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대학병원 본청 청문회장의 묵직한 오크 나무 문이 열리고, 정면에 도열한 이사회 이사들과 정장 차림의 형사 두 명이 서진을 지목했다.
"세인대학병원 전공의 백서진 씨 맞습니까? 마약류 관리법 위반 및 무면허 의료 행위 혐의로 즉각 체포합니다."
형사가 가죽 지갑에서 꺼내 보인 공무원증의 금빛 문양이 밝은 형광등 불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다. 체포영장을 쥔 그의 손끝이 서진의 턱 끝을 겨누듯 빳빳하게 뻗어 나왔다.
회의실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잠깐."
서진의 곁에 서 있던 장영식 교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두터운 손이 형사의 손목을 단호하게 가로막았다. 장영식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해 회의실 바닥을 낮게 울렸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3에 의거, 피의자가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긴급체포가 가능하오. 지금 본 위원회의 출석 요구에 응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전공의에게 영장 제시도 없이 수갑부터 채우겠다는 건 명백한 직권남용이자 절차 위반이오."
"장 교수."
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던 기획조정실장 민태구가 팔짱을 낀 채 낮게 읊조렸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 있었다.
"법리 해석은 법정에서 하시고. 여기는 세인대학병원의 인사 및 감사 위원회요.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무단으로 유출하고, 면허 권한도 없는 상태에서 VIP 환자의 수술실을 무단 점거한 자를 병원 내에 자유롭게 활보하게 둘 수는 없지 않소? 형사분들은 법 집행을 계속하십시오."
민태구의 눈빛은 굶주린 뱀의 그것처럼 집요하게 서진의 안색을 살폈다. 당황과 공포로 일그러져야 할 하급 레지던트의 얼굴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서진의 얼굴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서진의 우측 안구 깊은 곳에서는 지난 수술의 과부하로 인한 둔중한 안통이 욱신거리며 잔존해 있었다. 가운 주머니 속, 계승우가 파놓았던 덫인 불량 마이크로 바늘이 담긴 침구 파우치가 손끝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오히려 서진의 정신을 칼날처럼 예리하게 벼려 주었다.
서진은 형사의 손길을 가볍게 비껴내며 회의실 중앙에 마련된 피심의자 석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의 몸가짐은 죄인이라기보다, 오히려 번잡한 궁중 조정을 내려다보는 군주처럼 흐트러짐이 없었다.
"질문하십시오."
서진이 나직하게 뱉은 첫마디였다.
감사 위원장 김우찬이 서류 뭉치를 거칠게 뒤적이며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그의 목소리에는 날 선 적의가 가득했다.
"백서진 선생. 본 위원회는 오늘 두 가지 중대한 범법 행위에 대해 심문하겠소. 첫째, 소아 환자 유준우의 뇌저동맥류 수술 당시, 신경외과 전문의의 지도 감독을 받지 않고 단독으로 메스를 쥔 경위. 둘째, 당신의 개인 사물함에서 발견된 펜타닐 앰플 세 개의 입수 경로와 투약 여부요. 변명할 기회를 주지."
질문이 끝나자마자 회의실 내의 시선들이 일제히 서진의 입술로 쏠렸다.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가만히 민태구를 응시했다. 서진의 시선이 민태구의 얼굴에 머물렀다.
민태구의 눈가에 흐릿하게 감도는 누런빛. 황달의 전조였다. 그의 깃셔츠 사이로 보이는 요골 동맥 부근의 피부가 미세하게 불규칙한 박동을 그리며 떨리고 있었다. 임상 시험 단계에 있는 비승인 신약의 부작용으로 발생한 간 손상과 부정맥의 징후. 서진의 눈은 이미 민태구의 육체가 무너져 내리는 경로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백서진 선생, 대답 안 합니까?"
김우찬이 재촉했다.
정적만이 흘렀다.
벽면에 걸린 아날로그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착, 착, 착* 하며 회의실 내부의 침묵을 쪼갰다. 마치 환자의 심장 박동수가 서서히 떨어져 갈 때 울리는 경고음처럼 신경을 긁는 소리였다.
5분이 지나갔다.
이사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형사들 역시 서진의 기이한 침묵에 선뜻 수갑을 채우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10분이 흘렀다.
"지금 위원회를 기만하는 겁니까? 묵비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죄가 사라질 줄 아는 모양인데, 이는 혐의를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소!"
김우찬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굵게 솟구쳤다.
