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윤 회장의 두개골을 열자마자 내압 상승으로 혈액이 미세 렌즈 쪽으로 분수처럼 뿜어 나와 완전히 시야가 가로막혔다.

초고해상도 수술 현미경의 렌즈를 덮친 붉은 선혈은 모니터를 순식간에 암적색 어둠으로 물들였다. 시야각은 제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핏빛 장막이 화면 전체를 지배했다.

"바이탈 급격히 흔들립니다! 수축기 혈압 180 돌파, 맥박수 135회! 뇌내압(ICP)이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마취과 의사의 다급한 음성이 수술실의 기계적 소음과 섞이며 날카롭게 찢어졌다.

수술대 위 환자의 상체가 미세하게 들썩이는 근간대성 경련(Myoclonus)을 일으키자, 다빈치 로봇의 마스터 컨트롤러를 쥔 서진의 오른손 끝으로 무겁고 팽팽한 저항감이 전달되었다. 0.0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뇌저동맥(Basilar artery) 박리 부위에 로봇 팔이 진입한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환자가 머리를 1밀리미터라도 움직인다면, 미세 가위와 클립은 그대로 뇌간을 관통하는 흉기가 된다.

"서진 선생! 로봇 팔을 즉시 빼야 합니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됐어요! 이대로는 수술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퍼스트 어시스트로 마주 선 한채원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그녀의 손이 로봇 팔의 비상 정지 레버로 향하려 했다.

"손 대지 마십시오."

서진의 음성은 수술실을 채운 적색 경고음과 대조적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 로봇 팔을 후퇴시키면 압력 차로 인해 뇌저동맥의 파열 부위가 완전히 찢어집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50킬로미터로 달리던 차량의 브레이크를 갑자기 밟는 격입니다. 혈류의 관성이 뇌실 전체를 터뜨릴 겁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봉합을 한단 말입니까! 석션을 아무리 돌려도 출혈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요!"

한채원의 지적은 정확했다. 현대 외과의 상식으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집도는 살인 행위나 다름없었다. 혈액이 분출하는 구멍을 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기구를 움직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과 같았다.

서진은 대답 대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시각을 차단하자, 머릿속의 다른 감각들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전생의 기억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그리고 이 현대의 육체에 각인된 초감각적 의안(醫眼)이 작동할 차례였다.

'기맥 투안(氣脈 透眼).'

서진의 전두엽을 관통하는 찌릿한 전류와 함께 우측 안구 뒤편의 시신경이 터질 듯 팽창했다.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야 뒤편으로 새로운 세계가 천연색의 선형 에너지로 재구성되어 솟아올랐다.

단순히 수술 부위만을 비추던 좁은 시야가 아니었다. 서진은 기맥 투안의 가동 범위를 윤 회장의 전 뇌 영역으로 극대화했다.

그것은 마치 칠흑 같은 심해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 생물들의 생태계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붉은 피막에 가려 보이지 않던 대뇌피질과 시상하부, 그리고 생명의 중추인 뇌간(Brainstem)이 정교한 청색과 자색의 기맥 선으로 되살아났다.

그 중심에서, 뇌저동맥은 터지기 직전의 붉은 화산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수압이 가득 찬 노후 배관의 미세한 균열처럼, 혈관벽의 찢어진 틈새로 기맥의 에너지가 사방으로 비산하는 모습이 서진의 시계에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석션 팁 고정. 3밀리미터 방향으로 그대로 유지하십시오. 흡인압은 최대치로."

서진이 보지 않고 지시하자, 한채원은 찰나의 망설임 끝에 석션 파이프를 고정했다. *슈우우욱* 하는 금속성 흡입음이 고막을 자극했다. 피가 빨려 나가는 미세한 공간, 그 0.1초의 틈새 속에서 서진의 손가락이 마스터 컨트롤러를 움켜쥐었다.

눈을 감은 채, 서진의 양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봇 팔의 끝에 장착된 초미세 스티치 시스템(Micro-stitch system)이 뇌실 깊숙한 곳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것은 현대 의학이 자랑하는 가장 정밀한 도구이자, 서진에게는 전생의 은침(銀針)이 도달할 수 없었던 극대화된 신물(神物)이었다.

서진은 보지 않았다. 그러나 느꼈고, 투시했다.

기맥의 결대로 바늘을 밀어 넣는 피팅 침투(Fitting penetration).

