사를 기르고, 위조 엽전으로 북방의 무리들과 내통하려 한 대역죄의 증거가 여기 있거늘, 어찌 감히 발뺌하려 드느냐!”

임준양이 말에서 내리며 이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손은 이미 허리춤에 찬 환도의 자루에 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칼을 뽑아 이선의 목을 벨 듯한 기세였다.

“대군 마마. 이제 더 이상 변명은 통하지 않소이다. 이 위조 엽전 틀은 한양 사옹원과 호조의 극비 기술로만 제작될 수 있는 물건. 영흥의 미천한 장인들이 대군의 지시 없이 어찌 이런 대담한 짓을 벌였겠소? 이는 명백한 모반이오!”

주변의 포조들이 일제히 창끝을 이선의 가슴팍으로 겨누었다. 서한주가 이선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이선은 부드럽게 그의 어깨를 짚어 뒤로 물러서게 했다.

이선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공포에 질린 자의 실소가 아니었다. 상대를 완벽하게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서늘하고도 잔혹한 미소였다.

이선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바닥에 흩어진 위조 엽전 틀 앞으로 다가갔다. 포조들이 흠칫하며 창끝을 거두었으나, 이선의 기품 서린 기동에 압도되어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이선은 엽전 틀을 구두 끝으로 가볍게 건드렸다.

“참의 엄준양. 그대의 눈에는 정녕 이것이 이 야철장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가?”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게요! 물증이 이리 명백하거늘!”

이선이 고개를 들어 임준양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두 눈이 뇌리각혈의 고통을 이겨내고 형형한 빛을 발했다.

“참으로 무지하고도 조잡한 모함이로다. 대명률과 우리 조선의 율법에 이르기를, 물증은 반드시 그 제작의 출처와 공정의 합치성이 증명되어야 법적 효력을 지닌다 하였다. 엄 참의, 그대는 제철의 예(藝)에 대해 털끝만치도 아는 것이 없구나.”

이선은 손을 뻗어 야철장 중앙에 웅장하게 서 있는 증기 펌프의 초고압 강철 실린더를 가리켰다.

“우리 영흥 야철장은 본 고을의 만성적인 광산 침수를 해결하기 위해, 본 대군이 직접 설계한 특수 공법을 사용한다. 저 실린더를 보라. 무쇠의 탄소 함량을 지극히 미세하게 제어하여, 가마 벽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세 탄소 균열 구조를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고탄소강 정련 기술(高炭素鋼 精鍊 技術)이 적용되어 있다. 이는 철의 결을 분자 단위에서 고르게 정렬하여 고압의 증기 압화 현상을 견디게 만드는, 조선 어디에도 없는 신기술이다.”

이선의 목소리는 웅장하면서도 일체의 흔들림이 없었다. 사대부들의 공허한 예치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실증적 기술의 권위였다.

“반면, 그대가 ‘역모의 증거’라며 가져온 저 조잡한 엽전 틀을 보라. 저것은 조악한 사철(沙鐵)을 대충 녹여 거푸집에 부은 것으로, 내부 탄소 배율이 엉망이라 열을 가하면 즉시 균열이 가며 깨어질 천박한 물건이다. 우리 야철장의 고온 고강도 정련로에서는 저런 저급한 주조품을 만들래야 만들 수가 없다. 장인의 손끝이 저토록 퇴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선의 서릿발 같은 논조에 임준양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물증이 여기서 나온 이상—”

“상관이 있지!”

이선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의 장포 자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또한, 저 위조 엽전 틀의 주조 연도를 표시한 각인을 보라. 저 조잡한 서체는 한양 호조의 주전소에서 삼 년 전에 폐기된 구형 목판의 서체다. 영흥의 장인들이 어찌 삼 년 전 한양 호조의 폐기 서체를 알고 주조 틀에 새겨 넣었겠는가? 이는 명백히 한양의 누군가가 사사로이 보관하고 있던 위조 틀을 가져와, 급히 이곳 석탄 더미에 파묻어 둔 것에 불과하다!”

“이, 이놈이……!”

임준양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수 시작했다. 대군의 완벽한 기술적, 법리적 분석 앞에 감사단의 치밀했던 음모가 순식간에 누더기처럼 찢겨 나가고 있었다. 마당에 모인 장인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렇다! 우리 대장장이들은 저런 똥쇠로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대군 마마의 말씀이 옳다! 저것은 한양 놈들이 조작한 것이다!”

민심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임준양은 황급히 칼을 반쯤 뽑아 들며 소리쳤다.

“시끄럽다! 일개 유배된 대군이 감히 왕실의 특별 감사단 앞에서 율법을 논하며 조정을 기만하려 드는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자는 전하의 교지를 거역하는 대역죄인이다! 군사들은 무엇을 하느냐! 즉시 저자의 사지를 결박하고 한양으로 압송하라!”

포조들이 칼을 뽑아 들고 이선을 향해 좁혀 들어왔다. 서한주와 최두칠이 주먹을 쥐며 맞서려 한 그 순간.

이선은 소매 안쪽에서 차갑게 미소 지으며, 감찰단 조장의 품속을 투시했을 때 확인했던 또 다른 물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압송이라?”

이선이 품속에서 붉은 비단으로 감싸인 패(牌) 하나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왕실의 장신구가 아니었다. 패의 전면에 새겨진 문양을 본 임준양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 그것은……!”

이선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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