서진은 여전히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허공의 한 점을 꿰뚫듯 고정되어 있었다. 어떤 동요도, 두려움도 담기지 않은 그 깊고 고요한 눈동자는 오히려 심문하는 자들을 압박하는 거대한 늪과 같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조급해지는 것은 죄를 물으려는 자들이었다.
15분째 접어들었을 때, 결국 김우찬이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거칠게 내리쳤다.
*쾅!*
"이 무뢰한 자식이 어디서 배운 버릇이야! 감히 이사회가 소집한 공식 청문회에서 입을 닫아? 마약에 취해 뇌가 절여지기라도 한 건가? 이래서 근본 없는 지방대 출신들은 거두는 게 아니었어! 형사들, 뭐 하고 있소? 당장 저 자식을 끌어내서 철창에 처넣어 버려요! 청문회고 뭐고 필요 없으니 즉각 면허 박탈안을 가결합시다!"
평정심을 잃은 거친 폭언이 스피커를 찢고 흘러나왔다. 이사회 멤버들 사이에서 나직한 탄식이 흘렀다. 공식적인 징계 절차에서 피의자의 소명 기회를 박탈하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뱉은 것은 명백한 절차적 하자였다.
민태구의 미간이 좁혀졌다. 김우찬의 실책을 수습하려는 듯 그가 입을 열려던 찰나, 회의실 뒷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 처결, 보류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단하고 맑은 음성이 회의실의 소란을 단숨에 잠재웠다.
신경외과 전문의 한채원이었다. 그녀는 품에 푸른색 임상 가스 보고서와 환자 활력 징후가 인쇄된 두꺼운 바인더를 안고 증언대를 향해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신경외과 전문의 한채원입니다. 당시 수술의 퍼스트 어시스턴트로서, 백서진 전공의의 집도가 의료법상 완벽하게 합법적인 응급 구호 행위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채원은 바인더를 열어 빔프로젝터 스크린 위에 당일의 환자 데이터를 띄웠다.
스크린 위로 붉은색 그래프가 가파르게 치솟는 화면이 나타났다.
"수술 개시 직전, 소아 환자 유준우의 뇌압(ICP)은 38mmHg까지 폭증했습니다. 정상 범주의 두 배를 아득히 초과한 수치였습니다. 뇌저동맥류 외곽의 두께는 이미 마이크로 단위 이하로 얇아져 있었고, 이는 고압의 소방 호스에 바늘구멍이 나기 직전의 상태와 같았습니다. 단 1분의 지체만으로도 대파열이 발생해 환자는 즉사하거나 영구적인 뇌사에 빠질 수밖에 없는 절대적 위기였습니다."
한채원의 시선이 이사회 이사들을 차례로 쏘아보았다.
"의료법 제63조는 '의료인은 응급환자에게 필요한 응급처치를 즉시 시행하여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집도의로 지정되어 있던 계승우 선생은 수술실을 이탈해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습니다. 백서진 전공의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의사로서의 법적 의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이를 무면허 의료 행위라 규정한다면, 앞으로 세인대학병원의 어떤 의사도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를 위해 메스를 쥐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의 논리정연하고 서슬 퍼런 반론에 이사들의 고개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과연 그럴까."
민태구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눈빛에 서늘한 조소가 서렸다.
"한 교수, 아주 눈물겨운 동료애요. 하지만 의학적 판단은 감정이 아니라 기록으로 말하는 법이지. 본원 전산망(EMR)에 기록된 당일 유준우 환자의 뇌압은 12mmHg, 지극히 정상적인 수치였소. 대파열의 징후 같은 건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단 말이오."
그가 테이블 위의 태블릿을 톡톡 두드렸다.
"당신이 가져온 그 종이 쪼가리는 얼마든지 사후에 조작할 수 있는 개인의 주장에 불과하오. 세인대학병원의 메인 서버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전산망에 등록된 공식 기록만이 법적 효력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기록 어디에도 백서진의 무단 집도를 정당화할 만한 초응급 상태는 존재하지 않았소."
민태구는 이사회 이사들을 둘러보며 쐐기를 박았다.
"기록이 증명합니다. 백서진은 안정적인 환자를 대상으로 무단 수술을 감행하며 병원의 위신을 실추시켰고, 더 나아가 마약류를 횡령해 병원 내에 은닉했습니다.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이사회는 즉시 백서진 전공의의 영구 제명 및 면허 취소 건의안을 표결에 부쳐 주십시오."
"찬성합니다."
"동의합니다."
