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빅! 삐비빅! 삐비비비빅!"
심박동 모니터의 경고음이 수술실 내부의 정적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붉은색 경고등이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웠다. 수축기 혈압 165mmHg. 소아 환자 유준우의 뇌 심부, 뇌저동맥(Basilar artery)에 도사린 혈관 꽈리가 이 비정상적인 압력을 버텨낼 리 없었다.
"백 선생! 동맥류 벽이 너무 얇아 보여요! 이대로 접근하면……!"
한채원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서진의 우측 안구에 맺힌 천연색 기맥의 흐름 속에서, 검붉은 적색으로 요동치던 동맥류 외벽이 결국 찢어졌다.
흡사 얇아질 대로 얇아진 고무풍선 표면에 바늘구멍이 뚫린 격이었다. 투명한 뇌척수액(CSF)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지주막하 공간으로 붉은 선혈이 미세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분출된 혈액이 현미경 렌즈의 시야를 순식간에 붉은 장막으로 가려버렸다.
"아웃플로우(Outflow) 발생! 석션(Suction)! 빨리 석션해요!"
마취과 레지던트가 비명을 지르며 수술대 앞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뇌저동맥 파열은 곧 사망을 의미했다. 뇌간(Brainstem) 바로 앞을 지나는 이 굵은 혈관이 터지면, 환자는 몇 분 이내에 뇌사에 빠지거나 심정지로 사망한다. 수술실에 배석한 간호사들의 손끝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일순간 지옥으로 변한 수술실에서 오직 백서진만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비키십시오."
서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당황하여 석션 팁을 우왕좌왕 들이밀던 마취과 의사의 손을 가볍게 쳐냈다. 그리고 쟁반 위에 놓여 있던 마이크로 포셉(Micro forceps)과 초미세 가위를 강제로 빼앗아 쥐었다.
"백 선생? 지금 미쳤어요? 기저부 확인도 안 된 상태에서 메인 베셀(Main vessel)을 건드리면……!"
"시끄럽습니다. 환자를 죽일 생각입니까?"
서진의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우측 안구를 찌르는 극심한 통증이 관자놀이를 타고 뇌 중앙으로 번져 나갔다. 마치 뜨겁게 달군 쇠꼬챙이로 눈알 뒷부분을 사정없이 헤집는 듯한 감각이었다. 기맥 투안(氣脈 透眼)의 과부하 증세였다. 오른팔 전체가 뻣뻣하게 굳어 들어갔고, 손끝의 미세 운동신경이 통제를 잃고 떨리려 했다.
하지만 서진은 이 고통조차 도구로 삼았다. 전생의 어의전에서 황제의 붕어를 막지 못했던 그 지옥 같은 무력감에 비하면, 육체의 통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보아라.'
서진은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현미경 너머를 응시했다.
시야가 피로 붉게 물든 혼돈 속에서, 기맥 투안이 발현한 천연색 선형 에너지가 마침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붉은 피의 장막 뒤편으로, 황금빛을 띠는 미세한 신경 다발과 푸른빛으로 흐르는 우회 혈류의 기맥이 입체적으로 솟아올랐다.
혈액이 뿜어져 나오는 정확한 파열공(Rupture point)의 위치는 뇌저동맥 기저부에서 좌측으로 정확히 1.2mm 비껴간 지점이었다.
현대 의학의 초고해상도 MRI로도 포착할 수 없는, 오직 경락과 혈류의 기적을 보는 서진의 눈에만 허락된 미세한 틈새였다.
"석션 팁 고정하세요.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피만 걷어냅니다."
서진이 지시했다. 그의 손에 쥔 마이크로 포셉이 0.1mm의 오차도 없이 뇌심부의 복잡한 신경망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하지만 백 선생, 시야 확보가 전혀 안 돼요! 장님 문고리 잡기 식으로 클립을 물렸다간 천공이 더 커집니다!"
한채원이 다급하게 서진의 소매를 붙잡으려 했다. 그녀의 눈에는 그저 붉은 피바다 속으로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맹목적인 집도를 감행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장님이 아닙니다."
서진이 낮게 읊조렸다.
"제 눈에는 아주 똑똑히 보이니까요."
그의 손끝이 움직였다.
현미경 모니터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뇌척수액과 혈액이 뒤섞인 소용돌이 속에서 서진의 포셉이 미세한 기맥의 틈새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날아가는 화살을 손가락으로 낚아채는 듯한 신기에 가까운 궤적이었다.
찰나의 순간, 서진의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안구의 통증이 극에 달하며 손끝의 제어력이 상실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크로 단위의 수술에서 단 0.5mm의 손떨림은 환자의 뇌간을 찢어발기는 치명적인 칼날이 된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서진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턱관절이 으스러질 듯한 힘이 들어갔다.
그때,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각이 서진의 뻣뻣하게 굳은 오른손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
서진이 시선을 올리지 않은 채 현미경 너머로 감각을 느꼈다.
한채원이었다. 그녀는 서진의 차가운 눈빛 속에 서린 비장함과, 그의 손끝이 겪고 있는 육체적 한계를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을 뻗어 서진의 손목 지지대(Wrist rest) 역할을 자처했다. 흔들리는 서진의 손목을 자신의 부드러운 손끝으로 단단히 받쳐 고정해 준 것이다.
"움직이지 않게 잡았어요. 집도하세요."
한채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서진의 손목을 지탱하는 손길만큼은 바위처럼 견고했다.
서진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호선을 그렸다.
"고맙군."
떨림이 멈췄다. 완벽한 고정이었다.
서진은 망설임 없이 미세 침형 집게(Aneurysm Clip)를 파열된 혈관의 기저부로 밀어 넣었다.
