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외과 3년차 전공의 백서진의 개인 사물함에서 허가되지 않은 정맥 마취제 및 마약성 진통제 앰플 유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보안팀은 즉시 외과 의국으로 출동하여……."

벽면에 부착된 원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이 고요하던 의국의 공기를 찢어발겼다.

철제 문이 거칠게 밀려 열리며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렸다. 보안요원 세 명의 가죽 구두 굽 소리가 가쁘게 이어졌고, 그 뒤로 감청색 슈트를 차려입은 기획감사팀 직원 두 명과 계승우가 안으로 들이닥쳤다. 좁은 의국 안은 순식간에 법정의 피고인석처럼 무겁고 비좁은 침묵으로 채워졌다.

"백서진."

계승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며 얇은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숨이 새어 나왔다.

"결국 잡혔군. 얌전히 손 떼고 물러났으면 좋았을 것을, 기어코 마약성 진통제까지 손을 대?"

서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계승우의 얼굴이 아닌, 그의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경동맥의 미세한 박동에 머물러 있었다.

오른쪽 안구 안쪽에서 찌르는 듯한 극렬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안구 신경을 타고 전두엽으로 뻗어 나가는 열감은 기맥 투안(氣脈 透眼)이 강제로 개방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시야가 붉게 물들더니, 이내 의국 안 인물들의 흐릿한 윤곽 너머로 천연색의 혈류와 신경망이 번개처럼 뻗어 나가는 모습이 투시되었다.

계승우의 심장 박동은 분당 110회에 달했다. 혈류가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전두엽으로 향하는 동맥이 팽창해 있었다. 극도의 불안과 승리감이 뒤섞인 교감신경의 과활성화 상태. 서진은 그 모습을 조용히 관조했다. 궁중의 음험한 모략가들이 흔히 보여주던, 파멸 직전의 가쁜 호흡과 정확히 일치했다.

"무슨 근거로 타인의 사유물을 수색하겠다는 것인지 밝히십시오."

서진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차분했다. 낮고 서늘한 음성이 의국의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로 가라앉았다.

감사팀장이 품증을 꺼내 보이며 차가운 실무적 어조로 대꾸했다.

"약제부에서 마약류 관리대장과 실제 재고의 불일치를 확인했습니다. 최근 72시간 내에 소아외과 및 신경외과 수술실에 출입한 인원 중, 비인가 약품 처방 권한이 없는 하급 전공의는 백 선생 하나뿐입니다. 보안 규정 제14조에 의거, 원내 범죄 예방을 위해 사물함 개방을 요구합니다."

"열 필요도 없지. 이미 무전으로 다 흘러나왔는데."

계승우가 감사팀의 어깨너머로 손을 뻗어 서진의 사물함 문고리를 거칠게 잡아챘다.

*깡!*

얄팍한 철판이 휘어지는 소리와 함께 사물함 문이 열렸다. 계승우는 기다렸다는 듯 맨 위 선반 구석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의 손끝이 노리는 위치는 정확했다. 이윽고 그의 손가락 끝에 걸려 나온 것은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갈색 앰플 세 개였다.

"이거 보이지? 'Fentanyl Citrate'. 일련번호가 외과 약국에서 유출된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군."

계승우가 앰플을 흔들며 감사팀을 향해 돌아서려던 그 순간이었다.

"거기까지 하십시오."

서진이 천천히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기맥 투안의 부작용으로 우측 팔의 미세 운동신경이 마비되는 전조 증상이었다. 하지만 서진은 그 떨림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파우치에서 꺼낸 가느다란 금속 핀셋으로 계승우의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앰플의 라벨을 가리켰다.

"계 선생. 그 앰플의 상단 봉인 캡을 보십시오. 색상이 어떻습니까?"

계승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 미친 소리 하지 마. 펜타닐 앰플 캡은 당연히 푸른색……."

"그것은 일반 병동용 50마이크로그램 규격입니다."

서진이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붉게 충혈된 눈이 계승우의 안구를 꿰뚫을 듯 응시했다.

"당신이 쥐고 있는 앰플의 캡은 엷은 황색입니다. 그것은 마취과 극비 관리 품목인 수술실 전용 250마이크로그램 고용량 제품이지요. 우리 외과 전공의 사물함 열쇠는 기조실 감사팀의 마스터키나 외과 수석 레지던트의 권한이 없으면 복제조차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유출된 일련번호의 원장을 확인해 보셨습니까?"

