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일이야? 백서진 선생이 마약을 밀반입했다고?"
"유 의원 손자 수술도 무단으로 집도한 거라는데? 완전히 미친 거 아니야?"
본관 로비의 대형 모니터와 전 병동 인트라넷에 붉은색 글씨로 작성된 공고문이 일제히 송신된 아침 8시. 외과 의국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소란에 휩싸였다.
정형외과 복도 끝에서 이를 바라보는 서진의 등 뒤로 장영식 교수가 다가왔다. 그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민태구가 이사회를 완전히 포섭했네. 이번에는 단순한 징계 수준이 아니야."
장영식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수십 년간 병원 내부의 권력 암투를 지켜봐 온 노교수의 눈에 이번 청문회는 단순한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백서진이라는 눈엣가시를 합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완전히 도말하기 위해 설계된 단두대였다.
"검찰과 보건복지부 담당자까지 참관인 자격으로 불러들였다고 하더군.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를 기정사실로 만들어서 청문회 현장에서 바로 수갑을 채울 작정이야. 준비는 끝났나, 백 선생?"
서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는 깊고 고요하여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적이 판을 짜두었으니, 들어가서 그 판을 깨부수어야지요."
서진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기맥 투안의 잔여 과부하로 인한 물리적인 떨림일 뿐이었다. 오히려 그의 안광은 사냥감을 눈앞에 둔 맹수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여주지요. 이 병원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서진은 가운 자락을 가볍게 정리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 * *
행정동이 위치한 12층 복도로 들어선 순간,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구두 굽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저 멀리 복도 맞은편에서 수십 명의 수행원을 거느린 기획조정실장 민태구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기가 죽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계승우가 보였다.
민태구의 시선이 서진에게 닿았다. 그의 입꼬리가 오만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백서진 전공의. 아주 당당하군. 범죄자 치고는 낯짝이 제법 두꺼워."
민태구의 목소리에는 승자의 여유가 가득했다. 하지만 서진은 그의 도발에 대꾸하는 대신, 조용히 눈꺼풀을 내렸다가 떴다.
'기맥 투안(氣脈 透眼).'
우측 안구 깊은 곳에서부터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안통이 치밀었다. 동시에 서진의 시야에서 대리석 복도와 주변의 화려한 인테리어가 회색빛의 음영으로 바래 가기 시작했다. 오직 민태구의 신체만이 붉고 푸른 기맥의 선으로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서진의 시선은 민태구의 목덜미를 지나 대뇌로 향하는 경동맥(Carotid Artery)에 고정되었다.
그곳의 흐름은 기이할 정도로 뒤틀려 있었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혈류가 뇌저부의 대뇌동맥륜(Circle of Willis)으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심각하게 지체되고 있었다. 탁하고 마른 검붉은 색의 기맥이 혈관 벽을 따라 끈적하게 엉겨 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VIP-7.'
민태구가 카르텔의 비자금줄이자 극비리에 고용량 투여 중인 미승인 신약의 부작용이었다. 뇌 신경 세포를 강제로 활성화해 인지 능력을 극대화하는 대가로, 혈액의 점도를 급격히 높여 미세 혈전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독소.
현대 의학의 초정밀 MRI로도 포착하기 어려운 마이크로 단위의 혈류 정체 현상이 서진의 개안(開眼)된 시야에는 한 폭의 그림처럼 투명하게 그려졌다.
마치 거친 모래바람이 불어닥친 좁은 수로와 같았다. 수로 바닥에 진흙과 자갈이 쌓여 물길을 막고 있는 형국이었다. 지금 민태구의 뇌혈관은 미세한 혈압 상승 자극 하나만으로도 언제든 터지거나 막힐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우측 내경동맥 분지부의 협착률 약 85%. 혈류 속도 분당 20cm 이하로 급감.'
서진은 속으로 냉정하게 계산을 마쳤다.
'뇌 기맥의 뒤틀림이 이미 안면 신경(Facial Nerve) 경로를 압박하고 있군. 늦어도 사흘 내에 좌측 안면부의 급성 마비가 올 것이고, 일주일 내로 대뇌 피질 전반에 광범위한 허혈성 뇌졸중(Ischemic Stroke)이 발생할 맥상이다.'
서진은 천천히 안구의 힘을 풀었다. 시야가 다시 현실의 색을 되찾는 순간, 우측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오른팔 전체로 번지는 마비감과 미세한 손떨림을 방지하기 위해 서진은 오른손을 가운 깊숙이 찔러 넣었다.
"실장님."
서진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얼굴 왼쪽 뺨이 가끔 경련하듯 떨리지 않으십니까? 혀끝이 마비된 것처럼 둔하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뒤통수가 뻐근하게 조여올 텐데요."
민태구의 눈썹이 움찔 실룩였다. 정확했다. 최근 들어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과 안면 경련에 시달리며 남몰래 진통제를 삼키던 중이었다. 그러나 민태구는 이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허튼수작으로 시선을 돌리려 하지 마라. 그런 유치한 진단 놀음으로 네 죄가 가벼워질 것 같나?"
"의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거짓을 고할 뿐이지요."
서진은 동요 없이 민태구를 지나쳐 갔다. 지나치는 찰나, 서진은 민태구의 귀밑에 흐릿하게 착색된 황달의 흔적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간 기능 저하와 혈액 응고 장애의 명백한 징후였다.
"그 자리에 언제까지 앉아 계실 수 있을지,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겠습니다."
민태구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서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살기가 서렸다.
* * *
청문회장으로 향하는 전용 비상계단 참. 컴컴한 어둠 속에서 한채원이 서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호흡은 거칠었고, 손에 쥔 검은색 USB 드라이브를 움켜쥔 손가락 끝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백 선생."
