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비상 경고등이 소아외과 중환자실의 차가운 시멘트 벽면을 피처럼 물들이며 회전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가 고막을 때릴 때마다, 백서진의 우측 안구 깊은 곳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솟구쳤다. 방금 전 뇌저동맥 폐색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가동했던 기맥 투안(氣脈 透眼)의 대가였다. 망막 뒤쪽의 미세 혈관들이 터질 것처럼 팽창하고 있었고, 주머니에 찔러 넣은 오른손 끝은 의지와 상관없이 잘게 떨렸다.
서진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전생의 구중궁궐에서도 이보다 더한 독수(毒手)와 암투 속을 걸었다. 겨우 이 정도 지참(遲參)의 고통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손목의 외관혈(外關穴)을 강하게 압박하며 떨림을 억눌렀다.
"비켜! 비켜라!"
처치실의 슬라이딩 도어가 거칠게 열리며 응급의학과 이동식 침대가 밀려 들어왔다. 그 위에는 인공호흡기 마스크를 쓴 채 사지가 허옇게 질린 일곱 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누워 있었다. 아이의 가슴은 비정상적으로 함몰되어 있었고, 목 주변의 피부가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 사이사이로 움푹 빨려 들어갔다.
"유민형 의원 손자입니다! 이송 중 어레스트(Arrest·심정지) 한 번 왔었고, 에피네프린 투여 후 간신히 바이탈만 잡아서 올렸습니다!"
들것을 밀고 온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쳤다.
그 뒤를 따라온 소아외과 4년차 레지던트 계승우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그의 손에는 본관 기획조정실의 직인이 찍힌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백서진! 너 당장 그 손 떼! 기조실장님 지시다. 넌 방금 전 무단 시술 건으로 즉시 직무 정지야! 이 환자는 내가 집도한다!"
승우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차기 대선 주자의 손자라는 거물의 목숨줄이 제 손에 걸려 있다는 중압감, 그리고 눈앞의 평조차 되지 않는 하급 레지던트 백서진이 보여준 기괴한 의술에 대한 공포가 뒤섞인 목소리였다.
서진은 승우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침대 위의 소아 환자, 유준우의 목덜미에 고정되어 있었다.
욱신거리는 안구의 통증을 억누르며 서진이 다시 한번 눈을 가늘게 떴다. 망막 너머로 붉고 푸른 인체의 기맥이 천연색의 선으로 피어올랐다.
실시간으로 투사되는 아이의 목 내부 상태는 처참했다. 기도 주변의 활성화된 경락들이 검붉은 색으로 굳어 가고 있었다. 후두 경련(Laryngospasm)이었다. 기도 내부의 점막이 극도로 부풀어 올라 공기가 지나갈 구멍이 머리카락 한 올 정도로 좁아져 있었다. 이대로 1분만 지나면 뇌로 가는 산소가 완전히 차단되어 영구적인 뇌사에 빠질 것이 자명했다.
"인투베이션(Intubation·기관삽관) 준비해! 후두경 가져와!"
승우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스타일렛이 끼워진 튜브를 치켜들었다.
"멍청한 짓 하지 마십시오."
서진의 낮고 차가운 음성이 처치실의 소음을 뚫고 승우의 귓전에 박혔다.
"뭐? 멍청한 짓? 야, 백서진!"
"환자의 기도는 지금 단순한 부종이 아닙니다. 후두 근육 전체가 급성 경련을 일으켜 완전히 맞물린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서 억지로 후두경 팁을 밀어 넣었다간 점막이 파열되어 대량 출혈이 발생합니다. 쏟아진 피가 기도 내부로 흡인되면 그 즉시 질식사할 겁니다."
서진은 환자의 목 밑동, 천돌혈(天突穴) 부근을 검지로 지그시 누르며 말을 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기관지 삽관이 아니라, 즉각적인 융합 기관지 절개술(Tracheostomy)입니다."
"미쳤어? 소아 환자한테 이 좁은 처치실에서 기관지 절개를 하겠다고? 혈관 분포가 성인이랑 달라서 까딱하면 갑상선 정맥을 건드려! 여기서 피 터지면 끝장이야!"
승우가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소아의 목은 해부학적으로 구조가 극도로 조밀하고 미성숙하여, 숙련된 이비인후과 전문의조차 수술실이 아닌 곳에서의 소아 기관지 절개는 꺼리는 치명적인 시술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30초 내로 기도를 확보하지 못하면 환자는 사망합니다."
서진이 한채원을 바라보았다.
"한채원 선생. 메스 잡으십시오."
채원은 침을 삼켰다. 서진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환자의 목숨을 걱정하는 인도주의적인 열정 따위는 없었다. 오직 고장 난 기계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고치겠다는 냉혹한 정밀함만이 그 눈동자에 서려 있었다. 그 비인간적인 태도에 거부감이 치밀었지만, 동시에 채원의 이성은 서진의 판단이 정확하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집도하겠어요. 백서진 선생은 어시스트를 서세요."