서진은 주머니에서 2화 수술 직후 수거해 두었던 개인 침구 파우치를 꺼냈다. 지퍼를 열자 가죽 안감 사이에 고정되어 있던 미세한 수술용 바늘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발보다 조금 더 굵은 정도의 초미세 나일론 실이 꿰어져 있는, 끝이 반달 모양으로 휜 마이크로 바늘이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계승우의 안면 근육이 눈에 띄게 경련했다. 혈류 속도가 급격히 저하되며 그의 목덜미가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그…… 그게 왜 네 놈 손에……!"

"사흘 전, 소아 환자 유준우 군의 뇌저동맥류 클리핑 수술 당시, 당신이 시술 준비대에 올려두었던 8-0 마이크로 성형 봉합용 바늘입니다. 일반적인 규격인 0.04밀리미터가 아니더군요. 끝부분의 만곡도가 미세하게 비틀려 있고, 인장 강도가 설계 기준치보다 30% 이상 떨어지는 불량 로트 번호 'LN-9082-F' 계열의 제품입니다."

서진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다. 오직 수술실 내부의 기계적 수치만을 읊는 무감각한 이성만이 존재했다.

"현대 의학에서 나일론 봉합사는 전생의 은침과 같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보다 가는 혈관을 묶는 도구에 균열이 있다면, 그것은 수술 중 혈관 벽을 찢어 발겨 환자를 즉사시키겠다는 소리와 다름없지요. 계 선생, 이 불량 바늘이 왜 당신의 개인 소모품 대장에서 외과 수술실로 출고되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그, 그건 단순한 물품 검수 오류일 뿐이야! 지금 본질을 흐리지 마! 네 사물함에서 마약이 나왔다고!"

계승우가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 섞인 금속성 파열음이 의국 벽면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졌다.

그때, 의국 입구에서 정갈한 구두비 소리가 울렸다.

"본질을 흐리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똑똑히 확인해 드리지요."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한채원이 의국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최신형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평소의 인도주의적 온화함 대신, 얼음처럼 차가운 격노로 가득 차 있었다.

"방금 외과 전공의 및 스태프 전체 단체 대화방에 파일 하나를 업로드했습니다. 기획조정실과 혜민재학 산하 의료기기 납품 대리점인 '정원 메디칼'의 내부 반출 대장 스캔본입니다."

한채원이 태블릿의 화면을 탭하자, 푸른색 백라이트 화면에 한 장의 장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품명, 마이크로 니글 8-0. 로트 번호 LN-9082-F. 수령인, 소아외과 전공의 계승우. 반출 목적은 '폐기용 샘플'로 등록되어 있으나, 실제 배송지는 계 선생의 개인 연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량 바늘이 유준우 환아의 응급 수술 트레이에 정확히 올라가 있었지요."

의국 안의 공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보안팀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고, 기획감사팀장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의료 과실이 아닙니다."

한채원이 서진의 곁에 서며 계승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환자의 동맥을 고의로 파열시켜 집도의였던 백서진 선생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씌우려 한 조직적인 범죄 행위입니다. 백 선생의 사물함에서 발견되었다는 펜타닐 역시, 당일 수술실 약품 관리 대장 상에서 계 선생의 면허 번호로 대리 서명되어 반출된 기록이 여기 전산 로그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이건 모함이야! 전산 오류라고! 장영식 교수가 뒤에서 조작한 게 분명해!"

계승우가 이성을 잃고 날뛰며 한채원의 태블릿을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

*콰아앙!*

의국 문이 벽에 부딪히며 완전히 떨어져 나갈 듯한 굉음이 일었다.

검은색 맞춤 정장을 입은 거구의 수행원 세 명이 먼저 의국 안으로 들이닥쳐 계승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수행원들의 억센 손귀가 계승우의 어깨를 내리누르자, 그는 허리가 꺾인 채 바닥으로 처박혔다.

그 뒤로, 백발이 성성하지만 정정한 기세를 뿜어내는 노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준우의 외조부이자 현 정권의 막후 실력자로 불리는 유태준 의원이었다. 그의 뒤에는 세인대학병원 기획조정실장 민태구가 사색이 된 얼굴로 뒤따르고 있었다.

"내 손자의 머리에…… 그런 썩은 바늘을 들이밀었다는 놈이 네놈이냐?"

유 의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의국 안의 모든 소음을 압도하는 무게감이 있었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엎어진 계승우에게 닿았다.