기맥 투안이 가리키는 천연색 우회로의 시작점. 단 1mm의 정상 조직도 다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궤적이었다.
*딸각.*
금속성의 미세한 마찰음이 현미경 스피커를 통해 수술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초정밀 티타늄 클립이 파열된 동맥류의 목(Neck) 부분을 완벽하게 물어 잠근 소리였다.
순간, 세차게 뿜어져 나오던 붉은 선혈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석션기가 남아 있는 혈액을 빨아들이자, 현미경 시야 너머로 클립이 채워진 뇌저동맥의 모습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단 1mm의 정상 혈관도 씹히지 않은, 신의 솜씨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완벽한 클리핑(Clipping)이었다.
"어……."
마취과 의사의 입에서 얼빠진 신음이 흘러나왔다.
"혈류가…… 잡혔어? 이 상황에서 한 번에?"
"모니터 확인해 보세요! 바이탈 안정화됩니다!"
간호사의 외침과 함께, 미친 듯이 울려 퍼지던 경고음이 차분하고 규칙적인 박동음으로 바뀌었다.
"삑. 삑. 삑. 삑."
수축기 혈압 110mmHg. 산소포화도 99%.
대폭발 직전의 시한폭탄이었던 뇌저동맥류는 이제 완벽하게 제어되어 평온을 되찾았다.
수술실 내부의 긴장감이 일순간에 정적과 경탄으로 치환되었다. 누구도 손댈 수 없었던 기형적 파열 혈관을, 현미경을 들여다본 지 단 3분 만에 실타래 꿰듯 봉합해 버린 것이다.
"인공심폐기 및 저체온 유도 장치 오프(Off)합니다. 자체 바이탈로 유지합니다."
서진이 차분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흥분도, 안도의 기색도 없었다. 환자를 살려내야 할 정교한 기계로 대하는 그의 차가운 방어기제는 여전히 견고했다.
서진은 수술용 나일론 봉합사를 쥔 채 마지막 지주막 봉합을 시작했다.
바늘이 뇌막을 통과할 때마다 서진은 마음속으로 깊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생의 왕실 어의전에서 사용하던 최고의 금침과 비방의 약재들도 훌륭했으나, 현대의 초미세 나일론 봉합사와 고해상도 현미경은 집도의의 의지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주는 신물(神物)과도 같았다.
'이 도구들이라면…….'
서진은 확신했다.
현대의 첨단 의술이야말로 자신이 전생에 이루지 못했던 '절대적 의권'을 완성할 최고의 무기였다. 이 완벽한 도구들을 완전히 손에 쥔다면, 그 어떤 권력자도 자신의 손끝 아래 무릎 꿇릴 수 있으리라.
"바늘 카운트 확인하세요. 봉합 마칩니다."
서진이 포셉을 내려놓으며 마지막 매듭을 지었다.
"수술 종료합니다."
그의 선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술실 안의 의료진들이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하아…… 진짜 살았어. 이게 말이 되나?"
"뇌저동맥 파열을 현미경만 보고 클리핑하다니…… 이건 논문감 수준이 아니라 기적이에요."
의료진들의 경외 어린 시선이 서진에게 집중되었다. 한채원 역시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훔치며 서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선, 깊은 의학적 신뢰와 알 수 없는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서진은 그들의 감상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오른손을 내렸다. 우측 안구의 안통은 가라앉았지만, 오른팔 전체로 퍼진 일시적인 마비와 손떨림 증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오른손을 가운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리고 주머니 안쪽에 넣어두었던 개인 침구 파우치를 손끝으로 살며시 만져보았다.
그 안에는 지난 수술에서 계승우가 함정으로 준비해 두었던 불량 마이크로 바늘이 들어 있었다.
'이제 사냥을 시작해 볼까.'
서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수술을 성공시키는 것은 의사로서의 당연한 의무이자, 적들을 파멸시키기 위한 가장 강력한 명분을 얻는 행위일 뿐이었다. 궁중 암투에서 살아남은 서진에게, 이제부터가 진짜 전쟁이었다.
서진은 소독복을 벗기 위해 천천히 수술대 뒤편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소독 가운의 끈을 풀고 에어샤워실로 향하는 문을 열었을 때였다.
*스르륵.*
수술실의 무거운 자동문이 열리며, 차가운 살기를 품은 무리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가장 앞장선 인물은 흰 가운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중년 사내였다. 날카로운 눈매와 엄격하게 다문 입술. 세인대학병원의 실권자이자 부패 카르텔 '혜민재학'의 핵심인 민태구 기획조정실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편으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늘어섰다.
병원의 모든 감사와 법적 징계를 담당하는 '카텔리아 VIP 전담 감사팀' 인력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붉은색 표지가 붙은 징계 요구서와 진료기록 압수 봉투가 들려 있었다.
민태구의 시선이 수술대 위의 아이를 지나, 소독복을 벗고 있는 서진에게 멈추었다.
"백서진 선생."
민태구의 목소리가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를 얼려버릴 듯이 울려 퍼졌다.
"집도 권한이 박탈된 하급 레지던트 신분으로, 병원 이사회의 승인 없이 VIP 환자의 수술을 무단 강행한 혐의로 이 시간부로 직무를 전면 정지합니다. 또한, 의료법 위반 및 무면허 의심 행위로 감사팀의 정식 조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민태구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당장 그 손 떼고 나오시지."
수술실 내부의 공기가 다시 한번 얼어붙었다. 한채원과 의료진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민태구를 바라보았지만, 서진은 그저 묵묵히 민태구의 눈을 응시할 뿐이었다.
민태구의 눈가에 도는 옅은 황달과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요골 동맥의 미세한 떨림이, 서진의 기맥 투안 너머로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서진이 주머니 속 불량 바늘을 만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