채원이 일회용 수술 팩을 뜯으며 메스를 쥐었다.
"안 돼! 한채원, 너까지 미쳤어? 이건 의료 사고야! 기조실장님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승우가 가로막으려 하자, 서진이 그의 앞을 턱 가로막았다. 서진의 차가운 눈빛이 승우의 미간을 꿰뚫었다.
"비키십시오. 짖는 개는 궁궐에서도 매질로 다스리는 법입니다."
"뭐, 뭐라고?"
"한 선생, 시작하십시오. 흉골 상와(Suprasternal notch) 상방 1.5센티미터. 수평 절개합니다."
서진의 지시와 동시에 채원의 메스가 아이의 하얀 목 피부를 갈랐다.
붉은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하자 승우는 비명을 지르듯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서진의 손길은 이미 메스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서진의 왼손가락이 환자의 목 근육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초미세 혈관의 위치를 손끝의 감각만으로 짚어냈다.
기맥 투안이 그의 시야에 붉은색으로 박동하는 갑상선 상·하정맥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띄워주고 있었다. 서진의 손가락은 그 혈관들을 교묘하게 비껴가며 근막을 옆으로 밀어냈다.
"리트랙터(견인기)."
채원이 멍하니 서진의 손가락 행보를 바라보았다. 메스를 쥔 그녀의 손끝보다, 맨손으로 길을 열어젖히는 서진의 손길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정확했다. 단 한 방울의 유의미한 출혈도 없이, 새하얀 기도(Trachea)의 연골막이 시야에 드러났다.
마치 환자의 목 내부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그 안에 숨겨진 혈관의 지도를 미리 보고 들어가는 것과 같은 신기(神技)였다.
채원은 전율했다.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채 오직 완벽한 의술의 기계가 된 것 같은 서진의 모습에, 그녀는 깊은 경외감과 함께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서진이 신속하게 11번 메스를 받아 기도의 이륜과 삼륜 사이를 절개했다.
"슈우우욱——!"
막혀 있던 압력이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피와 섞인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서진이 지체 없이 기관 절개 튜브를 밀어 넣고 고정했다.
"산소포화도 상승합니다! 82…… 90…… 95퍼센트! 바이탈 안정됩니다!"
간호사의 외침과 함께 처치실 안의 긴장감이 일순간 탁 풀렸다.
서진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천천히 메스를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이 구석에 놓인 응급실 수술 기구 트레이로 향했다. 그곳에는 계승우가 소아 환자의 봉합을 위해 미리 챙겨두었던 마이크로 성형 봉합 세트가 놓여 있었다.
서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맥 투안의 잔상이 남아 있는 시야에, 은빛으로 빛나는 미세 수술용 바늘 하나가 기묘하게 굴절되어 보였다.
그는 다가가 핀셋으로 그 바늘을 집어 올렸다.
바늘의 허리 부분, 육안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다. 강한 장력이 가해지는 인대나 혈관 봉합 시 단단한 조직을 통과하는 순간 부러져 환자의 체내에 박힐 수밖에 없는 불량품이었다. 바늘의 엉덩이 부분에 각인된 미세한 로트 번호를 확인한 서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이자가 파놓은 함정이 이것이었나.'
승우가 서진을 향해 음해의 덫을 놓기 위해 준비해 둔 불량 의료기기였다. 서진은 말없이 그 바늘을 자신의 개인 침구 파우치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적이 던진 독침은 언제나 가장 완벽한 반격의 패가 되는 법이었다.
"후우……."
승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진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백서진. 네가 멋대로 환자 목을 땄지? 이건 명백한 월권이자 의료법 위반이야! 보건복지부 면허 정지 사유라고! 게다가 기조실장님의 집도 정지 명령서가 발부된 상태에서 시술을 감행했으니, 당장 수술방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이고 형사 처벌까지 받게 해 주마!"
승우가 소리치며 서진의 가슴팍을 서류 봉투로 툭툭 쳤다.
서진은 가만히 서류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승우의 눈을 직시했다. 그의 안광에는 황실의 어의로서 수많은 정적들을 단 한 마디의 명분으로 참수대로 보냈던 서슬 퍼런 살기가 서려 있었다.
"계승우 선생."
서진의 목소리는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방금 하신 말씀, 본원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선한 사마리아인 법)'와 '세인대학병원 임상 규정 제14조'를 염두에 두고 하신 소리입니까?"
"뭐, 뭐야?"
"해당 규정에 따르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제공하는 응급의료 행위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한, 임상 규정 제14조 3항에는 '집도 예정의가 정당한 사유 없이 시술을 지연하거나 능력이 부족하여 환자의 생명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경우, 현장의 차하위 의료진이 즉시 집도권을 인수한다'고 명시되어 있지요."
서진이 한 걸음 다가서자, 승우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방금 전,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7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는 극단적인 저산소증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집도 예정의였던 계승우 선생은 기관지 삽관이라는 오진을 고집하며 시술을 지연시켰습니다. 제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환자는 지금쯤 심정지로 사망했거나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을 겁니다."