민태구의 수하들이 일제히 거수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그물이 서진의 목을 완벽하게 옥죄어 오는 듯한 형국이었다.
한채원의 주먹이 분노로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서진을 바라보았으나, 서진의 안색은 여전히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했다.
서진은 마침내 가운 주머니에서 슬림한 태블릿 PC를 꺼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가볍게 미끄러졌다. 태블릿의 무선 신호가 회의실 천장의 수신기를 거쳐, 전면의 대형 UHD 프로젝터 화면으로 다이렉트 페어링되었다.
화면이 징 소리와 함께 전환되었다.
민태구와 이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들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스크린에 뜬 것은 의료 보고서가 아니었다.
심해처럼 짙은 청색의 화면 위로, 붉은색 데이터 로그가 실시간으로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경고: 외부 IP 192.168.10.42 (기획조정실 관리자 단말기)에서 '유준우 수술 기록 및 뇌압 수치' 무단 수정 시도 감지.]` `[수정 전 데이터: ICP 38mmHg (대파열 위험군)]` `[수정 후 데이터: ICP 12mmHg (정상)]` `[조작 로그 백업 파일 전송 완료: 국토교통부 및 보건복지부 서버 이중 저장 완료.]`
서진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음성이 대회의실의 차가운 정적을 가르고 흘러나왔다.
"전산 기록이 없어졌다고 하셨습니까?"
푸른 장막 같은 화면 위에서 붉은 경고등이 깜빡이는 소리가 회의실 내부의 정적을 찢었다.
*삐- 삐-.*
규칙적인 비프음은 마치 거짓말 탐지기가 범인의 목을 죄어갈 때 울리는 경고음과 같았다. 대회의실에 모인 이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화면과 민태구의 얼굴을 번갈아 오갔다. 192.168.10.42. 병원 내부 사정을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기획조정실장의 개인 단말기 IP였다.
"이, 이건……!"
김우찬 감사위원장이 들고 있던 만년필을 떨어뜨렸다. 툭, 카펫 바닥으로 떨어진 만년필이 힘없이 굴렀다.
"조작이다!"
민태구가 벌떡 일어나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의 목소리에 전에 없던 균열이 일었다.
"한낱 레지던트 찌끄레기가 감히 병원 메인 서버를 해킹해서 가짜 화면을 만들어 내다니! 보안팀! 당장 저 스크린을 차단하고 이 미친놈을 끌어내!"
"조작이 아닙니다."
서진이 태블릿을 가볍게 흔들며 나직하게 대꾸했다.
"이 로그 프로그램은 제가 임의로 설치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주, 본원의 EMR 시스템 보안 취약점을 발견한 후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의료정보원 웹서버와 실시간으로 연동되도록 설정해 둔 이중 백업 스크립트입니다. 비유하자면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같지요. 조종석에서 아무리 계기판을 부수고 흔적을 지우려 해도, 이미 지상 기지로 송출된 데이터 자체를 없앨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서진의 음성은 지극히 평온했기에 오히려 잔인하도록 예리하게 청중의 귀에 박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민 실장님의 단말기를 통해 수정된 유준우 환자의 뇌압 기록, 그리고 마취 기록지의 조작 흔적은 정부의 공공 의료 데이터베이스에 고스란히 실시간 '수정 로그'로 축적되고 있습니다. 의료법 제22조 제3항, 전자의무기록 무단 수정 및 허위 작성 혐의. 이는 면허 취소를 넘어 병원 허가 취소까지 갈 수 있는 중대한 결격 사유입니다."
민태구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안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상황의 급변을 감지한 마약범죄수사대 형사가 슬그머니 서진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형사의 시선이 이제는 민태구와 그 좌우의 이사진을 향하고 있었다.
"좋소."
민태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전산상의 오류나 시스템 교란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 하지만 백서진 선생, 네 사물함에서 발견된 펜타닐 앰플 세 개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 그 신체적 증거는 전산 조작 따위로 덮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마약류 무단 반출은 현행범 체포 대상이다."
그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서진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회의실 구석, 문가에 초조하게 서 있던 계승우를 바라보았다. 삼촌의 승전보를 확인하기 위해 슬그머니 청문회장에 들어왔던 계승우는 서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 펜타닐 앰플들의 일련번호는 FT-240811, 812, 그리고 813번이더군요."
서진이 화면을 한 번 더 터치했다. 스크린 위로 약제부의 마약류 출납 대장과 당일의 CCTV 캡처 화면이 나란히 떠올랐다.