채원이 서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비상구의 푸른 유도등 불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이거... 어제 새벽에 민 실장의 개인 서재에서 복제해 온 거예요. 병원 전산망에는 등록되지 않은, VIP-7의 3상 임상시험 원본 데이터와 부작용 은폐 보고서예요."
서진은 그녀가 건네는 USB를 내려다보았다. 병원의 최고 기득권인 민태구의 개인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의사 면허 박탈을 넘어 형사 처벌까지 감수해야 하는 극도의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평소 생명 존중과 규칙을 교과서처럼 따르던 한채원이 직접 이런 법적 경계를 넘나드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왜 이런 위험을 자처한 겁니까?"
서진의 차가운 질문에 채원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당신이 마약범으로 몰려 구속되는 순간, 유준우 환아의 수술 기록도 전부 조작될 거예요. 그 환자를 살려낸 건 당신의 정교한 의술이었어요. 그걸 권력 싸움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의사의 양심을 짓밟는 걸 더는 묵과할 수 없어요."
채원은 숨을 몰아쉬며 서진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기맥 투안의 부작용으로 인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그의 손끝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채원은 주저 없이 손을 뻗어 서진의 떨리는 손목을 강하게 맞잡았다. 수술실에서 그의 흔들림을 잡아주었던 그때처럼,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서진의 차가운 손목을 통해 심장으로 흘러들었다.
"당신은 환자를 기계처럼 대한다고 하지만... 나는 알아요. 당신이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사람을 살려내고 있다는 걸.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당신의 날개가 되어 줄게요. 이걸로 저들의 목을 치세요."
서진은 자신을 지탱해 주는 채원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전생의 구중궁궐 속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던 어의 시절에는 결코 가져보지 못했던,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반자의 온기였다.
"고맙습니다."
서진은 감정을 배제한 목소리였지만, 이례적으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또 다른 서류 봉투를 꺼냈다. 오늘 아침 일찍 진단검사의학과와 협조하여 최종 조율을 마친 '유준우 환아의 정밀 동맥혈 가스 분석(ABGA) 보고서'였다.
"이것이 있으면 저들이 조작한 임상 자료의 빈틈은 완전히 메워집니다."
서진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소아 환자의 초기 바이탈이 무너진 것은 내 수술 지연 때문이 아니라, 계승우가 수술 전 마취 가스 밸브의 압력 조절 실패와 흡입 마취제 과다 투여로 유발한 급성 호흡성 산증(Respiratory Acidosis) 때문이었습니다. 이 수치가 증명하고 있지요."
제시된 보고서의 수치는 명백했다.
`pH 7.12 / PaCO2 65 mmHg / HCO3- 19 mEq/L`
이것은 인체가 스스로 산소 공급을 중단당해 질식해가고 있었다는 명백한 수치적 증거였다. 서진이 집도하기 훨씬 전부터, 계승우의 태만과 과실로 인해 아이의 뇌는 이미 산소 결핍으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서진의 초미세 클리핑 수술이 아니었다면 아이는 수술대 위에서 뇌사 상태에 빠졌을 터였다.
"여기에 내가 어제 서버실에서 확보한 전산 로그 추적 프로그램의 실시간 데이터까지 결합하면..."
서진은 태블릿 화면을 켰다. 화면 중앙에는 실시간으로 세인대학병원 메인 서버의 접속 기록이 붉은 점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경고: 외부 IP 192.168.10.42에서 '유준우 수술 기록 및 처방 내역' 수정 시도 중. 백업 파일 자동 생성 완료.]`
"민태구와 계승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술 기록을 지우고 펜타닐 처방 기록을 조작하려 접속하는 즉시, 그들의 계정과 조작 흔적이 실시간으로 서버에 박제됩니다. 그들이 스스로의 목에 밧줄을 걸고 있는 셈이지요."
사냥 준비는 완벽히 끝났다. 방패는 단단했고, 칼날은 적장의 심장을 꿰뚫을 만큼 예리했다.
* * *
오전 9시 정각.
세인대학병원 본청 12층 대회의실 앞.
두께가 한 뼘은 족히 넘어 보이는 육중한 마호가니 오크 나무 문이 서진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문 너머에서는 권력의 정점에 선 자들이 벼려놓은 서슬 퍼런 칼날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서진은 가운 주머니 속의 USB와 혈액 가스 보고서를 가만히 움켜쥐었다. 손끝의 떨림은 어느새 완전히 멈춰 있었다.
장영식 교수가 서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가세. 이제 우리가 판을 뒤집을 차례네."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으로 묵직한 오크 문을 밀어젖혔다.
스르륵, 무거운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며 내부의 풍경이 드러났다.
넓은 대회의실 내부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반원형으로 배치된 거대한 테이블 위에는 세인대학병원 이사회 이사들을 비롯해, 병원의 막후 실세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도열해 있었다. 그 중심에는 기획조정실장 민태구가 팔짱을 낀 채, 마치 먹잇감을 내려다보는 매처럼 서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좌우로는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 둘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경찰 공무원증과 체포영장이 얼핏 비쳤다. 서울중앙지검 산하 마약범죄수사대 소속 형사들이었다.
서진이 회의실 안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좌측에 서 있던 형사 한 명이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들며 서진을 향해 정면으로 지목했다.
"세인대학병원 전공의 백서진 씨 맞습니까? 마약류 관리법 위반 및 무면허 의료 행위 혐의로 즉각 체포합니다."
형사의 차가운 음성이 넓은 대회의실 천장을 때리며 울려 퍼졌다.
민태구의 입가에 마침내 잔인한 승리의 미소가 번져 나갔다. 모든 덫이 완벽하게 작동하여 서진의 목을 죄어온 순간이었다.
서진은 피하지 않고 형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극도로 서늘하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