일반적인 외과의라면 혈관벽을 통과하기 위해 기구의 압력에 의존하겠지만, 서진은 혈류가 만들어내는 기맥의 흐름을 타고 바늘을 유도했다. 혈관의 탄력성과 맥동의 주기를 완벽히 읽어내어, 파열된 내막의 가장 단단한 경계선을 정확히 꿰뚫는 궤적이었다.

*지익. 지익.*

로봇 관절의 초미세 서보모터가 구동되는 기계음이 고요한 수술실에 규칙적으로 울렸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눈을 감고 집도하다니요!" 마취과 의사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기구를 당장 멈추지 않으면 뇌간이……!"

"조용히 하십시오." 한채원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눈은 모니터가 아닌 백서진의 손끝을 향하고 있었다.

서진의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 떨림은 마스터 컨트롤러를 거쳐 로봇 팔로 전달될 때 거짓말처럼 상쇄되고 있었다. 손떨림 방지 알고리즘과 서진의 초감각적 통제력이 결합된 결과물이었다. 0.1mm의 손상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 기맥 봉합. 바늘 끝이 혈관 외벽을 스칠 때마다 모니터의 암적색 피바다 속에서 미세한 기포가 솟구쳤다. 그것은 바늘이 정확한 위치를 관통하고 있다는 유일한 물리적 증거였다.

"첫 번째 스티치, 통과했습니다." 한채원이 마른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기맥 투안의 전 영역 가동은 서진의 육체에 파괴적인 과부하를 걸고 있었다.

우측 안구 내부에서 모세혈관들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찌르는 듯한 안통이 뇌리를 들이받았고, 뜨거운 선혈이 그의 속눈썹을 타고 흘러내려 수술 마스크 위로 툭, 툭 떨어졌다. 하얀 마스크가 순식간에 붉은 점으로 물들어갔다.

동시에 오른팔 전체를 타고 올라오는 격렬한 떨림과 마비 증세가 그의 손가락 근육을 강박적으로 조여왔다. 전생의 업보이자, 신의 영역을 침범한 자에게 내리는 육체의 형벌이었다.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서진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인간의 생사를 권력의 간섭 없이 온전히 자신의 손끝으로 지배하는 '절대적 의권'. 그것을 성취하기 전에 이 육체가 무너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과거 임금의 붕어를 막지 못해 무력하게 무릎을 꿇어야 했던 그 굴욕과 부채감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환자는 살려내야 할 정교한 기계일 뿐이며, 자신은 그 기계를 완벽하게 수리하는 유일한 장인이어야 했다.

그때, 따뜻하고 단단한 감각이 서진의 오른손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한채원이었다.

그녀는 서진의 눈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녀는 왼손으로 서진의 손목 부분을 가볍게 쥐어 지탱하는 동시에, 오른손에 쥔 멸균 거즈로 서진의 이마와 눈가에 흐르는 핏물을 신속하고 부드럽게 닦아냈다.

"흔들리지 마십시오, 백 선생. 손목은 제가 잡고 있습니다. 그대로 밀고 나가세요."

한채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손길을 통해 전달되는 일정한 압력은 서진의 오른팔 미세 운동신경에 가해지던 과부하를 분산시키는 지지대 역할을 했다. 극세 자석 안정을 유도하듯, 그녀의 물리적 보조는 서진의 폭주하는 고통 세포들을 일시적으로 가라앉혔다.

서진은 그녀의 조력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한채원이라는 존재는 이제 단순한 어시스트가 아닌, 이 혹독한 수술실에서 자신의 의술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한 정밀한 보조 장치와도 같았다.

기맥 투안의 시계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골드라인이 마지막 봉합선을 향해 수렴해 갔다.

서진은 마스터 컨트롤러를 쥔 양손을 교차하며 마지막 마이크로 매듭(Micro-tie)을 체결했다. 로봇 팔의 끝단이 미세한 궤적을 그리며 회전했고, 마침내 뇌저동맥의 파열 부위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클립이 고정되었다.

*찰칵.*

수술실의 적막을 깨는 금속성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서진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기맥 투안의 환상적인 골드라인이 서서히 소멸하며 시야가 원래의 현실로 돌아왔다.

동시에 수술실을 가득 채웠던 날카로운 경고음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삐- 삐- 삐-*

불안정하게 요동치던 심전도 모니터의 비프음이 규칙적이고 차분한 리듬으로 돌아왔다.