"해당 일련번호의 마약류가 약제부에서 출고된 시각은 지난 목요일 오후 2시 15분. 출고 신청서에 서명된 공인인증서의 명의자는 신경외과 전공의 계승우 선생이었습니다. 그리고……."
화면이 동영상으로 전환되었다.
어두컴컴한 전공의 개인 사물함 복도. 마스크를 림까지 눌러쓴 사내 하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백서진의 이름이 적힌 사물함 다이얼을 능숙하게 돌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주사기 앰플 세 개를 밀어 넣고 사라졌다. 화면 속 사내가 마스크를 벗으며 땀을 닦는 순간, 그의 옆얼굴이 초고화질 화면에 선명하게 박혔다.
계승우였다.
"마치 남의 집 담장 너머로 훔친 물건을 던져 넣고는 돍도둑이라 소리치는 격이군요."
서진의 차가운 냉소가 회의실을 지배했다.
"이, 이건……!"
계승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그의 다리가 눈에 띄게 후들거렸다.
"삼촌! 아닙니다! 저건 조작된 영상입니다! 제가 왜……!"
"입 닥쳐!"
민태구가 비명을 지르듯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마약수사대 형사들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들은 서진이 아닌 계승우의 좌우로 신속하게 접근했다.
"계승우 씨. 마약류 관리법 위반 및 타인에 대한 무고, 모해위증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차갑게 빛나는 수갑이 계승우의 손목에 채워지는 철컥 소리가 청문회장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삼촌! 삼촌! 살려주세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잖아요!"
계승우가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갔다. 그가 남긴 처절한 외침이 회의실 벽을 때리고 흩어졌다.
민태구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눈앞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혈압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며 귓가에서 거친 이명 소리가 요동쳤다.
서진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뇌기맥 투안(腦氣脈 透眼).**
서진의 우측 안구 너머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시야가 열렸다. 민태구의 정장과 피부가 투명하게 걷히고, 내장 기관과 혈관의 흐름이 천연색의 기맥으로 형상화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민태구의 우관상동맥(RCA)은 이미 노랗게 변색된 죽상경화반으로 가득 차 있어, 혈액이 통과하는 길목이 실핏줄보다 좁아져 있었다. 게다가 그의 간문맥 주변에는 검붉은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임상 3상을 무단으로 건너뛴 혜민재학의 신약을 독점 복용해 온 대가로 간세포가 괴사하며 발생한 문맥고혈압의 징후였다. 고압의 펌프가 막힌 파이프라인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형국.
*콰아아아!*
서진의 귓가에는 민태구의 혈관 속에서 터져 나가는 파괴적인 혈류의 마찰음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동시에 서진의 우측 안구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안통이 엄습했다. 머리 뒤편 전두엽이 터져 나갈 듯한 부하가 걸리며, 가운 주머니 속 오른손 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서진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억누르며 투안을 유지했다. 환자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순간, 이 정도의 고통은 대가에 불과했다.
"민 실장님."
서진이 떨리는 오른손을 감추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오직 민태구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고 은밀했다.
"분노로 흥분하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 당신의 우관상동맥은 95% 이상 폐색되었습니다. 간문맥에서 역류한 혈류가 심장에 가하는 부하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지요. 심근이 고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 없습니다."
"무슨…… 개소리를……!"
민태구가 말을 맺지 못하고 억 소리를 내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의 왼팔이 굳어지며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해갔다. 심장으로 가는 산소 공급이 완전히 차단되었을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연관통의 징후였다.
"윽, 흐윽……!"
민태구의 거구가 회의실 테이블 위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쓰러진 그의 몸이 커피잔을 덮치며 뜨거운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실장님! 민 실장님!" "의료진! 당장 제세동기 가져와!"
대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고, 김우찬은 사색이 되어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혼돈의 중심에서, 오직 백서진만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쓰러진 민태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감정이 배제된 차가운 유리기계와 같았다. 살려달라 애원하는 듯 허공을 긁는 민태구의 손가락이 서진의 가운 자락에 닿았다가 미끄러졌다.
서진은 가운 주머니 속에서 은침 대용으로 보관해 두었던 초미세 성형 봉합용 바늘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지금 민태구를 살릴 수 있는 최단 경로를 아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그의 목숨줄을 쥔 손끝에 말할 수 없는 지배욕과 희열이 짜릿하게 감돌았다.
서진이 민태구의 귀밑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살고 싶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