"의원님, 그, 그것이 아니라…… 오해입니다! 저는 단지……."

"닥쳐라!"

유 의원이 지팡이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깡—!*

대리석 바닥이 울리는 소리에 계승우는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입을 다물었다. 유 의원은 민태구를 잔인한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민 실장. 이 병원이 정재계 VIP들의 생명을 담보로 장사를 하는 곳인 줄은 알았으나, 내 핏줄의 목숨을 가지고 이딴 유치한 권력싸움의 도구로 쓸 줄은 몰랐군. 내 손자가 1분만 늦었어도 뇌저동맥이 파열되어 즉사했을 것이라 들었다."

민태구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려 턱 끝에 맺혔다.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회전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계승우는 그의 조카이자 혜민재학 카르텔의 차세대 후계자로 키우던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계승우를 감싸 안다간 유 의원의 칼날이 자신과 혜민재학의 심장부로 향할 것이 자명했다.

민태구는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의원님. 안 그래도 원내 기획조정실 차원에서 철저한 감사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계승우 전공의의 독단적인 비위 행위와 의료기기 무단 반출 정황이 확인되는 대로, 즉각 파면 및 형사 고발 조치를 취할 예정이었습니다."

"삼촌!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삼촌이 시켜서……!"

계승우가 경악하여 소리를 질렀으나, 보안요원들이 즉각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민태구는 조카의 시선을 철저히 외면한 채,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했다.

"보안팀은 즉시 계승우를 격리방으로 이송하고, 의무기록 조작 혐의 및 마약류 무단 반출 혐의로 관할 경찰서에 인계해라. 감사팀은 지금 당장 이 자의 연구실을 압수수색하도록."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었다. 꼬리가 잘려 나간 계승우는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보안요원들에게 끌려 나갔고, 감사팀원들 역시 황급히 의국을 빠져나갔다.

의국 안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남았다.

유 의원이 천천히 몸을 돌려 서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매서운 눈빛이 서진의 충혈된 우측 안구와 미세하게 떨리는 오른손에 머물렀다.

"자네가…… 내 손자의 뇌를 열어 살려낸 의원(醫員)인가?"

서진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전생의 군왕을 대하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의 생사를 지배하는 것은 의원인 저의 소임일 뿐입니다.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만한 대답이었다. 지켜보던 한채원이 움찔하며 서진의 눈치를 보았으나, 유 의원의 입가에는 오히려 기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만하군. 하지만 그 오만함을 받쳐줄 실력이 있으니 기특하다."

유 의원이 갑자기 지팡이를 옆으로 치우더니, 서진을 향해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정계의 거물이 일개 하급 전공의에게 올리는, 절절한 감사의 예를 담은 깊은 절이었다.

"내 손자를 살려주어 고맙네. 세인병원 안에서 자네의 의술을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내 이름을 걸고 그 누구라도 짓밟아 주지. 약속하겠네."

서진은 그 모습을 보며 심연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기묘한 충족감을 느꼈다.

'절대적 의권(醫權).'

과거 임금의 죽음을 막지 못해 권력의 발치에서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어의 백서진이 현대에 이르러 마침내 움켜쥐기 시작한,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지배권의 시작이었다.

민태구는 그 광경을 음울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손끝이 바지 주머니 속에서 가늘게 떨렸다. 유 의원이 서진의 뒷배를 자처한 이상, 당장 물리적인 수단으로 그를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백서진…… 이 건방진 놈이 기어코 내 목을 겨누는구나.'

민태구는 유 의원을 배웅하기 위해 돌아서며, 슬그머니 자신의 개인 스마트폰을 꺼내 비서에게 은밀한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즉시 원내 EMR(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의 보안 등급을 최고 단계로 격상해라. 백서진의 전산 계정 권한을 소급 정지시키고, 소아외과 및 신경외과 서버를 메인 프레임에서 격리해라. 그놈이 더는 환자들의 기록에 접근하지 못하게 손가락을 묶어버려라.]

서진을 향해 돌아서는 민태구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스쳤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진 의원이라 할지라도, 환자의 정보를 볼 수 없다면 수술대 위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할 터였다.

오른쪽 안구의 안통이 더욱 심해지며 서진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암전되었다. 서진은 조용히 자신의 오른손을 꽉 쥐었다. 마비가 손목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차가운 조소가 맴돌고 있었다.

싸움은 이제 막 2막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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