"그, 그건 네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잖아!"
"주관적이라니요?"
서진이 처치실 벽면에 부착된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 방 안의 모든 대화와 환자의 바이탈 변화 추이, 그리고 처치 과정은 실시간으로 소아외과 중앙 서버에 녹화 및 기록되었습니다. 계 선생께서 가져오신 기조실의 집도 금지 명령서는 '정상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 행정 명령일 뿐, 환자의 급박한 생명권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 기록을 가지고 법정이나 보건복지부 감사위원회로 간다면, 과연 누가 면허 취소를 당하게 될 것 같습니까?"
승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서진의 말은 단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법적, 규정적 팩트였다. 병원 이사회와 기조실장 민태구의 권력을 등에 업고 기고만장했던 승우였지만, 환자의 사망 위험이라는 객관적인 데이터 앞에서는 그 어떤 권력도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없었다.
"게다가."
서진이 승우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환자의 차트를 보니 사흘 전 계 선생의 당직 날짜에 이 환자의 미세 동맥류 전조 증상인 두통 호소가 기록되어 있더군요. 그때 단순 감기약만 처방하고 귀가 조치 시킨 서명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
승우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지진을 일으켰다.
"그, 그건……."
"초기 진단 태만으로 인한 동맥류 파열 유발. 이 한 줄이면 계 선생뿐만 아니라 계 선생을 비호하는 기조실장까지 언론의 단두대에 오르게 될 겁니다. 조용히 비키십시오. 아니면 지금 당장 이 기록을 유민형 의원 측 법률 대리인에게 송부해 드릴까요?"
압도적인 패배감과 공포가 승우의 전신을 지배했다. 그는 입을 벙긋거렸지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술 동의 서류를 떨어뜨렸다.
서진은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밟고 지나가며 냉정하게 선언했다.
"이 수술의 퍼스트 어시스턴트(제1조수)는 한채원 선생이 맡습니다. 계승우 선생은 수술실 오염 방지를 위해 즉시 퇴실 조치합니다. 소아외과 수석 레지던트의 권한으로 명합니다."
"백서진…… 너……!"
승우는 피눈물이 고인 눈으로 서진을 노려보았지만, 이미 상황은 종결되어 있었다. 간호사들과 응급실 스태프들은 이미 서진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환자를 하이브리드 수술실로 이송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사도(邪道)는 결코 정도(正道)를 이길 수 없다. 궁중의 암투에서 배운 유일한 진리였다. 법과 규정이라는 현대의 칼날은, 다루는 법만 안다면 전생의 어도(御刀)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잔인한 무기가 되었다.
수술실의 무거운 납문이 굳게 닫혔다.
초정밀 미세 수술 로봇과 하이브리드 수술대가 설치된 제1특별수술실. 이곳은 세인대학병원의 심장이자,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의 목숨줄을 쥐고 흔드는 '천수각'의 입구였다.
서진은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운 소아 환자의 머리맡에 섰다.
"하아……."
우측 안구에서 다시 한번 격렬한 통증이 뿜어져 나왔다. 손끝의 마비 증세가 팔꿈치까지 타고 올라오는 기분 나쁜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진은 입술을 깨물며 통증을 억눌렀다. 지금 이 수술을 성공시켜야만 민태구와 계승우가 짜놓은 그물망을 찢고 절대적인 의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양손을 들어 올렸다.
"현미경 세팅하고, 뇌저동맥 접근 경로 확보합니다."
서진이 눈을 떴다. 극심한 안통과 함께, 그의 망막 위로 다시 한번 기맥 투안의 천연색 세계가 펼쳐졌다.
아이의 두개골을 투과하여 뇌 심부의 대동맥들이 선명한 선형 에너지로 보이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서진의 안광이 거칠게 흔들렸다.
뇌저동맥(Basilar artery) 분기점 부근,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미세 동맥류(Aneurysm)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색깔이 심상치 않았다. 푸른빛과 황금빛이 섞여 있어야 할 동맥류의 외벽이, 터지기 직전의 화산처럼 검붉은 적색 경고등을 뿜어내며 요동치고 있었다.
맥박이 한 번 뛸 때마다, 동맥류의 얇은 외벽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외벽의 두께는 마이크로 단위 이하로 얇아져 있었고, 그 표면에는 이미 미세한 균열이 발생해 피가 한 방울씩 스며 나오고 있었다.
"……!"
파열 직전이었다.
도구를 대는 미세한 진동 한 번, 혹은 환자의 혈압이 단 1mmHg만 상승해도 뇌 전체를 피바다로 만들 대폭발이 일어날 터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환자의 바이탈 모니터가 날카로운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삐비빅! 삐비빅! 환자 수축기 혈압 상승합니다! 140…… 150!"
"백 선생! 동맥류 벽이 너무 얇아 보여요! 이대로 접근하면……!"
채원의 비명 섞인 외침이 수술실의 공기를 가르는 순간, 서진의 투안에 포착된 붉은색 동맥류의 균열이 쩍 갈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