"뇌내압(ICP) 급격히 강하! 현재 12mmHg로 정상 수치 진입했습니다!" 마취과 의사의 외침에는 경악과 안도감이 뒤섞여 있었다. "뇌파(BIS) 역시 45로 안정화되었습니다. 환자 경련 멈췄습니다!"

"출혈…… 멈췄습니다." 한채원이 수술 현미경 너머의 화면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석션으로 고인 피를 걷어내니 혈관이 보입니다. 단 0.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파열 부위의 정중앙에 클립이 물려 있어요. 시야가 차단된 상태에서 어떻게 이런 봉합이 가능한 거지……."

수술실 안의 모든 스태프가 백서진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들의 눈빛에는 단순한 경외감을 넘어선, 일종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이 서려 있었다. 피바다가 된 수술 시야 속에서 오직 감각과 기맥의 궤적만을 더듬어 완벽한 무혈 마이크로 클리핑을 성공시킨 집도의. 그것은 현대 의학의 상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절대신의 손놀림이었다.

서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수술 장갑을 벗어 던졌다.

오른팔 전체가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고, 우측 안구 내부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은 뇌수를 갉아먹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세척(Irrigation) 진행하고 두개골 닫으십시오. 마무리는 한 선생이 맡습니다."

"알겠습니다." 한채원은 군더더기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서진의 압도적인 실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깊게 박혀 있었다.

서진은 수술실을 빠져나와 세척실로 향했다. 자동문이 닫히는 순간, 그는 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주머니에서 개인 침구 파우치를 꺼내어 미세한 자침을 뽑아냈다. 그리고 자신의 복사뼈 부근인 조해혈(照海穴)과 삼음교(三陰交)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기맥의 역류를 막고 손떨림을 진정시키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다. 침끝을 타고 짜릿한 기운이 올라오자, 미친 듯이 떨리던 오른손의 경련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는 문득 기획조정실장 민태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사전에 윤 회장의 체내에 마취 저해 성분을 주입해 둔 자. 수술실을 살인 현장으로 만들고 자신을 매장하려 했던 그 비열한 음모의 배후.

'민태구.'

서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사흘 전 복도에서 스치듯 지나치며 짚었던 그의 맥상이 떠올랐다. 눈가에 미세하게 감돌던 황달과 불규칙하게 요동치던 요골 동맥의 맥상. 그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혜민재학 카르텔이 비밀리에 개발 중이라던 신약의 부작용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졸중의 전조 증상이었다.

그 독선적인 자의 명줄 역시 오래가지 못할 터였다. 그리고 그 생명줄을 쥐고 흔들 열쇠 역시 결국 의술을 가진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서진은 침을 거두고 의국으로 향하기 위해 회복실 통로로 들어섰다. 윤 회장은 완벽하게 수술을 마치고 곧 이곳으로 이송될 예정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쿵! 쾅!*

회복실 외부 통로에서 거친 구두 굽 소리와 함께 쇠붙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비켜! 병원장 권한으로 집행하는 보안 조치다! 수술실 내부의 무면허 의료 행위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익숙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민태구였다.

그의 뒤로 짙은 남색 정장을 입은 경찰 형사 세 명과 이사회 소속의 사설 경비원 대여섯 명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민태구의 눈가는 핏발이 서 있었고, 그의 뺨은 흥분으로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의 압수수색 영장과 무단 시술에 대한 고발장을 손에 쥐고 있었다.

"백서진! 네놈이 기어코 회장님의 수술을 망쳐놓았구나! 불법 마약 투약도 모자라 환자를 살해하려 한 죄, 오늘 이 자리에서 낱낱이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민태구는 회복실의 이중문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장영식 교수와 보안요원들을 거칠게 밀쳐냈다.

"비키지 않으면 공무집행방해로 전부 구속시키겠어!"

수술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는 민태구는, 서진이 수술실에서 파멸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사전에 주입해 둔 마취 저해 성분으로 인해 윤 회장이 이미 사망했거나 뇌사 상태에 빠졌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눈빛이었다.

*쾅!*

이중문의 잠금장치가 뜯겨 나가며, 충격음과 함께 회복실의 문이 강제로 부서져 열렸다.

깨진 문틈 사이로 민태구의 살기 어린 시선과, 안통을 억누르며 차갑게 그를 응시하는 백서진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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